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93 이틀 전, 강하나의 이지스 클랜에 손님이 찾아왔다.
자신을 '엘리스'라 밝힌 금발 백인 의미녀는 신무결의 전령임을 자처하며 무언가를 전달하러 왔다고 했다.
"'베히모스 월드'를 여는 오픈키입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보인 것은 일종의 문신이었다.
갈색의 선으로 어지러이 이루어진 문신.
"오픈키를 양도가 가능하게 마법회로 형태로 개량하느라 작동 조건이 조금 까다롭게 변했습니다. 일회용 이고 마법사끼리만 권한 양도가 가능합니다. 무결 씨가 아마 신지혜 씨라면 이것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강하나는 다짜고짜 신무결의 부탁 이라며 신지혜를 불러달라는 엘리스의 말에, 그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결 씨가 보안상의 이유라며 제게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거든요. 다만 신지혜 씨가 이것을 갖고 계시다가 신호가 오면 사용해 달라 그러셨습니다."
엘리스는 신지혜에게 마법회로를 각인하고는 다시 돌아갔다.
그것이 '베히모스 월드'의 오픈 권한이 신지혜에게 생긴 경위였다.
그리고 신지혜는 강하나가 죽는 시점과 거의 동시에 한 가지 메시지를 받았다.
-'베히모스 월드' 오픈 부탁합니다. 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의 하늘 위에서요.
신무결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그녀는 강하나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근처의 가장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갔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라면.'
그라면 가능할지도.
비록 무결의 곁에서 그를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신지혜는 그를 요주의 인물로 여기고 한시도 관찰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 누구보다 똑똑한 그녀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서 신무결이 벌인 일들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품어보기로 했다.
'보여주세요. 당신이 이제까지 준비한 것을.'
신지혜는 소망을 담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대전시 외곽.
천지사방이 몬스터로 가득한 가운데, 놈들의 하늘 위로 거대한 차원 문이 열렸다.
츠츠츠측- 거대한 구조물이 차원문을 찢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새하얀 선체(船體).
뾰족하게 튀어나온 선두(船頭).
배의 모양을 한 그것은, 그러나 배라기에는 유례없이 컸다.
배의 가장 앞부분 일부만 튀어나왔음에도, 땅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그 배의 선두 부분에서, '번쩍' 빛이 일었다.
퀴융- 엄청난 크기의 광선이 대지를 주욱 긁었다.
콰아아아앙---!!
결계가 뚫린 부근으로는 대전시로 들어가려는 몬스터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한 번의 공격에 휩쓸린 몬스터들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의 몬스터가 새하얀 광선에 맞아 녹아버렸다.
"크와아앙!!"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공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까마득한 하늘 저 위편으로부터 거대한 막대기가 쏟아져 박혔다.
지구 저 바깥에서부터 쏘아져 온 위성포격무기.
[신의 지팡이]였다.
콰앙, 콰앙---!!!
연이어 [신의 지팡이]가 쏟아져 내렸다.
결계의 균열 부근에 새까맣게 몰려 들어 있던 몬스터들이, 한 개의 [신의 지팡이]가 떨어질 때마다 수백 마리씩 뭉텅이로 쓸려나갔다.
전함의 레이저 포격과 [신의 지팡이]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덕에 [도시방어결계]의 균열 부근이 깨끗이 청소되었다.
그리고 그때, 차원을 반쯤 뚫고 나온 거대한 배로부터 검은 점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검은빛으로 변해 신지혜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 와…….
옥상에서 있던 신지혜의 앞에 내려 앉았다.
모르는 얼굴.
"많이 늦은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목소리 역시 낯설었지만, 신지혜는 단번에 눈앞의 이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강하나 씨는 어디 있죠?"
신무결이었다.
이한철의 모습을 한.
신지혜는 그녀가 죽었다고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들어 대전시 한쪽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그 말과 함께 무결이 검은빛이 되어 날아갔다.
신지혜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탁합니다."
어느새 검은 점이 되어버린 무결의 등을 향해, 신지혜가 조용하게 중얼 거렸다.
* * * 쾅, 쾅!
"크윽……."
한서후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도깨비 소년으로 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아까 도깨비방망이에 맞은 덕분에 제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왼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하하하, 나랑 놀아야지 어디 가는 거야!"
도깨비 소년이 한서후를 쫓아가며 고양이가 쥐 가지고 놀듯 한서후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쾅!!
도망치는 한서후의 바로 옆으로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도깨비방망이가 내리꽂혔다.
그 파편이 튀어 한서후를 덮쳤지만 한서후는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뒤집어썼다.
직격은 면한 덕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의 온몸이 먼지로 뒤덮였다.
"하하하! 먼지덩어리로 변했네!"
도깨비 소년이 깔깔 웃어대며 한서후를 놀렸다.
쾅, 광!!
도깨비 방망이가 연속으로 한서후를 내려쳤다.
한서후는 필사적으로 방망이를 피해 다녔지만 가끔가다 방망이에 난 날카로운 뿔들에 몸이 찢겨 나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수록 그의 움직임이 점점 굼떠졌다.
턱, 쿠르릉.
한서후는 도망치다 건물 파편에 걸려 땅바닥을 심하게 굴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어질.
현기증이 일며 도로 제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이제 한계인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는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뭐야, 더 도망 안 가?"
무너진 건물 잔해 위.
피어난 먼지를 뚫고 도깨비 소년이 다가왔다.
털썩.
한서후는 큰대자로 누워 버렸다.
'보스, 아니, 은인님.'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는 할 만큼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유언처럼 마지막 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복수…… 부탁합니다."
"자, 쓸모를 다한 장난감은 죽어야지."
도깨비 소년이 머리 위로 도깨비방망이를 치켜들고.
한서후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쳤다.
쾅!!
크레이터가 생기며, 공간 자체가 터져 나갔다.
그런데.
"음……?"
한서후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복수는 해드리겠습니다."
낯선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일단 좀 쉬십시오. 아, 강하나 씨 위치는 알려주시고요."
"아……."
그 말에 한서후는 눈앞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달랐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기……."
한서후는 손을 들어 올려 저 멀리 보이는 건물 잔해를 가리키는 것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오오, 오오, 오오오!!"
도깨비 소년이 흥분했다.
"너, 그때 그 녀석이구나!! 며칠 전에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던 녀석!"
놈은 더없는 진미를 찾은 미식가처럼 흥분한 얼굴로 한서후를 안고 있는 무결에게 달려들었다.
"네가 오길 기다렸어!! 나랑 놀자~!"
놈이 무결에게 달려가며 도깨비방망이를 던졌다.
가볍게 던진 듯했지만, 도깨비방망이는 엄청난 기세로 날아가며 음속을 돌파했다.
쾅---!!
방망이가 날아간 경로의 주변 잔해가 소닉붐으로 인해 터져 나갔다.
무결은 한서후를 업은 채로 강하나가 숨겨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며 한 손을 쭈욱 뻗었다.
콰아아---!!
그러자 음속을 초월해 날아오던 도깨비방망이가 그의 손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파직파직- 계속해서 앞으로 날아가려는 도깨비방망이의 힘과 무결의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의 힘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며, 스파크가 튀었다.
그동안 무결이 그 자리를 유유히 벗어났다.
후웅- 그 즉시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의 힘이 사라지고, 도깨비방망이가 허공을 치고 지나갔다.
"역시 넌 다른 애들과는 질이 다르구나!"
하지만 도깨비 소년이 어느새 무결의 곁으로 다가와 무결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무결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그 손을 맞받았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생기며 무결이 뒤로 튕겨 나갔다.
"아이 씨, 왜 대결을 피하는 거야!!"
그는 무결이 일부러 충돌의 힘을 이용해 몸을 내뺀 것이 불만이었다. 화끈하게 한판 붙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무결은 놈과 붙을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무결은 놈에게 대답하는 대신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부탁드립니다!"
그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검은빛 다섯 줄기가 날아 들었다.
쿠쿠쿵!
무결이 소리치자마자 하늘에서부터 다섯 명의 각성자가 떨어져 내리며 도깨비 소년을 포위했다.
"너흰 또 뭐야?"
도깨비 소년은 귀찮다는 듯이 앞을 막아선 자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귀찮다고는 하지만 꽤나 힘을 실은 주먹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눈앞의 파리 같은 놈들이 찌부러져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콰앙! 꽝, 콰아앙!!
도깨비 소년의 앞을 막아선 다섯 명의 각성자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금성철벽이라도 되는 양 도깨비 소년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오행합벽진 (五行合范陣)].
"호오?"
도깨비 소년은 마침내 무결에게 향해 있던 눈을 돌려 눈앞의 다섯 각성자를 바라보았다.
다섯 각성자가 자세를 낮추며 긴장 했다.
"듣던 것보다 더한 괴물이군."
서문그룹의 총수 서문혁이 중얼거렸다.
"아니, 그는 우리에게 저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었네. 우리가 그의 말을 제대로 믿지 않았을 뿐이지."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길이 그의 말을 맞받았다.
"그의 말대로 [오행합벽진]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못 이겼을 것 같습니다. 끔찍한 놈입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 위청천이 긴장한 눈으로 도깨비 소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음, 잠시 놀기엔 나쁘지 않은 녀석들이네."
어느새 다시 허공을 날아온 도깨비 방망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며, 도깨비 소년이 중얼거렸다.
"그럼 어디 놀아볼래?"
놈이 오행진을 짠 중국의 다섯 고수에게 달려들었다.
* * *
"아악!! 오른쪽 방어선 뚫렸습니다!"
"치유계 헌터들에게로 몬스터들이 몰려듭니다!"
"어떻게든 막아!!"
대전시 시청 인근에 모여든 헌터들은 연신 몰려드는 몬스터들에 의해 괴멸되기 직전이었다.
대전시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간신히 지키던 최후방어선 마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김소유는 치유계 헌터로서 후방 지원을 맡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으로, 거대한 악마형 몬스터가 다다랐다.
김소유는 까맣게 자신의 앞을 가로 막은 몬스터를 올려다보았다.
놈이 메이스를 든 손을 김소유의 머리 위로 내려쳤다.
"안돼!!"
다른 헌터들이 그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텅!!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손이 놈의 손을 쥐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중국어가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 * * 상황통제실의 화면이 허공으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각성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중국의 헌터들이 지원을 왔습니다! 저희에게 협력하겠답니다!"
절망이 가득하던 통제실 내부에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중국 헌터들이 방어선에 도착했습니다! 위태로운 지역 위주로 우선 배치하겠습니다!"
"방어선, 지원군들 덕에 복귀되어 갑니다!"
통제실 곳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지원 온 중국의 헌터 중, 가장 위험하고 뜨거운 전장으로 날아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가장 먼저 전장에 다다른 자가 한서후를 들쳐 업은 것이 보였다.
그는 연이어 한서후와 강하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 도깨비 소년과 부딪쳤다.
놀랍게도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저자는?"
대전시 상황통제실의 모든 사람이 갑자기 도깨비 소년의 앞을 막아선 각성자에 주목했다.
"아, 이한철! 한국 출신 중국의 영웅입니다!"
상황통제실의 직원 한 명이 그의 정체를 알아채고 소리쳤다.
"저자가 왜 여기에……?"
통제실의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아무도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통제실의 모두는 그가 잠시 도깨비와 대치하더니 그 자리에 나타난 다른 헌터들에게 도깨비 소년을 맡기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건물 잔해에 파묻혀 있던 강하나를 건물 속에서 끌어냈다.
"으윽……."
모두 처참하게 망가진 강하나의 모습에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뭘 하려는 거지……?"
지휘관 서동재는 강하나를 잔해 위에 눕히는 이한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통제실의 모두가 화면 속으로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이한철이 강하나의 가슴에 손을 댔다.
따스하고 찬란한 빛이 그의 손에서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