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다 깨물었나
파지직!
'이게 갑자기 왜?......'
여태 꿈쩍도 하지 않던 검은 천둥의 반지에, 느닷없이 전류가 흘렀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반지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검은 천둥을 뿜을 수 있다는 걸.
'안 그래도 더럽게 안 죽어서 슬슬 다른 방법을 써보려고 했는데......'
그 정도로 마수 놈은 희한하리만치 외골격이 단단했다.
이 정도면 죽겠지 싶을 정도로 쳤는데도, 아직 저렇게 살아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오히려 때리는 내가 지칠 정도였다.
왼팔이야 지금도 멀쩡했지만, 다른 부분들이 슬슬 힘이 들었다.
특히 왼쪽 옆구리 부분이 좀 많이 당기는 것 같았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역시 기초 체력이 필요하긴 하다는 걸 느끼는 참이었다.
물론 그걸 떠나서도, 솔직히 좀 놀라울 정도의 내구도이긴 했다.
이 정도의 마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 검은 천둥의 반지라면?
확신하건데, 분명 통할 것이었다.
'애초에 저 마수가 그곳에 갇혀 있던 것도 이 반지의 힘 때문이었으니까.'
놈에게 이 검은 천둥은 아마 상극일 터였다.
때마침 마수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주둥이를 쩌억 벌리고 내게 날아드는 중이었다.
'주둥이에 넣고 한 번 지져보자!'
외부는 튼튼해도, 내부는 어떨까?
나는 머리를 숙이며 왼팔을 스트레이트로 뻗었다.
그리고.
"꾸억?"
놈의 목젖까지 손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마수도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빨을 세우고 달려드는데, 나처럼 정면으로 들어온 놈은 또 처음일 테니.
게다가.
카득! 카득!
나름 물어뜯는데도, 내 팔은 멀쩡하였다.
"다 깨물었나?"
이제는 내 차례였다.
'이렇게......인가?'
정신을 집중하던 그 순간.
파지지지지지지직!
"우게게게게겍! 우겍!"
검은빛이 도는 번개가, 마수의 내부를 진탕 휘저었다.
놈이 벗어나려고 바둥바둥했지만, 전격 공격의 마비 효과 때문에 내게 손을 대지도 못했다.
어디서 탄 내가 나는 것 같은데.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많이 굶은 것 같던데, 실컷 먹어라!"
쩌저정! 쩌정!
천둥의 소리가 내 몸을 감싸고.
주변의 안개를 타고 스파크가 튀었다.
* * *
"으으윽!"
크라우스는 사방으로 튀는 번갯불에, 눈을 팔로 가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멀리 대피해야 할 상황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몸 상태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크라우스 경!"
"아, 알버트?"
"예! 접니다! 일단 벗어나십시다!"
"그, 그래야 할 것 같소."
알버트는 크라우스의 옆에 붙어 그를 끌어내었다.
그의 옆으로 디아즈 역시 달라붙어 도왔다.
크라우스는 멀어지는 번개 폭풍을 벗어나며 물었다.
"저건 누구요?"
"새로이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 된 로한 경이라고 합니다!"
"일곱 기사단? 그럴 리가. 지금 일곱 기사단은 이미 여섯 명......서, 설마 진짜 일곱 번째 기사란 말이오?"
놀란 눈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는 크라우스였다.
"일곱 번째 기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일곱 기사단의 일원인 크라우스는, 누구보다 기사단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다섯 왕국이 하나씩 가진 임명권.
그리고 아를렘 교단이 가진 임명권이 하나.
그 여섯 자리는 항상 채워진 채 존재했다.
하지만 단 한 자리.
가우론이 가진 임명권은 단 한 번도 그 권한이 발휘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가우론이라는 기사가 워낙 의문에 싸인 인간인지라, 기사단 소속 기사들 사이에서도 여러 설이 나돌긴 했다.
사실 임명 권한은 없고, 그저 형식상 가우론이라는 자를 치켜세워주기 위한 자리라는 설.
다섯 왕국 중 한 왕국이 비대하게 커질 경우, 견제를 하기 위해 만들어준 공석이라는 설.
최초의 일곱 기사단이었다가 죽은 어떤 기사를 기리는, 형식상 만든 자리라는 설.
등등등.
'어떤 소문이든, 일곱 번째 기사의 자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건 일곱 기사단의 기사들 사이에서도 꽤나 크게 다가올 이슈일 것이었다.
게다가 저 전투력.
솔직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맨주먹으로 저렇게까지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는 인간은 생전 처음 보는 크라우스였다.
'검도 옆에 차고 있던데......안 써도 이긴다는 자신감인가?'
근데 실제로도 이기고 있었다.
더불어 저 번개의 폭풍까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알버트에게 물었다.
"어디서 저런 신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인간을 구해온 거랍니까?"
알버트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난들 알겠습니까?"
그 순간.
쩌저저정!
앞서 보였던 어떤 번개보다도 강한 번개가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쿠구구궁! 콰광! 콰가가가가강!
천둥과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우왁!"
"크으윽!"
"으으으윽!"
분노한 하늘이 호통을 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보며 크라우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천둥의 신이 따로 없군......"
* * *
시포레오 대교구의 기사단 주교, 라론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안개가 서린 방향을 향해 말을 내달렸다.
"기병부터 먼저 움직인다! 선발대가 시간을 끌고, 본대가 친다! 알겠나!"
"예!"
"예!"
마치 한 명의 목소리 같은 일사분란한 대답이 울려퍼졌다.
그들은 대답을 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말을 채찍질 했다.
그들이 꽤나 목적지에 근접하는 그 순간.
우르릉......콰과강!
마치 지상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세월 산전수전 다 겪은 라론 주교였지만, 오늘 이날만큼은 무언가 두려움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은 그는 그 불안감을 절대로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우렁찬 목소리를 내었다.
"안개가 아직 남아있다! 필시 크라우스 경이 살아있다는 뜻일 터! 두려워 말라!"
그의 지휘에 차츰 성기사들의 사기가 올라왔다.
라론 주교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선봉부터! 진입!"
"돌진하라!"
"신의 가호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말라!"
미리 그 상대가 고대종 마수라는 언질을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성기사들 역시도 필사의 각오를 한 채 안개를 뚫고 들어갔다.
다그닥! 다그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성기사들은 기억 속의 시포레오 지형을 더듬으며,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내달렸다.
말들 역시도 익숙한 듯 각종 장애물들을 피하며 질주를 했다.
하나 안개의 중심부에서 계속 뻗어나오는 저 스파크.
저것 만큼은 전투마들 역시 주춤주춤 거리며 물러서게 만들었다.
결국 성기사들은 말을 버리고 도보로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한 발, 한 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안갯속에서 번쩍이는 시퍼런 불빛이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진격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케에에에엑!"
마수의 소리가 들려왔다.
성기사들은 손을 뻗어, 서로의 위치를 알렸다.
툭툭.
돌진하라는 신호가 성기사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중심부를 향해 내달렸다.
철거덕! 철거덕!
오직 갑옷의 부딪히는 소리와.
자신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만이 들릴 뿐이었다.
모든 성기사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한 번의 도약.
이제 목표물과의 거리는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쿠구구궁! 콰광! 콰가가가가강!
별안간 천둥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으아아아악!"
"크윽!"
"윽! 으그극!"
너무 가까웠던 탓에, 충격파가 고스란히 온몸을 덮쳤다.
성기사들이 추풍의 낙엽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파동이 너무 강해서였지.
그 증거로, 크라우스의 안개까지도 흩어지고 있었다.
안개가 걷힌 그곳에는.
한 명의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마수가 그 사내의 팔을 절반이나 집어삼키고 있었다!
성기사들이 다급히 검을 고쳐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러다가는 사내가 잡혀먹힐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데......
"잘 익었군."
사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았다.
성기사들 중 누군가가, 소리를 내었다.
"로, 로한 경?"
"......!"
그제서야 라론 주교 역시, 눈앞의 사내를 알아보았다.
그 누군가의 말대로, 진짜 로한이었던 것이다.
다만 진짜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로한은 이쪽으로 눈도 주지 않은 채.
왼팔을 물 털듯 가볍게 털었다.
그러자 그의 왼팔을 물고 있던 마수가 툭, 하고 힘없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마수의 몸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더불어 탄 내음이 코를 찔렀다.
심지어는 로한이 서 있던 주변 자체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오로지 그곳에서, 로한만이 멀쩡히 서 있을 뿐이었다.
라론 주교는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무슨......어떻게......"
* * *
시포레오 대교구에서는, 마수의 시체를 수습하여 조사에 나섰다.
물론 이미 너무 많이 훼손이 된 상태라 큰 정보를 얻는 데에 한계는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대교구의 사제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악마와 마수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조사를 이어나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한 젊은 사제가, 눈을 번뜩였다.
"이, 이건......"
"왜? 무슨 일인가?"
"사제님. 여길 보십시오. 이 상흔. 분명히 고서에서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음......어디서 본 것인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젊은 사제는 얼른 그곳을 뛰쳐나가 책 한 권을 들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다른 사제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서적은 악마학에 관한 고서가 아니었다.
오래 전, 이 시포레오에 대교구가 세워지기 이전부터 떠돌던 동화책이었지.
젊은 사제는 그것을 펼치며 읽었다.
"긴 팔다리를 가지고, 큰 입을 좌우로 동시에 위아래로 쩍 벌린 그 괴물은. 천둥의 신에 의해 영원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서, 설마......"
"예! 확실합니다. 이 동화, 지어진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그, 그......다른 내용은 없습니까? 마수에 관한 다른 내용들 말입니다."
"잠시만요. 찾아보겠습니다."
젊은 사제가 다급히 앞으로 책장을 넘기며 훑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고대 서적들과 그 내용을 비교해가며 단서들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점점 눈앞에 타 죽은 이 마수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기 시작했다.
고대종 마수.
작위를 빼앗긴 고대 악마 귀족, 뒤틀린 심연의 탈주자.
"......악귀 대공. 아크비톤......"
"......"
"......"
놈의 정체를 알아낸 사제들은, 한동안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놈의 실체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반쯤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이게 악귀 대공 아크비톤이라면.......이걸 죽인 로한 경은 대체......"
그리고 그 사실은 곧 테베논 대주교에게 전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