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맞는 것 같은데?
"비켜, 이 새끼들아!"
"나와! 에이 씨!"
카르쿠스 용병단의 용병들은, 시민들을 사방으로 거칠게 밀치며 달려나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카르쿠스가 가장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젠장! 설마 그놈이 이단 심문관이었을 줄이야......'
로한이 일부러 소란을 일으키며 시청으로 진입했기에, 그 소식은 빠르게 카르쿠스에게도 닿았던 것이다.
'지금 이단 심문관 놈이 하비아톤을 죽이면......나도 죽는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단 심문관이라면 즉결 처분의 권한 역시 가진 존재였다.
그 말은 곧, 이단 재판으로 시간을 끌 여유조차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이단 재판이 열리는 건 오히려 노리고 있던 노림수였다.
이단 재판이 열리게 되면, 성직자들이 모일 것이고.
그렇게만 된다면 붉은 달이 뜨는 밤.
성직자들을 제물 삼아, 이 땅에 고위 악마를 현현시킬 수 있으리라.
그 정도 일을 해낸다면 분명 악마의 하수인 정도가 아니라, 악마 군단의 참모 자리 하나쯤은 돌아오리라고 여겼는데......
그리 생각했는데......
이제 며칠만 더 기다리면 하비아톤이 말했던 그때가 다가왔을 터였다.
그러면 모든 게 다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었는데!
로한이라는 놈 하나 때문에 모든 게 꼬였다.
이가 갈렸다.
로한 그놈도, 그리고 그놈을 불러들인 롬하디 남작도.
전부 대가를 치르리라!
카르쿠스는 눈에 핏대를 세우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시청 앞.
카르쿠스가 손짓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모덴 자작님을 음해하려는 세력을 제압한다!"
"예!"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목표였다.
하나 그 속내는 심연보다도 검은색이었다.
'감히 일을 이따위로 벌여?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바닥에 무릎 꿇고 질질 짜면서 빌게 될 거다.'
카르쿠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아무리 이단 심문관이라고 한들, 휘하의 용병들은 보통의 인간에 불과했다.
악마를 따르기는 해도 자신과 달리 인간.
아직 악마가 아닌 이 용병들을 전부 죽여도 괜찮을까?
아니.
이단 심문관은 어디까지나 악마를 상대하는 자들이었지, 인간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아무도 죽이지 않고 전부 제압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불가할 터였다.
더불어 저쪽은 고작해야 둘.
하지만 이쪽은 수십 명에 달했다.
승산은 무조건......
'내 쪽에 있다!'
카르쿠스가 시청의 외벽을 통과하는 그 순간.
"와아아아아!"
"쳐라아!"
"악마에게 영혼을 판 개자식드으으을!"
갑자기 사방에서 병력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카르쿠스는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빨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이건 또 뭐야?' 미친......!'
정말이지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또 매복이라니.
그래도,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전장은 물론 숱하게 도적질과 산적질을 해온 카르쿠스는, 전장을 읽는 판단력 하나만큼은 발군인 사람이었다.
그는 몇 초가 흐르기도 전에 정확하게 전황을 분석해냈다.
'우리가 먼저 시청 외벽 안을 장악했다. 외벽을 막고 수성을 한다면......'
카르쿠스는 자신의 부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몇 명만 데리고 먼저 선진입하겠다! 입구를 틀어막고 저놈들은 시청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듬직해 보이는 두 놈을 골랐다.
"너, 너! 따라와!"
"예, 단장!"
"알겠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건물 내부로 발을 들였다.
이 모든 것이 로한이 파 놓은 함정인지도 모른 채.
* * *
카르쿠스 용병단이 들이닥치기 몇 분 전.
나는 전투를 벌였다.
전투는,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주먹을 뻗어 기사를 날려버리니, 놈의 얼굴이 뭉개져 절명을 한 게 그 서막이었다.
그러자 시녀들이 일제히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롬하디 남작은 기겁을 하였다.
설마하니 시녀 무리가 전부 악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헉!"
물론 내가 당하는 일은 없었다.
나야 이미 이 지독한 악취로 놈들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왼팔을 휘둘러 악마 하수인들의 이빨을 막고.
카가각!
주먹을 뻗어 번개를 뿌리고.
쩌정! 쩌저저정!
검을 뽑아들어, 하수인들을 무참히 도륙하기 시작하였다.
서걱!
한동안 나의 검무가 이어졌다.
반쯤은 광기에 휩쓸려 신나게 휘두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광란의 칼춤이 끝나자.
"어후. 개운하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소화제를 먹고 체기가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악취를 풀풀 풍기던 놈들이, 죽으니 코도 시원했다.
주변이 피로 조금 얼룩지긴 했지만......
어쩔 수 있나.
이 정도 청소야, 나중에 롬하디 남작이 감내해야지.
한편, 롬하디 남작은 아직 상황을 로딩 중인 모양이었다.
피를 뒤집어쓰고 입만 벌리고 있는 걸 보니.
나는 발로 기사가 들고 있던 검을 튕겨 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낚아채서는.
척.
롬하디 남작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발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툭툭 찼다.
"다 악마다. 모조리 다. 인간 같아 보여도 이미 속은 괴물이란 소리다."
"......"
롬하디 남작은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이지."
그리고는 턱짓으로 바닥에 기절한 채 엎어진 시녀, 아니, 시녀에 빙의 된......
이 모든 사건의 진짜 흑막인 악마를 가리켰다.
"죽이지 않았다. 저놈을 죽인다면 아마 카르쿠스도 죽겠지. 그럼 놈의 독이 사방으로 퍼질 것이고."
"그, 그렇소."
"준비했던 밧줄로 묶어서, 데려와라. 내가 직접 심문한다."
"아, 알겠소이다."
그다음은 간단했다.
악마를 묶어 놓고, 전기로 조금 지져 주니.
나불나불 다 불어주는 게 아닌가.
"끄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자, 잠깐만! 대답했잖아! 끄으으으으으윽!"
"대답? 했지. 그래서 뭐?"
"아그그그극! 이, 이 미친! 아그그그극!"
미디엄 웰던으로 잘 익히고 나니.
악마 놈이 졸도를 했다.
그때쯤 되자, 롬하디 남작도 슬슬 내 페이스를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기절도 안 하고, 떨지도 않고.
악마를 기절시켜 놓은 우리는, 놈에게 얻어낸 정보들을 취합하였다.
"고위 악마를 소환하려 했다니......큰일 날 뻔했소. 경 덕분에 이 위기를 넘겼소."
"아직 아니지. 카르쿠스를 처리해야 모든 게 끝이다."
"그렇지. 곧 놈이 들이닥칠 거요."
나는 머릿속으로 하비아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놈의 말대로라면, 자결하는 것 외에는 독을 퍼트릴 방법도 없는 것 같고.'
딱히 원격으로 죽게 만들거나, 생각만으로 폭발하는 식의 자폭은 불가한 모양이었다.
결국 스스로 검을 뽑아 자신의 심장을 찌르거나 목을 그어 죽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럼 갑작스러운 우발적 자결만 방지하면 된다는 말인데......
작은 아이디어가 내 뇌리를 스쳤다.
* * *
"우웁!"
"......"
시청 내부로 조금 더 들어가자, 카르쿠스의 뒤를 따르던 두 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카르쿠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방이 피범벅이었다.
바닥에는 찢겨진 팔다리 같은 게 굴러다니고......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들이 창문을 부리로 쪼아댔다.
퉁. 퉁. 퉁.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 겪어 보는 가장 어두운 밤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꿀꺽.
뒤를 따르는 한 용병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타박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포심이 들었으니.
'전투의 흔적인 건가.'
악몽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펼쳐진 탓에, 판단력이 흐려지려 했지만.
자신마저 냉철함을 잃는다면 안될 일이었다.
그는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격한 싸움이 있었겠지. 여긴 누가 뭐라 해도 하비아톤의 둥지이니까.'
악마 하비아톤은,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하수인으로 부리고 있었다.
청사 내의 기사들을 비롯해 시종들까지.
놈의 마수를 벗어난 것은 기껏해야 정문을 지키는 말단 병사들뿐일 정도였으니.
그런 곳에서 과연 성기사 두 놈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겁먹을 필요 없다. 진짜 제압을 했다면 바깥에서 왜 매복 같은 걸 하겠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풍경이 달라 보였다.
비록 온 복도가 피로 덮여 있긴 했으나, 추측건대 하비아톤의 군세에 저항을 하던 로한 놈이 도망간 흔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녀나 시종 몇몇 정도는 죽였겠지만,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었겠지.'
그제서야 마음이 슬슬 놓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하비아톤이 죽었다면 진작에 자신도 죽었을 터.
순간 겁을 먹어서 그렇지, 침착하게 생각을 해보니 겁먹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곧 악마 군단의 참모가 될 몸인데. 이 정도로 덜덜 떠는 것도 우습지.'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따르는 용병들의 사기를 올려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해서 뒤를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쫄 거 없다. 치열하게 반격은 한 모양이지만, 놈들도 결코 무사하진......"
하나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샌가 한 놈이 없어져 있던 까닭이었다.
"뭐야? 왜 너뿐이야?"
"예? 어! 어어? 이, 이 자식이 어디로 간 거지?"
옆에 있던 놈이 사라지는 것도 몰랐다고?
이게 무슨 일인가?
겨우 삭혔던 공포가, 다시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까아악!
순간 들려온 까마귀 소리에 등골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런데 뭔가 소리가 굉장히 가까운 것 같은......
"다, 단장!"
용병 하나가 눈이 동그래져 자신을 불렀다.
카르쿠스는 용병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때.
까아아악! 푸드드드득!
까마귀 떼가 복도를 따라 날아오는 게 아닌가.
둘은 얼른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낮춰 웅크려 앉았다.
"이 무슨 개 같은......!"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사건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머리 위로 까마귀 떼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놈들의 날갯짓에 혼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까마귀 떼가 사라지자, 카르쿠스는 바닥에 엉덩이를 털썩 주저앉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옆에 있던 용병 놈을 쳐다봤는데.
......없다?
"......!"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일까.
연달아 한 놈씩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곳은 전부 시뻘건 핏물이고.
남은 것은 혼자뿐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시발!"
복도에 공허한 외침이 울리고.
다음 순간.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시, 시발 또 뭐야! 오냐, 그래. 덤벼! 개 같은 새끼들아!"
그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옆구리의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날이 선 소리가, 솜털을 바짝 세웠다.
그런 그의 눈앞에.
두 인영이 나타났다.
하나는.
"하비아톤?"
시커멓게 탄 채 숨만 겨우 붙어 있는 하비아톤이었고.
또 하나는 그런 하비아톤의 뒷목을 붙들고 있는 로한이었다.
로한은......히죽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악마 새끼야."
* * *
카르쿠스 놈의 시선이 내게 쏠린 그 찰나.
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롬하디 남작이 몸을 날렸다.
롬하디 남작은, 검을 휘둘러 놈의 허리춤에 매여진 벨트를 잘라냈다.
샤악!
그러자 단검을 비롯하여 무기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자결을 막기 위한 책략이었다.
"이런......!"
불의의 기습을 당한 카르쿠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정도로 롬하디 남작의 몸놀림은 제법 날랬다.
앞서 두 용병을 처리한 것도 그의 실력이었으니.
어쨌든, 이제 카르쿠스의 손에 들린 건 장검 한 자루뿐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악마가 되는 게 소원인가? 그럼 지금부터 펼쳐질 지옥도 즐겨보라고."
"아주 만만해 보였나 보군. 후후후."
그는 의외로 다시 냉정함을 찾았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며 히죽거렸다.
"용케 하비아톤을 잡긴 잡은 모양인데......그 년을 죽이면 너도 끝이야. 그걸 아니까 못 죽였겠지."
카르쿠스의 목소리는, 점차 기괴하게 변해갔다.
더불어 그의 몸 이곳저곳이 불룩불룩 거리더니.
촤악! 촤아악!
가시 같은 게 마구 솟아나기 시작했다.
핏대가 서고, 근육이 더욱 선명해졌다.
"한 가지 알려주지. 특별히 악마와 상성이 잘 맞는 인간들이 간혹 있다고 하더군."
덩치도 점점 커져서는.
상체가 무지막지하게 부풀어 올라, 다리가 짧아 보일 지경까지 거대해졌다.
"그런 이들이 악마로 진화하게 되면, 보통의 놈들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가 탄생하지! 바로 나처럼!"
놈의 눈은 이미 악마의 눈이 되어 있었다.
흰자위가 검게 변하고, 눈동자가 시뻘건 핏빛이 되었다.
이빨이 마구잡이로 길어지며 뻗어 나오고, 머리에는 네 개의 염소 뿔이 돋아났다.
그리고 이미 목소리는 완전히 사람의 것이 아닌 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비록 하비아톤과 계약하긴 했지만, 그 녀석과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지는 마라! 이단 심문관? 그따위 직책.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걸 보여주지! 크하하하하!"
놈의 웃음이 복도에 퍼지자, 건물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겨우 시원해진 속이 다시 역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핏!
거대한 놈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빠르다......!'
이 정도 속도라면......오른팔로 휘두른 검은 맞추기가 어려웠다.
시포레오때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속도전 역시 이미 시포레오에서 경험해본 내가 아니던가.
나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황금의 창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순간의 번쩍임과 함께 왼손에 열기가 느껴지며 찬란한 금빛의 삼지창이 창조되었다.
곧바로 눈을 뜬 나는, 황금의 창을 던졌다.
제3의 눈과 거신병의 왼팔이, 내 감각을 뛰어넘는 속도로 먼저 반응을 해주었다.
슈우우우욱......콰악!
"컥?"
황금의 창이 정확히 카르쿠스의 오른팔을 꿰뚫고, 그대로 벽에 박혀 놈을 고정 시켜준 것이다.
"끄으으윽......!"
창이 뿜는 열기에, 놈의 팔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놈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입술을 싸악 핥았다.
"같은 수준......맞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