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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216 (215/215)

  기계신과 함께 216

  "내가 말했지? 그렇게 열 내다간 타코야끼 된다고."

  바다 위에 새까맣게 타버린 킹 크라켄이 둥둥 떠 있었다.

  탄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무결이 [슈퍼 트리슈라] 밖으로 나와 킹 크라켄의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녀석의 잘린 다리들 가운데 유일하게 멀쩡한 두 다리 중 하나로 걸어가, 거기에 손을 댔다.

  그러자 문어의 두 다리에서 하얗게 빛이 일며 장갑을 벗었다.

  [테베르크의 팔]이었다.

  무결은 그것을 [공간주머니] 속에 갈무리하고 다시 킹 크라켄을 내려 다봤다.

  킹 크라켄의 다른 부위들과는 달리 [테베르크의 팔]로 감싸고 있던 녀석의 두 다리는 새까맣게 탄 다른 곳들과는 달리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군."

  무결은 찝찝 입맛을 다시며 '대난투 던전 월드'를 열어 킹 크라켄을 집어넣었다.

  킹 크라켄 정도의 네임드 몬스터의 사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아이템의 소재로 연구할 수도 있었고, 지금처럼 모든 물자가 부족한 때에는 훌륭한 식량이 될 수도 있었다.

  -마무리했으면 빨리 와주게. 부상자들이 많거든.

  "아차, 알겠습니다."

  무결이 리 신쿤의 채근에 [슈퍼 트리슈라]로 되돌아왔다.

  후쿠오카가 가라앉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럼 최대한 신속하게 도쿄로 모시겠습니다. 모두 꽉 잡으십시오."

  철컹, 츠르륵.

  [슈퍼 트리슈라]의 형태가 순식간에 제트기의 형태로 변화했다. 그리고.

  파아앙-!!

  공기를 찢으며 일본에 남은 최대도시, 도쿄를 향해 날아갔다.

  * * * 무결은 후쿠오카에 일본의 헌터들을 내려주었다.

  "전 다시 한국으로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나?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었는데 아쉽군."

  이화정검가주 리 신쿤이 무결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아쉬우면 한번 놀러 오시든가요."

  무결이 씨익 웃으며 리 신쿤을 바라보았다.

  "알겠네. 조만간한번 시간 내보도록 하지."

  리 신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결은 그러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 했다.

  비록 인성이 바르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뛰어났던 시무라 켄지가 죽은 지금, 리 신쿤이 짊어진 책임은 더욱 늘어났다.

  그런 만큼 몸을 빼시간을 내기가 힘들 것이다.

  "아, 근데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여신의 심장]은 도대체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여신의 심장].

  그것은 막대한 에너지원으로서 이번 사건에서 후쿠오카를 지켜낸 일 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무결이 이것에 대해 묻는 이유는, 왠지 같은 에너지원인 [테베르크의 동력석]이 이에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뭐, 운이 좋았네."

  그렇게 시작된 리 신쿤의 말은 간단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신의 심장]은 얼마 전에 들어갔다 나온 재앙형 던전에서 획득했다고 한다.

  그때 죽을 위기를 넘기며 해치운 보스 몬스터가 뱉어냈다는데, 리 신쿤 자신도 갑자기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얻게 되어 당황했다는 얘기를 했다.

  '재앙형 던전을 완벽하게 클리어해야 에픽 등급 아이템이 나올까 말까 인데…… 리 신쿤, 전생보다도 더 강해졌나 보군.'

  무결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여신의 심장]을 생각했다.

  왠지 전투 중에 [슈퍼 트리슈라]가 평소보다 더한 출력을 냈다.

  처음에는 [슈퍼 트리슈라]와 부분 합체를 했던 [테베르크의 팔] 때문 인가 했다.

  하지만 슈리를 시켜 전투 로그를 분석하다 보니 그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슈리는 에너지 저장고인 [테베르크의 동력석]이 왠지 평소보다 더 활성화된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이화정검가주에게서 나온 에너지라고 했다.

  자세한 건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무결은 어쩌면 리 신쿤이 지닌 [여신의 심장]이, 봉인되어 있는 [테베르크의 동력석]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테베르크의 동력석]의 봉인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하지만 선뜻 그것을 달라 그러기가 뭐했다.

  [여신의 심장]은 이번에 킹 크라켄으로부터 후쿠오카를 보호하고, 킹 크라켄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물 중의 보물.

  함부로 보여달라 하기조차 조금 민망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 선물이네."

  리 신쿤이 뭔가를 툭 던져 줬다.

  무결이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들고 나서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결이 얼이 빠진 채 이화정검가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서 주먹만한 금빛 돌이, 심장이 뛰는 것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무결이 그렇게 원하던 [여신의 심장]이었던 것이다.

  "이걸 왜……?"

  "우리를 구해준 보답이네."

  이화정검가주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귀한 걸 이렇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무결이 그것을 이화정검가주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이화정검가주가 훌쩍 물러 나며 무결과 거리를 벌렸다.

  능력이 능력인지라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무결과 그의 거리가 백여 미터나 벌어졌다.

  [하하, 됐네. 그게 아무리 귀한 아이템이라 해도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의 목숨값으로는 굉장히 싼 편이지. 그리고…….]

  리 신쿤의 전음(傳音)이 무결의 귓가에 은밀히 울렸다.

  전음이란 먼 곳에서 기를 통해 당사자에게만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무공 사용자들만의 수법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의 원흉이 그 아이템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단 말이지.]

  그의 목소리에 씁쓸한 음성이 담겼다.

  [놈은 사건 내내 [여신의 심장]이 있는 곳을 주시하고 있었네. 그것을 보며 난 깨달았지. 이놈은 이걸 노리고 후쿠오카를 친 거구나.]

  "……."

  무결의 머릿속에 후쿠오카시의 도시방어결계에 들러붙어 있던 킹 크라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리 신쿤의 말대로라면, 아마 놈은 이 [여신의 심장]을 통해 유지되던 도시방어결계에서 [여신의 심장]의 에너지를 빨아먹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것을 바다 한가운데 던져 버렸을지도 모르네. 이번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것보다는 그 아이템을 포기하는 것이 맞을 테니까. 하지만 이놈의 욕심이 뭔지, 버리는 것도 쉽지가 않더군.]

  그의 음성에는 고뇌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이렇게 거리를 벌린 것도 다시 그것을 받고 싶어질 까봐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네가 그것을 원해줌으로써 고민을 덜었네. 자네에게 은혜도 갚고, 내 고민거리도 처리할 겸, 그것은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아마 자네라면 그것을 폭탄이 아닌 보물로서 우리 인류에 유리한 방향으로 써줄 것이라 생각하네. 뭐, 정 갖기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다가 바다에 던져 버려도 되네.]

  이화정검가주가 씨익 웃었다.

  '대단한 사람이군.'

  에픽 등급의 아이템은 괜히 에픽 등급이 아니다.

  비록 킹 크라켄이라는 재앙을 불러 들였다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신의 심장]의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도시방어결계를 강화함으로써 킹 크라켄을 비롯해 수많은 몬스터의 침입을 저지했고, 또 이화정검가주의 [화룡검]의 능력을 엄청나게 증폭시켰다.

  그것을 단지 '위협이 될 것 같다'는 것만으로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미련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한 결단이었다.

  "……가주의 기대에 실망하지 않게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도 킹 크라켄 같은 괴수의 습격을 받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 '킹 크라켄 같은 괴수의 습격'이 오히려 환영인 부분이었다.

  이화정검가주의 입장에서 '킹 크라켄 같은 괴수'라 함은 강력한 몬스터를 이르는 말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테베르크의 일부'를 가진 몬스터를 이르는 말이었다.

  '제발 좀 와라.'

  이제 팔다리를 모두 얻었으니 남은 파츠는 몸통과 머리.

  무결은 놈이 스스로 자신에게 찾아 와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 * * 무결이 한국으로 돌아간 이틀 후.

  일본 헌터 협회로부터 은하그룹으로 뜻밖의 공문이 도착했다.

  -정식 항의 서한

  "허, 참."

  항의 서한이 오기 전에 이미 미안 하다며 전화한 이화정검가주로부터 언질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물에 빠진 거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네."

  항의 서한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이랬다.

  -이번에 은하그룹 소속의 신무결이란 헌터가 후쿠오카에서 전투를 함에 있어서 은하그룹에서 제공한 기술로 만들어진 '배틀 아머'와 '배틀 크래프트'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헌터 협회는 '배틀 아머'와 '배틀 크래프트'에 은하그룹 소속의 헌터가 '배틀 아머'와 '배틀 크래프 트'를 임의로 조종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요구한다.

  은하그룹은 당장 신무결 헌터의 독단적인 기만행위와 우리의 기술적인 의문에 관해 해명하고, 그에 알맞은 배상을 하기 바란다.

  -하아, 미안하네. 일본 내에 아직 미친것들이 좀 많아서…….

  일본 헌터 협회는 시무라 켄지의 영향으로 아직 극단적인 극우세력이 많이 남아 있었다.

  권력을 잡기 시작한 리 신쿤이 점점 일본 헌협을 정화시키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분위기를 반전시키지는 못한 듯했다.

  "흐음, 하수 형, 어떡할까?"

  "큭큭, 이럴 거 모르고 그렇게 나서서 일본 애들 조종했냐?"

  은하수가 무결을 보며 낄낄거렸다. 무결도 그를 따라 피식 웃었다.

  "하긴, 이제는 들킬 때도 되긴 했지?"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의 의심은 맞았다.

  무결이 [디바이스 컨트롤]로 '배틀아머'와 '배틀 크래프트'를 조종했지만, '배틀 아머'와 '배틀 크래프트' 속에는 은밀하게 무결의 조종을 돕는 기술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미 은하그룹은 무결을 위한 기계들을 만듦에 있어서 [디바이스 컨트롤]과 [슈리]의 존재를 상정해서 만드는 만큼, 다른 기계들에도 비슷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은하그룹의 입으로 밝힐 필요는 없지."

  은하수가 느긋하게 머리에 깍지를 끼며 앉았다.

  다른 나라들에는 지금 일본의 항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은하그룹은 지금 세계 최고의 과학/마법적 기술력을 무료로 배포하다시피 하는, 전 세계의 존경과 경의를 받는 그룹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은하그룹에서 신무결이란 헌터를 파견해 일본을 구해주기까지 했는데, 오히려 의심만 가지고 은하그룹에 해명하라느니, 배상하라느니 하는 일본을 가리켜 '은혜도 모르는 족속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헌터 협회사이트에는 설령 일본의 말이 맞다 그래도 은하그룹에 일본이 뭐라 할 처지냐는 일본 국민들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은하그룹은 지금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인이었다.

  설령 은하그룹이 그런 자그마한 기술을 '배틀 아머' 등에 넣어놨다 해도 함부로 항의할 수 없을 만큼.

  무결이 일본의 항의 서한을 구겨서 휴지통으로 던져 버리며 말했다.

  "꼬우면……."

  그러며 피식 웃었다.

  "니들이 직접 만들든가."

  심기가 불편해진 무결은 당분간 일본은 안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덕에 불과 넉 달 후.

  일본의 오사카가 갑자기 일어난 재앙형 던전으로 인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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