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89 갑작스럽게 도깨비같이 흉측한 형상으로 변한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순간, 도심 곳곳에서 또 다른 이변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188/215)

  기계신과 함께 189 갑작스럽게 도깨비같이 흉측한 형상으로 변한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순간, 도심 곳곳에서 또 다른 이변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가롭다…….'

  한 사내가 입에 풀 한 줄기를 물고 누워 있었다.

  겉보기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남이 긴 머리를 뒤로 한데 묶은 채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문제는 그것이 대전시 도로변 한 가운데란 것이었고, 수십 명의 헌터가 그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주변으로는 그의 칼에 죽은 인간들과 헌터들이 토막이 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인간들 죽이기 좋은 날씨네.'

  그는 몬스터였다.

  "……몇 명이 죽었다고?"

  "클랜원 30명가량이 저놈 손에 죽었습니다."

  한수경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죽어간 클랜원들을 위해 묵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몬스터 녀석이 패기가 넘치는군. 당한 채로 가만히 있는 건 우리 클랜의 방식이 아니지!"

  한수경이 호랑이처럼 외쳤다.

  "천랑검진을 펼쳐라!"

  '천랑검진(天浪劍陣)'은 고려클랜 이 강력한 단 한 명의 상대를 포위할 때 사용하는 검진(劍陣)이었다.

  "천랑검진, 개진(開陣)!"

  고려검수 한 명이 소리치자, 지금 이 자리에 있던 30명 가량의 고려 클랜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한가로이 누워 있는 검객 몬스터를 중심으로 특별한 방위 (方位)를 점했다.

  "호오?"

  검객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지켜봤다.

  그들의 기운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 참 재미있는 물건이로고?"

  검수가 누워 있던 상태 그대로 갑자기 흐릿한 잔상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검진을 이루던 어느 검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살기를 가득 담은 그의 검이 고려클랜의 클랜원을 베어갔다.

  그러나.

  카캉!

  클랜원의 양쪽에서 갑자기 검 두 개가 솟아나, 검객 몬스터의 검을 양쪽에서 막아냈다.

  그리고 그사이, 검객 몬스터의 목표가 된 고려클랜원이 검을 들고 검객을 찔러갔다.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인 듯한 세 사람의 완벽한 연계.

  이것이 단 한 사람을 대상으로 발동될 때 최대 효율을 발한다는 천랑검진의 묘미였다.

  검객 몬스터가 그 공격을 피해 훌쩍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 했다.

  "신기하구나, 신기해. 역시 개똥 밭이라도 이승이 좋구나. 이런 것도 다 보고."

  마력으로 긴밀하게 엮이는 검진은 처음 대한 듯, 그 검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말라. 이 검진은 네놈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펼친 것뿐이니."

  한수경이 외투를 벗어 던지며 검진 속으로 들어왔다.

  그가 아무것도 없던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검자루가 생기더니, 발검하는 그의 동작에 맞추어 검날이 스르륵 생성되었다.

  "이름은?"

  검을 꺼낸 한수경이 검객 몬스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살육에 눈 먼 자에게 무슨 이름이 있으리. 내키는 대로 부르시오."

  "좋다. 무명(無名), 내 이름은 한수경이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너를 죽여주마."

  "바라던 바요."

  30명의 고려검수를 두고 한수경이 직접 나선 이유.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일홍검류(日鴻劍流)]

  [일검낙백조(─劍落百鳥)]

  수십 개의 검기가 마치 환상처럼 나타났다.

  "아니?!!"

  한수경으로부터 '무명'이라 불린 몬스터가 깜짝 놀라며 정신없이 검을 놀렸다.

  방금 전 처음 천랑검진을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집중한 모습이었다.

  한수경이 다른 30명을 대신 나선 이유.

  그가 나서는 것이 다른 30명의 클랜원이 합공하는 것보다 효율적 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랭킹 제2위의 헌터 한수경이 직접 몬스터 사냥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 * *

  "꺄악!!"

  "고블린 떼야! 도망쳐!!"

  사람들이 정신없이 한 방향으로 도망쳐 가는 가운데, 그 반대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어두운 표정, 눈 밑에 드리운 다크 서클.

  헌터라기에는 굉장히 침울하고 의기소침해 보이는 청년 한 명이 홀로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다던 곳으로 향했다.

  "키케케케."

  "아아악!!"

  그곳에는 온몸이 검은색 일색인 고블린들이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고블린 한 마리가 곧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인간을 발견했다.

  "끼르륵."

  그 고블린이 소리를 내자…….

  거리를 약탈하던 검은 고블린들.

  그들이 행동을 멈추고 일시에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각성자란 족속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다가오고 있는 저 청년이 각성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을 사용했다.

  강적은 처음부터 모든 고블린이 합공해서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것.

  그것이 그들 검은고블린 부족의 생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키에에에엑!"

  그들의 입에서 그들의 몸색과 닮은 검은 가스가 동시에 분출되었다.

  그 가스에 닿는 건물과 거리에 있던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과일, 야채 뿐만 아니라 의자, 책상, 심지어 전봇대와 건물 외벽까지.

  모두 새카맣게 부식되는 동시에 검게 변색되어 흘러내렸다.

  하지만 청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해서 뚜벅뚜벅 걸어 그들에게 향했다.

  당연히 청년에게도 독가스가 와서 닿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청년은 물론 청년이 입고 있는 옷 또한 검은 고블린 부족의 끔찍한 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지금……."

  청년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누구 앞에서 독을 쓰는 거냐."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암기가 폭사되어나갔다.

  [만천화우 (滿天花雨)]

  [독우 (毒雨)]

  암기의 비가 날아 청년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고블린의 몸에가 박혔다.

  "끼, 끼에에엑!!"

  모든 고블린들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은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꿈틀거리다, 절명하고 말았다.

  "형의 복수…… 이걸론 아직 너무 부족해."

  청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속 해서 희생양을 찾아 걸어갔다.

  그는 신무결의 도움으로 형의 진전을 모두 이은 당문의 유일한 혈손, 당효민이었다.

  * * *

  "대전시 중구와 서구 일대에 도깨비화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발생했습니다! 헌터들이 긴급히 달려들어 제압 중이지만, 사상자가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한수경 헌터께서 대덕구 쪽에서 강력한 몬스터 하나와 교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유성구 일대는 당효민 헌터를 비롯한 군소 클랜에서 맡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쪽엔 쪽수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 대전시뿐 아니라 청주와 전주시 또한 몬스터 웨이브가 들이 닥쳤다고 합니다! 그쪽으로 간 헌터들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헌터 협회 지휘관 서동재는 계속 해서 흘러드는 보고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그는 지금 대전시의 사령탑 역할을 맡아 헌터들을 진두지휘하는 중이었다.

  "중구 서구 일대로는 예비 병력50명 파견해 주세요! 외부 경계조는 지원 말고 제자리 대기하라 전해주시고요!"

  "외부조에서 연락입니다! 시 외곽에서 몬스터들이 늘어나는 게 관찰된다고 합니다!"

  "아오! 이럴 줄 알았어!! 역시 도시 내부에서만 끝날리가 없지. 도시방어결계 얼마나 준비되어 갑니까?"

  "은하그룹에서 5분 전에 90% 가량 설치 끝냈다고 연락 왔습니다!"

  "5일 동안 설치했는데 아직도 그 정도라고요? 그럼 한나절은 더 걸린다고 생각하고 막아야겠군요. 제길, 남은 250명 전부 외곽 지역으로 지원 가라고 해주세요!!"

  "전부요?"

  "아, 이지스 클랜은 예비 병력으로 빼고요! 방어결계정보는 각 클랜에 전송했으니, 방어결계 구역 안쪽으로 몬스터가 침입하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서동재는 명령을 일단락하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근데 신무결 이 양반은 어딜 간 거야?"

  그는 헌터 협회의 지휘관이자 신무결의 팬으로서 이틀 전부터 중부 일대에 몬스터가 등장하리라 상정하고 준비해 왔다.

  그리고 당연히 더욱 많은 정보를 얻고자 신무결에게 연락을 시도 했지만 그는 이틀 전부터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미 신무결이 속한 은하그룹에도 연락해 봤지만, 은하그룹에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답답해진 그는 강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서 지휘관님.

  강하나가 지휘관 서동재의 전화를 받았다.

  "강하나 씨, 혹시 신무결 씨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무결…… 씨 말인가요?

  "예, 강하나 씨와는 그래도 얼마 전까지 연락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그렇지요.

  이틀 전 [모험가의 협곡]이 끝나고, 신무결과 함께 있었던 걸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그날 같이 경기에 임했던 강하나였다.

  "그럼 신무결 씨가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

  전화기에서는 잠시 침묵만이 흘렸다.

  그러고는 곧 조금은 침울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몰라요.

  "……강하나 씨도 모릅니까?"

  -……예, 그는 지금 완전…….

  강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행방불명 이에요.

  * * *

  "큭큭, 강하군."

  피 묻은 이파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검객 몬스터 무명(無名)이 중얼 거렸다.

  그의 몸 전체에는 자잘자잘한 검상이 수없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그의 심장을 꿰뚫은 한 줄기 검상이었다.

  "……넌 좋은 상대였다."

  역시 온몸에 자잘한 생채기를 많이 입은 한수경이 그를 애먹인 무명을 보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의 착검(着劍)과 동시에 검의 형상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무전이 도착했다.

  -로드! 크, 큰일! 컥.

  "무슨 일이냐."

  심상치 않은 무전 내용에 한수경이 심각하게 물었다.

  -거, 검객 몬스터가! 강력한 검객들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검객?"

  -이, 이파리를 물고, 머리를 뒤로 땋은 몬스터…… 크악!!

  "이봐."

  -…….

  "보고 계속하란 말이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파리…… 머리를 뒤로 땋은…….'

  한수경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 자신의 앞에서 있는 몬스터에게로 내려갔다.

  그 몬스터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음을 흘렸다.

  "짧게 다시 왔다 가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넌 뭔가 알고 있지?"

  한수경이 그에게 다가가 그에게 다시 검을 겨누었다.

  "말해라.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 가는 일인지."

  "큭큭, 여기에서 들은 말 중에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었지. 어디에서 읽어봤던 것 같은데……."

  검객 몬스터 무명이 한수경을 올려다보며 읊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그 말이 내포한 오싹한 의미에 한수경이 이를 악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더 정확하게 말해라."

  "……말 그대로야."

  검객 몬스터 무명이 미소 지었다.

  "나는 여러 명이거든."

  "……젠장."

  한수경은 자신 혼자를 상대로 20 분을 넘게 버틴 이 괴물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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