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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사기캐로 살아가는 법-6화 (6/194)

6화. 날 찾아오겠노라고

"교구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몬테드 경. 들어오세요."

"예."

몬테드는 이 스트라운 교구의 교구장인, 하인트 주교에게 예를 갖추고 안으로 들어섰다.

"자자. 앉아요, 앉아."

완전히 하얗게 센 머리에, 인자한 얼굴을 한 하인트 교구장은 몬테드를 반겼다.

"그래. 이제 정식 임명식도 끝났는데, 부관 선별은 잘 마무리 되었고?"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앤드류가 갑자기 끼어든 탓에 일이 조금 늘어졌습니다."

"그 친구도, 참."

"교구장님께서......알려 주신 겁니까?"

몬테드는 조심스레 물어왔다.

앤드류에게는 아직 로한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런데 그리 딱 맞춰 알고 나타난 걸 보면, 경우의 수는 몇 가지 없었다.

하인트 교구장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 아이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직접 봐야지 수긍을 하는 타입이니까. 그리고 제가 보기엔 어차피 알게 만들 생각이었던 걸로 보이던데요?"

"......"

"몬테드 경도, 너무 그리 모질게만 하지는 마시길. 경이 거둬들이고 키운 아이지 않습니까. 동등하게 대해주지는 못할망정 너무 모진 것 아닙니까? 말투도 꼬박꼬박 존대하면서."

"그 아이는 예전부터 워낙에 출중했습니다. 특히 검술에 한해서는 자신만의 경지를 쌓아가는 수준이지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곱 기사단에 들어간 것 아니겠습니까?"

"해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벽을 느껴야 고개를 숙이는 법을 배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몬테드를 보며 하인트 교구장이 허허 웃었다.

"우리 몬테드 경은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해서 디아즈를 로한 경의 부관으로 추천한 겁니까? 디아즈라면 앤드류가 나서서 로한 경과 부딪힐 테니까요."

몬테드는 잠시 고민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교구장님 앞에서 거짓을 말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로한 경이라면, 앤드류에게도 벽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판단하긴 했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요. 보고서에 따르면 칼라림을 단칼에 베어버렸다던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살기를 뛰어넘은 영역에 이미 발을 디딘 듯했습니다. 저조차도 전혀 살기를 느끼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몬테드 경이 이리 칭찬을 하다니. 놀랍군요. 몬테드 경의 실력이야, 일곱 기사에게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니까요."

"아닙니다."

몬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 하인트 교구장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요? 본인이 일곱 기사단의 기사가 아닌, 교단의 성기사로 남고 싶어서, 가우론 님의 부관이 되고 싶다고 해서, 들어준 것뿐이지. 실력으로는 다른 일곱 기사에게도 밀리지 않잖아요."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하하. 불편하다면 이쯤 하지요. 이야기가 잠깐 셌네요. 해서, 우리 몬테드 경이 보기에도 로한 경은 확실한 인재로 보인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가우론 님께서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로한 경이 먼저 일곱 기사단에 들어오겠다 말씀은 하셨지만, 제 눈에는 오히려 가우론 님께서 도움을 청하신 걸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로한 경은 그걸 받아준 겁니다."

"이것 참......들으면서도 쉬이 믿긴 힘드네요. 하지만 나도 본 게 있으니."

"예?"

몬테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하인트 교구장과 로한은 임명식 말고는 접점이 전혀 없었다.

그에 하인트 교구장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임명식에서 본 걸 말하는 겁니다."

하인트 교구장은 몬테드의 표정을 정확히 간파하고는 대답했다.

그는 이렇듯 사람의 속내를 매섭게 읽어내어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권능이 아니라 원래 그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

"임명식에서 그의 앞에 세 개의 권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그러면 고민을 하지요. 무엇을 골라야 자신에게 이득이 올까."

"예. 다들 그러지 않습니까. 권능의 돌이 부족한 경우만 빼면 세 개를 보여주고 선택권을 주는 게 관례이니 말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로. 때문에 신중해지고."

"그렇지요. 한 번 취한 능력은, 다시는 떼어 낼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으니까요."

"한데 거기서 무엇을 보신 겁니까?"

하인트 교구장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로한 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었습니다."

"그게 이상한 겁니까? 어차피 고르기 전까지는 어떤 권능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고민해도 별 소용 없다는 걸 깨닫고 선택한 게 아닐는지요."

"음.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만, 로한 경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뭐랄까. 확신이 있었달까......하하. 물론 이 늙은이의 느낌에 불과하지만요."

하인트 교구장이 웃어넘겼다.

그러나 몬테드는 그 말을 쉬이 넘길 수 없었다.

그가 누구던가.

과거 하인트 교구장은, 아무 권능 없이도 군중 속 악마를 한눈에 찾아내는 이단 심문관이었다.

그런 그가 이 정도까지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대충 넘길 일은 아니라는 소리로군.'

하인트 교구장은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로한이 일말의 의심도 없이 뻗어 쥔 그 권능의 돌은......다른 누구도 아닌 가우론이 직접 구해온 물건이었다.

어떤 권능인지는 몰라도......

하인트 교구장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한 번 그의 감각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지네요."

* * *

임명식이 끝나고.

산 속에 위치한 스트라운 수도원에는 빠르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나는 내 방에 혼자 틀어박힌 채,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쿡, 쿡쿡, 쿱!"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이, 차마 감추기 힘들었다.

아마 누군가 이걸 봤다면 미친놈이라고 했겠지.

그럼에도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새로 얻은 고유 스킬 때문이었다.

[제3의 눈]

첫 번째는, 진짜로 두 개 이상의 고유 스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긴가민가했던 예상이 딱 들어맞았을 때.

그 쾌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역시 이 고유 스킬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이었다.

하인트 교구장이 건넨 상자에서, 이 주황빛 돌이 나올 때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단박에 알아본 까닭이었다.

'하필 여기서 마주할 줄이야.'

내가 주저 없이 이 권능의 돌을 고른 이유.

그것은 이미 원작 데이터베이스를 전부 본 까닭이었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다.

이게 제3의 눈이라는 걸.

나머지 두 고유 스킬 역시 그 특정적 모양을 통해 알아보았다.

둘 다 딱히 그저 그런 고유 스킬이었다.

'그 모양이면 확실하지. 특정 동물 특성. 아마 색깔로 봤을 땐, 개랑 닭이었어.'

고유 스킬이라고 해서 다 특출난 것은 아니었다.

개의 특성인 예민한 후각 권능과, 닭의 특성인 날카로운 발톱의 권능.

파오갓에서 공식적으로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끼리는 고유 스킬의 등급을 나누곤 했었다.

그리고 그 두 동물 고유 스킬은 최하급에 속하는 능력이었다.

해서 나는 결정에 시간을 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앞의 두 고유 스킬과 달리 제3의 눈 능력은, 일곱 기사단의 일인인 디몬이라는 자가 가진 고유 스킬이었다.

그 역시 이 고유 스킬로 네임드에 오른 캐릭터였는데.

원작에서는 굉장히 예민한 감각을 활용해 회피율을 올리는 고유 스킬로 표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설명은 조금 더 대단했다.

'제3의 눈을 통해 새로운 육감을 가지게 됩니다. 라고 분명히 그랬지.'

디몬은 그 악랄한 회피율 때문에 여러 게이머들을 고생하게 만든 악당이었다.

무슨 복수심 때문에 악마의 편으로 돌아서서 플레이어와 적대적 관계를 가지는 녀석이었는데.

제3의 눈이 가진 회피율 탓에 공격의 절반은 미스가 떠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고유 스킬을 얻고 나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되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영화에서 본 거미 인간이었다.

공격이 날아오기 직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날이 선 센스를 가진.

실제로 이렇게 어두운 밤인데도, 신경을 집중하면 작은 산짐승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 민감함이라면 일단 생존 확률이 조금은 더 올라가겠는데?'

보고 바로 피하는 건 힘들지만, 날아오기 전에 어느 정도라도 미리 반응이 가능하다면.

지금 내 반사 신경으로도 나름 회피율이 올라갈 터였다.

'피할 수 없는 건, 공간 베기로 잘라서 막아버리는 걸로 하고.'

나는 그 후로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전략을 세워보았다.

머릿속으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하나의 고유 스킬이 더 늘어나니, 이렇게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을 그제서야 느낀 나였다.

그리고 나니, 이제 다음 고유 스킬에 대한 계획을 짜야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역시 그 지하의 신전부터 살펴봐야겠지.'

나는 털썩 드러누우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슬슬 잠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 꽤나 피곤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쉽게 잠들 수 없을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내 방의 문 앞에서 뚝 하고 멈추었다.

아마 제3의 눈이 아니었다면 놓쳤으리라.

본의 아니게 성능 확실하네,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상대는 문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계속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상대가 노크를 할까 말까 주춤거리는 사이, 내가 먼저 나서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곳에는 디아즈가 서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헙!"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가?"

"아, 알고 계셨습니까?"

"문 앞에서 빙빙 돌 때부터."

"......여,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들켰다는 것에 창피했는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 * *

문을 열자 찬바람이 볼을 스쳤다.

산속이라 그런지 해가 지면 금세 바람이 차가워졌다.

문을 열어 준 나는, 눈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

"할 말이 길어 보이는데, 들어오지?"

"아, 예.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디아즈는 조심스럽게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무 의자나 앉아."

"예."

그녀가 적당한 의자를 골라서 착석하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를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지?"

사실 대충 예상은 되었다.

그녀가 궁금해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먼저 던져 놓은 그 한마디 때문이리라.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시는지......"

예상이 들어맞았다.

그 외에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없었으니까.

나는 머릿속에 있는 디아즈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꺼내었다.

꽤 오래전이라 가물가물 하기는 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끌어 보았다.

"내 부관이 되면 알려주겠다고 했을 텐데?"

"......"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단을 내린 눈빛으로.

"부관, 하겠습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십시오."

그녀가 결단을 내리는 사이, 나 역시 대답할 준비를 마쳐 두었다.

"13년 전. 약속을 지키러 왔다."

"13년......전이라고요?"

디아즈의 얼굴이 더욱더 물음표로 가득 찼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이제 20살에 막 들어선, 어린 나이였다.

13년 전이라고 하면 고작해야 7살.

그 때의 약속이라니.

하나 나는 확신했다.

그녀가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확신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녀의 얼굴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13년 전.

항상 눈이 내리는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

상페트.

그곳에는 악마들이 들이닥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하얀 눈은, 피로 붉게 변하고.

마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생지옥을 경험한다.

처참한 도륙은 곧 모든 생명을 시들게 만들었으니.

그때 도끼 한 자루를 쥐고, 마을에 당도한 외지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디아즈를 처음 보게 되었다.

데모 버전에서 그 마을의 소녀를 구한 플레이어로서.

"강한 성기사가 되어서, 날 찾아오겠노라고."

[강한 성기사가 되어서, 아저씨를 찾아갈게요!]

나는 그녀가 내뱉었던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디아즈는 내 얼굴에서 당시의 자신을 겹쳐본 듯 했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꽉 막힌 목소리로.

"서, 설마 그, 그때 그분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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