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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29화 (29/194)

29화. 세 번째는 안되리란 법이 어디있는가

시포레오의 대교구 치료실.

회복이 된 일곱 기사단의 일원 크라우스는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간 사용하던 침구를 정리하던 그때.

벌컥!

"드디어 도착!"

느닷없이 노크도 생략한 채 누군가가 문을 열어젖히는 게 아닌가.

크라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인데......하는 생각과 함께.

"앤드류?"

그리고 돌아간 시선의 끝에는, 진짜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앤드류는 가볍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오! 크라우스 아저씨! 간만이네요."

"하하.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구만? 온 김에 여기 오렌지 하나 먹을 텐가?"

"또 그 얼마나 오랜지, 하는 시답잖은 농담하려고요? 안 먹어요, 안 먹어."

"칫."

크라우스는 혀를 찼다.

그는 자신의 개그가 먹히지 않았다는 것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 상태로 여태 신세를 졌던 자리 정리를 마무리하며 물었다.

"농담도 안 받아줄 거면 뭐하러 온 건가?"

"꼭 농담 받아줘야만 오나요?"

"겸사겸사인 거지."

앤드류는 고개를 샥샥 돌리며 치료실 내부를 살폈다.

"여기, 로한 경 왔죠?"

앤드류의 물음에, 크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한 경? 음. 왔지."

"오! 만나 보셨어요?"

"그럼. 만나보기만 했겠나. 그가 일곱 번째 멤버라면서? 확실히 마지막 조각으로는 딱 어울리는 친구였어. 일곱 기사단이라는 명성에 그 친구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거야."

"어때요? 아저씨가 보기에도 대단하던가요?"

크라우스는, 로한과 함께 아크비톤에게 맞섰던 당시를 떠올리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어디 대단하다 뿐이겠나. 진짜 인물이 나왔어. 번개까지 내리치는 그 광경은......크!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악귀 대공 아크비톤을 압살하던 그 웅장한 모습.

지금 크라우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로한은, 마치 명화에서 볼 수 있는 신화 속 영웅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편, 그 이야기를 들은 앤드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 번개도 쓴다고요?"

앤드류는 당황했다.

이건 또 생판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지, 진짜 내가 검을 들이댔을 땐, 완전 봐준 거였어?'

로한이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겁나 멋지잖아!"

"거, 겁나? 요새 애들은 이상한 말만 자꾸 만든다니까. 쯧쯧."

"아저씨 농담이 더 이상하거든요."

"아니, 내 농담이 뭐 어때서! 이게 얼마나 잘먹히는데?"

"아랫사람들한테만 먹히잖아요."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정말 싫다니까."

또 크라우스가 투덜대는 것 같았지만, 앤드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구 뛰는 심장 소리에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당장에라도 로한과 한 판 붙어보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아저씨! 로한 경, 지금 어디 있어요?"

"지금? 벌써 여긴 떴지."

"벌써요? 아, 또 늦었네!"

앤드류는 입술을 깨물며 아쉬운 마음에 허공에 주먹을 부웅 휘둘렀다.

"그럼 어디로 갔는지도 몰라요?"

"로한 경? 음 내가 레제타로 가 보라고 말하긴 했는데. 거기 가룬이라고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거든. 내가 또 그 대장장이랑 예전에......"

크라우스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앤드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끊었다.

어차피 중요한 내용은 이미 들었으니까.

"아, 아! 됐고요. 레제타라고요? 확실하죠? 고마워요!"

앤드류는 그렇게 쌩하니 사라졌다.

"야. 거 문 좀 닫고 가 인마! 에이 벌써 갔네. 고 녀석."

크라우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그거 한 달 전인데......"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앤드류가 로한을 만나려면 아직 좀 시간이 더 걸릴 듯싶었다.

"모르겠다. 나도 수련이나 해야지. 로한 경에게 걸림돌이 안되려면. 읏차!"

* * *

해가 어스름 질 무렵.

다그닥, 다그닥.

우리는 말의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일정하게 나아갔다.

레제타에서 발트라스 왕국까지의 거리가 그리 짧지만은 않은 까닭이었다.

덕분에 나는 생각할 시간을 좀 벌 수 있었다.

특히 가장 큰 포인트는 역시......도적 플레이어블 캐릭터, 레바르센.

그녀였다.

'도적 중심 스토리 라인인건가......'

물론 나 역시 도적으로 엔딩을 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소소한 것들을 빼면 어차피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를 하더라도 큰 줄기는 같았고.

그래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상황 파악이 되고 나니 편한 점이 많았지.

'레바르센 외에 다른 캐릭터들의 기연들은 내가 뺏어도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거지?'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크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그 대의가 무너진다면 결국 나도 살기 힘들 테니까.

레바르센은 뭐 알아서 잘 크게 놔두......

'음.'

도적 스토리를 되짚어보던 그때.

'이거......한 번은 도와줘야겠는데?......'

도적 클래스로는 넘어가기 어려운 구간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팔라딘 클래스가 전격 면역인 조바튼 구간이 힘들었듯, 도적 역시 그러한 타이밍이 존재했다.

'뭐 아직 시간은 좀 남았으니까.'

그래도 당장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일단은 내가 성장하는 게 아직은 더 급선무였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다.

벌써 내가 이곳에 온 지 6개월.

이제 대침공은 고작해야 2년 6개월이 남았을 뿐이었다.

'빠르네, 시간.'

얼핏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지만서도, 목숨이 걸려 있는 내게는 이상하리만치 모자라게 느껴졌다.

그런저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도 여정은 꽤나 순탄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발트라스 왕국에 거의 다다른 우리의 옆으로 로브를 깊게 뒤집어쓴 한 사내가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거 냄새가 영 역한데?......'

나는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잠깐. 멈춰라."

움찔.

로브의 사내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와다다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즉시 디아즈에게 지시를 내렸다.

"우측을 막아라!"

어차피 왼쪽은 절벽.

뛰어내리면 그대로 사망이 확정일 터였다.

내 의도를 단박에 간파한 디아즈가, 대답과 함께 말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이랴!"

예상대로 숲 속으로 숨으려던 로브의 사내는.

"흐익?"

화들짝 놀라며 방향을 틀고는, 그저 길을 따라 달렸다.

직선으로 도망가는 적.

내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상대였다.

파앗!

황금빛 창을 만들고.

약간의 도약과 함께.

"흡!"

창을 던졌다.

그리고.

푸욱!

놈의 발목에 정확히 삼지창이 박혔다.

"끄아아아악!"

* * *

그 사이 이미 해는 자취를 감추었다.

산기슭의 밤은 이렇듯 금방 찾아왔다.

하나 나는 개의치 않고 놈의 짐을 뒤졌다.

그런데 제법 뭔가 많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건 뭐 보물 고블린도 아니고."

"예? 그게 무엇입니까?"

"그런 게 있다."

"......"

품 안에서는 별의별 게 다 튀어나왔다.

특히 가장 눈에 띈 것은......

'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한 장의 서신이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모덴 자작의 앞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뜯었다.

[때가 되었다. 의식을 거행하라. 곧 군단이 올 것이리라.]

"......!"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군단이라고?

대침공을 뜻하는 게 분명하였다.

게다가 모덴 자작은 알다시피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 자리를 악마 놈이 차지하고, 모덴 자작이 살아있는 것처럼 속였을 뿐이고.

더불어 타국에서 남의 왕국 자작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이건 분명히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모덴 자작은 실은 악마 하비아톤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보낸 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 붙잡은 악마의 하수인을 탈탈 털어 정보를 좀 얻고 싶었지만......

'다가가자마자 가루로 변해서 죽어버렸으니.'

이미 녀석은 시체도 남기지 않은 채였다.

아마도 붙잡혔을 때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무슨 자결 마법 같은 게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후우. 점점 악마의 하수인들이 자주 보이네.'

대침공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한편, 옆에서 편지를 함께 읽은 디아즈의 표정도 굳었다.

"로한 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지금 고민 중이었다.

잠시 눈알을 굴리던 나는.

천천히 내가 가진 정보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 정도 편지지라면. 분명 보낸 이도 고위 귀족일 테지?"

"아, 예.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습니다. 종이의 재질도 남다른 게, 흔한 품질은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령 놈의 짐을 더 뒤졌다.

'돈 조금이랑......식량. 그리고 이건, 약초? 구급약인가? 흠. 또......음?'

차가운 감각이 손에 느껴졌다.

한데 희한하게 딱 잡히지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가방을 상세히 더듬었다.

그때.

'음? 이게 뭐지? 좀 이상한데......숨겨둔 건가?'

이 가방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입구를 열면, 방금 내가 꺼낸 것들이 있었고.

가방을 찢어야만 꺼낼 수 있는 물품들이 또 있었던 것이다.

나는 품에서 바로 단검을 꺼내어 가방을 잘라냈다.

그러자.

툭.

딱 하나의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디아즈가 그걸 집어들었다.

"열쇠?......아닙니까?"

"음."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디아즈가 그걸 내게 내밀었고.

나는 열쇠를 받아 들고 천천히 살폈다.

어두워진 탓에, 디아즈가 횃불로 빛을 밝혀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이 잠시 멈추었다.

'이, 이건 또 왜 여기서 나와?......'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 확신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아는 열쇠였다.

'분명히 이거 빈민가의 지하 미궁......'

격투가 클래스가 진행하는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 열쇠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이거......깨기만 하면......'

격투가의 전용 스킬.

[마나 버닝]

그것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이건 좀 탐나는데.'

하지만 문제는 역시 특정 클래스 전용 스킬이라는 점.

나는 지금 두 가지 클래스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신화? 클래스. 흠. 이건 아직 뭔지 잘 모르겠지만......'

두 번째 클래스인 팔라딘 클래스도 있었다.

나는 열쇠를 꽈악 쥐었다.

'그래. 두 번째 클래스인 팔라딘도 되는데.'

세 번째는 안되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어차피 이 스토리 라인이 도적 클래스라는 것도 정해졌는데.

나머지는 주인도 없는 것들이지 않나.

씨익.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격투가 클래스.

그 튜토리얼의 시작점이 바로 발트라스 왕국의 외곽 빈민촌 길라드였다.

그리고 발트라스 왕국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할 곳도 바로 길라드였고.

"가자."

"예."

나와 디아즈는, 밤이 늦었음에도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로군......"

길라드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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