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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2화 (12/194)

12화. 법으로 처단할 수는 없으니

처음 계획을 짰던 당시에는, 단순히 조바튼을 처리하고 고유 스킬을 먼저 쟁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리턴의 시장인 로펜서 남작을 만나고 난 후.

나는 무언가 찜찜한 느낌을 받았다.

'왜 저렇게 안절부절못할까.'

도시 외곽의 암흑가를 건드린다는 그 소리에 로펜서 남작이 보인 반응은 예상외였다.

미래의 일을 모르면 몰랐지, 앞뒤가 너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오리턴은 작지 않은 도시였다.

도시가 클수록 그 도시의 그림자인 음지도 커지는 법이었고.

내가 기억하는 오리턴의 상황은, 그 음지의 세력이 너무 커진 상태였었다.

시민이고, 관리고 전부 암흑가 세력을 컨트롤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서 관련된 서브 퀘스트가 이어져 조바튼과 싸우게 됐었는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단 말이지.'

거기서부터 나는 의심을 시작했었다.

암흑가의 세력과 오리턴의 시장.

분명 연결점이 있다고.

그리고 지금.

그 모든 전말을 조바튼의 입을 통해 들었다.

내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매일 밤, 죽은 59명의 비명들이 귓가를 맴돌아요. 그 악마의 봉인에 희생된 사람들의 비명이......그 놈들은 완전 악마라고요......"

이야기를 전부 들은 디아즈의 표정도 굳었다.

나 역시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악독한 놈들이었다.

조바튼은 그간 답답했던 울분을 토하듯 내뱉었다.

"당연하게도 록테르는 마지막 7명까지 다 죽일 생각입니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요! 당장 이 양피지를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지만......봉인 때문인지 불에 타지도 않더군요."

"......"

"부탁이 있습니다!"

"들어는 보지."

"도와주십시오! 증언도 하겠습니다! 어떤 위협이 들어와도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니......그러니 제발 남은 7명이라도 좀 구해주십시오! 기사님은 하실 능력이 있으시잖습니까!"

나는 잠깐 고민을 했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당연히, 고유 스킬......이지.'

하지만 아직도 고유 스킬을 꺼내려면 7명이나 더 제물을 바쳐야 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아직 살아있는 7명이 제물이 되게 놔두기는 마음이 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해서, 디아즈에게 물었다.

"공식적으로 이 일을 알린다면. 로펜서 남작과 록테르가 처벌받을 수 있나?"

나의 물음에 디아즈가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겁니다. 로펜서 남작은 나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자입니다. 아마 웬만한 증거는 다 인멸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록테르라는 놈도, 지목되어봤자 휘하 수하한테 다 뒤집어씌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로펜서 남작도 지원을 해줄 테니......"

그 말을 들으니 조바튼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나서더라도 자신의 생각만큼 해결되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공론화해봤자 모든 일의 원흉들은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엔딩이 되는 것이었다.

불공평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짧은 생각을 마친 나는,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미 59명이나 죽어나갔는데. 이대로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겠지."

나의 대답에, 조바튼이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요! 설마......"

"그래. 7명의 제물을 더 바쳐서 봉인을 깬다."

"하!......당신도 똑같은 인간인 겁니까?. 막상 신의 권능이 눈앞에 아른거리니까, 희생자고 뭐고 눈에 안 들어오는......"

나는 조바튼의 대답이 끝까지 이어지기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

"봉인을 푸는 법을 알고 있나?"

"......예. 압니다. 알면 뭐 어쩌실 겁니까?"

나는 디아즈를 불렀다.

"디아즈."

"예."

"뒤에 그 놈들. 깨워서 보내라."

디아즈는 내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조바튼의 거처로 안내를 해 준 두 건달들이 기절해 있었다.

그에 디아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놈들을 풀어주면, 분명 패거리를 이끌고 올 겁니다."

"그러라고 풀어주는 거다."

"......"

"법으로 처단할 수는 없으니, 제물로라도 써야지. 안 그런가?"

그제서야 내 말을 이해한 디아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반대로 조바튼은 아직도 무슨 이야기인지 상황 파악이 덜 된 것 같았다.

해서 나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 짧게 설명을 보태었다.

"록테르 패거리 놈들을 제물로 쓰겠다."

"......!"

조바튼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일곱 기사단의 기사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작게 웃어 보인 나는, 디아즈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음지의 쓰레기도 처리하고, 봉인도 풀고. 완벽하겠군. 아. 그러면 로펜서 남작이 날 의심하려나? 어쩔 수 없이 증인 인멸 차원에서 그놈도 없애야 할 것 같은데......성기사로서 좀 힘든가?"

디아즈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굳이 그런 길을 가시겠다면, 따르겠습니다. 주군."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냉혹한 악마 사냥꾼이 될 성향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에는 로펜서 남작과 록테르가 악마로 보일 것이었다.

나도 그녀와 같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시작해보지. 쓰레기 청소."

* * *

"로, 록테르 님!"

두 명의 사내가, 곤죽이 된 얼굴로 허겁지겁 록테르의 거처를 찾아왔다.

물론 그들은 입구에서 록테르의 간부에게 막혔다.

"어어? 어딜 들어가? 여기가 어디라고."

그야말로 암흑가의 지배자답게, 록테르를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진 않았다.

하지만.

"급한 일입니다! 조바튼이 당했습니다!"

"뭐?"

조바튼의 이름이 거론되자, 간부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는 옆에 있던 수하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수하는 곧바로 록테르의 거처로 들어갔고.

곧이어 록테르가 걸어나왔다.

단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들었다.

록테르의 키는 2 미터에 달했으니.

거기에 그의 불편한 심기가 분위기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이마에 바짝 선 핏줄이,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내가 지금 들은 게 사실인가?"

두 사내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예! 록테르 님!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조바튼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빌어먹을 자식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저희를 이렇게 만들고 조바튼도 거꾸로 묶어 두고 뭔가를 캐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팼던, 그 자식들을 이제 록테르가 직접 조져 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록테르는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다만.

"술 냄새가 나는군."

"......예?"

"내가 분명히 쓸데없는 헛짓거리 하지 말고 똑바로 지켜보라고 했을 텐데."

"그, 그 목이 말라 조금만 마셨......"

콰악!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록테르의 거대한 손이, 사내의 모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는.

"내 말을 듣지 않은 대가다. 뺨 딱 한대로 용서해주마."

가벼운 벌을 내린다 고하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사내는 심각하게 덜덜 떨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 록테르 니이이임!"

사내의 눈동자가, 볼을 노리는 록테르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가 부르짖었지만 록테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빠아아아악!

손바닥으로 때렸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소음이 터지고.

사내는 귀와 코에 피를 흘리며 축 처졌다.

절명한 것이었다.

남은 한 사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런 그를 보며 록테르가 말했다.

"넌 길잡이라서 살려둔 거다. 바로 안내하도록."

"예! 예!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정문을 지키던 간부에게 말했다.

"간부들 전부 모아. 당장."

"예?......알겠습니다. 한데. 누구길래 그러십니까? 시장 놈 쪽에서 끌어들인 인간입니까?"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겠지. 그런데 예상 가는 놈이 하나 있군."

록테르는 입을 다물었다.

상대가 일곱 기사단이라는 정보를 지금 내뱉는 것은, 오히려 사기에 방해만 될 뿐이었으니.

하나 그렇다고 해서 겁이 나는 건 아니었다.

'일곱 기사단? 흥! 대단하다고는 들었다만 그래 봤자 인간이다. 똑같은 인간인데 겁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머릿수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록테르 자신 또한 거저 이 자리에 오른 건 절대 아니었다.

수 많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뚫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자만심이라고 해야 할까, 호승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오히려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도 나름 지옥 같은 이 암흑가에서 버틴 놈이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다만, 길거리 막싸움에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는 사이 록테르의 세력이 한데 모였다.

록테르는 가장 앞에 서서 짧게 외쳤다.

"자, 가자."

그의 뒤로, 오리턴 암흑가의 핵심 인물들이 따랐다.

* * *

"여, 여기입니다!"

사내의 안내를 따라, 록테르는 조바튼의 거처 앞에 섰다.

"여기라고?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라?"

"예......예!"

"흠."

록테르는 자신의 옆에 선 간부에게 눈짓을 보냈다.

간부가 고개를 숙이고는.

"이 새끼 잡아 둬라. 혹시 내 뒤통수 친거면 사지를 분해할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록테르는 그들을 뒤로하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입구는 이미 빼꼼히 열려 있는 상태였다.

하나 내부는 불쾌할 정도로 조용했다.

록테르는 문을 살짝 밀며 내부로 들어섰다.

그러자.

실내 저 멀리.

달빛에 비친 그림자가 있었다.

그 그림자는 의자에 앉은 채, 검을 세워 지팡이처럼 짚고 앉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록테르였다.

"누구냐."

그 물음에, 공허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쪽이 록테르인가?"

록테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모르는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확신이 들었다.

저 자가 바로 일곱 기사단 소속의 로한이라는 자라는걸.

"나를 알고 있나?"

록테르는 나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의 가치가......

"아니. 제일 앞에 서 있길래 물어본 것뿐이다."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하는데, 상대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무슨 규칙 같은 게 있나 싶어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너희들은 싸움 시작하면 아랫놈들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할 거면서, 꼭 싸우기 전에는 앞으로 나서더라고."

록테르가 피식 웃었다.

머릿수에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런 소리를 해대는 것이리라.

* * *

록테르의 뒤로, 일곱 명의 간부들이 주르륵 섰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물어왔다.

"왜? 따르는 이들이 많은 게 불만인가? 그럼 데려오지 그랬나? 말린 적도 없는데?"

간부들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각자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스릉! 스르릉!

그들의 손에 각양각색의 무기가 살기를 내뿜었다.

검부터 암기나 도끼까지.

종류별로 한 번에 다 모아 볼 수 있었다.

"매번 갑옷 차려입고, 상대가 검 뽑아들 시간 기다려주고. 기사들의 정정당당? 그딴 건 개나 주라고 해. 진짜 싸움이 뭔지도 모르는 새끼들."

록테르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정정당당? 진짜 싸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 스트라운에서 일어났던 혈전만 겪어 봤어도, 절대 저따위 헛소리는 못할 텐데 말이다.

다만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준다고 들을 상대 같아 보이지도 않아서, 난 그저 코웃음 칠 뿐이었다.

한편, 록테르는 승기가 자신에게 있다고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쳐라!"

그의 한 마디에, 일제히 덤벼드는 일곱 간부들이었다.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늑대 먹이로 던져주마!"

"으랴아아아!"

"죽여 버려!"

로한의 눈에 그들의 움직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들어왔다.

점점 익숙해진 제3의 눈에, 이제 꽤나 적응을 한 것이다.

'구울에 비하면 느려 터졌군.'

느릿느릿 가까워지는 간부들.

그 순간.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흩날리는 금발.

디아즈였다.

"매복이다!"

"잡아! 매복도 한 명뿐이라고!"

"으악! 소, 손이!"

디아즈는 순식간에 한 놈씩,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놈들을 처리했다.

점차 록테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비웃었다.

"많아 봤자 별거 없는 것 같군."

"......"

록테르는 빠득 이를 갈았다.

그 사이 벌써 간부들은 바닥을 뒹굴며 신음을 흘렸다.

록테르는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누구 하나 죽은 이가 없었다.

"그렇군......"

작게 중얼거린 그는, 눈을 들어 올려 나를 보고 웃었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

"일곱 기사단이라......그래. 그랬지? 그래서 죽이지 못하는 거였어. 큭큭큭!"

하지만 진짜 웃긴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못 죽인다고? 죽이지 않는 것 뿐이다."

"하하하! 그러시겠지! 죽이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널 죽일 수 있다. 아니! 죽을 것이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오해? 그래? 뭐가 그리 큰 오해일까? 응? 궁금한데?"

록테르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나는 품에서 봉인된 양피지를 꺼내 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 죽인 건 이것 때문이거든."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록테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그, 그거......!"

"어두운데 용케 알아보는군. 맞다. 지금 네놈이 생각하는 그거."

록테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다음 순간.

한 구석에서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록테르는 그 목소리를 알아챘다.

"망할......저 주문은?......조바튼! 이놈! 묶여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록테르의 뒤에 선 일곱 간부들의 몸에, 마법이 휘감겼다.

봉인을 푸는 제물에게 걸리는 마법이!

"필요한 제물이 일곱......남았던가? 바닥에 뒹구는 놈들도 마침 딱 일곱이군."

내 말이 끝나는 그때, 마법이 완성되고.

일곱 간부들의 몸을 검은 화염이 휘감았다.

화르르륵!

"끄아아아악!"

"으아! 으아아아!"

"로, 록테르 님! 사, 살려......!"

파사삭......

그리고는 순식간에 백골로, 이내 백골마저도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산제물로 바쳐진 것이었다.

자신들이 일삼던 그 악행을, 그대로 되돌려받은 것이다.

동시에 내 손에 있던 양피지의 봉인 마법이 깨어지고.

나의 왼팔로, 신비로운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

그 순간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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