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97 쿵. (196/215)

  기계신과 함께 197 쿵.

  대전 시내 마지막 남은 몬스터가 쓰러졌다.

  "후……."

  하지만 환호를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상처뿐인 승리였기 때문이다.

  "끝났다……."

  전투를 마친 헌터들이 자리에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김치우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신지혜에 의해 결계에 갇혀 있다가 얼마 안 있어 풀려났다.

  그리고 내리 이틀을 몰려드는 몬스터들과 싸웠다.

  몬스터는 그 수가 어찌나 많았는지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도시 밖 수일 거리에 있는 몬스터란 몬스터는 모조리 몰려온 듯했다.

  덕분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대피시설로 대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죽었고, 대피시설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도 태반이 다치거나 죽어버렸다.

  죽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묻혔다.

  도시 여기저기는 죽은 친지와 친구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기반시설의 피해도 엄청났다.

  대전시는 시청 부근 외의 지상 건물들은 전투의 여파로 초토화되어 거의 성한 건물이 없을 지경이었다. 전투를 마친 헌터들은 쉴 틈도 없이 건물 잔해에 파묻힌 사람들의 구조작업에 들어갔다.

  그중 중국의 헌터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비록 과거에 한국과 사사건건 충돌 하던 얄미운 이웃 중국이었지만, 몬스터라는 공통의 적을 눈앞에 둔 지금, 이들은 든든한 아군이었다.

  '저들이 도와주러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나마도 살아남지 못했겠지.'

  김치우는 건물 구조작업을 돕고 있는 중국 헌터들을 보며 생각했다. 중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력구제 능력이 없는 민간인들은 분명 전멸이었다.

  대전시에 모여 있던 헌터들만으로는 방어선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헌터들은 한국 헌터들의 몇 배에 달할 정도로 많았고, 그 '쪽수'는 분명 방어선을 지켜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이 바로 무결이 무리해서라도 중국의 헌터들을 한국으로 데려온 이유였다.

  * * * 삐- 삐- 심전도계 소리가 조용한 병실을 울리고 있었다.

  병상에는 온몸을 붕대로 두른 강하나가 누워 있었다.

  무결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강하나를 내려다보았다.

  병상 옆에는 김소유가 앉아 강하나의 한쪽 손을 잡고 있었다.

  비록 무결이 응급처치를 했다지만 '포켓볼'에서 나와 수술대 위에 오른 강하나의 상태는 말로는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김소유는 정신을 잃은 강하나와 다시 만난 이후로 그녀의 곁을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강하나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소유로부터 나온 치유의 기운은 계속해서 강하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그녀의 원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결 또한 마찬가지 여서, 그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소리 없이 강하나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서후 또한 부상이 심하긴 했지만, 강하나만큼 심하게 다치지는 않아서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에 반해 강하나는 아직 의식조차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

  무결과 김소유가 침묵으로 그녀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병실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의사들 말로 살아난 게 기적이래."

  그렇게 말하며 병실로 들어선 이는 은하수였다.

  그는 방금 강하나의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오는 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대. 수술도 무사히 끝났다고 했고, 소유 씨를 비롯한 치료계 각성자들이 대거 달려들어 마력을 쏟아부었으니 곧 괜찮아질 거야. 이제 하나 씨가 정신만 차리면 돼."

  던전시대 전에는 분명 죽었을 만한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과학과 마법, 그리고 그 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이 가득한 현재에는 강하나를 살릴 수 있었다.

  "아마 하나 씨가 깨어나고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치료한 부분들의 후유증은 별로 없을 것 같아. 다만……."

  은하수가 어두운 얼굴로 팔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오른팔과 왼다리는 이질적인 재질로 되어 있었다.

  "한쪽 팔과 다리는 완전히 소멸해 버려서……."

  그는 김소유의 흘끗 보며 말을 흐렸다.

  하지만 김소유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헌터 생활은?"

  무결이 그렇게 물었다.

  은하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무결이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가볼게."

  "고마워. 수고했어, 형."

  은하수가 병실 문을 열더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은하수가 나가자마자 바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위청천과 모용길이었다.

  "위급한 구조작업은 대강 끝났으니 저희는 이만 중국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위청천이 말했다.

  "약속은 지켜주리라 믿소."

  위청천에 이어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길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조만간 좋은 소식이 가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겠소."

  무결의 대답에 모용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병실을 나섰다.

  바쁘기도 했거니와, 환자가 있는 병실에서 수다를 떨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빨리도 가는군. 하긴.'

  그들에게도 지켜야 할 터전이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들은 그들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을 터였다.

  '내가 많이 도와주고 왔지만, 아직 불안하긴 할 테지.'

  무결이 중국의 헌터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들이 애를 먹고 있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무결이 나서서 처리해 준 것이었다.

  무결은 그동안 간간이 중국에 가서 이한철의 모습으로 해결사 노릇을 했다.

  주로 한 것은 중국 헌터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네임드 몬스터들을 처리한 것.

  처음에는 일개 헌터가 해봐야 어쩌겠냐던 중국의 헌터들은, 부대단위의 헌터들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몬스터를 너무도 손쉽게 처리하는 무결의 모습에 경악했다.

  수십 명의 레이드 파티를 짜도 어쩔 수 없는 거대 몬스터들을, 무결 은 단신으로 가서 처리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

  위청천이 중국 제일의 스타였다지만 그조차도 중국에서 이러한 위업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마침내 그는 중국에서 위청천을 넘어서는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 중국 헌터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협회장 취임 당시 이한철이 보인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의 능력에 어떤 의문도 없었다.

  그만큼 그가 압도적인 실력자임을 짧다면 짧은 시간에 걸쳐 입증한 것이다.

  특히 무(武)를 숭상하는 중국의 정서상 이한철은 생각보다 더욱 쉽게 중국 헌터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전시 사건 직전 며칠간.

  무결은 집중적으로 중국 거대 그룹의 해결사 노릇을 해주며 그들의 몬스터치안을 안정시켜 주었다.

  중국이 마음 놓고 자신들의 근거지를 떠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제까지 은하그룹에서 쌓아온 도시방어결계 등의 과학기술력을 보여주고, 그것을 전수해 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마침내 수많은 중국인들의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어차피 은하그룹의 핵심기술도 아닐뿐더러 조만간 전 세계에 기술을 공개할 생각이었던 은하그룹으로서는 전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결이 중국 헌터들을 끌고 오게 된 배경이었다.

  무결이 그렇게 지난 며칠간을 회상 하고 있을 때.

  꿈틀.

  강하나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언니!"

  김소유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소리 쳤다.

  "으음……."

  곧 그녀가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여긴……?"

  "병원입니다. 여의도예요."

  "그렇군요…… 다들…… 무사한가요……?"

  강하나는 다소 힘없는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다들 무사해요. 언니만 일어나면 돼요."

  "다행……이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무언가로 대체된 자신의 팔다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없네요."

  "……."

  "……."

  공허한 그녀의 음성.

  무결과 김소유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팔다리를 잃은 자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위로할 수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하나는 그런 그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곧 미소 지었다.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요. 요즘은 의수와 의족도 많이 발전했잖아요?"

  "……비록 완전 팔다리와 같진 않겠지만, 일상생활 정도는 무리 없이 가능할 겁니다."

  "계속…… 헌터 생활은 가능할까요?"

  "……."

  무결도, 김소유도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에서 대답을 읽은 그녀가 풋 웃었다.

  "둘 다 뭘 그렇게 침울해져요? 아까도 말했듯 살아난 것만도 기적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 어떻게 살아났어요?"

  그녀의 그 물음에 김소유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랬구나. 무결 씨가 제 생명의 은인이네요. 고마워요. 매번 신세만 지는데 갚을 길도 없고……."

  강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결에게 인사하려 했다.

  "누워 계십시오."

  하지만 무결이 마력으로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침대에 다시 눕혀 버렸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저야말로 늦어서 미안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강하나 씨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무결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아쉬움과 미안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니에요."

  강하나가 그런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무결을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무결 씨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요. 맞죠?"

  "……예."

  그럼 된 거예요. 무결 씨는 그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아니, 오히려 모두에게 감사받아야 할 입장이라고요. 그러니 어두운 얼굴 펴고 웃어줘요. 제 병실에서 그런 칙칙한 표정은 금지입니다.

  "

  무결은 강하나의 말에 마음이 편안 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유 너도 마찬가지야. 울상 짓지 말고 웃어. 알겠어?"

  강하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김소유를 보며 말했다.

  "아, 알았어요, 언니."

  김소유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결이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녀의 말대로 미소 지었다.

  "누구보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에게 되려 제가 위로를 받네요."

  "이게 뭐 위로라고……. 그건 그렇고 바쁘실 테니 이제 가보세요. 소유 너도 지금 한창 전후처리로 바쁠 거잖아. 여긴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어서 가봐."

  "하지만 언니……."

  "난 괜찮대도. 이 병원 많이 와봐서 아는데 간호사님들 실력이 끝내 줘. 너보다 내 병수발 잘 들어주실 분들이니까 어서 가봐."

  "아, 알았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살펴 가세요."

  그렇게 무결과 김소유가 강하나의 병실을 나섰다.

  탁.

  병실 문이 닫혔다.

  침묵에 잠긴 병실.

  강하나가 가만히 침대에 몸을 기댔다.

  "……."

  무결과 김소유가 있을 때와는 달리 미소가 사라진 얼굴.

  "헌터…… 이제 못하는구나."

  쓴웃음이 달린 그녀의 얼굴 위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