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투항하라
카르쿠스는 왼팔로 황금의 창을 뽑아내려 했다.
그러나.
치이이익......!
"크윽!"
그것도 여의치는 않았다.
아마 내가 느끼는 열기보다 훨씬 강력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실전에서 처음 사용해 본 황금의 창.
역시 신화 클래스 전용 스킬이라 그런가.
일반 스킬임에도, 썩 마음에 드는 스킬이었다.
직접 사용을 딱 해보니, 바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감이 왔다.
'내 의지로 없애고자 하면 소멸되고......'
스르륵.
다시 만들고자 하면.
번쩍!
손안에 창조되었다.
나는 다시 그것을 카르쿠스에게 던졌다.
퍽!
"끄아아아악!"
이번에는 왼쪽 어깨를 꿰뚫고 벽에 박힌 황금의 창.
분노한 카르쿠스가 내게 덤벼들려고 발악을 하였다.
"크르르! 죽여버리겠어! 모가지를 뜯어버리겠다고오!"
그나마 힘은 진짜였던 걸까.
놈은 황금의 창을 뽑아내는 건 포기하고, 벽을 뜯어내는 방향을 택했다.
콰득! 후두두둑......
여전히 어깨에 창은 박혀 있었지만, 뒤의 벽이 무너지며 카르쿠스가 풀려났다.
덕분에 어깨는 너덜너덜해졌지만.
놈의 전투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롬하디 남작이 기겁을 했다.
"무슨 괴력이......!"
그러는 사이.
이미 카르쿠스는 나를 향해 정면으로 쏘아지는 중이었다.
몸통에 구멍이 나기 전에는 그래도 방향을 비틀면서 움직이더니.
지금은 열이 받혔는지, 그저 최단 거리 직선으로 달려왔다.
"으아아아아아!"
이러면 사실 오히려 쉬웠다.
나는 가볍게 옆으로 몸을 굴리며 투우사처럼 놈을 피하고.
빠르게 중심을 회복하여.
파스슷!
검은 천둥을 실은 주먹을 놈의 옆구리에 박아 넣어 주었다.
쩌저정!
"으그그극!"
짜릿할 터였다.
그래도 나름 꼴에 괴물이라고.
놈은 고통을 잘 참아내고는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왼팔을 크게 휘둘러, 바람을 가르며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나는 다만 그 주먹의 방향에 가볍게 검을 세울 뿐이었다.
아마 검째 나를 날려버릴 생각이었겠지만.
어림도 없지.
공간 베기가 활성화된 검날은, 카르쿠스의 주먹이 닿자마자 그의 손을 가르기 시작했다.
스으윽.
마찰력마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날려버릴 각오로 뻗은 주먹인데, 오히려 자신의 손만 베이니 카르쿠스는 화들짝 놀라 손을 회수하였다.
그러나 이미 주먹의 절반 정도는 갈라진 상태였다.
"크르르르......!"
"왜? 뭐가 생각대로 잘 안 되나?"
원래 세상일이 다 그런 법이거늘.
어쨌든, 한 번 수비해줬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지?"
씨익!
나의 환한 미소에, 카르쿠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기대감이 확실한가 본데 그럼 또 실망시킬 수야 없지 않은가.
"후웁!"
나는 호흡까지 들이마시며 온몸을 회전시켜 강렬하게 놈의 명치에 왼팔을 꽂아넣었다.
빠아아아아악!
거기에 거신병의 왼팔이 가진 파괴력이 더해지니.
쿠당, 탕! 콰당! 쿠우우웅......!
카르쿠스는 바닥에 몇 번이나 튕기며 벽에 그대로 꽂혔다.
재미있었다.
'역시 악마 놈들은 패는 맛이지.'
입꼬리가 들썩일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마구마구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고통에 뒤엉킨 악마의 표정을 보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되었다.
나는 오른손에 들린 검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발을 잘라줄까? 팔을 베어줄까?......"
흙먼지가 걷히자, 카르쿠스가 그 빨간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전혀 겁나지 않았다.
오히려 흥이 오를 뿐.
악마가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이 고양감을 주체하기 쉽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그나마 스트라운 때처럼 이성을 잃고 바로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나아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 카르쿠스는 모가지에 힘이 빠졌는지, 축 처진 머리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놈이 느닷없이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괴물 같은 놈. 인간이 맞긴 한 거냐?"
"......"
많이 맞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걸까?
카르쿠스는 말을 이었다.
"그래. 그 정도라면 억울하진 않겠어."
음. 진짜 미친 건가 보다.
그때였다.
카르쿠스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같이 죽으면 저승길이 심심하진 않겠구나! 크하하하하! 지옥에서 보자!"
놈은 입을 쩌억 벌렸다.
듬성듬성 날카로운 이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혀를 쭉 내미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의도를 바로 간파하였다.
혀를 깨물고 자결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너무 가지고 놀았나!'
나 또한 흥분에 취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스로의 목을 그을 검을 없애두어서 잠시 방심했는데......!
그러는 사이에도 카르쿠스의 이빨은 혀를 향해 단두대처럼 날아들었다.
나는 다급히 발을 굴렀다.
'죽으려는 악마 살리려고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문제는......놈의 이빨이 내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것이었다.
'젠장! 늦었다......!'
그 순간.
슈우웅!
내 볼을 스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그리고.
푹!
"끄아악!"
카르쿠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볼을 관통하고, 철제 화살이 박힌 게 그 이유였다.
덕분에 놈은 혀를 씹지 못하고.
카득!
쇠 화살만 씹었다.
"어어 에아이이야!"
아마 어떤 개자식이야, 라고 한 것 같았다.
나도 궁금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곳에는 창문에 매달린 채 손목 석궁을 정리하는 플레이어블 도적 캐릭터.
레바르센이 있었다.
그녀는 한쪽 눈을 깜빡여 윙크를 하더니.
"이건 날 꺼내 준 보답. 그럼......또 보자고, 귀염둥이."
손 키스까지 날리고는 뒤로 훌쩍 뛰어내려 사라졌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펄럭인 게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근데, 여기......3층인데?......'
역시 메인 캐릭터라 그런가.
대단하긴 했다.
당장 쫓아가 보고 싶긴 했지만, 어차피 레바르센의 움직임을 내가 쫓을 수 있을 리도 없고.
나는 다시 시선을 카르쿠스에게 돌렸다.
마지막 수단까지 사라진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고.
뚜벅, 뚜벅.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는 허튼수작 못 부리게 그 이빨을......다 뽑아 놔야겠구나......"
"어어억, 어어어엉, 어어억!"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뭐라고 말은 하는데.
이번 건 나도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주먹을 들어 올려.
"시끄러워."
빠각! 빠각! 빠각!
친절히 치아 손질을 해주었다.
한 땀 한 땀.
수제로.
* * *
쾅!
나는 시청 문을 거칠게 열며, 피떡이 된 카르쿠스를 끌고 나왔다.
아직 전투는 진행 중이던 모양이었다.
창! 차장!
"으악!"
"죽어어어!"
"커헉?"
그러나 나의 등장에 일순간 전투가 중지되었다.
"이 개새끼들! 목을 쳐......"
"저, 저게 무슨......?"
"......"
나는 좌중들을 스윽 둘러보고는, 일부러 한가운데로 발을 떼기 시작했다.
질질질......
나는 전장이 된 그곳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내 뒤로는 롬하디 남작이 따라 걸었다.
그의 손에도 하비아톤이 끌려 나오고 있었다.
두 놈 모두 사이좋게 내 스턴 펀치에 기절을 한 상태였다.
내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마 괴물의 모습이 된 이놈 때문이겠지.
더불어 그 괴물을 내가 작살을 낸 채 질질 끌고 나오니.
그 모습에 카르쿠스 용병단 용병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마침내 한가운데에 선 나는.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투항하라. 이단 심문관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투항한다면 교단 역시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 것이다. 하나, 결단코 내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하겠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대신, 이거 하나는 약속하지."
나는 눈을 부릅 뜬 채 카르쿠스 용병단의 놈들을 훑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제대로 지옥 구경을 하게 될 것이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 후.
잠깐의 고요.
그리고.
누군가 먼저 검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챙그랑......
그것을 시발점으로, 무수히 많은 검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챙, 챙그랑, 차장......
그렇게 우리는, 승리를 쟁취해냈다.
"와아아아아아!"
"롬하디 남작 만세에!"
"로한 경! 만세에에에에!"
"와아아아!"
달빛이 내려앉은 밤.
사방에서 대낮보다도 시끄러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환호성이.
승리를 만끽하는 병사들을 헤집고, 디아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로한 님."
"수고 많았다. 한데. 옆에는 누구지?"
디아즈의 어깨에는 부상을 입은 노인 한 명이 기대어 있었다.
나의 물음에, 노인이 직접 대답을 했다.
"가룬이라고 하오. 죽을 뻔한 걸 이 성기사 님이 구해주셨소. 로한 경이라고 하셨나? 정말 고맙소. 두 분다. 정말 고맙소이다!"
가룬이라고?
그 대장장이?
'아......대장장이 망령이 된 게 이 시점이었구나.'
그의 말에 따르면, 디아즈가 아니었다면 죽을 뻔했다 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며칠만 도시에 머물다 가시오. 내 직접 검 하나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러니."
"부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이건 내 피는 아니오. 다리만 조금 다친 거니, 망치질 하는 데에는 문제없지."
"그런가."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오."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는 디아즈를 돌아다 보았다.
"절대 자결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두 놈 다 끌고 가서 도시 바깥의 숲에 묶어두어라."
"알겠습니다!"
* * *
그녀는 굳이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내 명령을 수행해주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곳에 카르쿠스와 하비아톤을 묶어두고 온 것이다.
"근방의 산짐승들도 전부 몰아냈습니다. 한데......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어깨를 살살 풀었다.
"후환은 남길 필요가 없지. 이 자리에서 끝낸다."
"예? 어떻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릴 만도 했다.
내 손에는 활이 없었고, 디아즈는 아직 내가 황금의 창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해서 이번 기회에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파아앗!
내가 팔을 휘젓자, 빈손에 황금빛 삼지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낮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오......!"
"엄청나구만!"
"이게 일곱 기사단인가?"
"아냐. 크라우스 경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딱히 일일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나는 눈을 감고 카르쿠스의 기척을 살피는 데에 집중을 했다.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 생각보다는 금방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번뜩!
정확히 카르쿠스를 향해 창을 겨누고.
나는 약간의 도약을 하고 투창을 하였다.
그래도 나름 주변의 반응이 재미 있으니, 던지기 직전 막간 쇼맨십을 발휘해 추가로 번개 효과도 한 번 집어넣어 보았다.
쩌저정!
우뢰와 함께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황금의 창.
임팩트 하나는 내가 봐도 확실했다.
"우워어어어!"
"캬아! 장관이로구만!"
"와아......"
황금의 창이 점점 멀어지며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더니.
퍼엉......!
카르쿠스가 죽었음을 알리는 독무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