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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32화 (32/194)

32화. 적어도 목숨 세 개는 날아갔겠지

하루의 휴식 후.

나와 디아즈는 곧장 지하 미궁이 있는 위치로 향했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뭐 있겠는가.

딱히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도착한 길라드의 한구석.

디아즈 역시 이곳은 와 본 적이 없는지, 섬세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빈민가 안쪽에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방향을 잡아 걸어나갔다.

로메인의 말에 따르면, 먼 과거부터 발길을 막아왔다고만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아마 이곳에 정착한 이들조차도 정확히 이곳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곳이 빈민가가 된 이유......그게 바로 이거였지.'

원래 이 지하 미궁의 존재 이유는, 고대 괴수들의 감옥이었다.

한때 신들과 맞서 싸웠던 기록 속의 괴수들 말이다.

당연히 그 위에 사람이 사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은 점점 지워지고, 동시에 가진 게 없어 쫓겨나듯 밀려난 이들은 갈 곳이 없어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점점 커져 길라드라는 촌락이 형성되었다.

실제로 길라드는 지도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지역도 아니었다.

덕분에 격투가 클래스를 해보지 않고서는 찾아오기도 힘든 그런 자그마한 마을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딱히 귀족들도 크게 개입을 하지 않은 것이고.

'말썽만 일으키지 말고, 땅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그 정도 마인드였었으니까.'

그나마 로메인이 그 우두머리 자리를 쟁취해 사람 살만한 곳이 되었다 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각설하고.

결론은 그만큼 이곳이 만만하기만 한 던전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이건 후반부에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안에 갇혀 있는 녀석 자체가 보스급 네임드 몬스터니까.'

대신 그만큼 보상이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는 지하 미궁의 영역에 이미 발을 들이고 있었다.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아도, 바닥의 재질이 변한 게 느껴지고 있어 알 수 있었다.

디아즈 역시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로한 님. 이 땅......"

"그래. 이 아래, 신화의 괴수가 갇혀 있다."

"시, 신화라면......! 설마 신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던 전설 속의 괴물들 말입니까?"

"만만하진 않은 놈들이지. 악마와는 또 다른 의미로."

"그 말씀은.....놈들은 악마와는 같지 않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 속 괴수들 중에서는, 신에게서부터 태어난 녀석들도 있다. 악마와 태생이 다르지."

"그렇군요......"

디아즈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도 뭐 배경 설정을 읽어서 아는 것뿐인데......

그래도 일단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악마가 일어난 곳이 지옥이라면, 신화의 괴수들이 태어난 곳은 바로 여기, 중간계이다. 악마와 인간이 다르듯, 악마와 신화 괴수들도 다르단 거지. 놈들 역시도 맞붙여 놓으면, 서로 물어뜯을 것이다. 모두가 서로의 적이니까. 인간도 신화 괴수도, 그리고 악마도."

"그럴 수가......"

디아즈는 나의 말 하나하나를 굉장히 경청하며 놀라워했다.

'신화 괴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너무 모르니 오히려 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여하튼.

그런 대화를 하는 사이, 우리는 지하 미궁의 입구에 벌써 다다랐다.

"후우......"

나도 모르게 호흡을 골랐다.

지금까지의 것들은 전부, 이곳에 오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으니.

* * *

뚜벅, 뚜벅.

지하 미궁이라는 말에 걸맞게, 이 내부는 지독한 미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해서 원래대로라면 엄청나게 헤매야 했지만......

'원래 그런 건 일회성 콘텐츠니까.'

다들 그렇듯, 미로형 지형도 몇 번씩 반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외워지는 법이었다.

교과서는 죽어라 안 외워지는데 이런 건 또 희한하게 금방 외워지지 않는가.

게다가 잘 까먹지도 않았다.

'참......이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라는 생각도 잠시.

'공부만 했으면, 지금 더럽게 고생하고 있었겠지?'

음.

요즘만큼 게임을 열심히 했던 과거의 내가 고마웠던 것도 드물었던 거 같다.

덕분에 이렇게 목숨은 부지하고 있고, 지금도 편하게 지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미궁 역시 실은 꽤나 많은 함정과 잡몹들이 존재했었다.

근데 진짜 짜증 나는 건, 그 잡몹들은 잡아도 아이템도 주질 않고.

잘못된 길로 빠지면 미로의 길도 변한다는 것이었다.

초창기에 이 지하 미궁을 겪었던 유저들의 불만도 상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만약 이 지하 미궁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들어왔다면......

'어후. 적어도 목숨 세 개는 날아갔겠지.'

그만큼 이 지하 미궁은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맵이었다.

그런 각종 트랩을 뚫고 마주하는 것도, 산만한 덩치의 미노타우로스였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체력 보존도 잘 되었고.'

더불어 나름 세팅도 짱짱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원래 이 신화 괴수 미노타우로스는, 오로지 격투가만 상대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녀석이었다.

다른 클래스는 또 각자 다른 괴수들이 존재하고.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미노타우로스는 격투가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클래스가 다르지.'

말 그대로 클래스가 진짜 달랐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응책도 조금 더 다양하게 구성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미노타우로스전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걸은 지 30분쯤 째.

"로한 님."

"음. 도착했군."

우리는, 딱 봐도 보스전이 시작될 것 같은 문 앞에 섰다.

나는 디아즈를 돌아보며 말을 했다.

"이 문을 지나고 나서는, 나도 널 신경 쓸 수 없다."

"물론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을 열자마자, 바로 왼쪽 구석으로 끝으로 들어가라."

"......예?"

디아즈가 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 *

끼이이이익.

철문을 열자마자.

쿵! 쿵! 쿵! 쿵!

땅을 울리는 기가 막힌 발소리와 함께.

"우워어어어어어어!"

미친 황소 대가리 놈의 돌진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래, 이거였지! 어후!'

뻘건 두 눈을 희번덕 거리며 도끼를 든 미노타우로스가 뿔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이, 이게 무슨......!"

나름 경력이 많은 디아즈이지만, 거의 3미터에 가까운 덩치에 소가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들자 꽤나 놀란듯 싶었다.

이래서 내가 미리 언질을 주었던 것이었다.

"왼쪽 구석!"

나는 그녀에게 짧은 그 말을 외쳤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디아즈가, 재빨리 몸을 날렸다.

나는 어그로를 분산시키기 위해 반대쪽으로 뛰어 굴렀고.

콰가가가가아아......!

돌진 공격은 그대로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없애버렸다.

하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 첫 번째 패턴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다음 패턴은......

'랜덤 어그로!'

둘 중 한 명에게 랜덤으로 어그로가 끌릴 터였다.

하지만 지금 디아즈에게 어그로가 끌려버린다면, 내 계산과는 조금 틀어질 것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데미지를 넣으면......확정 어그로로 바뀐다.'

나는 왼손으로 황금 창을 창조해, 미노타우로스에게 던졌다.

퍼어억!

놈의 등에 황금의 창이 정확히 박혔다.

그러나 예상대로 이거 하나로 원샷 원킬은 불가능했다.

역시 신화급 괴수에 걸맞은 맷집이라 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그리고 사람 겁나게 만드는 울음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놈은 내게 홱 고개를 돌리더니.

"크워어어어어!"

소리를 지르며 또다시 돌진 공격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비틀.

잠깐 중심이 흔들린 놈이 나의 눈에 걸렸다.

'효과가 없진 않구나.'

역시 신화 클래스 스킬이라 그런가.

웬만한 스킬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놈인데......

단 한 방에 이런 효과를 내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그 찰나의 휘청임 덕분에 나는 정신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장이 뛰고, 고양감이 차오르는 걸 억눌렀다.

그러나 악마를 상대할 때와는 조금 달랐다.

로메인과 가상의 대련을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가슴이 요동친다......그런데 신기하게 머리는 차가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순수하게 전투에 집중을 하는 지금이!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미노타우로스.

놈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오히려 앞으로 치고 나갔다.

"크워어어어어!"

내가 가까워지자 더욱 발광을 하는 미노타우로스였다.

놈과 나의 차이는 극명했다.

내가 마치 얼음과 같았다면, 놈은 끝도 없이 타오르는 불길과 같았다.

'조금만 더!'

계속 거리를 좁히던 나를 본 디아즈가, 깜짝 놀라 소리를 치는 게 들려왔다.

"로, 로한 님!"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다시 찾아온 오로지 나만의 시간.

세상이 먹먹해지고, 내 심장 소리만 들려온다.

그러나 동시에 온몸의 감각이 미칠 듯이 예민해졌다.

스스로가 느꼈다.

한 단계 진화했음을.

"크워어어어!

이제 미노타우로스와 나의 거리는 어느덧 서로 공격이 가능한 지척에 닿았다.

미노타우로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도약을 하며.

부웅!

놈의 공격을 피하고.

샤아아악!

다리 사이로 슬라이딩을 했다.

그와 동시에.

서걱!

공간 베기를 이용해 미노타우로스의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비명인지 호통인지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미노타우로스가 휘청거렸다.

'지금이다!'

나는 왼팔을 이용해 바닥을 붙잡았다.

드드드드득!

그걸로 속도를 늦추고.

콰악!

땅을 힘껏 움켜쥔 뒤, 다시 힘을 끌어 올려 미노타우로스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아마 놈이 멀쩡했다면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도 반응을 해냈을 터였다.

저 신화급 괴물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속도도 엄청난 놈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작업을 쳐둔 것이었다.

이미 발목이 반쯤 날아간 미노타우로스는 굉장히 반응 속도가 느렸다.

"크워어!"

내가 쏘아지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방향 전환을 빠르게 해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주먹으로 바닥을 한 번 치고 높이 솟아올랐다.

부우웅......

날아가던 속도를 유지하며 떠오른 몸.

놈의 머리를 정확히 조준한 나는.

"흐으읍!"

쩌저저저정, 콰르릉!

번개를 폭풍처럼 내뿜으며, 놈을 마비시키고.

"워어어어어어어!"

검을 내리 휘두름에.

서거어억!

공간이 잘렸다.

그 후 놈은, 죽기 전 마지막 울음소리를 내었다.

"움머어어어......"

쿠우우웅.

놈이 쓰러짐에, 지하 미궁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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