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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3화 (13/194)

13화. 내가 원래 뭘 잘 날리는 편이거든

록테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분노를 했다.

"조바트으으으은! 네가 감히 날 배신을 해?"

그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조바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배신? 어이가 없네. 결국 날 죽이려고 작정했다는 거, 모를 줄 알았나?"

록테르의 눈이 희번득했다.

"곱게 죽여 주려고 했지. 하나 이제 그런 자비 따위! 바라지 마라."

"곱게 죽여 주면 내가 아이고, 고맙습니다. 라고 할 줄 알았나 본데. 지랄 마 이 악마 같은 새끼야!"

"흥. 줄 잘못 섰다는 걸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록테르의 시선이 다시 내게 향했다.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그때.

저 바깥에서 엄청난 수의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벌써 도착한 모양이군. 이 야심한 밤에,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 오리턴의 암흑가에서! 감히 나를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후후. 나도 많이 얕보였군."

동시에 록테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후회해도 늦었다.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 제3의 눈은, 록테르가 발소리를 감지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들을 느끼고 있었다.

앤드류처럼 나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자들이라면, 발소리만으로는 그 실력을 파악하기 어려웠겠지만......

바깥의 저들은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디아즈."

"예."

"문, 막아라. 여긴 내가 처리하지."

"알겠습니다."

너무나도 담백하게 대답하는 디아즈였다.

그에 록테르의 얼굴에 당황의 기색이 올라왔다.

"개소리하지 마라! 혼자서 저 많은 놈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할 리가......"

하나 록테르는 곧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비명 섞인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넌 뭐야? 얼른 안 비켜? 비키라니......커헉!"

"앞에 뭐하는 거야! 달랑 한 명이잖아!"

"아악! 내 손......!"

"시발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미친! 이게 말이 되냐고! 고작 한 명에......!"

후방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은 록테르가, 검을 뽑아 내게 겨누었다.

"저자도 언제까지고 혼자 입구를 막고 버티지는 못할 테지! 결국 뚫릴 것이다!"

옳은 말이었다.

이 집이 무슨 요새도 아니고.

조바튼의 조심성 때문인지 창문도 높은 곳에 있어 쉽게 들어오긴 힘들긴 하겠지만.

영원히 들어오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고맙군. 그럼 그 충고를 따라, 뚫리기 전에 내가 먼저 널 뚫어버려야겠어."

"흥! 쓸만한 수하 하나 믿고 그러는가 본데. 널 도울 여력은 없을 거다. 시간도 내 편이고, 이 음지의 환경도 내 편이지!"

"그래.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군.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던가?"

"이 새끼가!"

확실히 록테르는, 암흑가의 사람이 맞았다.

달려 들어옴과 동시에 암기를 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품 안에서 모래까지 흩뿌렸다.

슈슈슉! 촤아악!

아마 꽤나 자주 써먹은 수법인듯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연계가 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검을 쥔 오른팔을 휘둘러 암기를 쳐냈다.

그러는 사이, 록테르는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물론 놀라지는 않았다.

제3의 눈의 능력을 벗어날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반격을 위해 왼손의 주먹을 말아 쥐었다.

꾸우우욱!

왼팔을 황금빛 기운이 감쌌다.

힘이 잔뜩 실리는 게 바로 체감되었다.

이만큼 무게감 있게 팔에 에너지가 모인 건 생전 처음이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죽어라!"

모래알의 뒤에 숨어 덮쳐오는 록테르.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거신병의 왼팔을 휘둘렀다.

파앙!

가볍게 왼팔이 공기를 가르고.

빠아아아아악!

정확히 록테르의 턱을 가격했다.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손에 감각이 있다고.

나는 그걸 절절하게 느꼈다.

2미터에 달하는 거구, 록테르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날아가서.

콰아아앙! 쾅! 쾅! 콰아아앙!

벽을 뚫고, 또 그 옆의 벽도 뚫고, 또 그 옆의 벽도 뚫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록테르의 수하들은......

"......"

"......"

"......"

하나같이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멈춰버렸다.

벽에 큰 구멍이 생겨 얼마든지 내게 덤벼들 수 있음에도,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살짝 자신감이 붙은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다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 * *

그 후.

나는 바로 로펜서 시장을 조용히 불러내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그를 꼬여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조바튼을 통해 들은 암호를 살짝 서신에 남겨주면 간단한 일이었다.

[양피지가 내 손에 떨어졌다. 네 번째 집, 혼자 오도록.]

네번째 집.

그것은 조바튼의 거처를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로펜서 시장은 그 서신을 받자마자 모습을 드러내었다.

"꽤나 격한 싸움이 있었나 봅니다."

로펜서 시장은, 박살이 난 조바튼의 집을 둘러보았다.

그는 천천히 들어서며, 앞서 보이지 않았던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록테르는......"

"죽었다."

"하하. 대단하군요. 그 록테르를, 단 하룻밤 만에......잔기술 없이도 웬만한 기사와 자웅을 겨루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수준 낮은 기사였나 보군."

"뭐, 로한 님의 눈으로 보면 그럴 수 있겠군요. 제가 경을 너무 과소평가했나 봅니다. 무력에 지력까지. 다 가지신 것 같군요. 다방면으로 사람을 놀래키십니다."

로펜서 시장은 품에서 내가 보낸 서신을 꺼내었다.

"이 양피지는 또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나름 잘 숨기고 진행하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글쎄. 어렵지는 않았다, 정도로만 해두지."

"후후. 알려주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만......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그는 벽을 손으로 쓸며 점점 다가왔다.

"그 정보력. 조바튼부터 록테르까지. 이 도시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군요. 도시에 들어오기 전부터 전부 꿰고 있었다니......"

한 번에 정답을 맞추었다.

하지만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확실히, 한 도시의 시장쯤 되는 인물이라 그런 걸까?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렇군요......그럼 사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고유 스킬은 이미 내 손에 들어왔기에 이제는 그냥 종이 쪼가리였지만, 나를 제외한 이들의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로펜서 시장 역시 마찬가지인듯했다.

처음으로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설마......봉인은, 벌써 푸신 겁니까?"

"풀었지."

"다른 이에게 이미 사용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여태 내가 계속 쥐고 있었다."

로펜서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기사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일곱 기사단에 드는 순간 권능을 받게 된다는 걸.

당연히 고유 스킬은 하나 밖에 가질 수 없을 테니......

그의 머릿속에서 내가 고유 스킬을 가로챘다는 계산은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내가 뭘 원할 것 같은가?"

"글쎄요. 저도 로한 님과의 인연이 그리 깊지는 않은 터라. 헷갈리는군요. 돈? 역시 돈 아니겠습니까?"

로펜서 시장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건 돈밖에 없어 보일 터였다.

이미 권능도 가지고 있는데 뭘 더 원하겠는가.

그러나 틀려도 한참 틀린 계산이었다.

"제가 받기로 한 보상의 8할을 드리겠습니다. 결코 적다고 느끼시진 않을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미세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뻔히 보인다. 그 거짓말.'

조용한 환경에 초근거리에서 강하게 집중력을 끌어 올리면, 이런 티끌 같은 변화조차 감지가 가능했다.

제3의 눈 권능의 위력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그저 회피율이나 올려 줄 뿐이었지만, 실제는 확실히 여러모로 유용했다.

'어딜 내 뒤통수까지 치려고.'

당장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거니와 이미 저 양피지는 팔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빈껍데기에 불과했으니까.

더불어 진짜 돈이 급하다 하더라도, 저런 사람과는 거래해봤자 득 볼 게 없었다.

실제로 조바튼도 뒤통수를 맞았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주변으로도 살금살금 움직이는 몇몇의 기척이 느껴졌다.

"웃으시는 걸 보니,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로군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것만 넘겨주시면 약속, 지키겠습니다."

저 말 역시도 거짓이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발언이 나옴과 동시에, 바깥의 놈들이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척하면 척이었다.

'록테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결국 혼자 다 먹을 요량이었나 본데......'

나는 어이가 없음에, 피식 웃었다.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

"......?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재빠르게 왼손으로 품에 있던 단검을 뽑아들며 대답했다.

"이런 말씀이시다."

그리고는 바로 벽을 향해 그것을 집어 던졌다.

조바튼의 집은,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연히 벽도 나무판자였고.

거신병의 왼팔이 가진 힘은, 그 정도 벽쯤은 장애물도 아니었다.

단검은 벽을 뚫고 슬금슬금 접근하던 로펜서 시장의 수하를 꿰뚫었다.

푸욱.

"케, 케엑!"

바깥에서 당혹감 섞인 비명이 터졌다.

로펜서 시장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제법 놀랐다.

"오호라......! 썩어도 준치라더니. 그래도 일곱 기사단이란 건가."

"아쉽게 되었군. 내가 이미 네놈 모가지를 팔아넘겨서 말이지. 네놈과 거래는 힘들 것 같다만?"

"후후. 설마 예상했던 겁니까? 고분고분 따라주신다면, 신사적으로 고통 없이 죽여 드리려 했는데......기회를 날리셨습니다."

"내가 원래 뭘 잘 날리는 편이거든. 겸사겸사 네놈 모가지도 날려줄까 하는데."

"그렇습니까? 어디 한 번 해보시던가요. 얘들아! 죽여라!"

그의 명령에, 사방에서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튀어나왔다.

작정을 하고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작정을 하고 준비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제3의 눈과, 거신병의 왼팔이 환상적인 콜라보를 이루며.

깡! 카가각!

엄청난 속도로 암기와 칼날들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공격은 오른손에 쥐어진 장검의 공간 베기가 힘을 발휘했다.

서걱.

흑복 아래에 갑옷을 입은 듯한 감촉이 들긴 했지만......

"어억?"

내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암살자들을 넘어뜨려 가고 있었다.

"제, 젠장......!"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은 로펜서 시장은, 주춤주춤 물러서는가 싶더니.

결국 도주하기에 이르렀다.

하나 나는 그를 뒤쫓지 않았다.

그럴 줄 알고 나도 매복을 준비했거든.

천장에 숨어 있던 조바튼이 양팔을 벌리고 몸을 날려 로펜서 시장을 낚아챘다.

쿠당탕탕!

"으헉!"

"로펜서어어어어!"

조바튼과 로펜서 시장의 몸이 뒤엉키며 엉망진창으로 뒹굴었다.

하지만 과연 8년의 첩자 짬을 먹은 조바튼은 남달랐다.

정신없는 와중에 정확히 마운트 포지션을 차지하며, 언제 꺼냈는지도 모를 비수를 로펜서 시장의 심장에 겨누었다.

한편, 바닥에 깔려 목에 칼이 닿은 로펜서 시장은 처음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찌르려는 조바튼의 팔목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산제물로 바쳐진 시민들 목숨은 안 아까워도 제 목숨은 아까운 모양이었다.

"자, 잠깐! 나, 나를 죽이면 모덴 자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그, 그리고 바깥에 병사들도......"

로펜서 시장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디아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머지 사병들도 다 처리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새하얗게 질린 로펜서 시장을 보며, 조바튼이 울부짖었다.

"이 악마보다 더한 새끼! 네놈 때문에 죽어나간 59명의 영혼이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지금 바로 보내주마아아아!"

"머, 멈추어라!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하찮은 제물 놈들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지! 너는 내 명령을 들어야......!"

푸욱!

조바튼의 검은, 인내심이 없었다.

"꺽! 꺼억......사, 살려......나는 죽고 싶지......않......."

악마로 태어나야 꼭 악마인 것은 아니었다.

록테르처럼 스스로 악마가 된 자들 역시, 내 눈에는 똑같은 악마로 보였다.

* * *

"후우! 후우!"

8년 만의 원한을 해치운 조바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한동안 로펜서 시장을 내려다보았다.

"후우......후우......"

조바튼에게 진정할 시간을 준 나는, 잠시 후 손에 들고 있던 양피지를 촛불에 태워버렸다.

화르륵!

그 모습을 본 조바튼과 디아즈의 눈이 커졌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를 뿐이다."

완벽했다.

이제 그 누구도 내가 저 양피지에 봉인되어 있던 고유 스킬을 차지했다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었다.

다들 저 안에 어떤 고유 스킬이 있는지는 몰랐으니까.

더불어 희생자들의 원한도 풀어줬고, 조바튼이 빌런이 되는 것도 막았으니.

이 정도 자격은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디아즈는 작게 웃으며 아무런 말도 없었고.

"......"

조바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생각보다 훨씬 큰 분이셨군요. 여러모로......감사했습니다!"

"뒤처리는, 알아서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걱정 마시길."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비록 첩자이긴 했지만......암흑가의 간부급은 이제 저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제가 암흑가를 먹고, 재정비할 겁니다. 올바르게 말입니다! 베풀어주신 은혜에 걸맞은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가는 보답을 하겠습니다."

"그러던가."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조바튼의 집을 빠져나왔다.

디아즈가 나를 따랐다.

"이제 수도로 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수도 시포레오.

나와 디아즈는 그곳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인트 교구장이 부탁한 서신도 있었지만, 나 역시 궁금한 게 있었다.

'팔라딘 캐릭터. 있을까?'

과연 나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존재하는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볼 기회였다.

그리고 만약 팔라딘 캐릭터가 없다면......

'검은 천둥의 반지는......내가 가져도 되겠지?'

이 [거신병의 왼팔]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며칠 후.

나와 디아즈는 시포레오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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