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꽤 하는 애송이구나
"이 정도 능력이면, 진짜 진짜 엄청난 것이다! 삐약!"
거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
자꾸 삐약삐약 거리니 엄청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경청을 해주었다.
"그래서 널 키우라고?"
"그렇다, 삐약! 이미 능력도 가져가 버려서 안 키우면 안 된다, 삐약."
"이미 능력을 가져갔으면, 안 키워도 되는 것 아닌가?"
"헙! 삐약! 괘, 괜한 소릴 한 건가. 삐약.."
불사조가 날개로 자신의 부리를 텁 막았다.
벌써 다 말해놓고.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
불사조는 고민하는 듯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입을, 아니, 부리를 열었다.
"그, 그래도 내가 죽어서 알이 되면 네 능력도 없어진다, 삐약!"
흐음.
불사조의 치유 능력이라......
이건 원작에서도 드러난 적 없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나도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일단 회복 능력은 없는 것보단 좋을 것 같긴 한데......'
불사조의 꽃을 가루로 만들어 연금술사에게 비약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려는 것도 결국은 회복력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름만 불사조인 꽃이 아니라, 진짜 불사조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무래도 원본 쪽이 더 효과가 좋긴 하겠지?......'
게다가 제입으로 신묘한 영물인 신수라고도 한다.
'신수 급이면 거물이긴 한데.'
문제는 요 조그마한 병아리 녀석과 내 기억 속 신수가 매칭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긴 하다만.
어쨌든 진짜라면 확실히 데리고 가서 키울만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호라이크던이 아무 의미 없는 알에다가 심장을 물려 놓진 않았을 거고.'
고민을 하던 그때.
디아즈가 불사조에게 흥미를 보이며 가까이 다가갔다.
"로한 님.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데려가는 게 어떨까요?"
"......?"
"그,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디아즈가 신경 써준다면야, 나야 편하고 좋지.
그녀의 말에, 불사조가 파닥거렸다.
"좋다, 삐약. 그럼 너를 내 1호 부하로 삼아주마! 삐약!"
그런 불사조를 보며, 디아즈가 빙그레 웃었다.
"예. 그래요."
"복 받을 거다! 삐약!"
뭐......이러면 잘 된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한 님."
그렇게 우리는 호라이크던의 레어를 빠져나왔다.
* * *
호라이크던 레이드가 끝이 난 다음 날.
제프론이 내가 묵고 있는 숙소를 직접 찾아왔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그는 곧 본론을 꺼내었다.
"혹시 다음 행선지가 있으십니까?"
물론 정해져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오는 길에 악마의 하수인과 마주치고.
또 레바르센과 엮여 원래의 일정이 틀어졌지만.
내 목표는 확실했다.
올드리온의, 희대의 연금술사.
"올드리온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올드리온에 말입니까? 잘되었군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올드리온 대교구로 바로 복귀 예정이라. 함께 동행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리하지."
"한데, 누굴 찾으시는지요?"
"마르코라고 하는 친구를 찾으려고 한다."
내 그 말에, 제프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르코......음. 처음 듣는 이름이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마르코는 어린 나이에 이미 위대한 연금술사라는 칭호를 따낸 사람이었다.
원작의 시점에서도 젊은 나이이기에, 나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영재로 시작해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라 생각을 했었다.
무심결에 말이다.
그런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아직 마르코의 명성이 퍼지기 전인가?......'
흠.
그럼 찾기 좀 어렵겠는데......
라는 고민을 하던 그때.
"제가 힘 한 번 써보겠습니다."
제프론이 먼저 나서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한데 이 아저씨 나에 대한 호감도가 엄청 올라가 있는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막 호감을 끌만한 행동을 했던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골치 아픈 빌런이나 되지 않았으면 했는데.
하다보니 뒷백이 하나 생긴 것만 같았다.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럼 부탁 좀 하지. 유망한 연금술사들을 찾다 보면 아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망한 연금술사라......잘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제프론이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미소와 함께.
* * *
며칠 후.
우리는 제프론, 빈센트 기사단장과 함께 수도 올드리온에 입성을 했다.
오는 길도 역대급으로 편안했고.
입성 역시 지금껏 있었던 어떤 순간보다 수월하였다.
역시 빽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평소에는 그래도 디아즈가 발 벗고 나서고, 또 약간의 기다림 정도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프론과 빈센트 기사단장을 양옆에 끼고 있으니.
이건 고속도로 하이패스만큼이나 막힘이 없었다.
다들 그냥 경례만 할 뿐, 누구도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가장 신난 것은 불사조, 피코였다.
"주인! 여기가 올드리온이라고? 키야, 엄청 커졌네! 삐약!"
녀석은 정신없이 머리를 홱홱 돌려가며 구경을 하기 바빴다.
디아즈는 그런 피코에게 물을 건네주고 있었다.
"피코. 물 먹어."
"오오. 그래. 물 좋지, 삐약. 그렇지 않아도 목마르던 참이었다고. 삐약."
올드리온에 오기까지 지켜봤는데.
둘이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엄청 차가워 보이는 디아즈였는데, 유독 피코에게 만큼은 자주자주 웃어 보이기도 했고.
덕분에 내가 신경 쓸 일은 크게 없었다.
또한 마르코를 찾는 일 역시 동시에 빠르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제프론에게 진행 상황을 전달받았다.
"오늘은 하루 휴식을 하시고, 내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리하지."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을 먼저 보내, 마르코를 찾아낸 듯하였다.
그렇게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제프론의 안내를 따라.
한 허름한 건물의 앞에 서게 되었다.
나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너지기 직전의 판잣집 앞에.
"여기에......마르코가 있다고?"
내 물음에 제프론 역시 살짝 당황을 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예. 아무리 찾아도 마르코라는 이름의 연금술사는 이곳에 있는 이 친구뿐이었습니다. 혹시나 아닌가 싶어서 다시 알아보라고 시키긴 했는데......그래도 결과는......"
제프론이 판잣집을 쳐다보았다.
"사실 아직 정식 연금술사도 아니고, 연금술사 지망생이라고 합니다."
'이거......뭔가 꼬인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는 마르코와는 너무 큰 괴리감이 있는데......'
그래도 다른 방도가 없긴 하니.
일단 들어가 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어가지."
"예."
제프론이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자.
콰득.
문고리가 삭아서 부서졌다.
"......"
"......"
이게 맞나 모르겠다......
* * *
"마르코 군. 있는가?"
어찌어찌 문을 열고, 가장 먼저 제프론이 들어섰다.
어지럽고 허름한 실험실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안에서 반응이 없자, 제프론이 목소리를 키웠다.
"어제 미리 기별을 주었던 제프론일세! 마르코 군, 있는가? 로한 경을 모시고 왔다!"
그제서야 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제프론 님? 잠시만요!"
대답을 하자마자 이어서 들려오는, 뭔가 무너지는 소리.
쿠당탕탕!
안쪽에서 뭔가 정신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하! 실험 좀 하느라......죄송합니다!"
알 수 없는 그을음을 얼굴에 잔뜩 묻힌 청년.
그가 바로 마르코였다.
'다행히 내가 아는 마르코가 맞긴 맞네.'
워낙 내 기억과는 다른 곳이라 잠시 의심이 들긴 했는데......
단지 아직 미래의 성공을 경험하기 이전의 모습인 듯하였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연금술사 지망생 마르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기억 속의 마르코는 이미 최연소 역대급 연금술사의 위치에 오른 상태였었다.
그래서 소개말도 연금술사 지망생이 아니라 최고의 연금술사라고 했었더랬다.
자기 입으로.
'성격은......성공하기 전부터 원래 이랬던 것 같네.'
쾌활, 긍정, 자신감.
그게 바로 마르코를 이루는 재료라 할 수 있었다.
"아니, 근데. 교단에서 어쩐 일로 저를 찾으시는 건지요?"
마르코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제프론을 쳐다보았다.
제프론은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았고.
이제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품에서 고이 모셔두고 있던 불사조의 꽃 분말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걸 책상 위에 턱 올렸다.
"불사조의 꽃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이다. 이걸로 실력을 한 번 보여줄 수 있나?"
"이, 이걸로요? 갑자기요?"
그때.
푸드득!
디아즈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피코가 테이블 위로 날아갔다.
"오, 이거 꽤 잘 말렸는데? 삐약. 그나저나 이게 아직도 멸종하지 않고 남아있었을 줄이야. 삐약."
피코를 본 마르코가 눈을 번뜩였다.
"오! 말하는 병아리!"
"누가 병아리야? 삐약!"
"엥? 병아리 아닌가요?"
"이 몸이 어딜 봐서 병아리라는 것이냐? 눈이 삐었나. 삐약! 이 몸은 불사조란 말이시다! 삐약!"
그 말에 마르코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불사조? 정말 불사조라고요?"
"엣헴! 그렇다, 삐약!"
마르코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해부해봐도 되나요? 꼭 하고 싶습니다!"
급발진하는 마르코.
그에 피코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켰다.
"해, 해부? 삐약?"
그러거나 말거나 마르코는 하던 말을 이었다.
"엄청 재미있을 거 같지 않나요?"
"삐, 삐약! 주인! 안 된다고 해라, 삐약! 절대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삐약!"
마르코가 양손을 포개어 기도하듯 나를 쳐다보고.
피코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울먹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
"에고, 아쉬워라......"
"휴, 휴우......삐약."
해부는 안 된다고 하자, 금방 피코에게서 관심을 접는 마르코였다.
그리고 이제야 불사조의 꽃에 집중을 했다.
"이걸로......흠. 이런 귀한 건, 아무래도 저보다는 다른 유능한 연금술사분들께 맞기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함부로 쓰긴 아까운 재료라서."
그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해줬으면 한다."
"제가요? 왜......"
"못하겠나?"
"그게......솔직히 최근에는 연구 중인 실험이 연달아 망해가지고 말이죠. 자신이 좀 없긴 해요. 그래서......"
언제나 자신만만한 줄 알았더니.
또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았다.
"할 수 있다."
"예?"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제, 제가요?"
"그래."
"제가......정말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내가 보증하지."
나는 믿어 의심치 않고, 단호하게 긍정의 의사를 보였다.
그러자 마르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나와 마르코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얽히고.
그의 눈빛이 싸악 변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의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 하하하. 저보다 더 저를 믿는 사람은 처음 만나보네요. 알겠어요! 잠시만요!"
그는 다시 뒤편으로 사라졌다가, 무언가 잔뜩 들고 나타났다.
"어디 보자......이거랑, 이거랑, 요걸 넣으면. 흠. 아닌가? 이거랑......"
"저거부터 넣어야지! 삐약!"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피코가 갑자기 깜빡이도 없이 끼어들었다.
한데 더 놀라운 건, 마르코가 그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 잠시만요. 그럼 이걸 넣고,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지. 삐약. 이거를 먼저 요렇게 하면, 조렇게 되니까 기껏해야 회복력 높이는 정도밖에 안 되잖아, 삐약."
회복력 높이는 게 내가 원하던 건데?
둘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면요, 만약에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요?"
"캬!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다. 삐약. 내가 보기엔 거기에 라플라렌의 꽃잎도 집어넣으면 좋을 거 같다, 삐약!"
"오오! 라플라렌이라니. 그건 생각 못했네요. 역시 불사조 님! 그러면 이거에 이 순서로, 마지막에 라플라렌의 꽃잎!"
"꽤 하는 애송이구나, 삐약!"
"고맙습니다!"
피코가 배를 쭉 내밀며 허리에 날개를 척 올렸다.
뭔가 신기하게 둘이 티키타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근데......내가 생각한 방향과는 조금 다른데?
"로한 님! 이거면 할 수 있습니다!"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이거면......신체 능력을 극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영구적으로요!"
"삐약!"
회복력을 올리러 왔는데......모든 능력치가 올라가게 될 모양이었다.
"......"
어차피 피코와의 계약으로 회복력은 올라간 판국에......
'개이득인데?'
생각도 못 한 전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