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도 장담은 못해
챙그랑......!
나는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유유히 방을 빠져나왔다.
뚜벅, 뚜벅.
가슴이 벌렁벌렁 대는 게, 저승 구경 한번 하고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직선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니었다면, 다리가 진작 풀렸으리라.
'나는 괜찮다......나는 괜찮다!'
칼날이 눈동자 앞에 왔다 갔다 했는데, 겁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겠나?
나는 전력을 다해 자기 최면에 집중을 했다.
다행히 조금은 효과가 있는듯하였다.
손끝의 떨림이 잦아드는 걸 보니.
하지만 아직 긴장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앤드류가 혹시나 뒤로 쫓아오지는 않을까 싶었던 탓이었다.
'설마, 엄청 귀한 칼은......아니었겠지?'
일단 저지르기는 했는데, 걱정이 뒤따랐다.
괜히 성질만 돋워서, 날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뒤를 향해 귀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내 등 뒤로 발걸음 소리가 따라붙는지, 아닌지.
'이, 일단 진짜 위험해지면 몬테드가 도와줄 테니까. 아, 아마도......'
그렇게 잔뜩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유일한 안식처인 내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스럽게도 앤드류가 쫓아와서 날뛰는 일은 없었다.
문을 닫자마자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가슴을 쓸었다.
"하......살 떨려서 못살겠네. 빨리 고유 스킬만 얻고 떠야지."
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눈을 감았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 * *
로한이 사라진 후.
방은 정적에 잠겼다.
성기사들은 물론이요, 앤드류와 몬테드도 최대한 표정을 숨겼지만, 놀라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앤드류는 멍하니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전의 상황을 천천히 복기하였다.
'마치 내가 멈출 거란 걸 완전히 예상이라도 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 한 놈이 아니라, 진짜......라는 건가?'
마치 초월한 자의 모습으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빤히 자신을 지켜보던 그 눈동자.
그것이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로한과 자신의 키는 비슷했지만, 분명 그 눈은 높은 곳의 존재가 내려다보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앤드류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와우. 이번에는 정말 물건을 데려오셨네요."
앤드류가 재미있다는 듯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하지만 몬테드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경솔했습니다."
"뭐, 벨 생각도 없었고.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진짜 베었더라도 피했을걸요?"
"아니. 그 뜻이 아닙니다."
"예?"
"앤드류 경의 검이 닿지 못하는 건 당연했을 겁니다."
살짝 자존심에 금이 간 앤드류였다.
"최연소 일곱 기사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나이도 최연소이지만, 경험도, 그리고 실력도 아직 일곱 기사 중에 최소이지 않습니까. 항상 말씀드렸다시피 겸손을 놓으면 안 되는 법입니다."
"맞는 말이라도 잔소리가 되면, 삐뚤어질지도 몰라요."
"......"
"그래도 그런 평을 내린 이유는......있으신거죠? 몬테드 님이라면, 그저 입에 발린 소리를 하실 사람이 아닌데."
앤드류와 성기사들의 시선이 전부 몬테드에게 향했다.
몬테드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아직 로한 님의 깊이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가우론 님의 생각이 있으시겠거니 하는 것이지."
"그 대답은 좀 기운 빠지는......"
"하지만."
앤드류의 말을 몬테드가 끊었다.
그는 앤드류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로한 님께서, 조금 전 그 다 낡아빠진 단검으로 칼라림을 베는 것은 저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몬테드의 말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앤드류, 그리고 디아즈도.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온 까닭이었다.
선임 성기사 역시 놀랍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칼라림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 칼라림 말입니까?"
칼라림은 일곱 기사들 중 일인이었던 레아노아를 죽인 고위 악마가 아니던가.
기사단 최강의 검이라 불린 그 레아노아를......!
선임 성기사는 질문을 하면서도, 얼마 전까지 레아노아의 부관이었던 디아즈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디아즈가 저렇게 중상을 입은 이유.
그리고 그녀의 군주이자 친구였던 레아노아가 죽은 이유.
그 원흉이 바로 칼라림이었던 것이다.
디아즈는 굳은 표정으로 몬테드에게 질문했다.
"칼라림은......죽었습니까?"
"죽었다. 완전히. 일격에 끝이 났지."
"그렇......군요."
디아즈의 표정은 매우 복잡했다.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분한 것 같기도 했다.
이해는 갔다.
자신의 손으로 칼라림을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다는 것에 또 분했을 것이고.
앤드류의 머릿속에는 몬테드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울렸다.
'일격이라. 단 일격에. 레아노아를 죽인 악마를 일격에 보냈다라......'
그런 그를 보며, 몬테드가 말했다.
"과연 누가 칼라림을 그리 간단히 처치할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꼭 앤드류 경이 아니더라도, 다른 일곱 기사가 나섰더라도. 장담키는 힘들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절대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앤드류 경. 만일 그가 자비롭지 않았다면 그 칼 대신 목이 날아갔을 겁니다."
"......"
앤드류는 인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도대체 언제 제 검을 베었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했으니까요."
공간을 베어버렸기에, 앤드류는 검을 통해 아무런 감각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도 보지 못한 어느 순간에 로한이 단검을 휘둘렀다고 생각했다.
그 다 낡아빠진 단검으로, 자신의 검을......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호승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대련이라도 한 번 해달라고 졸라야겠네. 후후."
상상 이상으로 세상에는 숨겨진 괴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 * *
그날은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마음을 졸인 채 혹여나 누가 찾아올까 잠을 뒤척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녘의 어둠이 아직 채 걷히지 시각, 노크 소리가 잠을 깨웠다.
똑똑똑.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야생동물처럼.
아마 계속 긴장을 한 탓인 모양이었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서 몬테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디아즈도.
먼저 입을 연 것은 몬테드였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나쁘지 않더군."
"다행이군요. 식사,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그럼 함께 가시지요."
그렇게 나와 몬테드, 디아즈가 천천히 수도원을 걷기 시작했다.
"수도원의 아침은 조금 이르게 시작됩니다. 여명이 떠오르는 것을 매일 느끼며, 신의 축복을 감사하고 또 정진하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몬테드라는 사람을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분명 그냥 떠드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답답하네. 뭔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 거야?'
역시 궁금한 게 있을 땐......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게 가장 빨랐다.
나는 걷던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러자 앞서 걷던 몬테드와 디아즈도 멈춰 섰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나의 그 말에, 몬테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이미 알아채셨습니까."
"서론이 길더군."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할 말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사?"
갑자기 무슨 감사?
감사 같은 거 받은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어제 자비를 베푸신 것에 대해 말입니다. 충분히 화를 내셨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정도 들으니 나도 이해가 되었다.
어제 앤드류와의 일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충분히 앤드류 정도는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블러핑을 해 본 건데, 제대로 먹혀든 듯했다.
"나도 화풀이 정도는 했으니. 없던 일로 하지."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앤드류 경에게 당부해두겠습니다."
제발 부탁이다.
두 번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확실히 못을 박아두었다.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나도 장담은 못해."
"물론입니다."
오해 스택이 내 예상보다도 더 잘 쌓인 모양이었다.
굉장히 만족스럽다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말씀드린 대로, 임명식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임명식이 끝나는 대로 권능의 돌도 전달될 것입니다."
"음."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속은 방방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드디어 새로운 고유 스킬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 * *
임명식은 꽤나 정석대로 진행되었다.
한 번만 맞춰 달라는 몬테드를 따라, 나는 전통대로 기사 임명을 받았다.
'후. 더럽게 힘드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동선도 맞춰주고, 양식도 맞춰주고......
그렇게 일련의 임명식이 끝이 나고.
나는 정식으로 일곱 기사단에 합류 한 기사가 되었다.
뭇 기사들이 존경해 마지 않고, 선망의 대상으로 꼽는 일곱 기사가.
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언제 줄 거냐......도대체 언제......'
나는 일곱 기사의 명예보다는 오로지 떡고물에 관심이 더 높았다.
기사야 임명되던 말던, 중요한 것은 고유 스킬이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권능의 돌 전달식이 시작되었다.
"주교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 소리에 나는 눈을 반짝였다.
임명식이 시작하기 전에, 몬테드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임명식이 끝난 후, 하인트 주교가 직접 권능의 돌을 들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스트라운 교구의 교구장인 하인트 주교가, 임명식 때와는 다른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겨우겨우 참으며 나는 그 앞에 섰다.
교구장은 손에 작은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자, 새로운 일곱 기사의 탄생을 기념하는바. 우리 스트라운 교구를 대표하여, 로한 경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합니다."
좌중들의 박수 소리가 수도원을 가득 채웠다.
교구장은 미소를 지으며 내 눈앞에서 상자를 열어주었다.
생각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앞에 펼쳐졌다.
상자 안에서 빛을 뿜는 세 개의 보석이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원하는 것을 하나 고르시게. 그것이 신의 뜻일지니."
하나가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갑자기 뽑기를 하라니.'
짧은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좋아!'
그리고 나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새로운 고유 스킬을 향해.
[고유 스킬 : 제3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