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205 중국 상하이 인근의 한 유적지.
"제길."
무결이 유적지에 생성된 차원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슈리! 빨리!"
그는 게이트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재빨리 게이트로부터 멀어지며 슈리를 불렀다.
[[트리슈라]스카이러너 모드로 변형, 32초 후 도착 예정입니다.]
"으악!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무결이 최고속도로 게이트로부터 멀어져 나갔다.
그 순간.
파르르르르- 게이트로부터 수없이 많은 벌레 떼가 무결의 뒤를 이어 튀어나왔다.
새끼손톱만한 작은 벌레부터 사람 몸통보다 큰 벌레 등 다양한 형태의 벌레들.
끼르르르- 그리고 기괴한 소리를 내뿜으며, 집채만한 벌레들이 연이어 튀어나 오더니…….
파악!
그런 벌레들조차 티끌로 느껴지게 할 거대한 집게손이 게이트를 뚫고 튀어나왔다.
게이트 안에서도 느꼈지만, [트리슈라] 없이 저놈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무결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이유였다.
하지만.
벌레들은 게이트를 뚫고 나오자마자 무결을 쫓는 대신 사방으로 비산해 먹잇감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맑던 하늘이 검은 벌레구름으로 순식간에 물들어갔다.
"제길."
무결을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추어 세웠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상하이가 있었다.
아무리 결계가 상하이를 감싸고 있다지만 저놈들이 그 결계를 덮치면 결계가 무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결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디바이스 컨트롤].
그러자 그의 장갑이 새하얗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대한 전자기력의 흐름이 그의 통제하에 놓였다.
"흐읍."
무결이 양손을 들어 올리자, 엄청난 마력이 장갑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전자기력이 폭풍처럼 일어나 퍼져 나갔다.
그리고.
파파픽 반경 수백미터 땅의 건물과 땅에서 철골들이 솟아오르며 퍼져 나가던 벌레들을 가로막았다.
이곳이 유적지라고는 해도, 도심 한복판에 있던 유적지라 철골의 수가 모자라진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스스스- 벌레들은 철골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철골을 '파고들었'다.
철골들은 마치 두부라도 되는 양, 벌레가 파고들자 손쉽게 뚫려 버리며 그 형체를 잃어갔다.
저놈들의 이빨은 강철조차 울고 갈 금속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놈들은 몸의 일부가 기계화된 유전자변형 곤충들.
고대의 종족이 전투를 위해 생산해 냈던 곤충병기(昆蟲兵器)들이었던 것이다.
무결은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철골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끔찍한 놈들."
그리고 시동어를 외웠다.
[테라볼트 체인 라이트닝 리액션(Teravolt Chain Lightning Reaction)].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가 무결의 손을 통해 퍼져 나가며 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꽈르르르릉-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무결의 손에서 대규모 전기폭풍이 휘 몰아쳤다.
양손을 들어 올린 그의 손에서 마치 세계수의 나뭇가지처럼 하늘로 눈부시고 거대한 흰빛의 나뭇가지가 퍼져 나갔다.
나뭇가지는 벌레에서 철골, 철골에서 벌레, 그리고 벌레에서 벌레를 타고 이동하며 그에 닿는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그렇게 5초 정도가 지나고, 전하폭풍이 멈추었다.
파직파직- 벌레들이 까맣게 타오르며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게이트를 튀어나온 벌레들이 대부분 죽어 하늘이 다시 파란빛을 되찾았다.
그러나…….
파르르르르-- 벌레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얼마 안가 하늘은 다시 새까만 벌레 떼로 뒤덮였다.
어느새 벌레들의 왕도 그 거대한 몸집을 반이나 내놓고 있었다.
"이거, 모아놓은 에너지 다 쓰게 생겼구만."
무결이 혀를 차며 다시 한번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나 아까처럼 벌레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스킬은 아니었다.
[테라볼트 라이트닝 필드(Teravolt Chain Lightning Field)].
파직파직- 다시 한번 무결의 손을 타고 막대한 전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처럼 전하는 곤충들을 태워 버리는데 그 에너지를 쓰지는 않았다.
대신 넓은 공간 자체를 반구형으로 촘촘히 뒤덮어, 벌레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대한 전하결계(電荷結界)를 형성해 냈다.
파팍! 파파팍!
벌레들이, 마치 새파란 전격살충기에 닿아 타버리는 것처럼 전하결계에 닿아 타오르며 떨어져 내렸다.
무결이 품속에서 [테베르크의 동력석]을 꺼내 들었다.
전에 [테베르크의 발]을 사용한 후 모든 에너지가 동났던 [테베르크의 동력석].
하지만 거의 1년여 동안 사용하지 않고 다시 에너지를 모아온 덕에 또 다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차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까지의 이야기.
'베이징이 저 벌레 떼에 멸망하지 않게 하려면 어쩔 수 없지.'
무결이 아쉬운 혀를 차며 에너지가 급격하게 소모되어가는 [테베르크의 동력석]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에게 연락이 왔다.
-무결아, 큰일이야!
은하수였다.
"왜, 형? 무슨 일인데!?"
-서울이, 서울이……!
"서울이 뭐?"
-14급 몬스터 둘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가 갑자기 서울로 들이닥쳤어! 서울 도시방어결계와 방어벽이 순식간에 뚫렸어! 서울이 위험해!
"……뭐?!"
무결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14급 몬스터 둘이라면 반드시 무결이 있어야 막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 서울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타이밍 정말 거지같군. 지금 내가 이곳을 버리고 서울로 가버리면 상하이가 위험해. 상하이가 벌레 소굴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곳부터 마무리해야 해.'
이곳은 누가 뭐래도 무결 자신의 책임.
반드시 이곳부터 해결해야 했다.
"후우, 형, 미안. 나 지금 바로 갈 수는 없어. 조금만 버텨줘."
-알았어. 지금껏 준비해 놓은 게 있으니 네가 올 때까진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래, 강하나 씨의 커스텀 기체도 완성됐지? 그거면 얼마간 버틸 수 있겠지."
무결과 은하그룹은 몸이 불편한 강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각성자에 앞서 그녀가 탈 로봇을 가장 먼저 준비해 주었다.
로봇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금속인 '실버미슈릴'의 생성량에 한계가 있어서 무결의 [트리슈라]를 만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마침내 한 기의 로봇이 더 나올 수 있었다.
강하나의 첫 탑승식이 실전이 될 줄은 몰랐겠지만, 강하나도 로봇 탑승 시뮬레이션 연습은 항상 해오고 있었다고 하니 아마 잘해낼 것이다.
"그보다는 일단 저놈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무결은 눈앞에 마침내 그 모든 모습을 드러낸 벌레들의 왕, 사마귀 형상의 몬스터 [메카맨티스]를 올려 다보았다.
테라볼트의 막대한 전기에도 그다지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녀석은 오연히 일어서 그 거대한 날개를 펄럭 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이잉- 그 거대한 놈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무결에게 돌진해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신의 지팡이].
콰앙!!
하늘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내리꽂혀 메카맨티스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동시에 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도착했습니다.]
제트기의 형태로 하늘을 날아온 [트리슈라]가 인간형으로 변하며 무결의 뒤에 내려앉았다.
쿵!
무결이 그대로 점프해 인간형으로 [아머변환]을 한 [트리슈라]의 가슴 속으로 들어갔다.
치익.
콕핏이 닫히고 [트리슈라]의 눈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직후.
푸스스-- 산산조각 난 메카맨티스가 다시 합쳐지며 사마귀의 형상으로 되돌아왔다.
저놈은 금속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곤충으로, 아무리 짓이기고 부숴 버린다 해도 다시 제 형상을 되찾는 기괴한 놈이었다.
마법과 전기 공격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다가 물리공격도 별 소용이 없는 까다로운 놈.
게다가- 푸시식…….
놈이 몸에서 짙은 녹연(緣煙)을 뿜어 냈다.
초록색 연기가 무럭무럭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갔다.
치이익- 연기에 닿는 모든 것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놈은 광역으로 산성브레스를 내뿜는 지독한 공격기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다시 봐도 지독한 놈이야.'
덕분에 무결도 게이트 안에서 놈을 상대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하지만 [트리슈라]에 탄 지금. 방법은 있었다.
"끼에에엑!"
메카맨티스가 다시 날개를 부르르 떨며 무결을 향해 날아왔다.
무결은 전하결계의 입구를 벌려주어 놈이 빠져나오도록 했다.
'전하결계는 당분간 버티겠지.'
무결은 [테베르크의 동력석]으로 작동되고 있는 전하결계를 흘끗 바라보고는 [트리슈라]를 조종해 날아 갔다.
메카맨티스가 [트리슈라]의 뒤를 따라 바쁘게 날아갔다.
* * * 무결은 얼마 안 있어 거대한 호수 까지 녀석을 유인해 낼 수 있었다.
녀석은 무결에게 몇 방 맞은 게 그렇게도 억울했는지 끝까지 날아 무결을 쫓아왔다.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다."
무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트리슈라]를 조작하자마자 [트리슈라]의 등뒤에서 여섯 쌍의 [빛의 날개]가 솟아났다.
"가라."
[빛의 날개]들이 무결의 의지에 따라 메카맨티스를 꽁꽁 둘러쌌다.
물리공격도, 마법/화학공격도 통하지 않는 녀석을 죽이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무결은 이것에 대한 답을 놈의 '생물학적인 특성'에서 찾았다.
비록 기계적으로 개조되었다고는 해도, 놈은 아직 생물이었다.
그렇다면 녀석이 생명활동을 유지 하는데 필요한 것을 빼앗으면 된다.
"결계 가동."
놈의 주변을 둘러싼 빛의 날개들이 하얀빛을 내뿜으며 반투명한 막으로 변했다.
녀석은 날아오던 그대로 반투명한 막에 둘러싸여 버렸다.
"끼에에엑!"
녀석이 울부짖으며 거대한 집게발로 반투명 막을 찢어발기려 했다.
그러나- 수욱- 녀석의 손이 그대로 반투명한 막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아니, 뚫고 '되돌아와' 버렸다.
왜냐하면 앞쪽의 반투명한 막을 지나간 손이 놈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으니까.
[공간왜곡장].
저 결계는 공간을 비틀어 특정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특수결계였다.
메카맨티스는 앞으로 돌진해 앞쪽의 반투명 막을 지나쳤지만, 다시 뒤쪽의 막에서 튀어나와 같은 공간으로 되돌아와 버렸다.
놈은 위아래, 사방팔방으로 날뛰었지만 놈이 다시 되돌아오는 곳은 한결같이 결계속 공간 내였다.
놈은 갇히지 않았지만, 또한 동시에 결계 속에 갇혀 있었다.
"자, 그럼 이만 끝내자고."
무결은 조심조심 하늘에 떠 있는 [공간왜곡장]을 컨트롤해 아래쪽 호수 방향으로 이동시켰다.
[공간왜곡장]은 호수 표면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고 내려가더니, 결국 호수 속에 일부가 잠겼다.
결계속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 했지만 바깥에서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가는 것은, 무결의 컨트롤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했다.
곧 결계는 물에 가라앉으며 온통 물로 가득 차버렸다.
자연히 그 속에 있던 메카멘티스도 물속으로 그 모습을 감춰 버렸다.
결계는 호수 속에 완전히 들어가 버렸다.
무결이 택한 방법.
그것은 수장(水葬)이었다.
물속에 가두어 질식사시키는 것.
물리/마법 공격이 통하지 않는 녀석을 죽이기 위한, 어처구니없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생명체로서 호흡을 한다는 녀석의 기본적인 특성을 고려한 공략법이었다.
부글부글.
물속에서 기포가 솟아올랐다.
물에 갇혀 버린 녀석이 발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저 결계는 무결이 풀어주거나, 혹은 [트리슈라]의 에너지가 다할 때 까지 풀리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마침내 보글보글 올라오던 기포가 멎어버렸다.
"슈리, 녀석은?"
[골로 갔습니다.]
슈리가 녀석의 임종을 보고했다.
"아디오스."
무결은 녀석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트리슈라]를 조종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