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78
"일단 제 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설의 관리자이자 이곳으로 찾아올 여러분들을 맞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된 존재입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여러분들을 맞이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후후."
그 로봇이 인간처럼 웃었다.
"반갑군."
무결이 짧게 대답했다.
"그럼 이곳이 무엇이고, 제가 왜 이곳에 남았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로봇이 알아서 무결과 쿠이나가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우리 종족 최후의 연구 시설이었습니다."
"당신네 종족? 그렇게 구분을 두는 것을 보니 역시 인간들은 아니었나 보군."
"'인간'이 바로 여러분의 종족을 일컫는 말인가 보군요. 외형적으로는 비슷한 면도 존재했지만, 우리는 엄연히 당신들과 다르게 생긴 종족 이었습니다. 지금 이 로봇의 모양에 가깝지요."
"그렇군……. 그럼 당신들은 어느 행성에서 온 종족이지? 아, 이렇게 물으면 설명하기 어려우려나? 행성을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를 테니."
무결이 다시 한번 다리가 굵고 팔이 짧은 그들의 외형을 훑어보며 말했다.
"하하하,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무결의 질문에 안내자가 웃었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문명이 생겨나기 한참 전에 당신들의 행성에 존재했던 종족이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무결과 쿠이나가 깜짝 놀라며 반문 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당신들 문명 외에 다른 문명이 당신들의 행성에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안내자의 목소리가 웃음기를 띠었다.
무결과 은하수 일행이 큐브를 '고대 문명'의 것이라고 부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지구상에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문명의 흔적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것이 외계의 존재 이거나 혹은 이차원에서 비롯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더욱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는 인류 이외에 다른 지성체 문명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내자는 그런 가설을 부인 하고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족이었단다.
"우리는 오래전에 신들에게 도전할정도로 강대한 종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신들이 우리에게 시험을 내렸죠. 세상에 각종 괴물들이 나오는 포털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신들이 내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들어보니 어째 낯설지가 않은 시추에이 션이었다.
"혹시 그곳에 들어가 '아이템'이라 거나 '스킬' 같은 것을 얻는 그런 상황이었나?"
무결이 물었다.
"맞습니다. 여러분도 현재 그런 상황에 처해 있나 보군요."
이들도 인류와 똑같이 '던전시대'가 열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괴물들을 막을 방도가 없었죠.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 했습니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도 기술의 발전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얻은 것을 연구하고 갈고 닦았습니다. 그 모든 산물이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피라미드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소개합니다. 우리의 성과들을."
안내자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불이 밝혀졌다.
"오……!"
무결이 감탄사를 토하며 환하게 불이 밝혀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병기로 보이는 로봇들이 가득했다.
크기와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이전에 2차 재앙형 던전의 우주선에서 보았던 것들과는 모양이 많이 다르긴 했다.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디자인들.
무결이 그중 하나를 [하늘의 눈]으로 보았다.
-이름 : 틸루아 -희귀도 : 레어 -설명 : 전투용 사족보행 로봇. 지구상에 없던 기술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호오.'
로봇에 가까이 가서 손을 대어봤다.
'슈리, 어때?'
그리고 속으로 슈리에게 로봇에 대해 물었다.
[이 정도면 현재까지 우리가 개발한 것을 조금 웃도는 성능을 낼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솔직히 조금 애매했다.
'되게 열심히 연구했다 그래서 성능도 되게 뛰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임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이곳에 있는 것들을 잠깐 둘러볼 무렵.
엄청난 것을 발견했다.
'이건……?'
그것은 조금 웃기게도 '발'이라 부를 수 있는 모양의 것이었다.
무결의 키만한 '발' 한쪽이 기계의 형태로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무결이 [하늘의 눈]으로 살펴본 정보는 결코 웃기지 않았다.
-이름 : 테베르크의 발 -희귀도 :에픽 -활용도 : SS -설명 : 고대 종족이 최후의 최후 까지 매달려 연구하던 결전병기의 '테베르크'의 일부.
설명은 간략했으나 희귀도와 활용도가 엄청났다.
무결이 홀린 듯이 '테베르크의 발'에 손을 올렸다.
파직- 손끝에서 기이한 불꽃이 튀었다.
"제대로 보셨군요."
안내자가 무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최후의 최후 까지 지켜내고 개발한 보물입니다. 우리 종족을 구할 최후 병기였죠. 이 연구 시설 자체가 그것을 지키고 연구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
무결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테베르크의 발'에 손을 대고 있었다.
"여러분에게 그것과 이 시설을 물려주는 것이 바로 저의 역할입니다."
안내자가 '테베르크의 발'을 마음에 들어 하는 무결을 흡족한 듯이 바라보았다.
"…왜지?"
무결이 '테베르크의 발'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왜 우리에게 이것을 물려주려는 거지?"
무결이 안내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우리의 뒤를 이은 종족이 우리와 같이 멸망의 길을 걷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뿐인가?"
무결이 조금 미심쩍다는 듯이 안내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내자가 조금 망설이는 듯 입을 열었다.
"복수…… 때문입니다."
"복수?"
"예. 우리 종족을 멸망시킨 신들에 대한 복수. 우리는 당신네들이 말한 '던전시대'를 무사히 거치는 것이 신들에게 얼마나 큰 복수가 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던전시대'를 무사히 거침으로써 신들에 대한 복수를 완성했으면 합니다. 우리를 멸망시킨 신들에 대한."
안내자 로봇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군."
"이제 설명은 다 드린 것 같군요. 어떠십니까? 우리의 유산을 받으시겠습니까?"
안내자 로봇이 무결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이걸 거절하면 바보짓이겠지? 승낙한다."
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가 무결과 쿠이나를 다시 피라미드의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권한을 양도받으실 분은 이곳에 누우십시오."
안내자 로봇이 웬 기계 같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됐습니다."
쿠이나가 고개를 저으며 무결을 바라봤다.
"그러십니까? 그럼 남은 한 분께서 누우시겠습니까?"
안내자 또한 무결을 바라봤다.
"그러지."
무결이 순순히기계에 누웠다.
위잉- 그 위로 뚜껑이 덮였다. 그리고 기계가 작동되었다.
* * *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한 안내자가 쿠이나 쪽을 돌아 보았다.
그의 눈에서 새파란 안광이 빛났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 그게 무슨……."
"여기까지 당신들 '인간'들을 데려온 것은 모두 당신의 공입니다. 그 동안 제 지시에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시라니요? 전 그런 걸 따른 적이……."
그 순간 쿠이나가 말을 멈추고 굳었다.
"이 현상은……?"
그녀가 소위 정령과 '소통'하며 보는 신기 어린 영상.
호수 속에 이곳으로 통하는 열쇠인 '토템'이 묻혀 있던 것도, 무결을 이 피라미드로 안내한 것도 모두 이런 영상을 언젠가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으로는 갑자기 한 가지 영상이 지나가고 있었다.
밀림에 떨어진 쿠조와 전사들. 그들을 사냥하는 몬스터.
처절하게 저항하지만 결국 하나둘 몬스터들에 사냥당한 쿠조와 전사들.
그리고…… 이 피라미드로 그들을 물고 들어오는 몬스터들.
쿠이나가 바들바들 떨며 안내자를 바라보았다.
"이, 이 영상…… 뭐죠? 왜 갑자기 지금 이런 영상이……."
"그것은 모두 제가 보여드린 영상 입니다."
안내자가 말했다.
"그, 그렇다면 지금까지……?"
"예, 지금까지 당신이 보신 영상 모두가 제가 보여 드린 영상입니다."
"그, 그런……."
지금껏 자신이 정령과 소통하며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던 쿠이나가 주저앉았다.
"우리 종족은 '영혼'을 다루는데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이용해 외부 세계에서 우리 세계를 잇는 끈을 만들어두고 있었죠. 몇 세기 전부터 당신처럼 '영혼'에 민감한 존재들이 꼭 나타나더군요. 우리는 당신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었고, 다행히 당신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더군요. 당신네 종족은 그런 점에서는 참 순진한 것 같습니다."
"그, 그럼 방금 본 영상은! 내 남편과 전사들은 어떻게 된 거죠?"
"그것 또한 보신 대로입니다. 밖에 우리 종족의 기지를 지키도록 뿌려 놓은 '가디언'들이 그들을 저에게 잘 데려다주었습니다. 우리 종족의 선조들이 프로그램해 둔 대로요."
"그럼 어서 저를 그들에게 데려다 주세요!"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안내자가 빙긋 웃었다.
"그들 또한 지금 영혼교환장치에 들어간 저분과 마찬가지로 기계에 들어가 계시거든요. 우리 선조들의 부활에 꼭 필요한 분들이라 이제는 당신과 만날 수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우리를…… 속인 건가요?"
쿠이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안내자를 바라보았다.
"자, 당신도 이제 어서 기계에 들어가십시오. 어서 우리 종족의 일원이 되셔야죠."
쿠이나가 안내자에게서 서서히 뒷 걸음질을 쳤다.
그러다가 몸이 슥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앞으로 다시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계속에서 영혼을 잃고, 빳빳한 인형이 되어버리는 쿠조와 무결, 그리고 전사들.
며칠이 지난 후, 그들은 마침내 눈을 뜬다.
눈에서 저 안내자가 흘리는 것 같은 새파란 귀화를 흘리며.
고대 종족의 부활이었다.
"이것이 당신들의 미래입니다."
안내자가 씨익 웃으며 쿠이나에게 말했다.
"마, 말도 안돼……."
영상을 모두 본 쿠이나가 현실을 부정하며 뒷걸음질 쳤다.
것이 튀어나와 쿠이나의 몸을 구속 했다.
"저항은 소용없습니다. 이 시설 안은 모두 제 영역이니까요."
그렇게 그가 쿠이나를 무결이 들어간 기계 옆에 놓인 또 다른 기계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쿠이나는 처절하게 발악했지만, 결국 기계의 뚜껑이 닫혔다.
아니, 닫히려 그랬다.
콰아아앙!!
무결의 기계가 터져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닫혔을 것이다.
쉬이익…….
하얀 연기가 기계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온몸에 꽂힌 선들을 뽑아내며, 무결이 걸어나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가 목을 우드득 꺾으며 안내자에게로 다가갔다.
"우선 좀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