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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31화 (31/194)

31화. 무아의 경지에 들어서려면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로메인은 큰 동요를 느끼고 있었다.

'저걸......한 번에 잡았다고?'

세상에는 이따금씩 천재가 등장하곤 했다.

전에 존재한 적 없던,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이들 말이다.

자신 역시 그러한 자들 중 하나였다.

특히 초근접전.

무투에 한해서는 극한의 경지까지 발을 들였다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이 빈민들의 도시 길라드는, 오로지 힘의 논리만 통하는 무법 지대였다.

로메인은 그 무법 지대에서 주먹 하나로 질서를 창조한 인간이었다.

지금은 비록 다리를 다쳐 이런 꼴이긴 하지만......이 빈민가의 실질적인 지도자의 위치까지 오르게 해준 게 그 주먹이었고.

이 지독한 놈들로 바글바글하던 빈민가에 약자도 살아갈 길을 만들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그 주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로한이 알고 있는 그 이름.

자베론.

놈과 마주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수단 역시도 그 주먹이었다.

그만큼 단지 무력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낸 로메인이었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놀란 것이다.

'이게 재능이라고 불러야 할 경지인가......'

모르겠다.

재능이라는 말조차도 감히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지금 로메인은 나름 있는 힘껏 돌멩이를 던진 것이었다.

'당연히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 여겼거늘.'

젊은 시절 호기를 부리는 인간들은 종종 있었다.

과거에도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또 있으리라.

그의 눈에는 로한도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전력을 한 번 보여준 것인데......

'진짜 잡아내다니.'

그 누구든 간에 보통은 첫 번째 돌은 놓치기 마련이었다.

꽤 재능이 있었던 레아노아조차도 초반의 세 개는 피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었다.

점차 감을 잡아간 것이지.

물론 그것도 놀랍기는 했다.

전력으로 던진 걸 단 세 번 만에 타이밍을 잡아낸 것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콰드득.

단순히 잡아낸 것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으깨버리기까지 했다.

"하나."

로한이라는 자의 입에서, 첫 번째 카운트가 나왔다.

로메인은 조금 흥미가 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게, 평생을 살아오며 같은 눈높이를 가진 자는 만난 적이 없던 그였다.

'레아노아도 결국 내가 바라보는 경지에 까진 닿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위치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일생을 남과 다르다고 느끼며 살아온 그에게 있어, 로한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로메인의 안에 잠들어 있던 호승심이라는 놈이 슬금슬금 머리를 들어 올렸다.

'늙어서 그런 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아니었구만. 자, 그럼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그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또 간다."

파바바박!

돌멩이를 난사하기 시작하였다.

* * *

나는 첫 번째 돌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일부러 빗나가게 던진 것 같기는 한데.

'머리에 잘못 맞으면 진짜 죽겠는데?......'

이걸 과연 테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예상했던 방향으로 정확히 던져 준 덕에 잡아내기는 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체감 차이는 엄청났다.

오롯이 집중을 한 덕에 두 고유 스킬이 힘을 합쳐 잘 막아주긴 했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악마랑 싸울 땐 겁이고 뭐고 눈 돌아가는 느낌이라 편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더 무서운 거 같기도 하고......

그나마 차라리 잡으라고 해서 다행이지.

피하라고 했으면 아마 실패했을 터였다.

그의 속도에 반응할 수 있는 건 왼팔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로메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간다!"

대답할 틈도 없었다.

이미 로메인의 손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파바박! 파바바박!

연달아 날아오는 돌멩이들.

이번에는 빗나간 것 같지도 않고, 맞으면 진짜 골로 갈만한 공격들이 날아왔다.

'와 씨, 안 보여!'

이제는 순전히 감의 영역이었다.

날아올 방향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따라 제3의 눈이 반응하고.

마지막으로 거신병의 왼팔이 행동하고.

그 단순하지만 엄청나게 빠르고 섬세한 작업을 나는, 전력을 다해 해치웠다.

후둑, 후둑, 후두둑.

첫 번째 돌 이후로는 부술 틈도 주지 않았기에 나는 바닥에 돌을 떨구었다.

그리고 그 돌들이 점차 쌓여만 갔다.

'근데......열 개 넘었는데? 자, 잠깐만......'

이거 얼핏 세어도 열 개는 진작에 넘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로메인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무아의 지경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졌다.

나 역시 지금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였다.

잠깐만 눈을 돌리면, 바로 한 방 얻어맞으리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테스트라는 명목하에 가상의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로메인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날아오는 돌멩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의 주먹 그 자체였다.

자베론의 머리를 깨부쉈던 그 주먹.

당연히 내가 받아치는 것 역시, 그의 주먹을 받아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왼팔의 반응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빠악! 빠악! 빠아악!

이제는 잡아내는 건 나 또한 한계였다.

그래서 결국에는 주먹을 쥐고 돌멩이들을 부수기에 이르렀다.

콰앙! 콰앙! 쾅!

주변이 고요해졌다.

세상에 남은 것은 나와 로메인 뿐.

나와 그의 눈이 공중에서 얽혔다.

우리는 대련을 넘어선, 전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돌멩이에는 살기가 실리기 시작했고.

집중을 한 나도 순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전투에서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건 이상할 게 없으니까.

'틈을 잘 찾아서 되던지기로 반격을......!'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공격을 펼치는 로메인이었다.

가히 고수는 다르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빈틈을 찾아내 반격을 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도, 나와 로메인의 테스트가 정도를 넘어설 수준까지 격해지자.

결국 디아즈가 끼어들었다.

"사부님!"

"......!"

디아즈의 외침에 겨우 정신을 차린 로메인.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 역시 등은 푹 젖은 상태인 것 같았다.

'후, 후아......겨우 끝났다.'

다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워낙 로메인의 공격이 빈틈이 없어 반격까지 이어가 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색다른 경험이 가져다준 묘미에 나도 기분이 업된 상태였다.

'무아의 경지에 들어서려면 항상 악마와의 전투 때뿐이었는데......'

그것은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었다.

하나 이번에는 순수히 내 의지로 그 경지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었다.

똑같은 느낌이었지만 굉장히 달랐다.

나는 왼팔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쩌릿한 감각이 아직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이 팔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아, 실제 감각은 아니겠지만 느낌이 그러하다는 말이었다.

'처음으로......상쾌하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겪은 무아의 경지는, 분노로 가득했었다.

그때 역시 온몸의 감각이 미친 듯이 날카로워지고.

사방의 소음은 사라진 채 오로지 내 심장 박동만 들려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건 다 똑같은데, 분노가 없었다.

전혀 새로운 기분이었다.

비록 왼팔만 사용했지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한 단계 탈피를 한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로메인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개운한 듯한 표정을.

"나에게 격투가로서 인정을 받고 싶다고 했지? 글쎄......내가 자네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헷갈리는군. 내가 본 최고의 격투가일세. 자네는."

* * *

"끄으응......"

오클리는 곧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상황이 파악이 되지 않는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기절 직전의 일이 기억이 났는지, 내게 직선으로 걸어왔다.

"어이! 거기! 잠깐 방심한 사이에 공격을 해? 다시 덤벼!"

그런데 굳이 내가 대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나선 것이다.

"야. 오클리. 그냥 이리 와."

"그래. 찌그러져 있어라."

잠깐 기절한 사이에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걸 느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그는 아직 인정을 못 했다.

"무슨 개소리야, 새끼들아. 설마하니 내가 졌다고 생각하는 거냐? 절대로! 다시 제대로 붙어보면 진짜 실력의 차이를 볼 수 있을 거다. 딱 두고 봐."

버럭 성질을 내는 그에게.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닥치고 이리 와. 네가 뭘 한다고 그래."

"에휴. 괜히 덤볐다가 뒤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니! 와, 미치겠네? 진짜라니까? 나 진짜 이길 자신 있다고."

"쯧쯧."

"에휴우우우."

그때.

판자집 안으로 들어가 잠깐 자리를 비웠던 로메인이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천으로 둘둘 감싼 무언가를 들고서.

오클리는 답답했는지, 당장 로메인에게 달려갔다.

"사부님! 사부님이 판정을 한 번 봐주십시오! 저자와 제대로 승부를 내 보겠습니다!"

로메인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오클리를 쳐다보다가.

퍽!

주먹으로 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야이, 멍청한 새끼야. 너 같은 새끼는 아주 뒷다리를 뽑아버려서 목구멍에 쑤셔놔야 정신을 차리지? 에라이 상대 수준도 파악 못 하는 이 머저리 새끼야. 이 모자란 말미잘을 어디다가 처박아......"

차마 듣기 두려울 정도의 욕설 폭격이 이어졌다.

삐 처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막말들이 아주 춤을 췄다.

그걸 너무 입에 착착 달라붙게 해대니, 저게 욕인지 일상어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지경.

그런데 또 나름 구성진 욕에 리듬과 박자가 더해지니 얼핏 랩처럼 들리기도 했다.

할렘가의 랩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 진 건가 싶었다.

'여태 그냥 점잖은 척 한 건가......'

내 옆에서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던 디아즈의 귀가, 또 빨개졌다.

"죄, 죄송합니다. 못 보일 꼴을......"

"신경 쓰지 마라."

한참이 지난 후에야 로메인의 비트 쪼개기가 끝이 났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클리의 정강이를 발로.

빡!

"으악!"

"가서 주제 파악이나 하고 있어!"

까고는, 내게 왔다.

"못난 제자 놈이니 양해 좀 해주게."

"상관없다."

"하하. 역시 무릇 무인이란, 마음도 넓어야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자, 이건 간소한 선물일세."

로메인은 들고 나온 물건을 내게 건넸다.

둘러싸인 천을 걷어보니, 작은 나무 상자가 나왔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이런 빈민가에서 볼 법한 물건이 아니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이어서 상자도 열었다.

그러자.

'이건......'

붉은빛의 포션이 두 병 담겨 있었다.

로메인이 설명을 보탰다.

"이 다리 다칠 때 이런 물건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완벽하게 회복되었을 걸세. 두고두고 후회했지. 포션을 챙기지 않은 그 상황에. 그리고 또 자만을 했던 나 자신에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만약 다리만 멀쩡했다면, 제대로 한 번 대련을 붙어보고 싶을 정도야."

나만 보면 대련하겠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들 많은 걸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장담컨대 자네는 내 최고의 라이벌이 되었을 것 같군. 아쉽군, 아쉬워."

"......"

라이벌이라니.

나는 그냥 격투가로 인정이나 받고 싶을 뿐이었는데.

기껏해야 제자의 포지션 정도를 원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라이벌 포지션을 얻어버린 모양이었다.

사상 최강 격투가의 라이벌 격투가 말이다.

'이것도 일단 격투가는 격투가겠지?......'

어찌 되었든.

원하던 게 손에는 들어왔다.

그럼 이제......본편을 맞이할 차례였다.

다음 날.

나와 디아즈는, 열쇠를 들고 지하 미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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