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95 제트기는 순식간에 형태가 변형되어 사족을 가진 인간 형태의 로봇으로 탈바꿈했다.
하얀색에 가까운 은빛의 몸체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형태 변형이 쉬운 블랙미슈릴의 특성과 단단하기 그지없는 화이트미슈릴의 특성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금속 '실버미슈릴'로 이루어진 무결의 전용기.
[트리슈라]였다, [트리슈라]는 '슈리'의 원래 이름이자 전생에서 타던 무결의 전용기 이름이기도 했다.
'해치 오픈'.
무견이 [디바이스 컨트롤]로 신호를 보내자 [트리슈라]의 가슴 부근이 열렀다.
역장을 밟아 히공을 달리던 무결이 그 속으로 쏙 들어가자마자 가슴은 다시 닫혔다.
그리고.
번쩍.
[트리슈라]의 눈에 붉은 불이 들어 왔다.
'부스터 온'.
무결의 조작에 따라 [트리슈라]가 발 쪽에서 에너지를 내뿜으며 더욱 가속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무결을 쫓아오던 두억시니 쪽이었다.
두억시니가 깜짝 놀라며 옆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놈의 주변을 떠돌던 12개의 [빛의 날개]가 녀석의 회피를 막았다.
"이익.!"
두억시니가 잇새로 짜증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도깨비방망이를 앞으로 내뻗었다.
무결은 오른손을 두억시니를 향해 내리꽂히며 [트리슈라]의 아머를 조작했다.
[아머 변환-드릴피스트].
[트리슈라]의 오른손이 그대로 '드릴'의 형태로 변화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무결은 드릴을 앞으로 내뻗어 두억시니를 조준했다.
콰아아아-- 위에서 내리꽂히는 [트리슈라].
그리고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치고 올라오는 두억시니.
마침내 두 괴물이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주변의 구름이 충돌 지점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두 존재는 한 덩이가 되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 * * 까드드득- [트리슈라]의 드릴 공격을 막아 내는 두억시니의 도깨비방망이에서 불꽃이 사정없이 튀고 있었다.
"으갸아아악!"
최강의 도깨비, 도깨비들의 왕인 두억시니가 온몸에 힘줄이 불거진 채로 [트리슈라]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강하다 한들, [빛의 날개]들에 의해 행동이 제약 받는 상태에서 수 톤에 달하는 거대로봇 [트리슈라]가 몸으로 밀어붙이자, 사정없이 아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등을 바닥을 향한 채 [트리슈라]에 밀려 아래로 추락하던 두억시니는- 콰아아아앙---!!
지상과 격하게 충돌해 버렸다.
* * *
"와아아아!!"
두 존재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드디어 저 무시무시한 몬스터한테 시원하게 한 방 먹인 것이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로봇이!!
로봇의 정체는 잘 몰랐지만, 헌터 한 명이 로봇에 들어간 거로 보아 자신들의 편인 것이 확실했다.
"정말…… 저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건가?"
좌절하고 있던 헌터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대전시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으면서도, 강하나와 한서후의 합공을 간단히 물리친 저 괴물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타났다.
놈을 감당할 존재가.
"이길 수…… 있는 건가?"
그들은 다시 희망에 눈뜨기 시작 했다.
몬스터를 막는 사람들의 몸짓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일렀다.
두억시니의 조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 * *
"아아아아---!!"
커다랗게 형성된 크레이터의 한 가운데 푹 파묻힌 두억시니가 비명을 질러댔다.
콰드드득.
"아아아악--!!!"
녀석의 도깨비방망이는 놈의 옆에 박살이 난 채 뒹굴고 있었고, [트리슈라]의 드릴이 아주 조금씩 놈의 배를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두억시니는 배를 파고드는 드릴보다는 다른 것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내 방망이!! 내 방망이가……!!"
콰드드드득--!
복부를 드릴이 파고드는 와중에도, 녀석은 도깨비방망이를 잃은 충격으로 울부짖었다.
그런데.
쭈우욱── 갑자기 녀석의 크기가 급속도로 커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전체적인 생김새도 순식간에 변화하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르는 근육.
점차 살구색에서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피부색.
악귀처럼 변하는 인상과 입에서 튀어나오는 굵고 날카로운 송곳니.
쭉쭉 크기를 키워 나간 두억시니는 순식간에 [트리슈라]와 비슷한 10m에 가까운 몸집으로 변해 버렸다.
이것이 두억시니의 본래 모습이었다.
'으윽, 저 녀석이 작을 때 끝냈어야 했는데. 저 녀석이 도깨비란 사실을 잊고 있었어.'
무결이 [트리슈라]를 정신없이 조종하며 생각했다.
도깨비는 화가 나면 몸집이 커다래진다.
'역시 저 녀석도 도깨비답게 열 받으니 크고 단단해지는군.'
[……아름답지는 않네요.]
'……무슨 생각 하는 거냐, 슈리.'
무결이 그렇게 슈리와 대화를 나눌 때.
"너……!"
덥석.
잠깐 사이에 엄청나게 커져 버린 두억시니가 자신의 배를 파고들고 있던 드릴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드득, 드득.
드릴이 회전하던 힘을 잃고 멈춰 버렸다.
"윽, 제길."
무결이 [트리슈라]를 조종해 드릴의 회전력을 더했으나 소용없었다.
두억시니는 그대로 [트리슈라]를 들어 올려-
"후우욱!!"
저 멀리던져 버렸다.
"크윽."
[트리슈라]가 몸을 틀어 안전하게 땅바닥에 착지했다.
"으아아!! 이 자식! 감히 내 방망이를 부숴?!"
쿠웅! 쿠웅!
두억시니는 그대로 [트리슈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놈의 크기는 조금 씩 커졌다.
"흐아암!"
놈이 주먹을 휘두르자- 퍼엉!
충격파가 발생하며 주변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무려 음속을 초월하는 주먹질이었다.
무결은 [배틀 센스]를 이용이 놈의 주먹질과 [트리슈라]의 전력을 비교했다.
'그대로 주먹으로 맞받았다간 진다.'
파괴력 면에서 두억시니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정면승부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무결이 [트리슈라]를 조작했다.
'아직 첫 시운전이라 복잡한 기술은 구사할 수 없어.'
그래서 간단한 기술로 승부하기로 했다.
[트리슈라]가 마치 복싱 선수가 더 킹 (Ducking) 하는 것처럼 몸을 아래로 훅 낮추더니, 두억시니의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두억시니의 얼굴에 카운터 어택을 먹였다.
꽝--!!
[트리슈라]의 공격이 그대로 두억시니에게로 맞아 들어갔다.
하지만.
"흥!"
두억시니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안면을 강타한 [트리슈라]의 손을 잡아챘다.
'타격이 안 통해.'
무결이 어마어마한 두억시니의 방어력에 신음을 내뱉으며 [트리슈라]를 조작했다.
[아머 변환-연체화(軟體化)].
막 두억시니가 부러뜨리려던 [트리슈라]의 팔이 순식간에 흐물흐물하게 변하며 녀석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형, 여기 쓸만한 무기는 없어?"
무결이 두억시니와 거리를 벌리며 은하수에게 물었다.
-어쩌지. 급히 만들어서 출격시키느라 이렇다 할 무기는 장착하지 못했어. 네가 무기는 아무래도 좋으니 본체부터 일단 완성해서 바로 가져다 달라며!!
"그렇긴 한데 무기는 좀 제대로 갖춰서 보내줬어야지!"
[트리슈라]에 탑승한 덕에 놈과 티격태격 맞서 싸우고 있긴 했지만, 이렇다 할 한방 무기가 없었다.
그때 통신을 타고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결, 일단 [아크 앤젤]의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까 [빛의 날개]를 잘 사용해 봐요. 내장된 에너지로 [빛의 날개]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을 거예요.
"오케이, 고마워요, 엘리스."
'흠, [빛의 날개]라.'
"나랑 싸우면서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지 마!!"
두억시니가 화가 난다는 듯 쿵쿵 대며 [트리슈라]에 달려들었다.
한번 화가 나자 사소한 것에도 계속해서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놈은 더욱더 크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악순환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얘기한다고 화내다니, 애정결핍이네요. 잘 좀 대해 줘요, 마스터.]
'아니야, 떼쓰는 아이에겐 맴매가 딱이야.'
무결은 슈리의 육아관에 대해 반론의 입장을 취하며 [빛의 날개]를 회수했다.
아까 두억시니가 내리꽂힌 크레이터에 머물러 있던 열두 줄기의 빛줄기가 순식간에 날아와 [트리슈라]의 등에 들러붙었다.
그와 동시에.
화악- 그 크기가 단숨에 수십 배로 증폭되었다.
특별한 마법적 기술로 가공되어 정형화된 초고밀도의 에너지 덩어리 [빛의 날개]가 [트리슈라]에 담긴 마법 에너지와 시너지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흐음, [빛의 날개].
[빛의 날개] 라…… 집중한 무결이 [빛의 날개]란 키워드에 포커싱해 [트리슈라]의 기능을 훑었다.
콰아앙!!
그 순간 또 다시 두억시니의 주먹이 날아왔다.
주먹은 아까보다 크고 강력해져 있었다.
하지만.
[디바이스 컨트롤].
위잉- 열두 줄기의 [빛의 날개]가 [트리슈라]의 등 뒤에서 날아올라 두억시니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가로세로로 얽힌 열두 줄기의 [빛의 날개]가 충돌의 순간 적절히 휘어지며, 두억시니의 주먹이 만들어낸 충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트리슈라]의 두억시니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내었다.
[트리슈라]가 격하게 뒤로 밀려나며 남은 충격을 모두 흘려내었다.
[빛의 날개]들이 있었기에 이번엔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었다.
"크아아!!"
펑--!
두억시니가 다른 한쪽 주먹을 또 다시 음속을 초월한 속도로 날려 왔다.
'또 강해졌어.'
무결은 갈수록 강해지는 녀석의 힘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기죽지 않고 소리쳤다.
"끈질긴 녀석. 이거나 받아라!"
후웅- [트리슈라]의 한 손이 기묘한 움직임을 그렸다.
마치 검을 쥐고 두억시니를 베어가는 듯한 움직임.
하지만 [트리슈라]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트리슈라]의 움직임이 두억시니를 베기 직전, [빛의 날개]들이 움직였다.
위잉- [빛의 날개]들은 순식간에 [트리슈라]의 손에 모여들어 하나의 커다란 [빛의 검]을 형성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이- 위잉- 그대로 두억시니의 주먹을 '베어' 냈다.
"끄아아악!!"
두억시니가 피를 뿜어내는 손을 쥐고 뒤로 뛰어 물러났다.
* * *
"와아아아-!"
다시 둘의 공방을 관전하던 사람들 사이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팽팽한 것 같던 로봇과 도깨비의 공방 사이에서 드디어 유효타라 할 만한 것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하지만 신지혜 혹은 지휘관 서동재 같은 몇몇 경험 많은 베테랑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패턴대로라면……."
옥상에서 싸움을 관전하던 신지혜가 중얼거렸다.
"더 안 좋은데."
동시에 상황통제실에서 화면으로 싸움을 관전하던 서동재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