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40화 (40/194)

40화. 내가! 선봉에 설 것이다

제프론과 빈센트 기사단장은, 둘이서 자기 말이 맞다는 둥 하면서 속닥거렸다.

'뭔 소리 인 거야?'

나로서는 그들의 대화 맥락을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알아서 뭐하겠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여기 표시된 묘지들이, 지금까지 이상 현상이 관측된 곳들인가?"

나의 물음에 즉각 빈센트 기사단장이 대답을 했다.

"예! 그렇습니다."

음? 왜 이렇게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거지?

희한한 사람들이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할 말을 이었다.

"일어난 시간 순서대로 표시 좀 해주었으면 하는데."

"순서 말입니까?"

"그렇다."

"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해보겠습니다."

그는 다른 자료를 또 찾아오더니, 일일이 대입을 해가며 숫자를 적고 체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새로운 지도.

나는 팔짱을 끼고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음......이거. 감이 좀 오는데?'

저 위치들.

전부 아는 곳들이었다.

먼저 체크 된 곳들은 고렙 사냥터.

늦게 체크 된 곳일수록 저렙 사냥터였다.

'먼저 나타난 망령들이 점점 더 세진 건가 본데?'

몬스터들도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는 건가?

신기한 현상이었다.

어쨌든.

나는 유심히 지도를 훑었다.

사냥터들이 다 드러나니, 나는 이 지형이 정확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럼 호라이크던은......저쪽에 있겠네.'

그런데 빈 곳이 몇 군데 보였다.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원래 교과서는 잘 못 외워도, 게임 속 던전이나 사냥터 위치는 기가 막히게 외웠었으니까.

나는 손가락을 뻗어, 지도의 모자란 부분을 짚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도. 확인이 되어있지 않군. 이상 현상이 발견되지 않은 게 확실한가?"

내 물음에 빈센트 기사단장의 얼굴이 굳었다.

"예? 여기 두 곳에는 묘지가 없습니다만......"

"그 말. 자신 하나?"

다시 되묻자.

그의 얼굴이 약간 하얗게 질렸다.

"자, 잠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재차 확인을 한 빈센트 기사단장이 돌아왔다.

"로한 경. 말씀하신 곳들 중 한 곳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꽤 오래된 내용이라 연결시키지 못한 듯싶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내가 말한 두 곳 중 하나를 짚으며 말을 했다.

"하지만 이곳은 확실히 아무런 기록이 없었습니다."

"기록이 없다고?"

"예."

꽤 자신 있게 대답하는 걸 보니, 이번에는 확실한 거 같은데......

그때.

기사 하나가 다가왔다.

"기사단장님. 성기사단에서 추가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이상 현상이 발생한 지역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또?"

"예."

기사는 마침 눈앞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보고는, 한 군데를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그의 손짓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내가 확인해보라고 언질을 주었던 두 곳 중, 나머지 한 곳이었던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어찌......"

나는 그들의 반응에 큰 관심이 없었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일 뿐.

"역시."

예상이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프론이 물어왔다.

"알고......계셨던 겁니까?"

나는 눈동자만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알고 있긴 한 건데......뭐라고 설명하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 나는.

대충 둘러대는 쪽을 택했다.

"추론한 것뿐이다. 예상 경로가 그러했으니."

"하하. 악마에 관한 건, 이미 꿰고 계셨던 거군요. 경이롭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쑥스러워 입을 다무니, 제프론이 말을 이었다.

"로한 경. 실은, 이번 사건에 저는 나름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여기......놈들이 헤집어 놓은 이 묘지에, 저희 집의 첫째 아이가 묻혀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눈도 떠보지 못하고, 빛도 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생명이었지요."

말을 내뱉던 그의 눈빛이, 일순간 살벌하게 변했다.

저거였다.

내가 기억하는 제프론의 눈.

"놈들은 그 아이의 영혼을 유린한 것입니다! 감히......! 감히!"

하지만 그 눈빛은 금방 사라졌다.

"악마에 대한 미칠듯한 분노에 지배될 뻔 했습니다. 겨우 얻은 둘째 아이를 떠올리며 참았던 것이지요. 하나, 아직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교단의 가르침은 언제나 용서하라 하지만.......저는 아직 수행이 부족한 터라 어렵더군요."

다시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찾아, 첫째 아이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놈을 찾는 데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리고.....그리고! 찾아만 주십시오!"

나 역시 그를 마주 보았다.

나는 그가 광적인 이단 심문관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런 일들이 있었는 줄은 차마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그토록 악마만 보면 눈이 돌아갔군.'

이해가 되었다.

그 떨리는 목소리가, 진심을 가득 담아 전해졌다.

죽은 자식의 영혼까지도 편히 쉬지 못하게 괴롭히는 그 악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나는 손가락으로 마지막 포인트를 짚었다.

결전의 장소가 될 그곳을.

"찾을 필요 없다. 당장 전 병력을 모아라. 성기사단과 흑철의 기사들에게, 우리가 리치를 토벌할 것임을 알려라."

그 후.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악마건 괴물이건. 이 땅에 발을 붙이려면 우리의 허락이 있어야 함을, 명확히 보여줄 것이다."

그들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감사합니다! 로한 경! 올드리온의 성기사단은, 그대를 따를 것입니다!"

"흑철 기사단! 솔레온 백작 각하의 명에 따라, 아를렘 교단과 함께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겠습니다!"

* * *

철그덕, 철그덕!

성기사단과 흑철의 기사단.

그 두 기사단이 마치 하나의 군단처럼 진군해 나아갔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선 것은.

나와 디아즈, 그리고 제프론 이단 심문관과 빈센트 기사단장이었다.

우리는 말에 올라타, 호라이크던이 기다리고 있을 리치 레어로 향했다.

나의 옆으로 디아즈가 말을 붙였다.

"로한 님."

"음?"

"그, 도적 말입니다......안 보이던데......"

레바르센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묘지기를 없앤 후부터는 통보이질 않았으니.

"모르겠군."

"말씀해주시기 싫으신 거군요......알겠습니다."

"진짜 모른다."

"예......"

뭐지?

약간 삐친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삐칠 일이 전혀 없는데. 내 착각이겠지?'

그러나 디아즈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금방 시선을 돌리고 집중을 했다.

'호라이크던은......진짜 큰 벽이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는 가히 일인 군단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자였다.

지옥 제9군단 참모장 호라이크던.

9군단의 언데드 전력의 물량 중 절반을 담당하는 게 바로 호라이크던이었던 것이다.

죽음도, 두려움도 모르는 망령과 언데드 군단은 결코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비록 내 뒤를 따르는 기사들이 전부 엘리트들이기는 하나, 숫자에서는 확실히 모자람이 있었다.

'내가 잘해야 한다......'

나는 좌우를 스윽 둘러보았다.

그나마 제프론과 디아즈가 함께라는 게 큰 위안이었다.

이 둘은 호라이크던에 비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실력자들이었다.

'후! 그래도 든든하네.'

각오를 다지는 사이.

우리 연합 기사단은, 작은 묘지 앞에 다다랐다.

* * *

까아악!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가르며 소리를 질렀다.

분명 해가 떠 있음에도, 높게 솟은 나무들은 이곳을 마치 밤과 다름없이 만들었다.

겉으로는 비록 소규모의 묘지로 보였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땅 아래.

고위 리치, 호라이크던이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나는 말에서 내려, 묘지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런 나의 뒤로 수많은 기사들이 따랐다.

묘지는 고요했고, 진군은 이어졌다.

저벅, 저벅.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제3의 눈이 없더라도, 다들 이 음산한 기운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나 역시도 긴장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기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렸다.

'게임에서는 불가능했지만......지금은 현실이니까. 최단 거리로 간다!'

나는 호라이크던이 있을만한 위치를 어림짐작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왼팔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내 행동을 이해 못 한 이들이 뒤에서 수군수군 거렸다.

다만 디아즈와 제프론, 빈센트 기사단장은 가만히 입을 다문 채 나를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쿠르르릉......!

바닥이 무너지는가 싶더니.

그 안쪽으로 길이 드러났다.

"지하에......!"

"저런 게 있었다니."

"이러니 찾지를 못했군."

나는 그 아래로 풀쩍 몸을 날렸다.

내 뒤로, 디아즈, 제프론, 빈센트 기사단장과 연합 기사단이 뒤를 이어 따랐다.

턱! 터억!

아래로 내려오자, 긴 복도가 우리를 반겼다.

눈치가 빠른 제프론이 이곳의 지형을 알아챘다.

"이건......미로 같지 않습니까?"

빈센트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내심 나는 놀라고 있었다.

나야 이 내부를 안다지만, 저들은 지금 이 순간이 처음 이곳을 접하는 순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눈에 알아보다니.

짬밥은 짬밥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내가 원한 위치는 여기가 아니었기에.

'바로 중앙 보스 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약간 빗나갔군.'

그래도 이제 목적지에 가깝기는 가까울 터였다.

내가 방향 감각을 다시 잡는 사이, 빈센트 기사단장이 주변을 살피며 물어왔다.

"로한 경. 정찰 병력을 양쪽으로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벽에 다가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이미 파악은 끝났다.

다시금 왼팔을 휘둘러.

콰아아아앙!

길을 뚫어버렸다.

"이리 가면 된다."

"......아......예......"

벽을 넘어가니, 이제 진짜 보스 방의 코앞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뒤따르는 횃불들이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앞에는 지금 스켈레톤 군단이 서 있었다.

제3의 눈이 먼저 반응을 해주었다.

생명의 위협이 되는 위험이기에.

예상대로 내가 만든 길을 통해 횃불들이 들이치자.

따닥!

우드득......

끼기긱......!

스켈레톤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해골 눈에, 구더기들이 기어 다니는 게 보였다.

아직 남은 살점들이 구역질 나는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스, 스켈레톤이다!"

"전투 준비하라!"

창, 차차창!

기사들은 즉각 반응을 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내 감각에는, 그들의 공포심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공동묘지 지하에서.

그것도 스켈레톤 군단을 마주하였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나야 슬금슬금 피어오는 악마에 대한 분노에 그 공포가 조금 사그라들었다만.

저들은 아닐 터였다.

조금 아쉬웠다.

전투를 앞둔 지금.

이런 순간에, 이런 사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호흡을 들이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러자.

"키에에에엑!"

"캬아아악!"

스켈레톤들이 푸른 안광을 뿜으며 발광을 했다.

그런 놈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는 힘껏 외쳤다.

내 뒤에 선 기사들을 향해.

"내가! 선봉에 설 것이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 등으로 향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들의 사기를 키워 줄 말을.

"살아있음에도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그대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놈들에게 그대들의 각오를 보여라! 죽음을 잊은 악마들에게, 다시 죽음의 공포를 일깨워주어라!"

나는 왼팔을 꽈악 말아 쥐며.

검은 천둥을 일으켰다.

우르릉......콰과가가가강!

지하를 통째로 흔드는 웅장한 천둥이 내 주변을 휘몰아쳤다.

황금 빛으로 빛을 내는 거신병의 왼팔을 앞세우고, 내가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전부, 죽여라."

그리고.

나의 뒤로 연합 기사단이, 어느새 두려움을 잊은 채.

"돌겨어어어어억!"

"놈들을 다시 죽음으로!"

"뼛조각으로 만들어 버려라! 쓸어 버려라아아아아!"

진격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