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79 콰앙!
"끄아아악!"
안내자 녀석이 무결의 마지막 일격에 고철이 되어 나뒹굴었다.
안내자의 무력 자체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금방 처리할 수 있었다.
"쿠이나, 괜찮아요?"
무결이 쿠이나를 부축해 세우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쿠이나가 무결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꼼짝없이 죽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무결은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했기 때문이다.
무결이 피식 웃었다.
"그냥, 느낌이 좀 와서요."
헌터 생활을 하다 보면 '촉'이란 게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동되는 알 수 없는 직감. 또는 직관.
처음 '안내자'라는 녀석을 봤을 때 부터 그 직감이란 것이 '저 녀석은 적이다'를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하는 말도 얼마나 달콤한 가.
꼭 사기 치려는 자들이 하는 말처럼 단점은 숨기고 좋은 점만을 얘기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단점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는데.
그래서 그의 말대로 따르는 척을 좀 해봤다.
그를 잠재우려던 기계의 힘은 [디바이스 컨트롤]로 억제해 뒀다.
덕분에 기계속에서 무결은 정신을 잃지도, 몸이 마비되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녀석이 하는 얘기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무결은 '안내자' 녀석을 고철로 만든 손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기계 설비가 다 그 '종족'이란 놈들의 부활을 위한 거란 거지? 우리의 몸을 재료로 말이야."
-그렇습니다.
무결과 쿠이나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방 한쪽에 달려 있던 스피커에서 계속 안내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시설 안이 모두 제 영역이라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안내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랬지."
물론 무결도 알고 있었다.
저 '안내자'라는 게 녀석의 본체가 아니라는 걸.
-아셨으면 이제 당신들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란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계시겠군요?
연구 시설의 벽에서 스멀스멀 촉수 같은 기계들이 튀어나왔다.
수없이 많은 기계 촉수가 쿠이나와 무결을 잡으려 날아들었다.
하지만 무결은 여유롭게 웃었다.
"아니, 그건 잘 모르겠는걸?"
무결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를 향해 날아들던 촉수들이 전부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뭣이? 뭐야, 이게 왜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안내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여기가 이제 꼭 너만의 영역은 아닐걸?"
무결이 피식 웃었다.
촉수가 다시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하지만 그 방향은 무결을 향한 게 아니었다.
촉수들은 어느새 굳게 닫혀 무결과 쿠이나의 출입을 막고 있던 문으로 돌진해, 그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끼기긱 - [마스터, 쿠조와 다른 전사들의 위치, 찾아냈습니다.]
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 슈리. 안내해 줘."
[네, 마스터.]
"가시죠, 쿠이나."
"예, 예……."
쿠이나가 얼떨떨해하며 무결을 따라 문 밖을 나섰다.
문 밖에서는 로봇이 하나 대기하고 있었다.
무결과 쿠이나를 사로잡기 위해 왔던 로봇이었다.
[이 로봇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 그 로봇은 무결의 충실한 안내원이 되어 있었다.
-안돼, 뭐야! 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녀석이……!
그러는 동안 자칭 안내자였던 녀석은 멘붕하고 있었다.
녀석은 슈리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시스템의 15%를 장악했습니다. 마스터 주변부의 시스템부터 장악하고 있는 중인데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군요.]
"오, 그래? 제법이네."
슈리의 해킹 앞에서 이 정도로 '칭찬'할 정도로 오래 버틴 녀석은 없었는데, 과연 고대 문명의 시설다웠다.
그러는 동안 무결은 쿠조 일행이 갇혀 있는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까 무결이 들어갔던 것과 같은 기계속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푸시식- 기계가 열렸다.
"……쿠조!"
쿠이나가 남편인 쿠조의 옆에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흠칫했다.
그의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
무결은 가빠지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슈리에게 물었다.
"슈리, 이 사람들 죽은 거 아니지?"
[예, 신체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약물에 의해 몸이 마비된 것이니까요.]
'……신체적으로?'
[이들은 영혼 제거 과정이 진행 중 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미 영혼을 잃은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군. 어쨌든 일단 데리고 나가는 게 좋겠어.'
무결이 안타까운 마음이었으나 그런 감정을 감추고 쿠이나에게 말했다.
"쿠이나, 이 사람들 아직 잘 살아 있답니다. 근데 약물에 의해 쉽게 정신을 차릴 것 같지는 않군요. 일단 제가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과연 그녀는 무결의 말을 잘 알아 듣고 쿠조로부터 떨어졌다.
무결은 [공간주머니]에서 미리 챙겨두었던 여러 아이템 중 하나를 꺼냈다.
무결이 주먹만한 공 모양의 아이템이었다.
무결은 그것을 쿠조의 몸에 던졌다.
그러자마자 쿠조의 몸이 그 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이나가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무결은 나머지 전사들도 모두 같은 모양의 아이템에 봉인한 뒤 허리춤에 달아두었다.
이 아이템은 축소와 경량화 마법이 걸린 치료용 인큐베이터였다.
하나하나가 매우 비싼 일회용 아이템으로, 은하그룹에서 개발한 아이템이었다.
지금 그 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슈리가 아쉬워했다.
['쿠조, 너로 정했다' 해야 되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슈리가 꽤나 아쉬워하며 수긍했다.
'그런데 전사들 수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지금 이 방에 있는 전사의 수는 세 명.
무결은 두세 명쯤 전사가 더 있던 걸로 기억했다.
[다른 방에 있습니다만, 이쪽부터 장악하느라 아직 그쪽은 해킹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이제 그쪽도 거의 해킹이 끝나가니 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무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서는 순간.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정보생명체를 데리고 다니는 거지……? 신의 영역을 엿봤던 우리의 기술력으로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너희 문명에 있었단 말이더냐.
허탈한 듯한 안내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큭큭…… 수만 년을 기다렸던 세월이……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그리고 마침내는 뭔가를 포기한 듯 한 독백이 이어졌다.
-결코 네 뜻대로 되지는…….
놈의 말은 거기에서 끊겼다.
무결은 뭔가 불안한 느낌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슈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마스터! 놈이 모든 시설을 폭주시키고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막고는 있습니다만 한계! 아, 아…….]
삐이이이- 갑자기 시설 전체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폭 시스템, 가동됐습니다.]
슈리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아직 시설 전체를 전부 장악한 게 아니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폭까지는 몇 분이지?'
[10 분입니다.]
'위력은?'
[핵폭발 수십 배의 위력입니다.]
'10분 내로 반드시 탈출해야겠군. 애썼다.'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탈출을 위해선 이곳에 들어올 때 이용한 토템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쿠이나,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 합니다. 곧 이곳이 폭발한답니다."
무결은 그렇게 말하며 고민했다.
쿠이나에게도 [포켓볼]을 사용해야 할지.
하지만 더 이상 쿠이나가 필요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쿠이나도 여기 들어가 계십시오."
무결이 [포켓볼]을 가리키며 말했다.
쿠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결이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포켓볼]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쿠이나가 봉인된 [포켓볼]을 허리에 찼다.
"나머지 전사들은 포기해야겠군."
무결은 빠르게 달려, 지나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까 안내자가 보여주었던 '무기고'를 지나게 되었다.
이 연구 시설의 결과물들이 집약되어 있는 방.
그곳에서 무결은 엄청난 수의 방해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까만 해도 가만히 진열되어 있던 수많은 로봇들.
그것들이 모두 움직여 무결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겠군."
파파파팡!
그를 향해 엄청난 수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무결이 [둔재보]로 재빨리 뒤쪽 통로로 물러나 몸을 숨겼다.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같잖은 놈들이 시간을 끌겠다고 덤비네.'
[지금이라도 다른 경로로 돌아서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그럴 수는 없지.'
그럴 거면 진작 돌아서 갔다.
'이곳을 꼭 지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 알면서 그런다.'
무결이 정신을 집중해 [유가선공]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막대한 마력이 발로 쏠렸다.
[천보].
무결이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했다.
그가 도달한 곳은, 아까 봐두었던 에픽 아이템 [테베르크의 발] 앞. 무결이 그것에 손을 대었다.
무결의 [마스터피스]와 [디바이스 컨트롤]이 동시에 최대한으로 발휘 되었다.
그의 손과 맞닿은 [테베르크의 발]에서 파직파직 스파크가 튀었다.
그동안 무결의 위치를 재포착한 고대병기들이 무결에게 무기를 겨냥했다.
그리고- 과콰콰쾅!!
일시에 수많은 포화가 무결 하나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무결이 있던 자리가 폭연이 피어올랐다.
기계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결이 있던 위치로 공격을 퍼부어 댔다.
쿠쿠쿠궁.
건물이 흔들리며 우수수 돌 부스러기가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하하하하! 죽어라!! 죽어!!!
안내자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령 무결이 무사하다 하더라도 절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악랄한 공격.
그러나.
그 속에서 돌연 무언가가 번쩍였다.
퍽.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무결을 공격하던 기계 하나가 갑자기 상체가 사라진 채로 쓰러졌다.
-뭐……?
안내자 놈이 깜짝 놀랐다.
상체가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퍽, 퍼퍼퍼퍽.
연속해서 다른 기계들이 터져나갔다.
-뭐, 뭐야?
곧 안내자는 기계들을 터뜨리고 다니는 것이 뭔지 깨달았다.
-저게 왜……?
그들이 끝까지 완성시키지 못했던 무기 [테베르크의 발].
그것이 날아다니며 마치 발차기를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기계들을 발 끝으로 가격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계들이 우수수 터져 나갔다.
- 어떻게?!!
안내자 놈이 경악하며 소리치는 순간에도 기계들은 모두 터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채 30초도 되지 않아 무결을 공격하던 모든 기계가 전멸했다.
무결을 둘러싸고 있던 연기도 사라졌다. 그곳에는 또 다른 [테베르크의 발] 뒤에 숨어 있는 무결이 있었다.
[테베르크의 발]은 두 개로 늘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