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엄청나게 작다는 말이지
"그런데, 이거......계산대로 만들기는 좀 어려울 것 같네요."
여태까지 잘 나가더니, 갑자기 마르코가 고개를 저었다.
피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느닷없이 왜 안된다는 것이냐? 삐약?"
"일단 라플라렌 꽃을 구하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엥? 라플라렌 꽃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더라도,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 않냐? 삐약."
"원래는 그랬는데 말이죠......"
마르코가 말꼬리를 흐리자, 대신 제프론이 대답을 해주었다.
"최근 근방의 숲에서 죽음의 안개가 발생했습니다. 특정 지역에 머문 채 움직임이 없기는 한데......접근은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그 라플라렌 꽃도 그곳에 있는 모양이군요."
마르코가 긍정의 표시를 했다.
그럼 그곳에 가지 않으면, 폭풍 성장을 할 수 없게 되는 건가?
나는 그 죽음의 안개라는 놈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자세히 듣고 싶군."
제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보통의 안개입니다. 멀리서 보면 진짜 안개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게 전부이고. 높이는 대략 보통 사람의 키 두 배 정도를 유지하는데.......이게 문제는, 그 안으로 발을 들이면 살을 녹여버린다는 것입니다."
"살을......녹인다고?"
"예.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고, 돌이나 나뭇가지는 던져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나 생명체에만은 딱 반응을 해서, 지금은 근방의 짐승들도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올드리온 대교구에서는, 그 이상 현상이 묘지 이상 현상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빈센트 기사단장이 세인트 트라발로 움직인 것이지요. 해서 그 원인인 호라이크던만 처치하면 모든 게 다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예. 복귀하자마자 어제 재차 병력을 보내 확인을 해보았는데. 여전히 그대로라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마르코는 아쉬운지 머리를 흔들었다.
"라플라렌 꽃잎이 없으면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요."
모두가 막다른 길에 막혔다는 기분에 휩싸인 그때.
피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보고 싶다, 삐약. 예상 가는 게 하나 있거든. 삐약. 주인! 나를 거기로 데려다 주었으면 한다. 삐약!"
나는 피코에게 고개를 돌렸다.
"예상 가는 게 있다고? 원인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말인가?"
"그렇다, 삐약. 내가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이긴 한데, 전생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거든, 삐약. 그래도 일단은 직접 봐야 할 것 같다. 삐약."
"음......"
보러 가서 손해 볼 건 없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만약 네 예상이 맞다면, 라플라렌 꽃을 따 올 수 있는 건가?"
"응. 맞다면 말이지 삐약."
"좋다. 제프론 이단 심문관. 길 안내 좀 부탁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다음 행선지가 결정이 나자.
듣고 있던 마르코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른 준비를 마쳐두면 되지 않나."
"그, 그게......그 재료 말고도 돈이 꽤 많이 들 텐데요?......"
나는 제프론을 돌아보며 말을 했다.
"제프론 이단 심문관."
"예."
"여기, 자금 지원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턱짓으로 마르코를 가리켰다.
"저 친구가 원하는 만큼. 전부다."
내 대답을 들은 마르코가 눈이 빠질 듯 커졌다.
"허, 허어어억......! 저, 저, 저......저는 정식 연금술사도 아니고, 아직 그냥 지망생인데요?......"
"그래서, 싫은가?"
"아, 아닙니다! 무조건 좋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로한 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아!"
나는 슬쩍 웃어 보였다.
"제프론 경. 부탁 좀 하지."
"걱정 마십시오. 가는 길에 바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두겠습니다!"
이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어차피 마르코는 희대의 연금술사가 될 인재였으니까.
내 편으로 만들어 둔다면 두고두고 큰 힘이 될 터였다.
'그리고 심지어 내 돈도 아닌데 뭐.'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마르코의 호의를 산 나는.
그 후, 죽음의 안개를 향해 나섰다.
* * *
올드리온 숲.
발트라스 왕국의 도시 올드리온은, 사실 이 숲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올드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 걸맞게 이곳에는 유독 거대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 거목들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내 어깨에 턱 하고 자리를 잡은 피코가 물어왔다.
"근데, 삐약. 내 이름을 왜 피코라고 지은 것이냐? 삐약. 무슨 고귀한 뜻이라도 있는 거냐? 삐약."
피코는 내가 지은 이름이었다.
물론, 녀석의 말대로 그 이름에는 매우 매우 중대한 뜻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의미가 있는 이름이다."
"오오. 내가 비록 주인과 아직 긴 시간을 보내진 않았지만, 주인쯤 되는 인물은 드물었다. 삐약. 그런 주인이 지어준 거라면 더더욱 뜻이 궁금해지는걸? 삐약."
"알고 싶나?"
"물론이다, 삐약!"
나는 천천히, 그 이름의 의미를 말해주었다.
"10의 마이너스 12승."
"10의 뭐? 마, 마이너스? 삐약? 12승? 삐약?"
바로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이해를 못 하다니.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아직 병아리기에 나는 조금 더 설명을 보태주었다.
"0.000000000001 이라는 뜻이다."
"삐, 삐약? 무슨 뜻이냐? 삐약."
"엄청나게 작다는 말이지."
"그, 그런! 삐약! 나, 나는 작지 않다고! 삐약!"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피코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고작해야 내 귀만 했다.
"작군."
"삐! 삐약!"
뭔가 정신없이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는데, 정작 바람은 살랑살랑 부는 정도였다.
이래서는 날기는커녕 추락하기 바쁠 터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디아즈가 중재를 하러 다가왔다.
"피코. 이리 오세요."
"부하 1호! 삐약! 나 진짜 너무 섭섭하다. 엉엉엉엉엉! 삐약!"
손바닥에 머리를 박고 우는 불사조라니.
저걸 언제 다 키우나 싶었다.
그래도 피식 웃음이 나긴 했다.
매일 같이 피 말리는 시간 속, 자그마한 위안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우리는......
"이곳입니다, 로한 경. 여기서부터가 안개의 영역입니다."
어느덧 죽음의 안개 앞에 다가와 있었다.
* * *
때마침.
허공을 가르던 새 한 마리가 낮게 날며 죽음의 안개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의 영역에 딱 들어서는 순간.
푸드덕! 푸드덕!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새는 안갯속에 들어가자마자, 불에 타는 듯 온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까아아악!"
그리고 동시에 처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추락해버렸다.
다시 날아오르지 못한 채 그대로 쭈욱.
이내 새의 모습은 안갯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털썩.
저 깊숙한 곳 어딘가에, 처량한 추락의 소리만 살며시 들릴 뿐이었다.
나 조차도, 저런 모습은 처음 보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
한데 놀랍게도.
"쿨쩍! 쿨쩍! 부하 1호. 나 좀 내려줘. 삐약."
피코는 별 놀라는 기색도 없이 눈물을 닦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 그래."
디아즈가 바닥에 내려놓자.
피코는 총총총 걸어 죽음의 안개 앞에 섰다.
그리고는 날개를 앞으로 파닥였다.
분명 피코의 날갯짓은, 산들바람도 안되는 바람밖에 만들지 못하였는데......
후웅!
안개가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본 제프론이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물론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모든 노력이 다 무용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여태까지의 그 어떤 방법을 써도, 안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었는데......!"
한데 저 작은 날갯짓만으로도 안개를 움직이다니!
"과연......로한 경의 병아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이건 칭찬인 건가?
'애매한데......'
어쨌든 피코는, 상황 파악이 끝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주인! 주인! 내 예상이 맞다, 삐약."
나는 손바닥을 내려, 녀석이 타고 올라올 수 있게 해주었다.
폴짝.
내 손바닥에 탄 피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이거, 필멸조 녀석이 만든 것 같다, 삐약. 아마 이 근처 어딘가에 녀석이 있을 거다. 삐약."
"필멸조?"
필멸조라면......나도 알고는 있었다.
'불사조와 필멸조.'
죽음과 부활.
끝과 영원.
정반대를 상징하는 두 영물.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필멸조가 악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물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존재였지.
'언데드를 다시 편히 쉬게 하고,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잘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새.'
그게 바로 필멸조였다.
그러나 필멸조는 원작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정으로만 존재할 뿐.
불사조 피코처럼 말이다.
필멸조가 사라졌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건 아닌듯했다.
그저 저승길의 안내자가 사라진 것이지.
어쨌든 이후로도 필멸조가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설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필멸조가 사라져서 언데드가 늘었고, 대침공이 쉬워졌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사이.
피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프론. 이거 여기 생긴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삐약?"
"아. 그, 그렇소."
"희한하네. 이 녀석. 어디 한 군데에 머무르는 녀석이 아닌데. 삐약."
지금의 나는 필멸조의 습성 같은 건 궁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상이 맞은 거 같은데, 뚫고 갈 방법은 있고?"
"물론이지, 삐약."
"어떻게 하면 되나?"
"주인이 가면 된다. 삐약. 주인! 돌격 앞으로오오오! 삐약!"
이 뭔 개소리, 아니 새소리란 말인가.
필멸조의 영역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라니.
"......"
"아니, 거 참 불사조 말 못 믿네. 속고만 살았어? 삐약?"
"너 같으면 믿겠나?"
"필멸조의 힘은, 나와 정확히 같다고 보면 돼, 삐약. 그런데 지금의 주인은, 내 회복력에 주인 본연의 힘이 더해진 상태지. 삐약. 완전히 힘의 균형이 맞는 상태에 주인의 능력이 더해지는 거다, 삐약. 그러니 무조건 괜찮아, 삐약!"
진지하게 말해도 믿을까 말까인데.
말 중간마다 삐약삐약 거리니 신뢰도가 더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거짓말 같진 않고.'
"걱정 마라, 삐약! 나는 여기 밖에서 전력을 다해 회복시켜 줄 테니까! 나만 믿으라고! 삐약!"
차라리 말 좀 안 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기운 빠지니까.
나는 피코의 말을 믿고.
"갔다 오겠다."
"조, 조심하십시오, 로한 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로한 경."
필멸조가 만들어 낸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