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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76 (175/215)

  기계신과 함께 176

  "쿠조! 저건 나도 못 막아!"

  무결이 외쳤다.

  저게 오아시스에 다다른다면 [플라스마 링]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저 모래더미에 휩쓸린다면 볼 것도 없이 남은 부족민들은 모두 몰살이었다.

  "모두 빨리 들어가! 빨리빨리!!"

  쿠조가 부족민들을 재촉했다.

  오아시스 전역에서 몰려들던 부족민들이 허둥지둥 서둘러 게이트 쪽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모래의 파도가 다가오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대로라면 많은 사람이 모래더미에 파묻힐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쿠조가 날듯이 뛰어 아직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부족민들에게로 달려갔다.

  "세잔! 게이트 앞에서!!"

  쿠조가 부족의 전사 한 명에게 외쳤다.

  세잔이라 불린 전사가 그의 말대로 게이트 앞에 대기했다.

  "받아라!!"

  "으아아악!!"

  쿠조가 느린 속도로 달려오던 부족민 하나를 냅다 집어 세잔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헙!!"

  세잔이란 전사가 깜짝 놀라며 그 부족민을 받으려 점프했다.

  부족민을 받은 그가 가까스로 착지 했다.

  세잔이 부족민을 풀어주는 것을 본 쿠조가, 그동안 납치(?)한 다른 부족민을 집어서 던졌다.

  이번에도 세잔이 가까스로 그 부족민을 받아 들었다.

  "무식한 방법이군."

  무결이 그 모습을 보며 끌끌 혀를 찼다.

  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란 첨에는 틀림이 없었다.

  "비켜 보세요."

  무결은 세잔이 한 사람 한 사람 힘겹게 받아내는 것을 보고 그를 밀어내었다.

  그리고 그 대신 쿠조가 던지는 사람들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쿠조가 한층 더 열을 올리며 오아시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던져대었다.

  그는 무결이 사람들을 잘 받아낼수록 이상한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한층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잡아 던져대었다.

  "아니, 이상한 데 승부욕 발동하지 말란 말이다."

  그의 속내가 너무 빤히 보여 무결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사람들을 빨리 던져대는 건 지금으로서는 올바른 선택이었다.

  설령 잘못 떨어져서 한두 군데 부러진다 해도 빨리 게이트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하는 게 백만 배는 나았으니까.

  무결 또한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까지 써가며 계속해서 날아드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받아내었다.

  무결이 받은 사람들은 부족의 전사들이 인솔해서 재빨리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전사들도 각성자의 육체를 이용해 빠르게 부족민들을 날랐다.

  쿠르르르-- 그동안 광활한 사막을 달려온 모래의 파도가 마을 언저리까지 다가왔다.

  오아시스 마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더 빨리!! 빨리!"

  쿠조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허겁지겁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쿠이나! 당신도 어서 들어가시오!"

  쿠조가 쿠이나에게 소리쳤다.

  "전 족장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는 것을 보고 들어가겠어요!!"

  쿠이나가 소리쳤다.

  쿠조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으나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녀의 고집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족민들이 모두들어가고 이젠 전사들이 게이트에 들어갈 차례였다.

  위이잉- 무결이 허공을 떠다니던 모든 [플라스마 링]을 회수하는 동안 거의 모든 사람이 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콰콰콰콰콰콰- 오아시스의 외곽에서부터 모든 것을 파괴하며 다가온 모래의 파도는 이제 게이트의 코앞이었다.

  "더 이상 안 되겠어! 쿠이나, 어서 들어가시오!!"

  쿠조가 다급하게 쿠이나를 보며 소리쳤다.

  쿠이나도 전사를 제외한 모든 부족민이 들어갔으니 이쯤이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게이트를 넘으려 했다.

  그러나…….

  샤라락- 모래의 파도에서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모래의 창이 게이트로 발을 내딛던 쿠이나를 스쳐 지나갔다.

  "꺄악!!"

  쿠이나가 그 바람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가 허공을 날았다.

  모래 파도 속에서는 계속해서 모래의 창이 뿜어져 나왔다.

  샤락- 샤라락- 그 창은 전사들, 무결과 쿠이나, 쿠조에게로 날아들었다.

  "커억, 컥."

  창에 꿰뚫린 전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창은 아기에게도 날아들었다.

  "안돼!!"

  쿠이나가 눈에 핏발이 곤두선 채 다급하게 아이를 받아 안고는 창에게서 등을 돌렸다.

  "쿠이나!!"

  쿠조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하지만 쿠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늦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부인과 아이가 저 모래의 창에 꿰뚫려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이 스쳐 갔다.

  절망감이 그를 엄습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세상이 느려진 것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그들을 향해 날아들던 모래의 창과 모래의 파도, 그리고 살아남은 모든 사람의 움직임까지.

  금방이라도 아이와 자신의 부인, 그리고 전사들을 꿰뚫을 듯하던 모래의 창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심지어 다가오던 모래의 파도 또한 그 속도가 느려져 있었다.

  '뭐지……?'

  쿠조는 알 수 없는 이 기현상에 눈을 부릅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현상이 그들의 주변에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다가오던 모래의 파도는 그 속도를 잃지 않았다.

  콰콰콰- 머리 위 하늘로 모래의 파도가 스쳐 지나갔다.

  모래더미가 그들을 뒤덮어떨어질 듯하다가, 그들을 감싼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속도가 느려졌다.

  단지 그들 주위를 둘러싼 공간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모래가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덕분에 사방이 모래에 뒤덮여 빛이 사라졌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쿠조는 한 줄기 빛이 뒤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가 아주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곳을 확인해 보았다.

  무결이었다.

  그가 그의 손에서 빛을 내뿜고 있는 '큐브'를 잡고, 토템의 구멍에 그것을 밀어 넣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큐브가 토템 속으로 들어갔다.

  찰칵.

  큐브와 토템이 맞물려지는 동시에.

  화악- 세상이 변했다.

  * * *

  "음……?"

  무결이 뒤바뀐 세상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위를 보고 아래를 봐도.

  이곳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사막 오아시스의 풍경이 아니었다. 축축한 늪지.

  넓은 나뭇잎을 가진 활엽수들.

  무결은 옆에 있던 나무를 빠르게 박차고 올라갔다.

  나무 꼭대기에 서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역시나, 방금 보았던 풍경들이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밀림이군."

  높디높은 나무들이 우거진 늪지.

  확실히 밀림이었다.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한 건가? 흠, 슈리."

  [네, 마스터.]

  "이곳의 좌표가 어떻게 되지?"

  [이곳은 인공위성의 신호가 닿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지구가 아닌가 보네."

  간단하게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 결론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무결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건……?"

  하늘 끝에서부터 뭔가가 무결 쪽으로 날아왔다.

  작디작은 점이 점차 크게 확대되어 왔다.

  "새……?"

  분명 새 모양이었다. 그렇긴 한데…….

  "평범한 새는 아니군."

  무결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새의 몸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마저 돌 사이의 거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끼이익!"

  놈이 비명을 토해내며 입을 벌렸다.

  지잉- 그리고 그 입에서 검은색 레이저가 토해져 나왔다.

  "아니, 잠깐만!"

  무결이 화들짝 놀라며 눈앞에 역장을 생성해 내어 그것을 막았다.

  그가 손쉽게 그것을 막아내자, 새가 잠시 제자리에서 날갯짓하며 무결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뒤로 돌아 날아가 버렸다.

  무결이 전투태세를 풀고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아까 큐브를 꽂아 넣었던 토템이 그 자리에서 있었다.

  무결은 토템에서 큐브를 빼 챙겼다.

  그리고 이제 어떡할까를 고민하려던 순간, 귓가에 스치는 짧은 비명을 들었다.

  '이 목소리는…… 쿠이나?'

  무결이 빠르게 밀림을 헤치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몇 초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핏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 또한.

  모두 쿠이나의 것이었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어.'

  무결이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뭔가가 이동한 흔적이 있었다.

  발자국으로 보아 사람이 이동한 흔적은 아니었다.

  '쿠이나를 데리고 사라졌어.'

  무결이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흔적을 따라 잠시 달리자 쿠이나를 납치한 '것'의 꽁무니를 잡을 수 있었다.

  '……사자?'

  겉모습의 형태는 영락없는 사자였다.

  하지만 아까의 새가 그렇듯,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돌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모양의 사자였다.

  그리고 그 크기가 실제 사자의 몇 배나 될 정도로 컸다.

  녀석의 입에는 쿠이나가 정신을 잃은 채로 물려 있었다.

  '아직 죽진 않았어.'

  팔에서 피를 흘리고 있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무결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녀석에게 접근한 다음, 기습을 가했다.

  파앗- 녀석의 목이 [라이트 세이버]에 잘려나갔다.

  무결은 녀석의 머리가 떨어져 내리는 순간 정신을 잃은 쿠이나를 받아 들어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쿠당탕탕…….

  녀석의 머리가 바닥에 굴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몸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있었다.

  그리고…….

  스르르륵.

  녀석의 머리가 방금 있었던 일을 역재생한 것처럼 그대로 다시 올라와 목이 있던 자리에 붙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녀석이 화가 났는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크르르릉……?"

  하지만 녀석은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녀석의 주변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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