46화. 부탁하지, 연금술사
치이이이익......!
안개 안으로 들어서자, 온몸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실제로 피부는 화상을 입는 듯 붉게 변하며 탄 내음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진짜 괜찮네?'
상처가 생기는 곳에는 불사조의 불꽃이 즉시 피어오르며 회복을 해주고 있었다.
따뜻한 그 감각이 썩 기분 좋았다.
사실 이 안개가 만드는 상처는, 겉 피부만이 아니었다.
호흡을 하기 위해 숨을 들이 쉴 때도 안개가 따라 들어왔기에, 폐부에서도 같은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날아가던 새나 산짐승들도, 피부의 상처보다는 이 내상이 더 치명적일 터였다.
갑자기 숨을 딱 쉬었는데 폐가 녹는다고 생각해보라.
'정신이 아득해지겠지. 판단력도 흐려질 거고.'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이 죽음의 안갯속에서 진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호흡하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약간 답답하긴 했지만......내상 역시도 피코의 힘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듯했다.
이게 예의 그 불사조가 가진 회복 능력이란 말인가?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이 정도라니.'
괜찮다는 걸 체감한 나는, 안으로.
점점 더 안으로 깊이 발을 들였다.
디아즈와 제프론은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이제 여기서부터는, 이 숲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흐릿한 시야의 숲 속에.
소름 돋을 정도의 고요함.
안갯속으로 들어갈수록 발에 걸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전부 이 죽음의 안개에 죽은 동물들의 사체였다.
그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절감할 수 있었다.
괜찮을거라던 피코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저 꼴이 되어있을 테니.
'얼른 라플라렌 꽃이나 찾아서 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르코가 그려준 그림과 똑같은 꽃 한 송이를 찾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사방에 뿌옇기에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는 사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안 보이네......'
그러나 라플라렌 꽃은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바닥을 거의 쓸듯이 살폈다.
적잖이 힘든 작업이었다.
이 넓은 곳을 혼자 뒤져야 하니 말이다.
'빡세다, 빡세.'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복력이......무한하지는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설마.
바깥에서 피코의 체력이 다해버리면, 죽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빠, 빨리 찾아야겠다!.......'
바닥에 널브러진 저 시체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그때였다.
'어?......저거!'
유난히 붉은 꽃잎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내가 본 그림 속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의 꽃 한 송이가 고고하게 펴 있었다.
'찾았다!'
그것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은 나는, 마르코가 말한 대로 조심스럽게 뿌리까지 상하지 않도록 흙째 퍼 올렸다.
'됐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주머니에 꽃을 고이 담았다.
그런데......그때.
라플라렌 꽃 바로 옆에 있는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저게 왜 여기......'
나는 반쯤 넋을 놓은 채, 무심결에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 * *
나는 다시 디아즈와 제프론이 있는 올드리온 숲의 입구로 돌아왔다.
"로한 님!"
"오셨습니까, 경! 찾으시던 건 찾으셨습니까?"
그들을 향해 나는 라플라렌 꽃을 들어 보였다.
"그림에서 봤던 그 꽃......!"
"찾으셨군요! 다행입니다!"
디아즈는 그걸 확인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몸은, 정말 괜찮으십니까?"
"문제없다."
얼굴을 보니 걱정을 꽤나 한듯싶었다.
나름 빨리 찾아서 금방 돌아왔는데 말이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 서 있던 피코는, 날개로 엄지 모양을 만들어 척 들어 올렸다.
"삐약!"
그러더니.
풀썩.
그대로 옆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나와 디아즈가 깜짝 놀랐다.
"어어?"
"피코!"
피코는 여전히 엄지 모양을 든 채 말을 했다.
"후아......내 능력이 이 정도라고, 삐약.......근데 아직 덜 커서 그런지 힘들어 뒤지겠다, 삐약."
말은 하는 걸 보니 괜찮기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빨리빨리 움직인 건 옳은 선택인듯싶었다.
지금도 벌써 저렇게 널브러질 정도이니 말이다.
"다들 돌아가도록 하지."
"예. 로한 님."
"그러시지요, 경."
돌아가는 길에, 피코는 디아즈의 손바닥에 드러누워 부리를 나불거렸다.
"그건 그렇고. 왜 저 안개가 여기 있는 거지? 삐약?"
나는 피코에게 물었다.
필멸조에 관한 건, 자세히는 알지 못했기에.
"저게 이상한 현상인가?"
"응. 나는 주인을 찾고 주인과 함께한다. 삐약. 물론 보통은 내 수명이 더 길어서 앞선 주인들보다는 오래 살기는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생이 시작되면 항상 새로운 주인과 함께야. 삐약. 그래서 한동안 특정 지역에 머무르기도 하지, 삐약."
피코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는지.
짧은 다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그 반동으로 휙 앉았다.
"반면에 필멸조 녀석은 절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도 않아. 또 나와 반대로 절대 누군가와 함께하지도 않고. 녀석은 그 긴 세월을 홀로 버텨오는 존재인 것이다. 외로운 녀석인 거야. 삐약. 여하튼 그런 녀석이 한 군데 오래 머물러 있으니 뭔가 이상하긴 한 거지. 삐약."
"그런데, 필멸조도 죽으면 부활을 하나?"
"아니. 녀석은 부활하지 않아. 애초에 죽음과 함께 다니기에 나와 달리 죽을 일도 없긴 했지, 삐약. 하지만 만약 죽음이 녀석을 덮치면......필멸조도 죽어. 삐약. 죽음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삐약."
"필멸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별건 없어. 그냥 죽는 거지. 삐약. 세상에 언데드가 조금 더 늘어날 거고, 죽은 영혼들이 조금 더 길을 잃겠지. 삐약."
그 말을 듣고 나니, 필멸조가 굉장히 중요한 영물이라는 게 느껴졌다.
다만 내가 알기로는 그 필멸조라는 녀석은 곧 죽을 운명이었다.
'피코의 말에 따르면 살려주는 게 더 좋을 거 같긴 한데.'
문제는 녀석이 어디 있는지도, 왜 죽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단지 죽게 될 거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교단 측에 조사라도 요청해봐야 하나......'
올드리온 대교구에 다른 인맥은 없지만, 그래도 제프론 하나만큼은 확실히 내 편이 되어주고 있으니.
요청을 한다고 하면 조사가 진행은 될 것이었다.
근데 그것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너무 막막한지라......
'후. 일단은 불사조의 포션부터 완성하고 생각하자.'
일단은 당장의 목표부터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 * *
우리는 다시 마르코의 판잣집, 아니, 실험실로 향했다.
아직 부서진 문고리는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 밧줄이 문고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걸 잡아당기고 들어서자.
마르코가 반겼다.
"오! 로한 님? 어떻게 되었나요? 라플라렌 꽃은 찾으셨습니까?"
나는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내부를 보여주지 않아도, 그 안에 있는 게 뭔지 바로 짐작이 가능했다.
"와......진짜 가져오셨네요? 그 안개는 저도 직접 봐서, 엄청 무섭던데......어쨌든! 이걸로 재료는 다 모였네요! 라플라렌 꽃을 찾으러 가신 동안, 지원금이 와 가지고 나머지 재료도 다 구해놨거든요!"
그는 자랑스럽게 테이블 위에 준비된 다른 재료들을 향해 손을 펼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저, 평생 살면서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 분은 처음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거 준비하면서도 마냥 즐겁더라고요."
마르코는 씨익 웃어 보였다.
보는 사람이 기운 나게 하는 청년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건가?"
"넵! 바로 가능합니답!"
"부탁하지, 연금술사."
"맡겨만 주십시오!"
마르코가 불사조의 포션의 제조를 시작하였고.
피코가 그의 테이블 위에 털푸덕 앉아 요래조래 조언을 늘어놓고 있었다.
딱히 시간을 때울 게 없었던 나는, 품에서 아까 전에 올드리온 숲에서 주워온 것을 꺼냈다.
그걸 봤는지 디아즈가 물어왔다.
"로한 님. 그게 무엇입니까?"
"아, 이거?......이건, 필멸조의 발톱이다."
내 대답에 디아즈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물을 마시던 제프론은, 물을 뿜었다.
"아, 예.......예?"
"푸후웁!"
나는 가만히 내 손에 들린 발톱을 쳐다보았다.
확실했다.
필멸조가 어떤 녀석인지는 잘 모르지만, 설정상 존재했던 이유는 있었다.
이 발톱으로 만든 필멸조의 목걸이라는 아이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고작 아이템 하나에 무슨 설명이 이리 주저리주저리 길어,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무래도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듯싶었다.
그리고 그걸 잘 해결하면......
필멸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고.
나는 입 주변을 닦고 있는 제프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프론 경. 같이 들었겠지만, 필멸조의 존재는 언데드를 억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이 발톱. 잘린 모양새를 보아하니 자연적으로 떨어진 것 같진 않더군."
나는 그것을 제프론에게 내밀었다.
필멸조의 발톱을 받아 든 제프론이, 눈을 가늘게 뜨며 유심히 바라보았다.
"확실히......날카로운 무언가에 반쯤 잘린 후 부러진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 말인즉, 짐승보다는 사람이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
"흠......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알아봐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악마 놈들이 일으키는 언데드를 막아주는 존재를 노리다니......악마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교단에서 나서야지요."
"부탁 좀 하지."
"전력을 다해 알아보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제프론은,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대교구를 향해 나갔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디아즈가 중얼거렸다.
"필멸조라니......그러고 보니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들어 봤다고?"
"예. 스트라움 교구의 도서관에서 말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고대 서적이었는데......필멸조의 가호를 받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단지 동화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갑자기 떠올랐습니다."
"필멸조는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피코가 그러지 않았나?"
"계약은 아니지만, 축복과 같은 가호를 내려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소위 영웅으로 칭송되는 교단의 기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전부 하나같이 필멸조에게 가호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니.
"어떤 가호였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게......음. 필멸조의 능력과 비슷했던 거 같은데......언데드를 일격에 제압하는? 그런 능력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음.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잘하면......'
필멸조를 구해낸다면, 그 힘을 내가 먹을 수도......
행복 회로를 돌리던 그때.
마르코가 다시 나타났다.
"완성되었습니다! 로한 님!"
우리의 천채 연금술사는 벌써 역대급 포션을 다 만든 모양이었다.
"여기요! 얼른 드셔 보세요!"
"효과 확실할 거다, 삐약! 내가 옆에서 지도했거든. 삐약!"
내 앞으로, 붉은 빛깔의 예쁜 액체가 담긴 병을 내밀었다.
과연 원작 이상의 포션이라 그런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이걸 마시면......한 단계 진화하는 건가?'
나는 천천히 그 병을 받아 들어.
한 입에 싹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