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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10화 (10/194)

10화. 한 판 붙어 보려고요

"로한 경. 어디로 가신다고요?"

스트라운을 떠나기 직전.

하인트 교구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미 알고 묻는 것 같았지만......나는 말에 오른 채로 대답을 했다.

"라데룬의 오리턴."

"라데룬 왕국이라. 그곳도 참 경치가 좋은 곳이지요?"

"......"

빨리 떠나고 싶은데 왜 붙잡는 건지 참.

내 얼굴빛을 눈치챘는지, 하인트 교구장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품에서 작은 편지 같은 것을 하나 꺼내었다.

"라데룬으로 가시면, 수도 시포레오에 한 번 들러주시겠습니까? 시포레오의 대교구장님께 이 서신을 좀 전달해주셨으면 하는군요."

시포레오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라데룬 왕국으로 들어가면, 시포레오는 한 번 가 볼 요량이었다.

그곳에는 쓸만한 물건이 하나가 잠들어 있었기에.

겸사겸사 가는 길이니 굳이 이 정도 작은 부탁까지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지."

"고맙군요. 아. 참고로 절! 대! 열어보시면 안 됩니다."

하인트 교구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대라고 하니 괜히 더 궁금해지는 기분이었다.

"......"

"가시는 길 무탈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그것을 적당히 잘 챙겨두고는 작게 고개를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말을 출발시켰다.

나의 옆으로 디아즈가 따라붙었다.

* * *

저 멀리 흐려져 가는 로한의 등을 바라보며, 하인트 교구장은 그만 돌아섰다.

그런 그의 곁에서 부주교가 물어왔다.

"교구장님. 방금 그 서신. 설마 이단 심문관 직위 추천서였습니까?"

"하하. 어찌, 벌써 알아낸 사람이 생겨버렸네요. 추천받는 본인도 모를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야 하는 사안인데 말입니다."

"제가 교구장님 곁에서 한두 해 함께 지냈습니까. 이제 웬만한 건 제 눈 못 속이십니다?"

"그러게요. 참 우리 세월도 오래되었지요? 제가 이단 심문관으로 한창 날릴 때부터 함께였지요?"

"예. 죽을 뻔한 게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말입니다."

하인트 교구장이 부교주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강인해 보이던 부교주도 어느덧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세월이 참 무색해요. 부교주, 예전엔 악마 군단장도 씹어 먹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

"군단장은 무슨. 참모 하나랑 싸우다가 목 날아갈 뻔 한 거, 잊으셨습니까?"

"하하하! 그래요. 그런 일도 있었네요. 여하튼, 이제 우리는 늙었고, 다음 세대가 일어나고 있어요."

부교주는 로한이 떠난 길의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아득하군요. 벌써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숱한 전장을 누빈 제게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부교주의 말 속뜻을 이해한 하인트 교구장이었다.

"맞아요. 저 어린 나이에, 이미 그 경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에요."

"그랬습니다. 아무런 기백도 느껴지지 않았는데......얼마 전 그 전투에서 보여준 능력.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미 기백이 드러나고 말고 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뿐만 아니라 전장을 보는 눈이 대단하단 걸 느꼈어요. 마치 제3자 시점으로 위에서 성기사들을 컨트롤 하는 것 같았지요."

"예. 그 통솔력도 마치 가우론 님이 떠오를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부대 단위를 쪼개서 피해를 줄이고, 또 분산된 부대끼리 서로 후방을 채워줄 수 있도록 지시하고......그런 전투는 이미 수십 수백 번 해본 사람 같았습니다."

부교주는 혀를 내둘렀다.

"이미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영웅이라 불릴 정도입니다."

"같은 생각이에요. 생각하면 할수록 놀랍기만 하지요?"

"해서......이제 넘기시려는 겁니까? 이단 심문관의 자리, 말입니다."

"언제까지고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물론 저 친구가 거절할 수도 있지만요."

"......"

부교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성기의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한들, 로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저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지금껏 싸워온 영웅이라면......

충분히 그 어떤 것이라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그때.

저 멀리서 말을 탄 앤드류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교구장님!"

"앤드류 경. 무슨 일이지요?"

"그, 그, 로한! 로한 기사! 벌써 출발했나요?"

"조금 전에 출발했지요."

"아아아악!"

"무슨 일인가요?"

앤드류는 바로 말을 출발시키며 대답했다.

"가기 전에 대련이라도 한 판 붙어 보려고요!"

쌩하니 사라진 앤드류.

그런 그를 보며 부교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 방향이 아닌데."

* * *

다그닥, 다그닥.

느리지 않은 속도로 말을 몰며, 숲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

"......"

한 마디 대화도 없이.

벌써 며칠째였다.

'성기사들은 다들 이렇게 말이 없나?'

몬테드와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말 한마디 없이 한참을 지내지 않았던가.

나도 워낙 답답했던 탓에 몇 마디 붙여보기는 했는데......

[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이런 식이었다.

이러니 대화가 이어질 리가 있나.

나름 어릴 적에 구해줬다고 좀 친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난관이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부관으로서의 일은 착착 해주는 디아즈였다.

재료도 없는 와중에, 사냥으로 식사를 준비해주기도 하고.

적당히 산짐승들을 쫓아내 주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의 역할도 완벽했다.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여행길을 누릴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포함해서.

'오리턴이라......'

스트라운을 중심으로, 여섯 왕국은 마치 꽃잎처럼 스트라운을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오리턴이 있는 라데론 왕국은, 그중에서는 딱 중간급의 왕국이었다.

대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소국도 아닌.

라데론 왕국이 그만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유적지가 많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고대의 어쩌고 같은 아이템들도 종종 얻을 수 있었다.

뭐, 그건 당장 중요한 건 아니었고.

지금 내 목표는 역시 조바튼 그놈이었다.

'암흑가의 황태자였던가?'

조금 유치한 듯해도, 그만큼 조바튼을 잘 설명하는 수식어는 없었다.

그만큼 소위 음지라 불리우는 곳들에선 조바튼이 왕 노릇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뒷골목의 양아치에서, 암흑가의 황태자가 되기까지.

그 원동력이 바로 놈이 가진 고유 스킬, [거신병의 왼팔]이었다.

거신병이라는 거창한 이름답게, 거신병의 왼팔은 강력한 고유 스킬이었다.

유저들이 평가하기로도 최소 상급에 포함될 정도로.

거신병의 왼팔은 능력치를 뻥튀기해주는 타입의 고유 스킬이었는데, 대략 1000% 정도의 증가폭이 적용되었다.

공격력도, 방어력도, 민첩성도, 심지어는 마법 저항력도.

모든 능력치가 본체의 1000% 증가였다.

심지어 본래의 능력치가 상승하면 거기에 맞춰 또 증가하니, 그야말로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고유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물리력에 한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유 스킬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원작에서도 조바튼이 왼팔로 헬파이어까지 막아내는 시네마틱 무비도 있었으니.

그런 메리트가, 내가 거신병의 왼팔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였다.

조바튼 역시 그것 하나 때문에 암흑가를 휘어잡게 되었다고 했었고.

분명 시간상 따져 본다면, 아직은 조바튼도 [거신병의 왼팔]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었다.

'조바튼은 단 3년 만에 음지의 황태자가 되었소, 라고 마을 주민이 그랬었지.'

3년이면 원작의 디아즈가 딱 성기사를 관둔 시점이었다.

지금 타이밍이 성기사를 관두기 직전이었으니까,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다만 진짜 문제는......

'그 고유 스킬을 놈이 어디서 어떻게 얻느냐는 것인데.'

원래 조바튼은 이미 능력을 보유한 채로 등장을 했다.

당연히 그 놈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이 능력을 얻었지!' 같은 설명충 같은 대사를 해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악행만 할 놈이라 고유 스킬 뺏는 건 문제가 아닌데.

어디서 가로채야 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부딪혀 보자.'

분명 눈여겨본다면 때는 올 것이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인 오리턴의 성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장님께 안내하겠습니다."

성문에서 디아즈가 나서서 몇 마디를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내가 일곱 기사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오리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귀빈 대접이라더니. 헛소리는 아니었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우리는 나쁘지 않은 응대를 받았다.

처음으로 일곱 기사단의 위명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사방으로 보좌진이 붙고, 경호 병력이 따라왔다.

나야 뭐 잘 모르니 디아즈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였다.

디아즈는 이전에도 일곱 기사단 부관을 해왔던지라 아주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했다.

심지어 몇몇 고위 인사들과는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이미 안면도 튼 것 같았다.

덕분에 시장과 만날 때까지 나는 거의 입 한 번 열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일련의 절차들이 마무리되고.

나와 디아즈는 시청의 응접실에서 시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턴의 시장은 일곱 기사단에 우호적인 편입니다. 아마 요구 사항이 있으시다면, 큰 문제가 없는 한 쉽게 승낙해 줄 겁니다."

"그렇군."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도시를 좀 박살 내도 괜찮으려나."

"......예?"

그때.

마침 시장인 로펜서 남작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펜서라고 합니다. 일곱 기사단의 일원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에도 디아즈가 나서서 정리를 싹 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로한 경께서는 일정이 있으셔서 저희 오리턴에 방문하신 건지, 아니면 수도로 향하는 길에 잠시 머무시는 것인지......"

대답은 디아즈가 대신 나서서 해주었다.

"경께서는 특별히 오리턴에 방문하신 이유가 있으십니다."

그럼, 그렇고말고.

"아. 일정이 있으신 겁니까? 어떤......?"

그 물음에, 여태 막힘 없이 대답을 잘하던 디아즈가 처음으로 주춤거렸다.

"그게......도시를 조금 박살......내신다고......"

로펜서 시장의 얼굴이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변했다.

"예? 아, 예? 예?"

그에 조용히 있던 내가 설명을 조금 더 보태 주었다.

"도시 외곽. 내가 손 좀 대도 괜찮겠나?"

* * *

나와 디아즈는 하루의 휴식을 취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오는 시각.

도시 외곽의 한 술집.

그곳에서 나와 디아즈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시장의 말로는, 조바튼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딱히 거물은 아니란 소리군."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아직 조바튼은 고유 스킬을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말은 곧 내가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 조바튼 놈을 찾기만 하면 되는데......

때마침, 적당한 길잡이들이 보였다.

딱 봐도 뒷골목에서 힘자랑 깨나 하고 다닐 것 같은 사내들이, 알아서 다가와 준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초행이시오? 길 안내 좀 해드릴까?"

"하하하! 그래. 이쪽 지리는 우리가 전문이거든. 거 수고비 조금만 챙겨 주면 돼."

한 놈은 아예 대놓고 주머니가 있는 쪽을 툭툭 건드렸다.

"이야! 두둑한데? 어디 도련님이신가? 근데 왜 경호도 달랑 하나만 달고 오셨대? 고맙게. 킥킥!"

나는 디아즈에게 가만히 눈짓을 보냈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퍽! 퍼퍽! 빠악!......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한 집 앞에 서 있었다.

사내들은 눈탱이와 코피가 다 터진 상태였고.

디아즈와 나는 여전히 멀끔한 모습인 채였다.

나는 턱짓으로 그 집의 문을 가리켰다.

"여기가 확실하지?"

"무, 물론입죠! 여기가 조바튼 놈이 사는 곳입니다요!"

존댓말까지 확실히 교육이 된 덕에,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거짓말이면, 너희 변사체가 된다."

"......!"

"허, 허억!"

나는 디아즈에게 명령을 내렸다.

"들어가지."

"예!"

디아즈의 발길질이 문을 날려버리고.

콰당탕탕!

나는 그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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