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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208 [엘리자베스]의 조종석. (207/215)

  기계신과 함께 208 [엘리자베스]의 조종석.

  강하나는 반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막 안쪽으로 침투하려는 냉기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 막은 [엘리자베스]에 탑재된 탑승자 보호기술의 일부였다.

  은하그룹은 기간테스를 만들 당시 탑승자를 위해 수많은 안전장치를 설치해 두었다.

  그 도움으로 강하나는 얼음트롤의 피에 의해 곧바로 얼음동상으로 변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하그룹의 기술은 비단 안전장치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의 손을 꿰뚫은 얼음 트롤.

  놈은 당장에라도 [엘리자베스]를 끝장낼 것 같던 기세와는 달리, 이상할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그 이유는 어깨를 꿰뚫은 팔과, 놈의 반대쪽 손을 잡은 [엘리자베스]의 양손에 있었다.

  양손으로부터 엄청난 전류가 흘러 나오며 놈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특히 현재 [번개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한 강하나의 능력상, 전류의 힘은 더 강해진 상태.

  덕분에 본래라면 목표물을 모조리 태워버릴 만한 강력한 전류였으나…… 얼음트롤의 그 엄청난 재생력이 온몸의 세포가 타오르는 즉시 그것을 복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음트롤은 본래의 운동능력을 상실하고 [엘리자베스]의 어깨에 박아 넣은 팔에 자신의 능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강하나를 얼려 죽이기 위해.

  강하나와 얼음트롤은 어부지리(漁父之利)의 고사에 나오는 새와 조개 처럼 서로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승기는 얼음트롤에게로 더욱 기울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전격은 얼음트롤을 마비시키는데 그쳤지만, 얼음트롤의 얼음은 서서히 강하나를 지키는 배리어를 뚫고 스며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스스.

  콕핏 내부에서 강하나를 지켜주던 배리어의 겉면에 금이 가더니, 그 안쪽으로 하얀 얼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흐윽."

  강하나는 아직 피부에 직접 닿지도 않았건만,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엄청난 냉기에 신음을 흘렸다.

  번개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했기 때문에 다른 정령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소환 용량은 최상급 정령 하나를 부리는 게 최대였다.

  만약 지금 번개의 최상급 정령을 소환 해제한다면 얼음트롤의 손발이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되면 이 승부는 끝장이었다.

  그녀는 겉에서부터 하얗게 얼어붙어가는 몸을 보며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얼어붙은 신체 부위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다가, 점차 통증이 사라져 가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 증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았으니까.

  '세포가 동결로 인해 팽창하며 죽어가고 있어.'

  겨울에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것처럼, 세포 속의 물이 팽창해 터져 나 가며 괴사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20초, 아니, 15초 내에 죽을 거야.'

  온몸이 점차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여나가고 있었다.

  강하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마지막 수단을 전개해야 할 때였다.

  [정령화(精靈化)].

  그녀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육신이 반쯤 정령계에 걸쳐지며에 테르화된 것이다.

  그녀의 육신이 자신을 구속하던 물리법칙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대신 그녀 또한 물질계에 그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닌 마력이 급속도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령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마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그 이전에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얼음이 콕핏 안을 완전히 채워 버렸다.

  얼음 속에서 반투명하게 변한 그녀의 몸이 일렁였다.

  얼음에 파괴되어가던 그녀 몸 또한 정상을 되찾았다.

  그런데.

  '응?'

  의수와 의족이 떨어져 텅 비어버린 그녀의 오른팔과 왼다리에서, 간지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 * 쾅!!

  얼음트롤의 얼음에 어깨부터 시작해서 상체 전체가 얼어붙어가던 [엘리자베스]가, 돌연 발을 들어 올려 얼음트롤을 격하게 박차 뒤로 백 덤블링을 돌았다.

  [엘리자베스]는 상체의 대부분이 얼어붙은 상태에서도 마치 고양이가 지면을 딛는 것처럼 우아하게 지면에 착지했다.

  뭔가 이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움직임.

  그리고 그 직후.

  스스스- [엘리자베스]의 상체 전체를 감쌌던 얼음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크르륵."

  동시에 [엘리자베스]의 구속에서 벗어난 얼음트롤이 콧김을 뿜었다.

  괘씸하게도 자신을 묶어둔 저 땅강아지 같은 고철덩이에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놈은 흥분하지 않았다.

  놈은 저 멍청하고 다혈직적인 불꽃덩이 놈과는 달리, 자신을 차분하고 지적인 트롤로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해 이성을 앓고 상대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놈이 전투자세를 취했다.

  아까도 전투에서 자신에 밀렸던 저 고철덩이는 이제 어깨에 큰 손상까지 입었으니,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상대하면 충분히 승리 할 수 있었다.

  놈은 그렇게 생각했다.

  옳은 판단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펑- [엘리자베스]와 얼음트롤이 격돌했다.

  얼음트롤은 첫 격돌 직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상대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차원이 달랐다.

  뭔가 더욱 부드럽고 즉각적이었다. 그리고 더욱 강했다.

  게다가…….

  쾅! 쾅!!

  놈과 체술로 격돌할 때마다, 왠지 자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왠지 점차 자신이 밀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얼음트롤은 '얼음의힘'을 더욱 집중해 저 고철덩이를 타격하는데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쾅, 쾅--!!

  더욱 강해진 고철덩이의 반격이었다.

  "크르르!"

  쾅, 쾅.

  녀석의 몸 곳곳이 [엘리자베스]의 무자비한 주먹질에 의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놈은 흐르는 자신의 피를 조종했다.

  새파란 피가 허공을 날아 [엘리자베스]의 몸체에 흩뿌려졌다.

  동시에 얼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를 통째로 얼려 버리려는 놈의 시도였다.

  하지만- 얼음은 마치 [엘리자베스]의 몸에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럴수록…….

  스스슥.

  [엘리자베스]의 어깨에 나 있던 구멍 또한 사라져 갔다.

  "크르륵..!"

  놈은 깨달았다.

  저놈이 자신의 힘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한참은 늦은 깨달음이었다.

  [정령검 생성].

  스스슥- 아무 무기도 들고 있지 않던 [엘리자베스]의 손에, 얼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손잡이에 이어 아름답고 날렵한 검신이 생성 되었다.

  날렵한 동체의 [엘리자베스]에 어울리는 날렵하고 긴 검신평소 강하나가 애용하던 검을 본뜬 모양의 검이, [엘리자베스]에 맞는 크기로 생성되었다.

  [엘리자베스]가 기수식을 취했다.

  얼음트롤은 모르겠지만, 강하나가 상대에게 돌격하기 전에 취하곤 하던 기수식.

  얼음트롤은 왠지 모를 위기감에 온 힘을 끌어모아 자신의 앞에 얼음으로 된 장벽을 세웠다.

  쿠음!

  그와 동시에 [엘리자베스]가 땅을 박찼다.

  그리고.

  파앗- 얼음의 장벽을 마치 공기처럼 통과 해- 카악- 얼음트롤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얼음트롤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 * * 다른 한쪽도 거의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야, 저 새끼 도망치려 그런다!"

  "포위조, 막아!!"

  불꽃트롤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서울시 밖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헌터들이 그런 녀석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녀석이 도망쳤다가 힘을 회복해서 오기라도 하면 곤란하기도 했고, 더욱 큰 이유는 이제까지 놈이 신나게 죽여댄 사람들의 시신이 채 아직 식기도 전이었기 때문이다.

  "크오오오!"

  녀석이 자신의 피를 흩뿌려 헌터들을 불태워 버리려 했다.

  그러나- 두둥실.

  녀석의 용암보다 뜨거운 핏물은 헌터들에게 날아가다 그 속도가 늦춰 지더니, 다른 한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뒷짐을 지고 선 어스 펭귄이 있었다.

  "끼잉!"

  어스 펭귄은 날아든 불꽃과 녀석의 뜨거운 피를 흡수했다.

  녀석의 이마로.

  자세히 보면 녀석의 이마에는 아주 작은 붉은 보석이 달려 있었다.

  불꽃과 핏물이 그곳으로 휘몰아치며 들어갔다.

  어스 펭귄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사람처럼 포만감에 미소 지었다.

  "끼잉!"

  반면 불꽃트롤은 그런 어스 팽귄의 만행(?)에 분노했다.

  하지만 아까 전에도 어스 팽귄에게 달려들다가 녀석의 주위를 지키는 헌터들에게 호된 꼴을 당했기 때문에 녀석에게는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이다!"

  헌터들이 불꽃트롤이 주춤한 틈에 놈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놈에게는 상처가 더욱 늘어갔다.

  "그오오오!"

  녀석이 다시 한번 포효하며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

  불꽃들이 요동치며 놈에게로 몰려들려 했다. 그러나 또 다시.

  화르르- 모든 불꽃이 어스 팽귄에게로 흡수 되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불꽃트롤은 잘리고 터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

  화염 장악력이 불꽃트롤보다 훨씬 뛰어난 대마수의 등장으로 인해, 불꽃트롤은 손발이 묶여 버렸다.

  결국 놈은, 어스 팽귄과 연계한 헌터들의 계속된 맹공에 스러져 갔다.

  "쿠오오오!"

  쿵!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녀석이,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 죽였다."

  "서울도 어떻게 되는 줄 알았네."

  "살았다……."

  다시 한번 고비를 넘기게 된 데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헌터들도 있었고.

  "흐흑, 동현아……."

  "주영아!! 엉엉."

  동료를 잃은 슬픔을 참아오다 마침 내 슬픔을 터뜨린 헌터들도 있었다.

  다들이 길고도 위험한 몬스터와의 싸움이 힘들었지만, 몬스터와의 싸움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이미 사방이 몬스터 천지인 지금, 놈들과의 투쟁을 그만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선택한다는 말과도 같았기에.

  "그나저나 저 팽귄은 도대체 뭐야?"

  "그러게. 우리를 도운 것을 보니 단순한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누가 테이밍한 몬스터인가?"

  "한서후랑 의사소통하는 것 같던데, 혹시 한서후가 테이밍한 건가?"

  "한서후는 무공 능력자 아니었어?"

  그나마 조금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번 소동에서 대활약한 작은 몬스터를 향해 시선을 집중 했다.

  '관찰' 계열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러 어스 펭귄에게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

  그렇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후우웅…….

  비행체 한 기가 날아와, 어스 팽귄과 한서후의 근처에 내려섰다.

  키잉- 비행기의 콕핏이 열리고, 그곳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다 끝나서 와서 미안합니다."

  무결이었다.

  그는 좌석에 앉아 정신을 잃은 강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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