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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21화 (21/194)

21화. 그러니까, 털어야지

기분이 심히 불쾌하였다.

도시 곳곳에 묻어 있는 악마의 냄새가 울화를 치밀게 하였던 것이다.

'후우......'

나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전에 한 번 겪어 본 덕분에 그나마 극도로 흥분해 날뛰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듯했다.

심호흡을 이어가며, 나는 이 역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냄새는 느껴져도......개코는 아니라서 그런지 방향까지 알아내긴 힘드네......'

내가 한참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디아즈가 물어왔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악마를 찾는 건 쉽지 않을듯했다.

해서 나는 일단 원래의 목적부터 마무리 짓기로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시장을 만나, 소소한 약초상 일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시청으로 가지."

"예. 알겠습니다."

나와 디아즈는 곧바로 시청으로 향했다.

하나, 그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재 시장님께서 부재중이십니다."

"그럼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군요. 한동안 자리를 비우신다고만 알려오셔서 말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멀리서 나도 대충은 들었지만, 디아즈가 다가와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시장을 만나는 건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렇겠군."

흠......이걸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하는 내게, 디아즈가 의견을 내었다.

"레제타에는 작은 수도원 정도가 전부인지라, 일단 숙소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부터 잡고......그 용병단을 좀 만나봐야겠군."

"카르쿠스 용병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카르쿠스."

"알겠습니다. 적당한 곳에 묵을 곳을 구하며, 카르쿠스 용병단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와 보겠습니다."

"부탁하지."

일단은......한 걸음부터 떼 보기로 하였다.

* * *

레제타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다.

딱 도시와 마을 사이의 경계쯤 되는 지역이었다.

처음 들렀던 도시인 오리턴보다도 작았으니 말이다.

더불어 바로 직전에 대도시였던 시포레오에서 오는 길인지라, 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오리턴과 이 도시의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보였다.

유독 이곳의 사람들은 한숨이 잦다는 것이었다.

"후우. 여기 이 열쇠들을 쓰면 되오. 마구간은 뒤에 따로 있고, 식사는 필요할 때 말씀들 하시고."

"알겠습니다."

디아즈는 방을 잡으며, 카르쿠스 용병단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관 주인의 얼굴이 살벌하게 변했다.

"카르쿠스 용병단?"

우리는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뀐 이유를 알지 못했다.

"행색을 보아하니, 둘 다 용병인 거 같은데......카르쿠스 용병단에 들어가려고 여기 온 거요?"

이제는 거의 살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이들에게 있어 카르쿠스 용병단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걸까.

디아즈는 침착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용병이 아니고, 교단의 성기사입니다."

여관 주인은 나와 디아즈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되물었다.

"......확실하오?"

그에 디아즈가 성기사의 신분을 증명하는 인장을 꺼내 보였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여관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어려운 글자는 모르오. 그렇게까지 말하니 뭐 맞겠지. 의심해서 미안하오."

"한데, 카르쿠스 용병단이 무슨 말썽이라도 일으켰습니까? 굉장히 적대적인 느낌이 들던데."

디아즈가 슬쩍 떠보는 그 말을 하는 순간, 마침 들어오는 한 건장한 노인이 대답했다.

"불편? 불편 정도가 아니지. 혐오스럽지."

여관 주인이 그를 말렸으나.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이봐. 입 조심해."

"입조심은 무슨.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리고 여기 그놈들도 안보이잖아. 자네도 그 놈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꾸 쫓아낸 거 아니냐고."

"......"

"아닌 말로, 여기 레제타에서 그 새끼들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병력으로 도시도 완전 봉쇄시키고, 세금은 어지간히 또 뜯어가나? 그 새끼들 때문에 롬하디 남작님도 지금 그 꼴 난 거 아니야."

나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입에서 롬하디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롬하디 남작이......어떻게 되었나?"

"모르쇼? 지금 남작님, 수감되셨소. 카르쿠스 놈들의 행패에 항의하다 말이오."

"수감이라......"

턱을 문지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내 기억에 모덴 자작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롬하디 남작은 이미 이 레제타에서 권력을 되찾은 채였고.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지 알 수가 없군.'

분명 내가 아는 상황과는 조금 달랐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롬하디 남작은 결국 돌아올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지지도 확실했고, 원작에서도 롬하디 남작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결코 약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을 더듬는 사이, 방금 들어온 노인이 물어왔다.

"근데, 댁들은 뉘시오?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그에 대한 대답을, 여관 주인이 대신했다.

"성기사분들이라던데?"

"뭐? 성기사? 지, 진짜 성기사들이시오?"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내게 되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하! 이거 롬하디 남작이 해냈구만! 어떻게 한 건지 용하군!"

"무슨 소리지?"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오히려 노인이 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 당신들. 롬하디 남작님이 불러서 와 준 사람들이 아니오?"

"아니다."

"......"

롬하디 남작이 성기사들에게 구조 요청이라도 한 걸까?

잠깐 생각을 정리하려던 그때.

나는 얼굴을 팍 찌푸렸다.

역한 냄새가 갑자기 가까워진 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리고.

벌컥!

누군가가 여관의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이야. 진짜 성기사가 등장하셨네? 이런 촌동네까지.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큭큭."

* * *

문이 열리고, 사내가 다가오자.

악취가 진동을 했다.

실제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악마의 역내라는 걸 이제는 구별이 가능했다.

'이놈이 원인인가?'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운 그 썩은 내의 주인 말이다.

하지만 조금 고민을 한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음......아무래도 아닌듯하군.'

더 독한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었다.

이 도시 어딘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언가가.

그러는 사이,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소, 성기사 양반. 나는 이 도시를 위해 온몸을 바쳐 봉사 중인, 카르쿠스 용병단장. 카르쿠스요."

산발을 한 머리에, 검을 찬 모습.

그리고 옆구리에는 은색의 휴대용 술병도 달고 있었다.

딱 용병 그 자체.

입에서는 옅은 술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물론 잡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코에는 그가 썩어 문드러진 냄새를 풍기는 오물과도 같았기에.

내가 손을 맞잡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카르쿠스는, 입꼬리를 피식하고 비틀더니.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는 속삭였다.

"역시 성기사라 다른가? 벌써 날 꿰뚫어 보신 모양인데?"

"썩은 내 난다. 주둥이 치워."

"워워. 진정하쇼. 그러다 목이라도 치겠소?"

"못할 것도 없지."

저들은 나를 단순한 성기사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이단 심문관의 자격을 취득한 자였다.

보통의 성기사들은 악마의 하수인들을 굉장히 껄끄럽게 여겼다.

확실한 악마라면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지만, 악마의 하수인들은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성기사들에게는 인간을 즉결 처분을 할 권한이 없었다.

해서 일반적인 성기사들은, 악마 추종자들을 구속한 후 재판을 열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게 되면 그제서야 처형을 하는 방식이었다.

하나 이단 심문관은 달랐다.

이단 심문관은 그 자리에서 사형 선고가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그게 설령 악마의 하수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모르는 카르쿠스가 내 말을 비웃었다.

"아니. 넌 못 해. 성기사는 날 못 건드리거든. 이단 심문관이 직접 들이닥치면 모를까."

내 손이 슬금슬금 품속의 단검을 향했다.

저 쓸데없는 자신감을 당장에 짓밟아 줄 생각을......

"그리고. 지금 날 죽이면, 널 포함해서 이 도시 전체가 소멸할 것이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역시.'

이놈 한 놈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녀석은 그저 끄나풀일 뿐.

놈이 나불나불거려 준 덕에, 진짜 우두머리 녀석은 따로 있다는 걸 나는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나는 놈의 도발에 넘어간 척 연기를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왼팔을 뻗어 놈의 목을 콱 쥐었다.

스릉! 스릉!

그 모습을 본 카르쿠스의 수하들이 검을 뽑아 내게 겨누었다.

그러자 디아즈도 검을 뽑아 맞대응을 했다.

그럼에도 카르쿠스는 실실 쪼갤 뿐이었다.

내 팔을 툭툭 치며.

"워워. 진정들 하쇼. 아직 즐길 시간은 많으니까."

"......"

나는 분에 못 이기는 척을 하며 손을 놓았다.

"잘 선택하셨소. 성기사. 그래야지. 당신은 날 벌할 권한이 없거든. 왜냐? 나는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아직은......큭큭큭."

그는 목덜미의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오늘은 인사차 들른 것뿐이니 그리 긴장하지 마쇼.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생각일랑 접어두시오. 이 도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는 순간."

카르쿠스가 목을 긋는 시늉을 하였다.

"끽! 하고 다 죽을 거니까. 나도, 그리고 당신도. 이 도시에 있는 사람 전부. 자. 그럼 또 봅시다, 성기사 양반들! 하하하하!"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내게, 디아즈가 다가왔다.

"잘 참으셨습니다. 말만 저리 하고 진짜 악마와 연관되지 않은 자들도 흔합니다. 일단은 천천히 조사를 진행한 후......"

"아니. 악마의 종자가 맞다."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다.

놈에게서 악취를 충분히 느꼈기에.

하나 그런 사실을 모르는 디아즈는, 단박에 결론을 지은 나를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예?"

나는 그가 악마의 하수인인지 아닌지를 몰라서 판단을 미룬 게 아니었다.

'놈의 뒤에 진짜로 누가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던 거지.'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악마 놈이 진짜로 도시를 날려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 도발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방금 그 말투를 보건데......

'완전 거짓말 같지는 않아.'

카르쿠스는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진짜 도망갈 수도 없다는 소리로군.'

선택지가 싹 사라진 듯했다.

이제는 나도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답은 정면 돌파뿐이었다.

'차라리 선빵을 친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롬하디 남작을 좀 만나봐야겠군."

"저......로한 님. 그는 지금 수감되어 있다고......"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털어야지."

"터, 털다니요?"

"감옥을."

어리둥절해하는 디아즈를 쳐다보며 물었다.

"한 번도 안 해봤나?"

"......보통은 해볼 일 없지 않겠습니까?"

"음."

나도 처음이었다.

* * *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지하 감옥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는 점이었는데, 그게 해결된 것이다.

여관을 방문한 그 노인으로부터.

"내게 설계도가 있네! 자네들에게 내어주지!"

나와 디아즈의 대화를 들은 노인은, 발 벗고 나서서 우리를 도왔다.

놀랍게도 이 도시의 설계자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여관 주인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좋아. 그럼 내가 시선을 끌어주지. 여관에 있는 술통을 전부 지하 감옥 앞으로 끌고 가서 엎어버리고, 불을 지르겠네!"

노인이 그걸 듣더니 인상을 썼다.

"에이! 이 사람아 그건 너무 아깝잖나! 그럼 난 뭘 마시라고?"

"그게 문제인가, 지금?"

"아니. 그래도......"

"그럼 나는 이대로 구경만 하라고?"

"쩝......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은 없긴 한데......"

어쨌든.

그들의 도움으로 확실히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날 밤.

"불이야! 불이야아아아아!"

저 멀리서 여관 주인의 신호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지하 감옥 주변의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우르르 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와 디아즈는 그 광경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눈빛으로 대화를 하였다.

끄덕.

휙, 휙!

우리는 감옥의 내부로 숨어들었다.

롬하디 남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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