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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37화 (37/194)

37화. 뒤질 것 같으면 손들어라

"어, 어째서......!"

묘지기는 코피가 줄줄 흐르는 코를 움켜잡으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자신의 마법이 왜 걸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지만 사람이란 원래 어리석은 동물이 아니던가.

놈은 내게 정신 조종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럴 리가 없잖아!"

"있어."

손을 뻗고 다시금 내게 정신 조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한 번 안 되는 게 두 번 한다고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왼팔을 묶고 있던 나무뿌리를 뜯었다.

뿌드드득!

왼팔이 자유로워지니, 오른팔을 구속하고 있던 것들도 풀고.

콰득!

앞으로 걸어나갔다.

뚜벅.

"히, 히이익!"

자신감이 공포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놈의 얼굴에 있던 우월감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 딱 이 정도 놈들인 거지. 그러니까 악마의 꾐에 넘어간 거지.'

정말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영혼을 팔았을까?

디아즈 역시도 거대한 벽에 부딪혀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그럼에도 버티지 않았던가.

그걸 딛고 일어나 결국 대적할 자 없는 악마 사냥꾼으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고도.

그래서 그녀의 영혼이 그렇게 빛이 나는 것이었다.

반면, 이런 놈들의 수준은 뻔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괴로워도, 그걸 참지 못하고 무너졌겠지.

그 순간 나타난 악마의 사탕 발린 말에, 자신이 가진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홀라당 넘겨버렸겠지.

다들 힘들게 살아간다.

하루 하루 더럽고 치사해도 말이다.

그래도 버틴다.

때문에 존경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나는 악마들이 역겨운 모양이었다.

그 나약함을 파고들어 저주받은 삶으로 타락시키려는 놈들이.

그리고 악마들의 꾐에 넘어가는 놈들 역시도 역겨웠다.

모두 참아내는 그 꾀임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변명이나 늘어놓는 놈들이.

"너 같은 새끼들이 돈 몇 푼에 사람 뒤통수 치고, 간이고 쓸개고 빼먹고 버리고, 제 이득 하나 챙기자고 죽이기까지 하더라고. 그런데, 막상 네놈이 당하는 입장이 되니까 그건 또 두려운가?"

묘지기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그래, 이 시발! 어쩌라고! 내 이득 좀 챙기자고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그러고 살잖아? 어?"

"지랄 마라."

"그게 야생의 본능이야. 약육강식 아니야? 어차피 약한 놈은 죽을 건데, 내가 조금 빨리 털어먹고 조금 빨리 죽이는 거 뿐이라고! 내가 강자니까! 그래도 되는 거라고!"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놈의 더러운 변명을 더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맞다가, 맞다가......뒤질 것 같으면 손들어라. 그럼 잠깐 멈춰 줄게. 죽이기 전에 뒷배경이 누군지는 들어야겠거든."

"어, 어어......자, 잠까......!"

빠아아아아악!

털썩.

"......어? 야. 숨 쉬어! 숨! 야!"

* * *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묘지기가 정신을 차렸다.

"허, 허억!......꾸, 꿈인가?......"

아니, 아직 좀 정신을 덜 차린 것 같았다.

나는 놈이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조금 도움을 주기로 했다.

짜악!

뺨을 후려갈겨서.

"으악!"

아쉽게도, 아니, 다행스럽게도 한 방에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놈은 금방 자신이 의자에 묶인 상태라는 걸 알아챘다.

"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뭐야, 라고? 아직 덜 맞았나. 반말을 하네?"

"......무, 뭐야......요."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

나는 간단한 룰을 설명해주었다.

"대답 똑바로 해라.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왼팔을 살짝 보여주었다.

"한 방 더 간다."

"......허억!"

"그 요망한 힘. 어디서 얻은 것이냐?"

"아, 악마랑 계약을 한 거지."

"한 거지?"

".......요."

"어디 가면 놈을 찾을 수 있나?"

"그건 모르죠......"

나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아, 지, 진짜 몰라요! 진짜 모릅니다요!"

진짜 모르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럼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였지?"

"히, 힘을 주는 대가를 치르는 중이었습니다요."

"대가?"

"예. 이 지하 무덤 중심부에 거인의 유골이 있는데, 그걸 복구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인의 유골?

지나온 길에 보았던 그걸 말하는듯싶었다.

"그걸 왜?"

"그건 저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내가 한숨을 쉬자 놈이 흠칫 놀랐다.

도대체 제대로 아는 게 뭔지......쯧.

"그럼 다른 한 놈은 어디로 빼돌렸나?"

"그, 그놈은 제 권속이 아닌지라......"

"또 모르나?"

"......예."

"하등 쓸모없는 놈이군."

"쩝.......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요."

"......?"

"얼핏 들은 게, 무슨 영혼을 빚을 거라고 하던데......거인의 유골을 복구하는 것도, 그 유골 안에 잠든 영혼을 꺼내기 위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내 눈이 번뜩였다.

'영혼을 빚는 자!'

그놈이 나섰기에, 이 도시가 털린 거구나.

이해가 갔다.

네크로맨서 군단의 참모장.

고위 리치, 호라이크던.

흑마법에 심취해 스스로 악마 군단으로 들어간 인간임과 동시에.

그 악마의 재능과 미치광이 기질을 인정받아 악마 군단의 참모장이 된 괴물이기도 하였다.

그 재능이라는 게, 인간들의 영혼을 모아 그걸 뒤섞고, 자신만의 악령을 창조하는, 변태 같은 능력이었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키메라 영혼 버전을 만드는 리치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안 좋은 쪽으로는 가장 성공한 인간들 중 한 명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저런 놈이 나오니 자꾸 인간들 중에서도 고위 악마를 노리는 자들이 튀어나오는 거겠지.'

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알긴 알았으니까.

그럼 묘지기가 썼던 마법도 어떤 계열인지 간파가 되었다.

호라이크던의 도움을 받았으니 필시 영혼 세뇌 계열 마법이겠지.

'그럼 얘만 죽이면 어차피 세뇌당한 인간들은 다 풀릴 거고......'

나는 마지막으로 묘지기에게 물었다.

"악마의 물건이 나돈다던데, 그건 뭐지?"

"아. 그거요? 그거 별거 아닌데. 아까 말한 그 하수인 있지 않습니까. 그자가 주기적으로 가져다주고, 제가 뿌리는 건데. 간단한 겁니다요. 잠재력을 풀어주고, 대신 죽을 때 영혼을 가져가는 계약서입죠. 어찌어찌 와전되어서 물건이라고 소문난 것 같더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원래 자신이 가진 잠재력인데, 그걸 쓸 수 있게 해주고 영혼을 가져간다고?"

"예. 예. 악마가 무슨 신도 아니고. 없는 걸 어떻게 만듭니까요. 다들 자기가 그런 능력이 있는데도 그냥 포기하고 살다가, 계기만 만들어주니까 얼씨구나 하고 덤벼드는 꼴이 참 우습더라고요. 원래 자기 건 줄도 모르고. 킬킬킬."

"물론 그 계약서도 어디서 가져오는지는 모르겠지?"

"당연합니다요."

"다른 건 더 없나?"

"......이제 끝인데요? 그럼 저 이제 살려주시는......"

나는 어이 없다는 눈으로 놈을 쳐다보았다.

"너, 지금까지 몇 명 죽였는데?"

"음. 지금까지 대충......20명 조금 안되는 거 같은데요?"

"......"

"하하......"

"살려주면 어쩔 건데?"

"뭐, 적당히 시골로 도망가서 조금만 덜 죽이고 살지 않을까요?"

"잘도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오는군."

"아무래도 무리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걱.

* * *

묘지기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본 레바르센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결국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네."

"아니. 알아냈다."

"뭐?"

"알려줬잖나. 영혼을 빚는 놈이라고. 그럼 하나뿐이거든."

그녀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아니......놀라서 그래, 놀라서. 그것만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게 대단해서."

그리고는 묘지기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배후까지 알아내다니......내가 그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추적을 해왔는데......하루 만에 해결해 버리네."

약간은 허망한 얼굴이었다.

나는 나름 그녀를 다독였다.

이건 내가 미래를 알고, 또 악마들을 원작에서 봐 와서 잘 알기 때문이지, 그녀가 잘못한 건 아니니까.

"충분히 잘 해주었다."

"하하. 전혀 위안이 안 되는걸?"

"......"

뭐, 안 되면 말고.

지금 내 머리는 그런 사사로운 위로를 할 여력이 없었다.

'상대가 호라이크던이면......후우. 좀 복잡해지는데.'

대침공을 늦추려던 내 계획이, 쉽지 않음을 직감했다.

영혼을 빚는 자.

당연하게도 놈의 주무기는, 자신의 입맛대로 짜깁기해 만든 언데드 망령들이었다.

이게 뭐가 문제느냐고?

'특수 무기가 필요해진단 말이지......'

호라이크던은 정말이지 까다로운 네임드였다.

망령이라는 특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짧게 말하자면, 일반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말인 즉.

지금 내게 가장 강력한 공격수단인 공간 베기는 물론이요, 거신병의 왼팔도 무용지물이라는 소리였다.

놈을 상대하자면 평소 착용하는 아이템이 아니라 대언데드 망령 전용 공격 무기들이 필요했다.

아니면 은가루 폭탄을 터트려 일시적으로 물리 공격이 통하는 상태로 만드는 법도 있긴 하였지만.....

'이런저런 아이템을 구하는 거 자체가 벌써 피곤한 상황이니까.'

그리고 소모품으로 상대하는 전략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은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다.

'계산 조금만 잘못해도 소모품을 다 써버려서 일방적으로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원작 속에서는 최대한 자금을 아끼기 위해 모험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시작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니던가.

목숨 걸고 모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남은 방향은 망령형 몬스터에도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기를 구해야 한다는 건데......하아. 이게 쉽냔 말이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들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기본적으로 은으로 무기를 만들면 내구도가 굉장히 떨어졌다.

그런데 상대가 군단 참모장급이다?

웬만한 수준의 퀄리티로는 어림도 없다는 말이었다.

참모장급 되는 놈을 상대하려면, 내구도와 위력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어야 했으니.

이러니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었다.

팔라딘으로 플레이를 하더라도, 후반에 나오는 강력한 고유 스킬이 아니면 피곤할진데.

지금 내가 가진 스킬은 고작해야......

'음?'

그때.

내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일반 스킬 : 황금의 창 (신화 클래스 전용) - 악의 영혼조차 녹이는 고온의 황금빛 창을 소환하여 투창한다.]

영혼을......녹인다네?

그것도 굳이, 굳이 악의 영혼을 말이다.

오호라?

'이거 잘하면......'

상성빨로 어떻게 비벼 볼 만할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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