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83 '음, 블랙미슈릴 슈트가 여러 버전이 있네.' (182/215)

  기계신과 함께 183 '음, 블랙미슈릴 슈트가 여러 버전이 있네.'

  무결이 본진의 상점 카탈로그를 둘러보며 고민에 빠졌다.

  김섭강이 이제까지 구매한 아이템이 전부 골드로 환원되어 무결에게 되돌아왔다.

  무결은 그 골드로 자신에게 맞는 '아이템'을 구매해야 했는데, 상점 카탈로그에는 무결이 현실세계에서 사용하던 아이템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 무결이 애용하던 [블랙미슈릴 슈트]는 그 기능이 너무 다양해서 그런지, [블랙미슈릴 슈트-역장], [블랙미슈릴 슈트-광학은신] 등 기능별로 나뉘어 여러가지 버전으로 열화되어 있었다.

  [모험가의 협곡]에서는 이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중한 구매가 필요했다.

  '일단 내 능력치부터 확인하고.'

  무결은 손등에 적힌 자신의 스킬과 스테이터스 수치를 점검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능력이 약화된 채로 시작해, 적과 몬스터를 사냥한 경험치에 따라 스킬과 스테이터스 수치가 조금씩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온다.

  18레벨에 모든 능력치가 정상화 되니, 9레벨인 지금의 무결은 모든 능력치가 50%로 제한된 상태였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좋겠어.'

  무결이 고른 것은…… 황당하게도 부비트랩이었다.

  * * *

  "앗? 아아, 새로 입장한 각성자, 뭘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아오, 답답해! 지금 상황에서 함정 같은 거나 고르면 어쩌자는 거야!"

  "본진에서 수성하며 계속 기지나 지키자는 생각 같은데, 지금 도박 수를 걸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역전 따위는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밖에서 무결이 구입하는 아이템을 보고 있던 시민들이 답답한 마음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한때 [모험가의 협곡]과 비슷한 게임을 현실에서 즐겼던 유저들로서, 무결의 선택이 달갑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무결이 너무나 소극적인 아이템 선택을 한 걸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무결이 한때 그들이 즐겼던 게임 [레전드 오브 리그]의 초강자였던 것을.

  "어? 본진 밖으로 나가는데?"

  "그러게……? 적병들의 진격은 팀원들에게 맡기고 조솔이랑 둘이서 밖으로 나가네?"

  무결은 양금호와 강하나에게 본진 방어를 맡기고는 조솔과 함께 한국 팀 진영을 나섰다.

  "어? 그런데, 저 사람, 어떻게 저렇게 상대 시야에 안 걸리고 이동 하는 거야?"

  "듣고 보니 그러네? 상대가 감시 구슬을 설치해 놓은 지역만 교묘하게 피해서 이동하고 있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모험가의 협곡]에는 지형지물에 설치할 수 있는 [감시구슬]이라는 아이템이 있었다.

  [비밀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것을 설치해 놓으면 상대편이 [감시구슬] 주위를 지날 때 [감시구슬]을 통해 상대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무결의 진영 근처지형은 온통 적이 설치해 놓은 [감시구슬]이 가득했기 때문에 한 번쯤 적의 시야에 걸릴 법도 했건만, 무결은 교묘하게 [감시구슬]이 설치된 위치를 피해 이동하고 있었다.

  "[감시구슬]은 인식장애 마법이 걸려 있어서 [감시구슬 탐색기] 없이는 못 볼 텐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 조솔을 데려온 게 저런 이유 였구나……!"

  무결도 어쩔 수 없이 [감시구슬]이 있는 위치를 지나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 그는 조솔의 스킬 [블랭크 아더]를 이용해 그 위치를 뛰어 넘었다.

  그리고 조솔은 자신을 이동시키는 [블랭크] 스킬로 무결의 뒤를 바로 따라왔다.

  조솔은 그런 무결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바깥의 사람들'처럼 어디에 [감시구슬]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못 보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저기, 신무결 씨. 팀장님 지시라서 그대로 신무결 씨 말씀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도대체 저희만 위험하게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여기까지 와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도 싶고……."

  무결이 앞서 걷다가 그녀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 멈춰 섰다.

  "쉿!"

  무결이 입가에 손을 올렸다.

  "……."

  조솔은 무결의 말에 입을 다물면서도 그를 약간 불만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그가 할 말이 없어서 자기를 조용히 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근처에 [감시구슬]이 있습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탐색기]를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아세요?"

  조솔의 질문에 무결이 슬쩍 웃었다.

  "제가 어디 있다 왔는지 잊으신 모양이군요?"

  "어디…… 아!"

  조솔은 그제서야 생각났다.

  무결이 '바깥 세계'에 있다가 뒤 늦게 합류한 각성자임을.

  "그럼……?"

  "예."

  무결이 미소 지었다.

  "지금 설치되어 있는 [감시구슬]의 위치는 모조리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절 믿고 조용히 따라와 주세요."

  "아……. '교체 카드'가 이런 이점이 있었군요."

  조솔이 속삭이며 감탄했다.

  "적 [감시구슬]의 위치를 파악한 단 건 분명 좋은 이점이지만, 그 이점이 지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점이 지속될 동안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감시구슬]은 지속시간이 5분 남짓 이어서 적들은 계속해서 [감시구슬]을 설치한다.

  그 과정에서 [감시구슬]의 위치는 너무도 쉽게 바뀐다.

  그러니 아직 [감시구슬]의 위치가 명확할 때, 작전을 행동에 옮겨야 했다.

  무결은 [감시구슬]을 피해 챙겨 온 [초강력 클레이모어]를 지형지물 곳곳에 설치했다.

  나무 위, 나무 사이, 돌 언저리.

  그리고 정성스럽게 그것을 위장 했다.

  무결과 조솔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저 앞으로 한국 팀 진영과 가까운 [비밀상점]이 보였다.

  "저기는 안 들러요?"

  조솔이 무결을 보며 물었다.

  "아직입니다."

  무결은 그렇게 말하며 제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강하나와 양금호의 상태를 체크했다.

  시야 한쪽에 그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무결은 그들이 본진을 잘 막고 있음을 확인하고도 몇 초가 지나 일어섰다.

  "이제 가죠."

  "……?"

  "지금 저 [비밀상점] 주변에 있던 [감시구슬]이 꺼질 타이밍이거든요."

  무결이 빙긋 웃었다.

  과연 그가 말을 꺼내자마자 [비밀상점] 앞에서 '팍!'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솔이 그곳을 바라보니 [감시구슬] 한 개가 박살이 나 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 사람은 대체…….'

  [감시구슬]은 아마 이 협곡 전체에 20개가 넘게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설치된 위치는 그렇다치고 그 지속 시간까지 정확히 파악 하려면 얼마나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기억력 안 좋은 그녀로서는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무결은 [비밀상점]에서 몇 개의 아이템을 구매한 다음 조솔과 함께 본진으로 귀환했다.

  * * *

  "저 사람 고작 비밀상점에서 아이템 몇개 구매하려고 그 모험을 한 거야?"

  "부비트랩도 몇 개 설치했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참 나, 그러고 나서 본진 수성? 그걸 무슨 작전이라고! 교체 카드가 아깝다, 아까워!"

  화면으로 무결의 행동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저 신무결이 이렇게 허무하게 패배할 리가 없어.'

  무결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

  '이번에는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을 벌일까?'

  '정보'를 쥐고 있는 이들의 이목은 알게 모르게 무결 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질 팀이 움직였다.

  * * *

  "왔군."

  무결은 '초능력로' 쪽으로 진격해 오는 상대 팀 선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진 조금 앞까지 치고 나가서 [감시구슬]을 설치해 둔 덕분이었다.

  "나가죠."

  "정말 괜찮겠어요?"

  "지금 나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겁니다."

  무결이 우려하는 강하나에게 말했다.

  "후, 무결 씨 말이니 믿을 수밖에요."

  강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나가죠."

  "예? 하지만 본진의 포탑들과 함께 수성하는 게……."

  양금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4:4로 붙으면 레벨과 아이템 양쪽에서 달리는 그들의 필패였다.

  진영의 수성포탑을 끼고 싸워야만 그나마 가능성 있는 싸움.

  하지만 강하나와 신무결, 아니, 정확히는 신무결이란 자는 나가서 싸우는 것을 선택한 듯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질게요. 그러니 가요."

  강하나가 강한 어조로 팀원들을 이끌었다.

  "알겠습니다."

  대한민국 팀은 가운데 위치한 '초능력로' 쪽으로 진격해 나갔다. 그러자 의아해진 것은 되려 브라질 팀 쪽이었다.

  '뭐지?'

  대한민국 팀은 지금 압도적인 열세.

  수성만 해도 모자랄 판에, 본진 밖으로 나와서 싸우려 한다.

  '노림수가 있군.'

  브라질 팀은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새로 들어온 각성자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몰라. 조심해야겠어."

  브라질 팀의 올라운더가 그렇게 말했다.

  "일단 조금 뒤로 물러난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한국 팀 진영으로 조금 진격했던 브라질 팀의 팀원들을 조금 뒤로 물렸다.

  "나는 숲에 숨어 기습할 기회를 노리겠다. 다 이겼으니까 신중하게 가자고."

  "오케이."

  브라질 측의 올라운더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 무결이 말했다.

  "하나 씨, 9시 방향의 숲길을 틀어막아주세요."

  "예."

  강하나가 무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양금호 씨는 앞으로 여덟 발자국만 나서주시고요."

  "예."

  양금호 또한 무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한국 팀의 팀원들은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무결의 지시에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무결은 면밀하게 팀원들의 위치를 조정하며 브라질 팀과 대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 * *

  "……그걸 밟는다고?!"

  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브라질 팀과 한국 팀이 대치하는가 싶더니 브라질 측의 올라운더가 숲속으로 숨어들어 기습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능력은 [웨어아울].

  부엉이인간으로써, 숲속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을 기습 공격 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 능력을 살리려면 필연적으로 숲속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 팀이 브라질 팀과의 간격을 조금씩 벌렸다 조였다 할수록 신기하게도 그녀가 무결이 설치한 함정 쪽으로 다가가는 게 아닌가!

  기습할 만한 최적의 위치를 찾아 헤매다가 밟은 나무 위 공간이, 하필 무결이 [초강력 클레이모어]를 설치한 위치였다.

  폭음이 울렸다.

  [초강력 클레이모어]는 무결이 착용형 아이템을 포기하고 고른 소모성 아이템.

  그 가격이 엄청난 만큼 위력이 엄청났다.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순간 브라질 팀 올라운더는 거의 죽기 직전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무결은 기다렸던 그 순간을 노렸다.

  "지금!

  [하늘새의 깃털]

  사용하세요!

  "

  무결이 [비밀상점]에서 구매해 왔던 순간이동 아이템을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무결을 제외한 세 명이 동시에 [하늘새의 깃털]을 사용했다.

  세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 브라질 팀의 뒤에서 나타났다.

  "공격하세요!"

  무결이 말하자마자 세 사람이 브라질 팀의 사람들을 압박해 나갔다.

  "제길! 퇴로가 막혔다!

  "지형이 안 좋아! 지금 싸우면 안돼!"

  "그냥 한국 팀 본진으로 진격할까?"

  그들이 한국 팀 본영을 살펴보았다.

  새로 들어온 각성자 혼자 남아 있었다.

  "……저 각성자의 능력이 너무 미지수야. 방어포탑을 끼고 그가 조금만 버틴다면 우리 쪽이 무너져! 차라리 숲속으로 들어가 팀장과 합류해서 싸우자!"

  브라질 팀은 갑작스럽게 순간이 동으로 뒤를 조여들어 오는 한국 팀 각성자들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브라질 측 올라운더에게 회복 포션을 먹여 함께 싸울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고른 최악의 수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