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204 새파란 하늘.
아름다운 구름.
미국에서도 아름답고 청정한 도시로 소문난 마이애미의 스카이라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이런 맑은 날씨는 관광도시 마이애미에 활기를 더했겠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마이애미의 불행에 일조하고 있었다.
날이 맑을수록 더욱 많은 힘을 얻는 '스카이드래곤'이, 마이애미의 가장 높은 빌딩 위에 앉아도시 전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마이애미의 곳곳에서는 하늘 높이 치솟은 토네이도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깨끗한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무질 서적이고 무차별적인 파괴가 도시 전체에 걸쳐 벌어지고 있었다.
스카이드래곤의 날개가 펄럭일 때 마다 새로운 토네이도가 생성되어 마이애미 전체를 부수어나가고 있었다.
"……엄청나군."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무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저기에서, 두억시니급의 몬스터가 날뛰고 있었다.
그 어떤 견제도 없이.
"……그리고 안타깝군."
무결은 도시 안에서 비명에 죽어나 가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사람들은, 구할 수 없다.
이미 몇 주 전부터 도시 소개령이 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주할 수는 없었다.
옛날과는 달리지상의 길은 몬스터를 마주치지 않고는 지날 수 없었으며, 비행길조차도 간간이 나타나는 몬스터들에 의해 위협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무결은 [트리슈라]를 이끌고 미국으로 날아와 있었다.
여차하면 '그'를 도와 저 스카이드래곤의 봉인을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아케우스, 역시 듣던 대로 엄청난 마력이다.'
대현자 아케우스.
전생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기계룡과 맞서 싸우던 결사대 4인 중의 한 명.
다시 말하면 인류에서 가장 강했던 네 명의 각성자 중 한 명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마법사인 그가 주문을 외우자 거대한 마이애미의 대지가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땅에서 떠오르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룬문자들.
아케우스를 비롯한 수십 명의 마법사가 이 며칠간 밤낮없이 작업해 설치해 둔 마법진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스카이 드래곤이 토네이도를 뿜어내던 것을 멈추고 하늘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촤라라락- 어디선가 새하얀 쇠사슬이 튀어나와 녀석의 발을 잡아챘다.
"오, 저게 되는군."
무결은 그것이 리처드의 스킬 [타천사의 쇠사슬]을 마법진 속에 저장 했다 사용한 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덕분에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스카이드래곤이 날아오르려다 말고 뚝 멈춰 버렸다.
스카이드래곤이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그럴 때마다 쇠사슬이 끼긱- 끼긱-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13등급 몬스터 '발티르'조차 끊어 내지 못했던 강인한 쇠사슬이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촤라락- 촤라락- [타천사의 쇠사슬]
몇 개가 더 땅속에서 튀어나와 녀석을 결박했다.
"크어어어어!!"
스카이드래곤이 울부짖으며 더욱더 몸을 비틀어댔다.
퍼펑, 펑!!
놈의 온몸에서 광풍이 뿜어져 나오며 주위 건물이 녀석을 중심으로 모두 터져 나갔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녀석을 결박하고 있던 쇠사슬도 몇 개가 끊어져 나갔고, 나머지도 조금만 있으면 모조리 끊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사이.
이미 아케우스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초대지봉인술 [기간틱 씰 (Gigantic Seal)].
스카이드래곤을 반구형으로 둘러싼 결계가 환하게 빛을 내뿜으며 응고 되기 시작했다.
결계는 점차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하늘로부터 힘을 얻는 스카이드래곤의 힘을 감소시키는 대지속성의 결계가 마침내 하늘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드드드드- 결계는 땅으로부터 흙을 빨아을려 스스로 두께를 키워 나갔다.
쿵, 쿵…….
돔 안쪽에서 스카이드래곤이 발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소리는 흙이 점점 그 두께를 더해가며 잦아들더니, 마침내는 전혀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때쯤 끊임없이 두께를 키워 나가던 결계의 움직임도 멎어들었다.
대도시 마이애미의 대부분을 감싸며 만들어진 이질적인 반원형의 갈색 돔(dome).
죽은 도시를 추모하는 거대한 무덤의 완성이었다.
* * *
"신무결 입니다."
"아케우스 베르제입니다."
두 초인이 손을 맞잡았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거물들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물인 리처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덕에 미국의 큰 우환거리를 하나 없앨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리처드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놈을 없앤 것은 아닙니다. 봉인은 길어봐야 2 년에 불과하니, 그 안에 저 녀석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스카이드래곤을 봉인시킨 아케우스가 리처드를 보며 봉인이 해결책이 아님을 상기시켰다.
"물론 그 사실은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장 속도로 봤을 때, 저희 미국은 저 녀석이 봉인에서 풀려날 때쯤 충분히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리처드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기간 동안 마법진을 설치한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봉인을 유지, 보수해 줘야 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한 상태였다.
저 스카이드래곤이 만약 그대로 풀려났더라면 마이애미라는 도시 하나로는 절대로 끝나지 않았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에 대해 리처드한테 알려준 사람이 신무결 씨라고요?"
아케우스가 다시 무결에게 특유의 무심한 눈을 향했다.
그러나 무결은 그의 눈에 깃든 '호기심'이란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노인네가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군.'
아케우스는 최고의 마법사이기도 했지만 또한 최고의 정보길드 '아르고스의 눈'를 세운 정보상인이기도 했다.
'아르고스의 눈'은 뛰어난 오러클과 예언자들을 다수 보유한 최고의 각성자 정보그룹.
그런 '아르고스의 눈'에서 파악하지 못한 각성자가, 외부 활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은 자신을 역으로 알고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생긴 듯 했다.
'하긴 마법사란 족속들이 호기심덩 어리이긴 하지.'
무결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케우스를 [하늘의 눈]으로 들여다보려 했다.
그 순간. 파직.
'……음?'
아케우스와 무결의 몸 주위로 동시에 미약한 스파크가 튀었다.
너무나 미약해 당사자들이 아니고서는 알아차리지 못할 작은 마력의 번뜩임.
무결이 슬쩍 리처드를 봤지만 역시나 리처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반면 아케우스는 기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터, 저 사람이 마스터를 '들여 다보려' 했습니다.]
슈리가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려왔다.
아케우스가 무결을 들여다보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나도 못 봤어.'
무결의 [하늘의 눈] 또한 아케우스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결 또한 기묘한 눈으로 아케우스를 바라보았다.
아케우스가 품속에서 외눈안경을 꺼내 쓰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차나 한잔 하실까요?"
"……차 말씀입니까?"
무결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이애미의 주변도시는 이미 예전에 멸망해 있었다.
덕분에 그들이 있는 곳도 폐허가 된 도시의 건물 위였는데, 이런 곳에서 차를 마시자니?
아케우스가 잠시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마침 로우 티 (low tea)를 마실 시간이군요. 열심히 일하고 난 뒤에 갖는 휴식 시간은 일의 능률을 올려 주는 법이지요."
그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젓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보자기가 튀어나와 허공에 놓였다.
마치 테이블 위에 올려진 테이블보 처럼.
그리고 무결이 그렇게 느낀 순간, 보자기 밑으로 정말 티 테이블이 스르륵 생겨났다.
고풍스러운 원목 재질의 테이블이었다.
테이블은 다리 부분이 휘어지더니 순식간에 사람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형성해 냈다.
"저는 홍차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밀크티를 참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웬만한 차 종류는 다 있으니 말씀해 보십시오."
무결은 새삼 그가 영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것도 티타임을 빼놓지 않고 즐기는 정통 영국인.
"저는 같은 걸로 하겠습니다."
"저도요."
무결도, 리처드도 차에 대해서는 그다지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아케우스가 먹는 걸로 먹겠다고 했다.
"알겠습니다."
아케우스가 이번에는 펑퍼짐한 마법사 로브 속에 손을 넣어 주전자를 꺼냈다.
무려 따끈따끈하게 데워져 있는 우유가 든 주전자였다.
그가 그것을 그대로 테이블 위에 붓자, 테이블 위에서 컵이 솟아나 그 우유를 받아냈다.
그렇게 세 잔의 우유가 생겨나자 아케우스가 홍차가 든 다른 주전자를 꺼내 그 위에 따랐다.
"여기 있습니다."
그가 무결과 리처드에게 한 잔씩을 나누어주고 홍차를 홀짝 마셨다.
무결 또한 아케우스가 준 차를 받아 입에 넣었다.
"……!"
흠칫.
잠시 흠칫한 무결이 말없이 계속해서 홀짝였다.
"오, 정말 맛있군요."
리처드가 홍차 맛을 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맛있는 홍차는 대체 어떻게 만든 겁니까?"
무결이 의미심장하게 아케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요."
아케우스는 슬쩍 미소를 달며 무결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런 홍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무결이 다시 홍차를 홀짝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케우스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을 위해 이 정도 재료는 항상 구비해 놓고 있지요."
아케우스가 다시 느긋하게 잔을 들어 올리며 무결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답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무결이 슬쩍 웃었다.
그러자마자.
삐빅.
아케우스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케우스가 흠칫하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살짝 기묘한 감탄사를 내었다.
"호오?"
"좋은 차를 대접해 주신 보답입니다. 마음에 드셨기를 바랍니다."
무결이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찻값으로는 과분한 대가군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아케우스가 다시 휴대폰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럼 서로 바쁘신데들 이만 일어 날까요?"
"그러죠."
무결과 아케우스가 홍차를 다 마시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처드에게 인사했다.
"리처드,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봐요, 리처드."
그러고는 서로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뭐지, 이 기묘한 소외감은?"
사라지지 않은 티 테이블에 앉아, 리처드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 * * 무결은 [트리슈라]를 타고 한국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대박이군.'
무결은 아케우스가 보내온 정보를 곱씹고 있었다.
그가 타준 차 속에는 놀랍게도 그의 '기억'이 '정보'란 형태로 가공되어 들어 있었다.
그것을 마실 때마다 무결은 새로운 정보가 머릿속에 심어지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세계 각지의 몬스터의 흐름, 지금 막 등장하기 시작한 15급 몬스터들의 정보, 그리고 각종 고대문명의 유적들과 관련된 단서들.
돈을 주더라도 구할 수 없는 엄청난 정보들이 단 한 잔의 홍차 속에 들어 있었다.
아케우스가 먼저 건넨 협력 의사였다.
그리고 무결은 그의 의사에 보답했다.
그는 미래에 등장할 굵직굵직할 '던전'들의 정보를 아케우스에게 넘겼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 앞으로 등장할 몬스터들의 정보일람도.
무결과 그의 지인들이 차지할 던전 들에 대한 건 뻤지만 아케우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니 그 정도만으로도 잘 활용하겠지.'
이 짧은 정보교환만으로도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한 소득은 넘치도록 뽑아냈다.
앞으로도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로 협정을 맺었으니, 미국을 이용해 아케우스를 찾아기를 참 잘했다 생각했다.
'뜻밖의 곳에서 힌트를 얻었어.'
무결은 아케우스의 정보 중 '고대 문명의 유적'과 관련되어 있던 정보 중에서 한 가지 단서를 발견했다.
'테베르크의 팔, 머지않아 찾을 수도 있겠어.'
무결은 전투기 형태의 [트리슈라]의 속도를 높였다.
* * *
"리처드, 기분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여?"
아이언 메이든이 소파에 힘없이 널 브러져 있는 리처드를 보며 말했다.
"메이든, 내가 미국의 히어로로서의 자격이 있을까?"
리처드가 한숨을 쉬며 옆의 소파에 푹 주저앉는 메이든을 바라보았다.
"왜? 어떤 멍청이가 너한테 뭐라 그랬어?"
"그건 아닌데, 세상엔 워낙 대단한 녀석들이 많은 것 같아서. 좀 소외감 같은 걸 느꼈달까."
"난 또 뭐라고. 너 정도면 충분히 그 대단한 녀석들에 포함되니까 어디 가서 그딴 매가리 없는 소리 하지마. 다시 한번 그딴 소리 하면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어."
"알았어."
아이언 메이든의 핀잔에 리처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가볼게. 다음 브레이크를 예상해야 하거든."
메이든이 일어서서 나가 버렸다.
리처드가 잠시 한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봤다.
"신무결, 아케우스……. 얕보지 말라고! 협!"
그가 다시 힘을 주어 소파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대저택에 마련되어 있는 커스텀 수련실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