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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24화 (24/194)

24화. 좋은 거 같긴 하지

두둥실.

석판으로부터 떠오른 황금의 구.

그것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황금의 구는 곧 나에게로 쏘아지듯 날아왔다.

그리고.

화악!

가슴을 뚫고 내게 들어왔다.

온 몸이 따스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하의 찬 공기가 전혀 체감되지 않을 정도로.

[일반 스킬 : 황금의 창 (신화 클래스 전용) - 악의 영혼조차 녹이는 고온의 황금빛 창을 소환하여 투창한다.]

희미한 글자가 눈앞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 힘을 다룰 수 있을지 알게 되었다.

이건 확실히 은빛이 창 상위 호환 스킬이었다.

은빛의 창 능력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을 터였다.

'들고 있는 창에, 악의 영혼조차 녹이는 은빛의 축복을 걸어 투창한다. 라고 되어 있었지.'

설명부터 차이가 있었다.

황금의 창 스킬은, 기존의 창이 없더라도 소환이 가능한듯했다.

반면 은빛의 창 스킬은, 투창용 무기를 들고 다녀야 했고.

그리고 색깔도 내건 금빛.

저건 은빛.

생각해보니 그런 장면이 있긴 있었더랬다.

'석판 그림에, 골렘 외곽은 은빛으로 칠해져 있었고, 핵으로 보이는 부분은 금빛으로 칠해져 있었지.'

그냥 핵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숨겨진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한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전용 클래스 스킬......!'

고유 스킬과 달리 일반 스킬은 보통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원작에서는 거의 대부분 NPC에게 배우는 게 전부였고.

계승자 시스템이 있기는 했어도 실제로 그게 활용되는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특정 플레이어들만 쓸 수 있는 스킬이 너무 많으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소위 말해 특전 같은 느낌으로 정말 소수에게만 뿌려진 게 현실이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일반 스킬을 얻었다고 좋아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특정 클래스 전용 스킬을 빼면 말이다.

'근데......내 클래스가......신화? 이건 또 뭐야.'

내가 배워진 걸 보면, 내 클래스가 신화 클래스인 건 맞는 거 같은데......

파오갓의 성장은, 무기 숙련도였다.

하나 어떤 클래스로 어떤 무기를 쓰느냐에 따라서도 성장 방향이 갈렸다.

예를 들어 도적 클래스라 하더라도 단검을 쓸 수도 있고, 도끼를 쓸 수도 있었다.

물론 도적이 도끼를 쓰면 굉장히 효율이 떨어지는 탓에 아무도 안 썼지만.

보통은 애초에 캐릭터를 선택할 때 클래스를 알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근데 내 경우는 조금 특이하지 않았나.

'검을 이용하는 고유 스킬을 받아서, 너무 당연하게 용병 클래스인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안일했던 모양이다.

그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랬다.

'일반적으로 용병 클래스가......고유 스킬이 무한대인 것부터 이상하지. 패시브도 다르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설마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클래스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생각 못하리라.

'음. 그래도 일단......좋은 거 같긴 하지?'

나쁜 소식은 내가 이 클래스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그나마 마이너 클래스는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던 그때.

롬하디 남작이 물어왔다.

"최초 계승자라니......이런 경험은 처음이오. 창술을 배운 적은 있지만, 이렇게 교본이 머릿속에 그림이 새겨지는 기분은 겪어 본 적이 없었소. 신기하군. 경도 똑같았소이까?"

"음."

대충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마치 게임에서 보던 화면처럼 글자가 떠올랐다.

'흐음. 사람마다 각자 익숙한 방식으로 익혀지는 건가?'

하긴.

내게 롬하디 남작처럼 교본이 떠오른다면......아마 오히려 제대로 익히기 힘들 터였다.

그걸 깨닫고 나니, 꽤나 편리한 시스템인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대체 내가 양보한 건 어떻게 알아낸 걸까?

'깜짝 몰래 카메라라도 달려 있나?'

무심결에 천장을 쳐다봤지만, 그런 게 보일 리가 없었다.

무슨 원리인 걸까?

알 방법은 없었다.

'고대 기술력......굉장허네.'

생각보다 고대의 마법은 최첨단인 모양이었다.

* * *

골렘을 쓰러뜨리자, 한쪽 벽에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로 생겼다.

이 역시 다른 길은 없었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그 길은, 레제타의 한쪽 구석의 마른 우물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원작에서도 롬하디 남작은 이리 나왔나 보네.'

롬하디 남작은, 몸을 낮게 수그리며 손짓을 했다.

"이쪽으로! 우릴 숨겨 줄 믿을 만한 사람이 있소."

우리는 그를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한 저택.

똑똑똑.

롬하디 남작이 만든 노크 소리에, 안쪽에서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단발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중년의 여인이었다.

"롬......하디 남작님?"

"그래 날세, 친구. 잠시 신세 좀 질 수 있겠나?"

그 물음에, 그녀는 바깥을 살짝 살피고는 문을 열었다.

"얼른 들어오십시오!"

"고맙네."

우리는 그곳에 임시로 몸을 숨겨, 숨통을 좀 트였다.

그녀는 우리에게 물을 내어주었다.

"어떻게 탈출하신 겁니까? 그 지하 감옥에서."

"여기 이분들 덕이었네. 교단의 성기사분들일세."

"성기사라니. 저, 정말입니까?"

"그렇다네! 이분들도 이미 카르쿠스의 변화를 알아보셨고."

"역시. 그 작자. 확실히 이상했습니다. 한데 성기사분들이 동의하셨다고 하니, 의심의 여지가 없겠군요."

롬하디 남작은 우리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메르딘이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도시 수비대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오."

"로한이다."

"성기사 디아즈입니다."

메르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탈출도 했고, 일단 숨통도 트였지만......

아직 문제는 여전했다.

나는 롬하디 남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카르쿠스 그 작자의 몸이 독 덩어리로 변했다는 게 확실한가? 죽이면 도시를 몰살 시킬 정도의 독을 퍼트리며 자폭하는 것도?"

"믿기지는 않지만......우리 쪽 사람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정보요. 그걸 알아낸 친구는 죽었고......그 와중에도 첩보만은 무사히 넘겼었소. 솔직히 말하자면 추가로 확인할 방법은 이제 없소. 단지 그게 사실이라 믿고 움직일 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음. 그런 힘을 가진 악마가 뒤에 있다면,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겠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았소. 첩보에 따르면 카르쿠스에게 그 이상한 능력을 준 악마는, 인간을 이용해야만 힘을 쓸 수 있는, 하급 악마로 추정된다더이다. 아마 혼자서 무언가를 할 정도의 힘은 없기에 카르쿠스를 끌어들여 이용한 것으로 보이오."

"카르쿠스는 그 꾐에 넘어간 거고?"

"그렇소. 그는 예전부터 탐욕이 많은 자였소. 악마답게 그 욕심을 노린 것이겠지. 여하튼, 당장의 큰 벽은 카르쿠스 그 녀석이오. 놈만 치워낸다면, 악마는 비교적 쉽게 처단할 수 있을 거요."

"그 악마가 다른 하수인을 만들기 전에 빨리 움직인다면 말이지."

"......그리 되기 전에 해내야지."

메르딘이 롬하디 남작의 말에 설명을 보태었다.

"참고로, 첩보에 의하면 카르쿠스는 스스로 자폭도 가능하다 하였습니다. 성기사분들께서 종교 재판을 신청하실 수는 있겠으나......즉결 심판이 어려운 이상 아무래도 종교 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폭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서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즉결 심판은 가능하다."

"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메르딘에게, 디아즈가 대답했다.

"로한 경께서는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시자, 이단 심문관의 직위도 가지고 계십니다. 악마로 판단된 이상, 얼마든지 즉결 심판은 가능합니다."

그에 롬하디 남작과 메르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일곱 기사단?"

"이단 심문관이라니......그 두 겸직이 가능한 겁니까?"

"로한 경께서 최초이십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쉽진 않을 겁니다."

"허허......"

"놀랍군요."

하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기에.

"즉결 심판을 한들. 놈의 목을 베어도, 도시가 몰살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내 말이 틀렸나?"

"......"

"......"

롬하디 남작과 메르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카르쿠스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한참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들 같은 생각일 터였다.

완전히 막다른 길에 이른 느낌.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때.

롬하디 남작이 조심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다시 텄다.

"자결을 하려고 해도 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좌중들을 둘러본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만약에 말이오. 만약에. 그를 기절시킨 다음, 도시 바깥으로 끌고 가서 죽인다면?"

오호.

확실히 가능할 법한 아이디어였다.

'역시.'

결국은 롬하디 남작이 해답을 내놓는구나.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가 아는 미래가 맞았다.

다들 동의하는 얼굴을 하자, 롬하디 남작이 결심을 한 눈빛을 내비쳤다.

"놈을 기절만 시킨다면, 내가 직접 도시 바깥으로 끌고 가겠소. 그대들이 놈의 수하들과 대치만 해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오."

그의 말에, 메르딘이 다른 의견을 내었다.

"안됩니다. 남작께서는 이 도시를 이끄셔야 합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대로 모덴 자작 역시 이미 죽은 채라면......이 도시는 머리를 잃은 격이 될 겁니다. 그럼 얼마든지 또 악마들이 비집고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수장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 주셔야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메르딘. 이미 나는 많은 친우들을 잃었소. 더 이상 그런 일을 부탁할 사람조차 남지 않았지."

"제가 가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메르딘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그래......도시 한가운데에 메르딘을 추모하는 비석이 있었던 것 같아......'

아마 그녀의 희생으로 이 도시가 살아남은 듯하였다.

물론 롬하디 남작은 바로 반박을 했지만.

"그럴 수 없소. 이건 내가 질 짐이오."

"남작께서는 그 자를 절대 죽이지 않고 기절 시킬 자신이 있으십니까?"

"......"

"남작님께서도 나름 창술은 배우신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런 섬세한 기술까지는 아직 부족하십니다. 반대로,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죽지만 않을 정도로 목을 조른 채 제가 끌고 가면 가능합니다. 수비대장이었던 제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메르딘 경......"

"지금 약초상들의 거래도 다 막힌 채라 독초를 구할 길도 없고......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정확히 기절만 시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기억을 되짚었다.

원작에서는 단지 이름만 등장하던 메르딘.

그러나 현실이 된 지금은, 그 이름의 무게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렇게 되어서 메르딘이 헌신을 한 거구나.'

말 그대로 숭고한 희생이었다.

롬하디 남작은 입술을 악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카르쿠스를 졸도시켜 마을 바깥으로 보낼 방법은......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정말로 아끼는 사람을 포기하고, 나머지 사람을 구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다 같이 죽느냐.

결국은 눈을 질끔 감으며, 결정을 한 롬하디 남작이었다.

"메르딘......자네에게 또 큰 짐을 지우는군."

"남작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원래 제가 이 도시의 수비대장 아닙니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미안하네......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라서."

"남작님은 강하신 분입니다. 그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눈 앞에서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오고 갔다.

옆에서는 디아즈가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나는 딱히 눈물이 나지 않았다.

딱히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다른 파훼법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검은 천둥의 반지.

'이거, 상태 이상 효과가 있지 않았나?'

있었다.

분명히.

'힘 조절을 이 정도만 딱해 가지고......CC기를 넣는다는 기분으로......'

치지직......

될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들어, 롬하디 남작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 말이 있으시오?"

"아니. 잠깐만 일어나 보겠나."

"무슨 말을......"

나는 그의 대답이 채 끝나기 전에, 기습적으로 턱을 노려 왼손 잽을 날렸다.

퉁, 빠지직!

털썩.

너무나 가볍게 롬하디 남작은 기절을 했다.

그 역시 나름 창술을 익힌 사람인지라 체격이 좋은 편이었는데......단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제대로 스턴이 들어간 것이다.

'효과가 이 정도라면.'

카르쿠스도 충분히 기절시킬 자신이 있었다.

나는 왼손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내가 스턴건 팬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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