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206 쾅!! (205/215)

  기계신과 함께 206 쾅!!

  "큭."

  강하나가 눈앞에서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피해 물러서다 비틀거렸다.

  왼다리 의족이 강하나의 의도보다 아주 미세하게 늦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끼에 이어 날아드는 주먹은 막아낼 수 없었다.

  강하나가 오른손의 검을 들어 올려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주먹을 받아냈다.

  그녀의 머리보다 큰 거대한 주먹이었다.

  쾅!!

  "으윽."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울렸지만, 그녀는 이를 질끈 물고 신음을 삼켰다.

  눈앞의 몬스터 '트롤 버서커'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도끼와 주먹을 번갈아 내려쳤다.

  광! 쾅! 쾅! 쾅!

  그 광폭하고 무자비한 도끼질에 그녀의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아니, 무리가 오기 시작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몸이 아니었다.

  삐걱.

  오른팔을 대신해 자리한 의수.

  본래라면 오른팔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할 그녀의 의수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삐걱삐걱.

  의수와 그녀의 몸을 연결한 연결부의 결합이 점차 어긋나고 있었던 것이다.

  트롤 또한 완전히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놈의 주먹은 강하나가 칼로 막아설 때마다 깊은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재생'의 상징인 트롤이란 이름을 단 몬스터답게 놈의 주먹이 다시 강하나에게 이를 때면 주먹은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다.

  이미 강하나에 의해 팔이 몇 번이 나 잘렸다가 재생한 놈에게 주먹의 생채기를 재생시키는 것쯤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쾅쾅쾅!!

  트롤 버서커는 그렇게 도끼와 주먹을 이용해 강하나를 몰아쳐 갔다.

  끼긱, 끼긱- 놈의 폭풍 같은 공격에 점차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어긋나던 그녀의 의수는, 결국…….

  쾅!!

  그녀의 팔에서 완전히 떨어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의수가 쥐고 있던 검과 함께.

  "크오오오오!"

  횡- 강하나의 앞을 막는 것이 사라지자 마자 트롤 버서커가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머리에 수직으로 도끼를 내려쳐 갔다.

  제대로 반응하지 않으면 몸이 두 쪽 날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강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떨어져 내리는 도끼를 바라볼 뿐이었다.

  산책을 나온 듯한 평온한 눈으로.

  그 순간.

  도끼가 그녀의 이마 한 치 앞에서 멈추었다.

  "그오오오-"

  트롤 버서커는 갑자기 양처럼 순해져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더니 뒤로 돌아, 저벅저벅 걸어갔다.

  위잉- 트롤이 향하는 방향으로 문 하나가 열렸다.

  트롤 버서커는 열린 문 안으로 사라졌다.

  -재활 테스트 레벨 61에 실패하셨습니다.

  짧은 안내 메시지와 함께 재활훈련이 끝났다.

  이번에도 레벨 61을 돌파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재활훈련의 완전성공단계는 레벨100.

  61이라면 그녀의 예전 전력의 반 조차 되지 않는 단계였다.

  위잉- 사방이 밀폐되어 있던 재활훈련실에, 트롤이 퇴장할 때처럼 새로운문이 열렸다.

  "강하나 헌터님."

  재활훈련을 도와주는 의사가 그 문으로 들어섰다.

  의사는 날아간 팔을 보며 말없이 서 있는 강하나를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녀의 팔을 주워와 다시 연결해 주었다.

  "아시다시피 재활훈련실의 몬스터는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습니다. 혹시 사고가 날지도 모르니, 다음부터는 재활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방심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회피에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하나가 자신에게 걱정 어린 충고를 건네는 의사에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의사의 머릿속으로 트롤의 마지막 공격에 멈춰 섰던 방금 전의 강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녀의 모습은 마치…….

  "몸을 다 추스르시면 신체검사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저는 먼저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때의 상황을 언급하기보다 강하나의 미소에 마주 웃어주고는 재활훈련실을 나갔다.

  강하나는 물끄러미 자신의 의수를 쥐었다 폈다 해봤다.

  그러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트롤 버서커의 잘린 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자살하려는 걸로 보였을까?'

  방금 전의 자신의 모습이 의사에게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살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너는 팔이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구나.'

  그녀는 그저 그녀가 잘라내도 어느새 다시 재생해 있는 트롤의 팔이 부러워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 것 뿐이었다.

  아무리 몸이 이 지경이 되었다지만 그 정도 공격에는 죽지 않을 자신도 있었고.

  "후우, 가자."

  가만히 서 있자니 괜히 센티해지는 것만 같아 그녀는 서둘러 재활훈련실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위이잉- 사방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응? 침공 경보라고? 서울에?"

  몬스터들이 수시로 들이닥치는 최근에는 웬만한 몬스터 피습으로는 경보가 발동하지 않는다.

  경보가 울린다는 것은 도시 내로 몬스터가 침입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더욱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단번에 몬스터 웨이브가 어느 방향에서 일어났는지를 알아차렸다.

  "맙소사……."

  이변이 일어난 곳은 두 곳이었다.

  서울의 동쪽과 서쪽.

  저 멀리 동쪽 하늘은 붉은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막대한 화마(火魔)가 온 하늘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쪽 하늘은 평소보다 훨씬 쨍쨍하게 밝았다.

  대지가 은빛으로 얼어붙어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은하수였다.

  -강하나 씨! 큰일 났습니다. 지금 14등급 몬스터가 둘이나 나타났어요. 지금 무결이가 해외로 출장일 가 있거든요. 우리만으로 어떻게든 막아야 해요!

  "14등급이 둘이라니……."

  강하나가 아연실색했다.

  14등급 하나만 해도 온 도시의 헌터가 다 달려들어 막아야 하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둘이라니.

  "무결 씨한테 연락은 됐나요?"

  -무결이는 제가 방금 연락해 봤습니다만, 오는데 적어도 30분은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더 늦을 수도 있대요!

  '30분이면 너무 늦어.'

  한 놈은 헌터들이 달려들어 막아낼 수 있다 쳐도 그렇게 되면 나머지 한 놈은 노마크였다.

  그렇다고 반반씩 나눠 헌터들이 달려가자면 오히려 헌터들이 각개격파 당한다.

  어쩔 수 없이 저 두 곳 중 한 곳은 포기해야 했다.

  30분간 14등급 몬스터가 서울을 종횡무진 날뛴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현재 한국에는 단 세 개의 도시만이 남아 있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구.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 되어 있는 것은 단연 서울이었다.

  부산과 대구의 생존자들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인구가 서울한 곳으로 몰려들어, 안 그래도 인구밀도가 높던 곳이 던전시대보다 오히려 더 인구 밀도가 높아졌다.

  그런 서울에서 14등급 몬스터 한 놈이 날뛴다니…….

  -하나 씨,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은하수가 강하나에게 머뭇거리며 운을 떼었다.

  -아직 프로토타입이긴 하지만…… 강하나 씨의 기체가 완성되었거든요. 지금이야말로 강하나 씨가 나서 서 타주실 때 같습니다.

  은하수도 지금 강하나의 상태가 심히 불안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희망이었다.

  "제가……요?"

  강하나가 머뭇거렸다.

  최근의 재활 훈련도 지지부진하지 않았던가.

  '괜히 내가 나서서 실망만 안기는 것은 아닐까. 만들기 어려운 기체라 했는데 괜히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에 좌리를 틀었다.

  -강하나 씨.

  그때 그런 강하나의 마음을 알아첸 은하수가 말했다.

  -강하나 씨의 기체를 무결이 기체 다음으로 만들게 된 이유를 아십니까?

  "……뭔데요?"

  강하나도 그 점이 의아했던 차였다.

  다른 쟁쟁한 헌터도 많은데 왜 다음 로봇을 굳이 불구가 된 자신의 것으로 모델링한 것이란 말인가?

  -무결이가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들은 강하나의 몸이 흠칫 굳었다.

  "무결…… 씨가요?"

  -네, 그 녀석, 강하나 씨를 많이 믿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하나 씨라면 지금의 부 진도 언젠가 반드시 극복해 낼 거라고 했죠.

  "……."

  -지금이야말로 그런 하나 씨의 각오를 보여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하나 은하수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입을 뗐다.

  "……지금 당장 가죠."

  -네, 준비해 놓겠습니다.

  강하나가 은하그룹 본사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크르르륵!!"

  날뛰는 몬스터의 상처로부터 붉은 피가 떨어진다.

  용암보다 뜨거운 피가 흩뿌려지며 그에 닿는 모든 것에서 불의 꽃[炎花]을 피워 올렸다.

  뿐만 아니라 피가 닿은 부위는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렸다.

  불의 온도조차 능가하는 초고온의 피.

  놈에게 공격이 집중될수록 흩뿌려지는 놈의 피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었다.

  "화염 계열 능력자들! 1차 방어막 전개!"

  "얼음과 물 속성 능력자들은 2차 방어막 대기시켜 두세요!"

  "지금부로 관통이나 절삭공격은 배제합니다! 놈이 피를 흘리지 않게 해야 해요!"

  헌터들은 녀석의 혈액이 매우 위험한 물질임을 알아채고 되도록 피를 흘리지 않는 방향으로 공략법을 틀었다.

  그러나 놈은 자신의 장점을 활용할줄 아는 영악한 놈이었다.

  키가 20미터가량 되는 14등급 몬스터 '자이언트 파이어 트롤'이 자신의 손을 물어뜯었다.

  놈의 손에서 대량이 피가 터져 나왔다.

  "크르륵"

  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둘렀다.

  엄청난 양의 피가 헌터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화르륵.

  그 피가 어찌나 뜨거운지 피는 허공을 날아가며 불꽃을 피워 올렸다.

  "막아!!"

  헌터들이 깜짝 놀라며 준비해 놓은 방어막을 전개했지만…….

  "아악! 엄마!!"

  수 겹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피가 어떤 마법사의 몸에 닿았다.

  마법사는 그 피에 닿자마자 온몸이 불타오르며 죽어갔다.

  그 마법사뿐이 아니었다.

  많은 헌터가 자이언트 파이어 트롤의 손짓 한 번에 분사(鼓死)해 버렸다.

  어이없는 위력이었다.

  "크라아아아!!"

  놈이 포효를 터뜨렸다.

  그러자 사방의 열기가 다시 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놈의 손에 생겼던 상처가 재생되고 있었다.

  헌터들이 어느새 생채기 하나 없어 진 놈의 몸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크특."

  자이언트 파이어 트롤이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녀석의 주위에서 화염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지독하네."

  강하나가 화면으로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질끈 물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14등급 몬스터들은 자신이 방금 상대하던 종류인 '트롤'류였다.

  '트롤'류로 판정받은 녀석들은 재생력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그녀가 상대할 녀석 또한 마찬가지.

  "……."

  그녀의 상대는 불꽃트롤 녀석과 달리 조용한 녀석이었다.

  불꽃트롤과 마찬가지로 20미터 이르는 거대한 덩치.

  걸음걸음마다 풀썩 피어나는 극한의 냉기.

  '자이언트 아이스 트롤'이라 명명된 녀석의 주변은 불꽃트롤의 경우 와는 정반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만들어 낸 참상이었다.

  그중에는 새하얀 동상이 되어버린 헌터들도 있었다.

  그렇게 얼음동상이 되어버린 헌터들을 제외한 그 어떤 헌터도 놈의 주변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조리 불꽃트롤을 막으러 갔기 때문이다.

  날렵한 붉은빛 도장 기체가 놈의 앞에 내려앉았다.

  무결의 [트리슈라]보다 더 작지만 날렵해 보이는 강하나의 기체 [엘리자베스]였다.

  "후우,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엘리. '정령화 모드' 전개."

  ['정령화 모드' 전개합니다.]

  그녀의 [엘리자베스]의 관제인격 [엘리]가 그녀의 명령을 이행했다.

  붉은 도장의 기체가 반투명하게 변화했다.

  [108정령의 가호].

  그녀의 스킬이 발동하며, 그녀의 기체에 정령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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