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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4화 (14/194)

14화. 오래 살고 싶으면 말이야

시포레오.

그 대도시의 웅장함은 나로 하여금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입구에서 보았던 거대한 상단의 행렬.

호화로운 옷을 걸친 사람들.

저 멀리서부터 계속 눈에 들어왔던, 거대한 교단의 예배당.

그리고......라데룬 최고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태산 같은 왕성까지.

지금까지 들렀던 곳을 초라하게 느끼게 만들기 충분한 경치였다.

내가 시포레오의 전경을 눈에 담는 사이.

디아즈가 돌아왔다.

"교단 쪽에 머무실 곳을 준비했습니다."

"그래, 가지."

일곱 기사단 소속이라는 직책은 참으로 편리했다.

길게는 며칠씩 걸려 수도 출입 허가를 받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수도성 내로 들어오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 통과되고.

또 원칙상으로는 성직자나 성기사만이 출입할 수 있는 대교구에서, 숙소까지 내어주었다.

그렇게 시포레오 대교구에 들어섰을 때.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대우가 나를 반겼다.

좌우로 도열한 대교구의 성기사단.

성기사들이 검을 짚은 채 길을 만들어 두었다.

그들의 뒤로는 수도승들이 깔끔한 복장으로 장벽처럼 서 있었다.

환영식이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갑작스런 일곱 기사 중 일인의 등장에, 아이들은 신이 났고.

검의 길을 걷는 자들은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존경과 경외.

이것이 바로 일곱 기사단이 가진 진정한 위용인 듯했다.

'이렇게까지 성대할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이곳에서는 며칠 길게 머물 생각도 없었다.

하인트 주교의 편지 전달과 팔라딘 캐릭터 실존 여부 확인.

그 두 가지 일이야 진짜 금방 끝날 테고.

시간이 걸릴 요소는 역시 검은 천둥의 반지에 관한 것뿐이었는데......

'잊혀진 신전 쪽이었던가?'

시포레오는 아주 오래전 과거부터 문명이 꽃을 피웠던 땅이었다.

덕분에 이곳에는 신비한 고대 유물들이 종종 발굴되기도 하였다.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검은 천둥의 반지 역시 그렇게 발견된 고대 유물들 중 하나였다.

몇몇 고대 유물 같은 경우 고유 스킬에 필적할 정도의 효과를 내 주는 것도 있었다.

더불어 실제로 스킬을 얻어보면, 단순히 게임에서 보여주던 효과보다도 훨씬 유용한 경우도 있었으니.

고유 스킬을 얻는 게 내 스펙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가장 큰 요소이기는 하나, 기회가 된다면야 귀한 아이템들은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지. 그 누구도 손대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그것도 일이 잘 풀리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터였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어느덧 대교구의 중앙 본당에 도달했다.

"시포레오 대교구에 온 것을 환영하는 바이오. 위대한 기사단의 형제여. 그리고 성기사단의 자매여."

본당 앞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와 디아즈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인은 태양을 등지고 새하얀 복장을 한 채 서 있어, 마치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복식과, 그의 주변으로 눈빛이 살벌한 기사들.

그것들로 추측건대, 아마 꽤나 높은 위치의 성직자인듯싶었다.

"본인은 시포레오 대교구의 테베논 대주교라 하오."

디아즈가 나 대신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받았다.

"교단의 방패, 성기사단의 신도가, 교단의 고결한 수호자를 뵙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소."

"치하에 감사드립니다. 이쪽은 새로이 일곱 기사 중 일인으로 등위 하신 로한 경이십니다."

"처음 뵙겠소."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맞잡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테베논 대주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자. 그럼 예의는 여기까지만 차리기로 하고. 어서 안으로 드시오. 스프와 빵을 준비해두었소. 부디 편안히 여행의 여독을 푸시기를 바라오."

그를 따라 들어간 본당에는, 질 좋은 음식이 잔뜩 깔려 있었다.

꿀꺽.

조용히 침을 삼켰다.

나름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라는 명분 덕에 홀대는 받지 않았지만......

이 정도의 음식들은 처음 보았다.

게다가 보석처럼 보랏빛으로 찰랑이는 포도주까지......!

이곳 이후로도 갈 길이 멀기는 했지만......

'하루 정도는 좀 쉬기도 해야지.'

잠깐의 휴식 정도는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서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 하루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기로 하였다.

* * *

연회가 끝나기 전, 테베논 대주교는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신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편이 아무래도 편하게 식사하고 쉬기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그런데.

본당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그는 로한으로부터 서신 한 장을 받게 되었다.

한데 그 서신의 봉인 밀랍에 찍혀 있는 문양은.

'스트라운 교구장님?'

그것은 분명 하인트 주교의 인장이었다.

테베논 대주교도 하인트 교구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테베논 대주교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었다.

활동 분야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당시 하인트 교구장은 오로지 악마 처단에만 집중을 했던 교단 최고의 검, 이단 심문관이었다.

성기사단이 교단의 방패라면, 이단 심문관은 교단의 검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설의 위치에 올랐던 자가 바로 하인트 교구장이었고.

테베논 대주교가 아직 대주교가 되기 전부터 이미 그는 명성을 날렸기에, 나름 존경하는 교인이기도 했다.

그런 하인트 교구장의 서신에 테베논 대주교는 과연 무슨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그는 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서신을 열어 본 테베논 대주교는......그대로 얼어붙었다.

"허허......"

똑똑.

테베논 대주교가 잠시 멍하니 있던 그때.

노크를 하며, 교구 총대리가 들어왔다.

"테베논 주교님. 저희 일전에 얘기 나누었던 일 있지 않습니까. 지하 괴소음에 관한 새로운......음? 무슨 일 있으십니까?"

테베논 주교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서신을 넘겨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아든 교구 총대리.

그러나 그도 곧 테베논 주교와 같은 얼굴을 하였다.

"하인트 주교께서......이단 심문관의 직위를 내려놓으시는군요."

"그렇다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오. 그분은 교단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셨으니."

"예. 확실히 하인트 주교께서 중심을 잡아주시면 겁날 게 없었지요."

"이해는 되지 않소? 그분도 나이가 드셨고. 당장 우리만 봐도 늙었으니 말이오."

"하하. 늙긴 늙었지요."

교구 총대리는, 서신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그래서......새로운 후계자로서 로한 경을 택하셨군요?"

"음. 나도 그게 조금 당황스럽소."

"지금껏 이런 사례는 없지 않았습니까."

테베논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기사단과 교단의 성기사단은 오래 전부터 함께 싸워온 형제와 같은 관계였다.

하지만 일곱 기사단의 기사가, 교단 내의 직위를 가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 된 사람이 욕심을 부리지도 않기도 했거니와, 할 방법도 없었기에.

그런데 만약 이 일이 성사된다면?

진짜 거물이 하나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를렘 교단과 일곱 기사단을 아우르는.

게다가 하인트 주교의 추천이 아닌가.

하인트 주교의 눈이 높은 건 이미 교단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하인트 주교님도 큰 결심을 하셨군요. 저희 쪽으로 이걸 보내신 걸 보면."

"왜 아니겠소."

교단 내에서도 새로이 이단 심문관을 임명할 수 있는 곳은 대교구 당 한 명.

시포레오 대교구에서 로한의 상정권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다른 이단 심문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하인트 주교가 시포레오 대교구에게 빚을 지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하인트 주교께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만큼 로한 경에게 재능이 있다는 말 아니겠소?"

"같은 생각입니다. 해서, 받아들이실 겁니까? 대교구장님."

물론 시포레오 대교구에서 공식적으로 거절하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테베논 대주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인트 주교님과 친분을 쌓고 싶어하는 곳은 많다. 거절한다 한들 분명 어디선가에서 받아들이겠지. 차라리 우리 쪽을 좋게 봐주시는 지금,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더군다나 지금이야말로 로한이 진짜 거물이 되기 전 인맥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생각을 마친 테베논 대주교는.

"총대리."

"예. 대주교님."

"대교구 내 모든 주교위 이상 모두를 당장 소집해 주시오. 지하 괴소음에 관한 건도 거기서 계속 이야기하지."

회의를 준비했다.

* * *

다음 날.

나는 간만에 편안하게 수면을 취하고, 세상 개운한 상태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디아즈에게 움직일 준비를 시켰다.

"잠시 나갈 생각이니, 채비를 해라."

"예."

디아즈는 내게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도 않고 바로 따라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시포레오의 성벽 밖으로 나갔다.

시포레오가 대도시라고는 하나, 성벽 밖은 여전히 수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햇빛이 가려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그 수풀을 헤치고 나는 나아갔다.

잊혀진 신전은 원작 속에서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곳이었다.

때문에 그곳을 찾기 위해서는 지형지물을 표식 삼아 길을 찾아야 했다.

'당시에는 귀찮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덕분에 나는 지금 꽤나 순조롭게 방향을 찾아 나갔다.

이 바위를 오른쪽으로 지나서, 저 나무를 끼고 앞으로.

꽤나 예전의 기억인데도 생각보다 술술 떠올라 주었다.

그리고 그 끝에.

"찾았군."

드디어 잊혀진 신전의 입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이름에 걸맞게, 잊혀진 신전의 입구는 멀쩡한 문이 아니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작은 구멍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구멍에 다가갔다.

흙바닥을 살짝 발로 걷어내자, 인공적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아마 복도 천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짜 입구는 따로 있을 텐데, 원작에서도 안 나오니 나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뭐 어떤가.

찾기만 하면 되지.

나는 디아즈에게 짧은 경고를 했다.

"바닥이 깊으니 조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 후, 내가 먼저 몸을 날렸다.

꽤나 깊은 구덩이가 나를 반겼다.

슈우우우웅.

귓가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이전이었다면 이런 높이에서 뛰지 않았겠지만.

지금 내게는 거신병의 왼팔이 있었다.

나는 왼팔을 길게 뻗어, 충격을 흡수했다.

쿠우우웅!

낙하 데미지를 튼튼한 왼팔이 전부 잡아먹어 주었다.

'든든하네. 자, 그럼 천천히 둘러 볼......'

그 순간.

창! 차장! 창!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칼날이, 갑자기 내 목을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거신병의 왼팔이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의 왼팔이 가장 가까운 칼날을 쥐고.

빠각!

부러뜨렸다.

그러자 다른 칼날들이 진짜 살기를 띠고 찔러왔다.

나는 팔뚝으로 가까운 칼들을 막아내고.

깡! 까강!

바로 반격을 취했다.

꾸우우욱!

강하게 말아 쥔 주먹을, 내질렀다.

슈욱! 빠악! 슈욱! 빠아아악!

"으악!"

"커헉?"

아직 어둠 속에서 눈이 적응을 하기 전이었지만.

제3의 눈이 순간 극도로 발휘되며, 어둠 속에서도 소리만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순식간이었다.

왼팔로 한 놈의 목을 움켜쥐어 힘을 주고, 오른손은 그 사이 꺼낸 단검으로 다른 놈의 목을 공간째 베어버리......

"잠시만 멈춰 주십시오, 로한 님!"

직전에 디아즈의 외침이 들렸다.

우뚝.

내 손이 정지하자.

디아즈가, 나의 왼손에 붙들린 사내에게 말했다.

"알버트 경......아니십니까?"

"디아......즈?"

뭐야? 아군인가?

나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상대는 거친 기침을 내뱉었다.

"콜록! 콜록! 후우......"

"괜찮으십니까?"

"디아즈.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그리고 또 이 자는......"

"로한 경이십니다. 일곱 기사단의."

"일곱......기사단?"

"예."

나는 디아즈에게 물었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아, 예. 그게 이쪽은......."

디아즈의 말을 끊고, 알버트 경이라 불린 자가 대답했다.

"시포레오 대교구의 소속 성기사요. 알버트라고 하오."

"알버트."

"마, 말씀하시오."

나는 신전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상대를 잘 파악하고 검을 휘두르길 바라지. 오래 살고 싶으면 말이야."

그리고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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