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92 꽝, 꽝!!
강하나는 강했다.
한국 2위에 랭크되어 있던 한수경 보다도 압도적으로.
무결의 예언 같은 귀띔과 스스로의 노력, 그리고 다소간의 운으로 그녀는 무결의 전생에서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인생 최고의 강함'을 계속해서 경신 중이었던 한서후가 온다 해도 그녀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깨비방망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강하나의 몸 이곳저곳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한서후 또한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도깨비 소년을 상대해 나갔다.
이성을 잃은 그에게는 강하나와 도깨비 소년 모두 적이었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 도깨비 소년이 더욱 압도적인 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한서후와 강하나는 합공인 듯 합공 아닌 합공을 펼칠 수 있었다.
"하하하! 그래, 이 정도면 잠깐 동안은 안 심심할 거야."
도깨비 소년이 신나게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 댔다.
도깨비방망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건물이 대여섯 개가 통째로 박살나고 있었고, 한서후와 강하나의 몸은 어디 한 군데씩 터져 나가고 있었다.
한서후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성한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 덕에 온몸에서는 땀과 피가 기화하는 수증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성치 않은 것은 강하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은빛 몸은 마치 유리처럼 몸 곳곳이 깨져 나가 있었다.
그곳으로 깨진 곳으로부터 은빛의 피가 새어나와 대기 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정령화한 그녀의 피는 대지의 기운과 성질이 유사해, 대기 중에 피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엄청난 고통을 극한의 정신력으로 참아내며 계속해서 도깨비소년을 상대해 나갔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이다…….'
그녀가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있었다.
하늘과 땅 모두 몬스터로 가득한 대전시 외부.
하지만 그중 어느 한 마리도 [도시방어결계]를 뚫고 대전시 내로 들어 오지 못하고 있었다.
결계로 여유를 얻은 덕에 도시 내의 몬스터가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도시방어결계가 도시 밖 괴물들의 침입을 저지하고 자신과 한서후가 이 끔찍한 괴물을 막는 동안, 헌터들이 필사적으로 도시 내 몬스터들을 사냥한 것이다.
이제 조금의 여유만 더 생긴다면 도시 내의 몬스터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도시 밖의 몬스터들을 막아낼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무너져 버린 방어선을 정비하고, 부상을 치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방어결계를 공수양용으로 전환해 반격을 꾀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세는 한결 나아지리라.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을 붙들고,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쩝……."
그러나 그런 강하나의 생각이.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여유만만이네?"
도깨비의 심기를 거슬렸다.
콰아앙!!
지금까지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 도깨비로부터 터져 나왔다.
강하나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훨훨 하늘을 날아갔다.
"감히 날 상대하면서 희망을 생각 해? 기분 나빠."
강하나의 긍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나온 플러스 에너지가 음성적인 존재인 도깨비의 심기를 강하게 긁은 것이다.
강하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패착이었다.
"크아아아!"
"너 혼자로는 재미없어."
강하나가 사라진 빈자리를, 한서후 혼자 매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콰아앙!!
한서후 또한 마찬가지로 도깨비방망이에 처참하게 얻어맞아 나가떨어졌다.
"아, 짜증 나."
도깨비 소년이 기분이 나빠져서 한 곳으로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댔다.
"저깟 결계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너희한테?"
그럴 때마다 엄청난 파워의 충격파가 날아가 도시방어결계를 두들겨대 었다.
꽝!! 꽝!!
"크롸아아아!!"
도시 밖에서 결계를 긁어대고 있는 수천수만 마리의 몬스터도 뚫지 못하던 결계를.
꽝!! 쩌억- 도깨비 소년이 원거리에서 박살 내고 있었다.
꽝!! 째앵- 결계 한쪽이 기어코 깨지고 말았다.
그쪽으로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 왔다.
"안돼!!"
간신히 도시 내의 몬스터들을 진압 해 가던 헌터들이, 결계 한쪽을 뚫고 벌떼처럼 흘러들어 오는 몬스터들에 절망했다.
도시에는 또 다시 절망이 내려앉고 있었다.
"재미없어, 재미없어."
도깨비 소년은 쓰러져 있는 강하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 숨이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마치 칭얼대는 아이처럼, 도깨비 소년이 쓰러져 있는 강하나에게 계속해서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 댔다.
그녀의 왼다리가 짓이겨지고, 오른 팔이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져 폐와 심장 일부를 찔렀다.
"쿨럭쿨럭."
강하나가 힘을 내 저항하려 했지만,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도깨비방망이에 얻어맞는 와중에도, 흐려지는 눈으로 대전시를 바라보았다.
"아아악!!"
"으악!!!"
헌터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헌터 한 명에 몬스터가 서너 마리 씩 들러붙고 있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강하나의 눈에도 마침내 절망이 내려 앉았다.
'무결…….'
꽝! 꽝!!
계속해서 몸이 부서져 나가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강하지만, 어딘지 고독하고.
항상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신비로운 사내.
'당신이 있었다면, 이 상황이 조금은 나았을까요?'
그렇게 돌아올리 없는 질문을 끝으로…….
그녀의 생각이 끊겼다.
꽝!!!
도깨비 소년이 숨이 끊어져 버린 강하나의 몸을 거칠게 방망이로 쳐 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녀의 육신이 훨훨 날아가 무너져 버린 건물 잔해에 부딪쳤다.
와르르.
건물 잔해가 무너져 내리며 강하나의 몸 위를 덮었다.
도깨비 소년이 다소 속이 풀린 듯 이번에는 한서후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언니!!"
전투 일선에서 다른 헌터를 치유하던 김소유가 절규했다.
이지스 클랜들원에게 지급된 디바이스에서 강하나의 생명신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니, 언니, 언니!!"
그녀가 급하게 무전으로 강하나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 제발, 제발 대답해요!"
김소유가 절규하듯 계속해서 포기 하지 않고 디바이스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명신호가 다시 돌아오는지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한 번 꺼진 생명신호는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으어어어엉!!"
김소유가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가슴이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죽은 부모님 대신 새로운 부모 노릇을 해주었던 강하나가, 부모님처럼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부모님처럼 몬스터에게 죽어서.
"컥, 헉."
그녀가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내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소유야!"
멀리서 그 모습을 본 김치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치우야, 흑흑, 언니가, 언니가!!"
"나도 알아."
이미 김치우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 내가 언니 쪽으로 가볼게! 내가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안돼! 거기엔 끔찍한 괴물이 있어. 잊었어? 하나누나가 절대로 오지 말라 그랬잖아!"
"하지만, 하지만, 언니가……."
김치우의 만류에도 김소유는 눈물을 흘리며 '언니'라는 단어를 중얼 거렸다.
"김소유, 정신 차려!"
짝!
김치우가 김소유의 뺨을 때렸다.
하지만 김소유의 눈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충격에 미쳐가고 있었다.
그때.
"아아악! 내 팔!!"
그녀의 앞에서 싸우던 어느 헌터가 몬스터에 의해 팔이 날아갔다.
김소유의 정신이 되돌아온 것은 그 때였다.
"……치우야, 놔줘."
"안돼, 그랬다가는 또 누나한테……!"
"저분 치료해 드려야 해."
김치우는 름칫 놀라서 다시 김소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김소유는 단단한 눈을 하고 있었다.
기억해낸 것이다.
지금 이곳은 전장이고.
자신은 전장에 있는 헌터임을.
"언니의 뜻을 헛되이 만드는 못난 사람이 되진 않겠어."
김소유가 중얼거리며 김치우의 옆을 지나쳐 갔다.
김치우는 그런 김소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무너진 결계 쪽을 바라보았다.
까마득하게 많은 몬스터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조그마한 희망과 아득한 절망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김치우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도, 희망이 되어야지. 누나의 가르침대로."
김치우는 몰려드는 절망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신지혜는 까마득하게 몰려드는 몬스터 무리를, 건물 옥상에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몬스터 무리 속으로 뛰어드는 한 헌터가 보였다.
김치우였다.
그는 이미 웨어울프로 변신해 있었다.
"……."
신지혜는 말없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바보야, 지금 가면 죽어."
그녀가 마법을 캐스팅하던 도중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른 마법사에게는 극도의 집중을 요하는 마법 캐스팅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캐스팅이란 숨 쉬는 것 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덕분에 말 몇 마디에 캐스팅이 흐트러지진 않았다.
-소유가 저 뒤에 있어. 여기서 내가 막을 거야.
김치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혼자로는 막을 수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나가 도와줄 거잖아?
"응, 도와줄 거야."
-그럼 됐어. 그럼 비록 죽을지언정 개죽음은 안 되겠지. 적어도 백은 데려간…… 어?
김치우는 갑자기 그의 몸을 둘러싼 마법진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마법진이 시간결박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어어엉!!
김치우가 크게 울부짖어 자신을 구속하려는 마법의 힘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마법의 천재 신지혜의 결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누나! 이게 무슨 짓이야!!
"너를 위해서야."
신지혜가 김치우의 으르렁거림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장 이거 풀어! 난 싸…….우…….
시간이 멈추어감에 따라 신지혜가 듣는 김치우의 목소리가 늘어져 갔다.
-우…….
김치우의 시간이 '우'를 내뱉는 시점에서 한없이 늘어나 버렸다.
무전에서는 '우……'라는 소리가 한없이 길게 늘어져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지혜는 김치우를 가둔 결계를 조종해 후방으로 보내 버렸다.
어느새 결계를 뚫고 들이닥친 몬스터의 최선두가 대전시의 반을 지나와 버렸다.
엄청난 속도였다.
대전시는 이미 아비규환으로 물들어 있었다.
몬스터 군단이 지나고 있는 곳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비명 속에 죽어가고 있었고, 헌터들은 절망 어린 눈으로 하늘과 땅을 뒤덮고 있는 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시의 높은 곳에 있던 신지혜는 그런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늘을 나는 몬스터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머지않은 대전시의 미래를 암시하듯, 대전시 전체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신지혜가 말없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뻗어나온 마법회로가 옥상에서부터 쭈욱 이어져 나와 몬스터들을 뚫고, 부서진 결계를 지났다.
그리고 결계 너머의 하늘에 도달했다.
"좌표 설정 완료."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
"오픈, '베히모스 월드'."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 결계 너머의 하늘을 찢고,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신무결 씨."
그녀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