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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8화 (8/194)

8화. 원래......안 베어지는 거였지?

두근, 두근!

악마 놈들의 냄새를 느낀 그 순간부터, 분노가 피어올랐다.

짜증이 나고 전부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 감각은 심지어 두려움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타앗! 타앗!

나와 디아즈는 대화 없이 소음의 진원지를 향해 발을 굴렀다.

악마들의 지독한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 박동이 요란해졌다.

어느 순간,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전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한 님, 일단......"

디아즈가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물에 잠긴 듯 먹먹할 뿐.

하늘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불덩이가 보였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헬파이어 버스터다.'

저런 공격을 하는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최소 네임드 보스급은 되는 대형 크리쳐들만 저런 광범위 공격을 했으니까.

나는 달음질의 속도를 더 올렸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기사 진영이 무너지고 있던 와중이었다.

첫 번째 헬파이어가 방어진을 집어삼키고, 구울들이 그 틈새를 이용해 비집고 들어왔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나는 혀를 찼다.

적 군세에 헬파이어 버스터가 있으면, 저렇게 뭉치면 절대로 안 된다.

소규모 단위로 둥글게 뭉쳐서 각 팀이 서로를 지원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했다.

그게 안 되고 있는 스트라운 성기사들이었다.

게다가 그 와중에, 두 번째 헬파이어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퍼어엉......!

모두의 시선이 그 포물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절망의 그림자가 그들의 얼굴을 좀먹는다.

하인트 교구장을 향해 정확히 추락하는 헬파이어.

정신적 지주이자, 이 스트라운의 수장인 하인트 교구장이 죽는다면......

전투는 패배에 한 발 더 다가갈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하인트 교구장과의 거리는 약 10미터.

이를 악물었다.

이제 8미터.

새로이 받은 검을 뽑아들었다.

5미터.

헬파이어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3미터.

헬파이어가 하인트 교구장을 덮치는 찰나.

서걱!

나의 검이, 지옥의 불덩어리를 공간째 베어버렸다.

* * *

거대한 헬파이어는 정확히 두 동강이 나며, 나를 기준으로 좌우로 갈라졌다.

그에 근방에서 호시탐탐 날아들 기회를 노리던 구울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다.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어, 어라?......'

그때, 나는 이성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반쯤은 정신을 놓았던 것 같았다.

이 감각, 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칼라림이라고 했던가? 그 악마랑 싸울 때도 이랬는데......'

심장이 뛰고, 극도의 흥분 상태가 튀어나오는 상태.

마치 무아지경인 것처럼.

기억에도 없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분명 또렷하게 기억도 나고, 내가 싸웠다는 자각도 있었다.

순간순간 적의 공격에 반응한 것 역시 나였으니까.

다만 조금 흥분 상태가 되어, 행동이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갑작스레 날아들어 헬파이어를 찢어버리는 행동도 하게 된 것이고.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는, 할 수 있다, 없다를 결정짓는 판단이 재빠르게 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판단력도 올라가고, 반응 속도도 더 상승하니까 나쁜 건 아닌데......조금 컨트롤 할 필요는 있겠네.'

내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문득 주변이 심하게 고요해진 것을 느꼈다.

조금전 처럼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서 고요해진 게 아니라, 실제로 고요해진 것 같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반쯤 입을 벌린 성기사들이 보였다.

'엥?'

나는 그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하인트 교구장이 먼저 알려주었다.

"로, 로한 경......지금 헬파이어를.......베, 베어낸 거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헬파이어가 원래......안 베어지는 거였지?'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흥분 상태에서의 판단력이 정확했으니 문제는 없었지만, 원래 마법을 베는 일 따위는 원작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우 씨. 까딱하면 뒤질 뻔했네......'

나도 이제서야 놀라고 있는데, 무슨 대답을 하겠나.

그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내리는 본능적 판단은, 믿을만하다는 확신이었다.

현대 문명에서 살던 때에는 전투를 경험할 일이 전혀 없었다.

전투는 커녕 싸움도 피해 다녔는데.

때문에 원래의 나는 지금과 같은 실전에 관해서는 경험이 전무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내게, 지금 이 몸이 가진 본능적 판단력은 내게 큰 무기로 다가왔다.

순간 순간 어떻게 행동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날카로운 판단력과 더불어, 예민한 제3의 눈 고유 스킬까지 더해지니.

"로한 경! 뒤, 뒤! 뒤를......!"

"캬아아악!"

샤악.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덤벼드는 구울도, 마치 정면에서 뻔히 보고 있던 공격을 피하는 것처럼 가뿐했다.

아예 반응 못 할 속도가 아니라면 나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이런 것도 가능했다.

여전히 하인트 교구장을 향해 시선을 둔 채로 팔을 휘둘렀다.

"켁!"

구울은 두부 썰리듯 일말의 저항도 없이 동강 났다.

* * *

처음 몬테드가 로한을 데려왔을 때.

하인트 교구장은 사실 탐탁지 않았었다.

'딱히 뭔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그는 꽤 오랜 세월 세상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악마와 싸워 온 사람이었다.

악마에 홀린 빙의자와도 싸워봤고.

악마 숭배자나 악귀와도 전투를 치러 보았었다.

그래서 나름 사람 보는 눈은 꽤나 정확한 편에 든다고 스스로도 자신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로한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질 않았다.

물론 높은 경지에 닿은 기사들은 가끔 그 경지조차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고요하다고는 하지만......

'이 친구가 그만한 연륜이 있어 보이지는 않고. 가우론 님께서는 성장 가능성을 본 것일까?'

당장 무언가 보이지 않으니, 미래를 기대한 것이리라.

때문에 하인트 교구장으로서는 흥미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가우론의 절대적 지지를 막을 수는 없었기에 믿어본 것일 뿐.

한데 지금.

하인트 교구장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가우론의 눈이 대단하다는 것도.

'내 감각을 뛰어넘는 이였구나. 아직 젊어 보이는데도 저런 경지라니. 한편으로는 두려울 정도로다.'

헬파이어를 일격에 가르는 것은 물론이요.

시선조차 두지 않고 구울들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었다.

그리고 깔끔한 참격까지.

촤자자자작!

가볍게 한 번 긋는 것 같은데, 대여섯 가량의 구울이 일순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평생을 악마와 전쟁을 치러온 자신조차 성검의 힘을 빌려, 전력으로 겨우 서너 마리 정도 벨 뿐이었는데.

살덩이를 벤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악마의 힘이 깃들어 죽지 않고 날뛰는 놈들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로한은 어떠한가.

마치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세상 이보다 듬직할 수 없구나!'

하인트 교구장은 지금 이 순간, 교단 최고 정예부대조차 부럽지 않았다.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다시 진두지휘를 시작하였다.

"무너진 곳은 내가 갈 것입니다! 동요하지 말고 지금 위치들을 지키세요!"

그는 검에 빛을 실은 채, 가장 큰 균열이 생긴 대열에 합류했다.

"케에에엑!"

"캬악! 캬악!"

하인트 교구장이 가까이 다가오자, 밀어붙이던 구울들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밀고 들어오는 후방의 구울들이 여전히 진군을 했고.

결국 앞선에 있는 구울들은 빛에 타들어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비집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

하인트 교구장과 몬테드는 물러서지 않기 위해 전력을 퍼부었다.

"몬테드 경. 좀 버틸만합니까?"

"교구장님이야말로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연세도 있으신데."

"하하. 몬테드 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한테 목검 한 번 못 맞췄는데 말이죠."

"그거 벌써 30년 전입니다!"

둘은 잡담을 나누면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하인트 교구장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그리고 몬테드가 왜 일곱 기사와 맞먹는다는 평을 받고, 또 가우론의 부관이 될 수 있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둘의 위용이 여실히 뽐내지고 있었다.

하인트 교구장의 검이 섬광과 함께 휘둘러지며 다섯의 구울이 한 번에 베어졌다.

피와 살점이 칼날에 들러붙을 텐데도, 그의 검은 거침이 없었다.

중간중간 구울들이 아래와 머리 위로 기습을 감행했다.

하나 그것은 또 몬테드에 의해 막혔다.

그야말로 철의 벽이 세워진 것만 같았다.

덕분에 성기사들은 다시 기세를 되찾고, 하인트 교구장을 중심으로 전선을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베테랑인 고위 성기사들이 세세히 병력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더 따라붙어라!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버텨라!"

"방패 하단으로 기어오는 놈들 하나도 놓치지 마라!"

"방패병들 지켜! 뭣들 하나? 어? 빨리빨리 움직여! 내가 그렇게 게으르라고 가르쳤나!"

물론 그 모든 진격의 중심에는, 로한이 있었다.

고위 성기사들 자신들도 겁이 났지만, 최대한 그것을 삭히며 휘하 성기사들을 다독였다.

때로는 고함으로, 때로는 격려로서.

그렇게, 여명의 전투는 절정에 치달았다.

* * *

'컨트롤 하자. 컨트롤......!'

나는 이번 기회에 격분 상태를 내 의지대로 조절해낼 작정이었다.

악마를 보면 눈이 돌아가는 이 상태로 계속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의식을 하고 집중을 하니 의외로 쉽게 컨트롤이 가능했다.

'생각보다 쉬운데?'

그게 가능해지니, 전투는 매우 수월했다.

구울은 머릿수가 많아서 그렇지, 앤드류처럼 압도적으로 빠르진 않았다.

지금 내 정도만 되어도 반응 자체는 가능했다.

거기에 판단력으로 인한 전투 센스와, 새로운 고유 스킬인 제3의 눈이 더해지니.

감히 이곳에서 내게 해를 끼칠만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체력만 조금 관리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냉철해진 판단력은 체력 조절까지도 할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나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보니, 전황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있었다.

촤아악!

내 참격에 구울들의 머리가 하늘로 떠올랐다.

상당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악마는 베어야 제맛이지!

입가로 슬슬 미소가 기어 올라왔다.

'후우. 진정! 진정!'

그렇게 스스로를 단련하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헬파이어 버스터의 대가리 꼭대기에 서 있었다.

'나름 참았으니까......마무리 일격쯤은 화려해도 괜찮잖아?'

타닷!

나는 헬파이어 버스터를 정수리부터 세로로 길게 내리그었다.

쩌억......쿠웅!......

좌우로 쪼개어지며 쓰러지자, 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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