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200 ['미국 팀'에서 선수 교체가 있었습니다.]
협곡 전체에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미국 팀도 교체 카드를?'
무결은 흠칫하며 한서후와 눈이 마주쳤다.
한서후도 마찬가지로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무결 자신과 한서후에게 말려 시간만 낭비하던 미국 팀 마법사들이 본진 쪽으로 후퇴하더라니.
선수 교체를 하려고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 팀은 승기를 놓쳤어. 누가 오더라도 벌어진 성장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어.'
경기 시간이 15분이 지나갈 동안 무결과 한서후가 네 마법사를 꽁꽁 묶어두고 있었던 덕분에 조솔과 양금호가 엄청나게 성장했다.
미국 팀 마법사들과 한서후, 신무결은 모두 경험치를 포기하고 싸움 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조솔, 양금호와는 레벨 격차가 무려 5나 났다.
두 명의 레벨 차이가 이렇게 극심하게 나는 이상, 이제 게임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한서후와 무결은 마법사들이 사라진 마법로로 진격해 곧장 미국 팀의 1차 포탑을 부숴 버리고 귀환했다.
조솔과 양금호도 본진으로 귀환해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무결은 적들의 동태를 자세히 관찰했다.
귀환 직전 적들의 진격로와 숲속에 [감시구슬]을 잔뜩 설치해 두고 나왔기 때문에 적의 움직임을 한 박자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적들에게 교체 선수라는 변수가 생긴 만큼, 먼저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그에 대응하여 작전을 세울 생각이었다.
"음…… 무공로로 한 명, 마법로로 세 명이 움직이는군. 예정대로 마법로로 힘을 실을 생각인가? 하긴, 이제 와서 전략을 크게 바꾸기엔 늦었으니. 그나마 무공로는 방치해 두진 않는군."
결국 미국 팀은 들고 온전략을 고수하는 쪽으로 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쪽도 똑같이 가줘야지."
무결은 아까와 같이 한서후와 함께 마법로로 나갔다.
이제는 네 명이던 상대가 세 명으로 줄었으니 한층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마법로로 나갔는데.
"……응? 뭐야?"
이변이 발생했다.
"왜…… 적이 네 명이야?"
마법로에 선 미국 팀의 마법사가, 네 명이었다.
* * * 기존에 보았던 마법사 세 명에, 후드를 뒤집어쓴 마법사 한 명.
총 네 명의 마법사가 아까처럼 마법로에 나와 있었다.
"……양금호 씨, 그쪽으로 미국 팀 무인 왔죠?"
-예, 지금 적 포탑 쪽에서 걸어나 오고 있습니다. 왜 물으십니까?
"이쪽에 마법사가 네 명이라서요."
-……예? [모험가의 협곡]은 네 명이서 하는 경기 아닙니까?
"제 말이요."
무결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적 팀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무결 오빠, 이쪽으로 적 팀 한 명 출현이요!!
"……!"
조솔이 맡은 초능력로에도 적이 출현했다.
이렇게 되면 적 팀의 숫자는 여섯.
말이 안 됐다.
"어째서 적 팀 인원수가……. 조솔 씨, 적 생김새는요? 능력은 아직 잘 모르죠?"
-복면을 쓰고 있는데, 능력은 모르겠어요! 앗! 지금 저한테 달려드네요. 전투 들어갑니다!
-저도 적 무인과 전투 개시합니다.
양금호와 조솔이 동시에 전투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무결이 깊이 생각할 새도 없이, 마법로의 마법사 넷도 캐스팅을 시작했다.
"이런. 갑시다, 한서후 씨!"
"이번엔 죽여 버리죠."
무결의 신호에 다소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한 한서후가 으르렁거리며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 * * 마법로의 전투는 박빙으로 진행되어 갔다.
과쾅!!
세 명의 마법사가 쏘아낸 마법이 또 다시 한서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한서후의 [호신강기]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마법에 맞아 홀라당 타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훨씬 버틸 만했다. 아까보다는.
아까는 네 명이 만들어내던 마법에서 한 명이 빠지자 위력이 줄어든 것이다.
아까라면 이 마법에 버티기는 커녕 한 방에 타죽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 한 방 한 방이 더 버티기 쉬워졌다고 해서 싸움 자체가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세 명과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남은 한 마법사의 실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자의 실력이 세 명의 마법사 개개인보다 실력이 월등했다.
후드를 깊이 내리눌러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는 그 마법사가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스피리추얼 브레스].
사방에서 으스스한 냉기가 생성되어 도망치는 한서후에게 모여들었다.
그의 몸이 극심한 냉기에 얼어붙으며 점차 둔화되어 갔다.
"하암!!"
한서후가 스킬 [사자후]를 펼쳐 몰려드는 냉기를 일순 내몰아 버리고 몸의 활력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후드를 쓴 마법사의 또 다른 마법의 캐스팅이 완료되어 있었다.
[썬더 퓨리].
마른하늘에서 무수한 번개가 한서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엄청난 고속캐스팅이야.'
한서후가 질린 얼굴로 날아드는 마법을 바라보았다.
후드 마법사가 마법을 펼치고 다른 마법을 펼치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3 초.
다른 세 마법사가 힘을 합쳐서 펼치는 마법이 5초 정도 간격인 것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캐스팅 능력이었다.
'이번 마법은 못 피하겠어.'
아직 몸을 묶어두었던 냉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서후는 죽음을 각오하고 공격을 몸으로 맞받으려 했다.
하지만.
위잉- 한서후의 머리 위로 보랏빛 실드가 형성되며 날아드는 번개를 흡수해 버렸다.
[플라스마 링]이었다.
"감사함다, 보스!"
한서후가 무결에게 감사 인사를 외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무결이 한서후를 위기에서 구해주며 굳은 얼굴로 조솔과 양금호의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윽, 무공로 무인의 공격이 너무 매섭습니다. 저 혼자로는 버티기 힘들 지경입니다!
-오빠, 저도 버티기 힘들어요! 여기능력자는 은신에 분신술을 쓰는 닌자 타입이에요! 근데 도무지 위치를 못 잡아내겠어요!
경험치를 충분히 먹고 레벨 격차를 벌린 둘이 밀리고 있을 만큼 상대의 능력이 엄청났다.
"하아."
무결이 이마를 짚으며 머리를 팽팽하게 굴렸다.
"[모험가의 협곡]에 이런 맹점이 있었을 줄이야."
이미 그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하늘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한번 [하늘의 눈]으로 새로이 등장한 한 명의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이름 : 하이오크 메이지 -상태 : 노예화 -고유 스킬 : [고속캐스팅], [영혼 마법]
'노예화……. 누군가의 소환물이야, 저놈.'
일개 소환물이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결은 팀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예? 소환물이라고요? 제가 상대 하는 이자가 소환물일지도 모른단 말씀입니까?
양금호가 물어왔다.
"예,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지만요. 아니면 아마 양금호 씨나 조솔 씨 둘 중 한 분의 상대가 소환물을 소환한 자일 겁니다."
- 그런…….
조솔의 신음이 들려왔다.
"일단 누가 소환사 본인인지 확인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대체로 많은 경우 소환사를 죽일 경우 소환물이 사라지니까요. 일단 소환사 본인을 특정해서 죽여보죠."
-상대가 소환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확인합니까?
양금호의 물음.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 어째서요?
이번에는 조솔의 물음이었다.
"그야……."
무결이 씨익 웃었다.
"몬스터는 레벨업을 못 할 테니까요."
[모험가의 협곡].
이곳은 '모험가'끼리 서로의 능력을 겨루는 장소.
소환물 따위가 레벨업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강해지는 상대가 바로 소환사 본인 일 확률이 높았다.
소환사 본인은 '모험가'로서 계속해서 강해질 테니까.
'어차피 양금호와 조솔은 계속 레벨업을 할 수 있어. 그리고 나와 한서후도 상대 마법사 세 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레벨링은 더 빠를 거야. 저쪽은 세 명이 경험치를 나누고 이 쪽은 두 명이 나눠 먹으니까.'
그런 생각하에 무결은 계속해서 대치 국면을 유지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심각한 가능성 하나를 간과했음을.
'이런…… 만약 소환물의 경험치를 소환사 본인이 먹게 된다면……?'
게임 메커니즘상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소환사 본인이 두 진격로의 경험치를 독식하게 돼. 그 정도까지는 그래도 조솔과 양금호의 성장으로 상쇄할 수 있어. 하지만 더 최악의 경우는…….'
무결은 잠시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결정을 내렸다.
"한서후 씨."
"예, 보스."
한서후가 전투로 바쁜 와중에도 무결에게 대답했다.
"마법로, 혼자 막을 수 있죠?"
"예……에? 잠깐만요, 보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잠깐만요! 보스! 보스!!"
한서후의 부름에도 무결은 재빨리 마법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설령 마법로가 심하게 밀리더라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무결은 아군 진영의 숲속과 상대 진영의 숲속을 신속하게 돌아다니며 몬스터의 생태를 파악해 나갔다.
그럴수록 그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없어. 숲속에 있어야 할 몬스터들이. 누군가가…….'
무결이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어.'
그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
그것은 무공로와 초능력로의 두 상대가 모두 소환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 소환사는…….
번쩍- 숲 저편에서 순간적으로 하얀빛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무결이 재빨리 달려 그곳에 도달했다.
지금 막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금발의 사내가 쓰러진 몬스터로부터 떨어진 금화를 주워 들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눈을 돌려…… 무결과 눈을 마주쳤다.
"이런이런."
사내가 쯧쯧 혀를 차며 금화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대로 마법로에 계시지 여기는 왜 오셨습니까."
유창한 한국어로 여유롭게 웃는 금발의 사내.
"리처드…… 아서."
무결은 비로소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아했다.
한국 팀의 네 명이 진격로에서 있는 사이, 리처드 아서는 올라운더로서 숲속의 몬스터를 독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과의 레벨 차이는 벌써 따라 잡은 것 같군요. 전부터 당신과는 한판 겨뤄보고 싶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말에 무결이 피식 웃었다.
"기꺼이."
그 말과 함께 무결이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리처드가 새하얀 검을 뽑아 들며 무결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타앙!!
승부는 단 한 방에 났다.
리처드의 미간에 구멍이 뚫리며- 털썩.
시체로 변한 그가 쓰러졌다.
하지만.
'……왜 이리 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