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꼭꼭 숨어라
우리가 짜야 할 작전은 꽤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첫째, 카르쿠스 놈을 죽일 수 없다.
놈이 죽으면 그 안에 있는 독이 퍼져 나갈 것이기에.
둘째, 카르쿠스가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 전에 기절을 시켜야 한다.
스스로 자폭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엄청난 묘책을 생각해냈다.
"이렇게 된 이상 시청으로 간다."
물론 내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다른 이들은, 물음표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뜻이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롬하디 남작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카르쿠스를 꾀어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과제다."
"그건 인정하는 바이오. 그래서 고민 중인 거고."
"간단한 것 아닌가?"
"대체 뭐가......"
"결국 그 카르쿠스 놈도 악마와 계약한 상태지. 그럼 그 악마 놈이 위험에 처한다면?"
"......!"
이제야 다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따라오는 듯했다.
롬하디 남작과 메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악마라 할지라도, 일곱 기사단의 앞에 선다면......"
"분명 겁을 먹을 겁니다. 게다가 상대는 하급 악마라고 했지요."
"그래. 그렇다면 방패막이가 필요할 테지. 자신의 하수인이 말이야. 감히 일곱 기사단을 상대로 홀로 맞설 수는 없으니."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제 발로 카르쿠스는 나타날 것이었다.
굳이 불러내지 않아도 말이다.
"뿐만 아니다. 혹여 숨어 있는 다른 하수인이 있다고 쳐도, 일망타진이 가능하다. 더불어 도주로도 제한이 되지."
단순해 보이지만 그걸 해낼 실력만 있다면.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계획이었다.
* * *
디아즈와 메르디는, 시청 청사 바로 뒤에 위치한 언덕의 수풀 속에서 매복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뒤로는 롬하디 남작을 따르는 이들이 똑같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간단했다.
하지만 그 중요도는 매우 컸다.
로한과 롬하디 남작이 시청으로 쳐들어가 이목을 끌고.
이후 카르쿠스가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면, 카르쿠스를 놓치는 척 시청 안으로 몰아넣고.
나머지 병력들은 막아내는 것.
즉, 카르쿠스에게는 일부러 도망칠 구멍을 살짝 만들어주어, 자결할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들고.
동시에 그 휘하 병력들은 막아내어 내부의 로한과 롬하디 남작이 활약하기 쉽게 판을 짜주는 역할이었다.
카르쿠스와 악마를 상대하는 핵심 작업은 로한과 롬하디 남작의 몫이었지만.
전면전을 벌이는 가장 힘든 일은 그녀들이 해낼 몫이었다.
당연하게도 매복조의 긴장감은 매우 팽팽하게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디아즈는, 나이는 어려도 꽤 많은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었다.
해서 너무 과한 긴장감은 독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메르디 님도 많이 긴장하셨군.'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한 채로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메르디 역시 이 도시의 수호대장을 역임했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대악마전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쉽사리 진정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녀가 잔뜩 긴장한 메르디에게 말을 걸었다.
"메르디 님은, 롬하디 남작님과 어떻게 인연이 되셨습니까?"
"롬하디 남작님 말입니까? 음......벌써 40년은 된 것 같군요."
"오래되셨군요."
"그렇죠. 롬하디 남작님 가문은, 과거엔 나름 명문가였습니다. 저는 롬하디 가문을 대대로 모셔온 가문의 사람이었죠.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서로 알고 있을 수밖에요."
"신뢰가 깊으시겠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리 쉽게 대신해서 목숨까지 던지려 했던 이유를.
메르디가 슬며시 웃어 보였다.
"악마와 싸워보는 건 처음이라, 제가 긴장 한 감이 없잖아 있죠? 그래서 제 긴장을 풀어주려고 디아즈 경이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고."
디아즈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역시 연륜은 연륜인 모양이었다.
메르디는 역으로 디아즈에게 물었다.
"그런데 디아즈 경과 로한 경도 꽤나 깊은 신뢰가 보이던데요?"
"예?"
"필사적으로 무뚝뚝한 표정 짓고 있는 거. 내 눈에는 다 보여요."
"어, 어떻게......"
디아즈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설마 자신이 여자인 걸 알아봤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왜냐하면, 나도 그러고 있는 중이라서 말이에요."
"......"
메르디의 말에 디아즈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귀가 빨개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너무 숨기고 있기만 하진 말아요. 내가 그래서 후회 중이거든."
디아즈는 궁금했다.
뭐가 후회 중이라는 걸까?
하나 그 질문을 하진 못하였다.
메르디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는 걸 본 까닭이었다.
"로한 경과 롬하디 남작님. 진입하네요."
디아즈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막, 그 두 사내가 시청의 정문에 도달했다.
* * *
나와 롬하디 남작이 정면으로 당당히 나타나자.
수비 병력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 않겠나.
탈옥수가 제 발로 직접 걸어 나타났는데 말이다.
"로, 롬하디 남작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가 모실 테니 일단은 옥 안에 잠시 계셔주십시오."
다만 병사들도 거칠게 나오진 않았다.
롬하디 남작의 평소 행실이 이런 것에서 슬며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롬하디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날 생각해주는 건 고맙네만. 지금은 나도 조금 강하게 나갈 때가 아닐까 싶네."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표정에서 뻔히 보였다.
롬하디 남작의 믿는 구석이 나인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다는 얼굴들.
나는, 이단 심문관의 증표를 꺼내어 보이며, 권한을 발동하였다.
"지금 이 순간 부로, 본 심문관의 앞길을 막는다면. 악마의 하수인으로 간주되어 심문을 받을 수 있고, 종교 재판에 넘겨질 수 있음을 알린다."
여기까지는 원칙적인 발언이었고.
"막으려면 막아보시던가."
뒤에 한 마디는, 내 성격상의 발언이었다.
가만히 병사들을 바라보자, 롬하디 남작이 그들에게 말했다.
"비켜들 주게. 지금부터는 엮이면 곤란한 일들이 많아질 걸세."
"남작님......"
"그, 그럼 진짜 말씀하셨던 대로, 이 안에 악마가 있다는 말입니까?"
롬하디 남작이 조용히 끄덕였다.
병사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대침공 이전에는 악마를 마주할 일이 그리 흔치 않았다.
실제로 이곳에 온 이후 내가 직접 피부로 느낀 건데, 심지어는 악마가 그저 딴 세상 이야기 정도로 넘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위기감이 없으니, 기습적인 대침공에 크게 한 방 먹은 것이지 않겠는가.
두 병사들의 시선이 시청 건물을 향했다.
저 안에 진짜 악마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모습을 한 채.
모두를 속이고.
둘은 소름이 쫘악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길을 터주었다.
나는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이 문을 지켜라. 수문장인 그대들이 할 일이 그것이니."
"아, 알겠습니다."
"예, 예!"
* * *
시청의 내부로 들어서며,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하급 악마라 했지.'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이 광범위한 악취.
실내 여기저기에서 이미 악마의 냄새가 감지되고 있었다.
'빙의형 악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조합해 보았을 때.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빙의형 악마였다.
빙의형 악마는, 단일 개체만으로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들이 많은 곳에 숨어 들 경우에는 조금 껄끄러워지는 녀석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악마에 빙의가 된다고 해도, 그 무력은 크게 압도적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원본 인간의 능력에 구울 하나 정도의 능력이 더 추가되는 정도?
심지어는 강한 인간에게는 빙의도 쉽지 않으니, 일반적으로는 스토리 중반쯤에 만나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한 악마였다.
다만 게임에서는 그러했다는 거고.
현실이 되니 아무래도 불편함이 많았다.
냄새로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너무 사방에서 풍겨오는지라 도대체 어디가 근원지인지 알아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게임에서야 이미 초토화된 마을을 뒤지다 보면 만나서 바로 싸움에 들어가면 해결이었는데.
이건 뭐,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하나 싶었으니까.
시청에 사람이 하나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카르쿠스야 나타나면 계획대로 처리해버리면 되고.
본체도 찾기만 하면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전에 안면이 있는 기사가 내 앞에 섰다.
내가 정문을 뚫고 시청 내부에 들이닥치자 소식을 듣고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시장님께서는 현재 부재중이십니다."
이미 들었던 똑같은 대사로 또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롬하디 남작님께서는 얌전히 옥으로 다시 들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두 번이나 같은 놈에게 길을 막히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는 한발 물러서 주었지만, 이번에는 어차피 개판 한 번 만들 작정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지금 대화하러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내 손에는 이미 검이 뽑힌 채 들려 있었다.
나의 대답에, 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성기사분이시라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행패를 부리실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단 심문관으로서는 어떤가."
"이단......심문관, 이라고 하셨습니까?"
"한 번 더 막으면 나도 그냥 넘기지는 않는다. 당장 시장 집무실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확실히 기사라 그런가.
바깥의 병사들보다는 흔들리는 모습이 덜했다.
그럼에도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는 하였다.
"이쪽이 집무실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시장님은 부재중이십니다."
그러시겠지.
벌써 죽었다고 하니.
끼이익.
문이 열리자 빈 공간이 드러났다.
나는 롬하디 남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봐봤자 잘 알기 어려울 테니, 이건 롬하디 남작에게 맡기는 게 옳았다.
롬하디 남작이 내부를 수색하는 사이.
나는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
마침 내 옆을 지나가는 무리.
그 중 한 시녀에게 내 시선이 꽂혔다.
'냄새가......역하다?......'
이 공간 자체가 이미 꽤나 불쾌할 정도로 지독했다.
그런데 저 시녀는 그 와중에도 조금 더 강렬한 게 아닌가.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거기. 멈춰라."
"......예?"
무리를 이끄는 시녀장이 이해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시녀장은 무시하고, 시녀 무리를 가로지르며 뚫고 들어갔다.
"꺄악!"
"아악?"
그리고는 손을 뻗어,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그 시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덥썩!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며 씨이익 웃었다.
"꼭꼭 숨어라......머리카락 보인다!"
그 순간.
스릉! 부웅!
순식간에 우리를 안내했던 기사가 검을 뽑아들고 내 왼팔을 내리찍는 게 아닌가.
카앙!
역시 이놈도 한패였던 모양이었다.
하나 기사는 당연하게도 내 팔을 잘라내지 못했다.
"으음?"
감히 악마의 하수인 주제에 내 팔에 흠집을 낼 생각을 해?
건방진 새끼.
간만에 분노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아드레날린이 날뛰고,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나는 입술을 핥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악마의 하수인인 기사에게로.
"이 불경한 자가!"
빠른 손놀림으로 검을 뽑아.
서걱.
놈의 목을 쳤다.
순간 상황 파악을 못 한 기사 놈은 허무한 유언만 남겼다.
"......내 몸통이 왜 저기에......"
놈은 그렇게 절명하였다.
이제 나는 다시 시선을 악마 놈에게 돌렸다.
이게 본편이니까!
희번뜩.
붙잡은 악마 놈을 머리째 그대로 들어 올린 후.
"으으악! 아아아악!"
전력으로 팔을 휘둘러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를 쳐버렸다.
빠각!
"커헉!"
그리고는 바닥에 누운 악마 놈의 면상을 향해 왼 주먹을 내리찍었다.
부우우웅!
내 팔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악마 놈의 마지막 중얼거림이 잠깐 들린 것 같았다.
"어후. 씨......"
빠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