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75 무결이 허공의 역장을 박차 쿠조의 오아시스 위로 올라섰다. (174/215)

  기계신과 함께 175 무결이 허공의 역장을 박차 쿠조의 오아시스 위로 올라섰다.

  그가 손바닥 위에 [공간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나와라."

  [공간주머니]의 입구가 서서히 벌어지더니- 위이잉- 그 속에서 벌떼처럼 많은 [플라스마 링]들이 튀어나왔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수백수천 개의 [플라스마 링]이 벌집에서 나온 벌들처럼 날아올라 몬스터들에게로 흩어졌다.

  "으, 아아악!"

  한 전사가 팔이 부러진 채 주저앉아 눈앞을 팔로 가렸다.

  그 위로 [어스 웜]이 달려들어 그 전사를 찢어발기려 했다.

  위잉- 서걱.

  잠시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전사가 의아해져서 팔을 내리고 앞을 보았다.

  머리를 잃은 [어스 웜]이 보였다.

  털썩.

  어스 웜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일은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위잉- 서걱, 서걱.

  수많은 [플라스마 링]이 하늘을 날며 오아시스 주위의 몬스터를 베어 내고 있었다.

  "이, 이건……?"

  몬스터들과 죽기살기로 다투던 전사들이 갑작스럽게 상대할 대상을 잃고 무기를 내렸다.

  상대하던 몬스터들이 모두 어디선가 등장한 퍼런빛 괴물체에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퍼런 물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위이잉- 보라색에 가까운 수천 개의 파란빛이 오아시스 주변을 둘러싸 회전했다.

  오아시스로 다가오려던 몬스터들은 예외 없이 그 빛에 닿을 때마다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이건…… 정녕 정령의 도움인가!"

  전사들은 그 빛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나타난 정령들의 빛이라 생각 했다.

  자신들이 섬기던 정령께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빛.

  전사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을 돕는 정령에 대한 예의의 표시였다.

  쿠조 또한 입을 벌리고 놀라운 표정으로 눈앞의 기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이 일을 벌인 것이 무결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것이 정령의 이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어지는 무결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쿠조, 전사들 전부 뒤로 물려!"

  무결이 소리치자마자 쿠조의 몸을 둘러싼 정령의 형상이 사자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 상태로 쿠조가 포효했다.

  "전사들, 물러나라!!"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의 포효를 들은 전사들이 뒤로 후퇴했다.

  "크에에엑!"

  몬스터들이 전사들을 따라오려 했으나 수천 개의 [플라스마 링]이 그들을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서걱- 서걱- 지하로 침투하려던 몬스터들조차 예외 없이 땅을 파고든 [플라스마 링]에 걸려 흙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후, 일단 급한 불을 꺼놓긴 했는데."

  양손을 들고 집중하고 있던 무결이 손을 내렸다.

  그리고 옆구리 어림에 걸려 아까부터 신비한 흰빛을 내뿜고 있는 '큐브'를 바라보았다.

  "흐음…… 찾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만.]

  큐브가 이렇게 흰빛을 뿜는 것은 처음 보았다.

  무언가 큐브가 반응할 만한 것이 이 근처에 있다는 증거.

  "에휴, 애써 찾긴 했는데 지금은 탐색할 여유가 없구만."

  무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마어마하게도 몰려오는군."

  오늘은 몬스터들도 이 오아시스 주변에서 인간들을 지워 버리고자 작정했는지,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가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무결은 쿠조에게도 그 광경을 보여 줄 필요를 느꼈다.

  "쿠조."

  "뭔가?"

  무결의 아래서 무결을 지켜보던 쿠조가 무결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 했다.

  "이리 올라와서 한번 봐라."

  무결이 쿠조의 앞에 역장을 생성해 주었다.

  쿠조가 그곳에 발을 디디자 무결이 역장을 띄워 올렸다.

  쿠조가 무결과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오자 무결이 지평선을 가리키며 쿠조에게 말했다.

  "자, 봐라."

  쿠조는 할 말을 잃고 지평선 너머로부터 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잖나. 얼른 마을을 대도 시로 옮기지 않으면 모두 죽을 거라고."

  무결이 한숨을 쉬며 쿠조에게 말했다.

  이것은 비단 이곳 이집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국, 한국, 유럽할 것 없이 이미 변방의 작은 마을들은 몬스터들에 의해 사라졌고, 또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인류는 각국의 대도시들만이 남아 몬스터들로부터 인간을 지켜내고 있었다.

  던전 시대가 열린 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미 지구는 더 이상 인간들의 것이 아니었다.

  쿠조는 무결의 말에도 아무런 말 없이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아직도 마을을 옮길 생각이 없나?"

  무결이 그런 쿠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늦지 않았나."

  쿠조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어딘지 체념한 듯한 느낌이었다.

  "네 저 놀라운 기술도 끊임없이 사용할 수는 없을 터. 결국 우리들은 모두 죽게 되겠지."

  저 멀리서부터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

  그들로부터 부족민들을 지킬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다."

  무결이 그런 쿠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플라스마 링]을 저렇게 무한정 펼쳐놓을 수는 없었다.

  안에 내장된 에너지가 다하면 저것들도 결국 힘을 잃을 수밖에.

  하지만 무결에게는 [플라스마 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법이 있단 말인가?"

  쿠조가 무결을 돌아보며 놀랍다는 듯이 눈을 치떴다.

  "네가 결단만 한다면 네 부족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겠다."

  "그게 정말인가?"

  쿠조가 눈을 크게 치떴다.

  "그렇다."

  "그, 그렇다면……."

  무결은 쿠조가 당장에라도 '그렇게 해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쿠조는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쭈뻣거렸다.

  "시간 없으니 빨리 결정하라."

  무결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와서도 망설이는 쿠조가 그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좋다. 부탁한다."

  쿠조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무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쿠조의 의사 결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무결이 아래를 바라보니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무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보."

  쿠조가 침중한 눈빛으로 그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우린 우리의 터전인 이 오아시스를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이곳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 부족의 사명! 도대체 죽어서 정령들께 어떤 낯을 보일 것이기에 이곳을 떠난단 소리를 하고 계신 겝니까!!"

  작은 몸집과는 별개로 엄청난 기백이 그녀로부터 흘러나왔다.

  "여보, 아니, 족장."

  쿠조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으면 일족의 사명이고 뭐고 아무것도 지킬 수가 없소. 일단 이곳을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선조로부터 내려온 사명을 다하는 길 일 터."

  "그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무결이 자신과 쿠조가 받치고선 역장을 땅 아래까지 끌고 내려갔다.

  쿠조가 '족장'이라 부른 그 여인과 무결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30대 중반 정도의,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품안에서 놀라 울고 있는 아이를 어르면서도 흔들림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무결과 쿠조를 올려다보았다.

  한데 그녀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무결을, 아니, 정확히는 그가 든 '큐브'를 두 눈에 담은 순간이었다.

  "그, 그것은……!"

  그녀는 무결이 땅에 마저 내려오자 마자 허겁지겁 무결에게 다가와 그 큐브를 살펴보았다.

  양손에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눈으로만.

  무결은 그런 그녀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녀가 '큐브'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순순히 큐브롤 보여주었다.

  "족장, 어서 부족민들을 대피시켜야 하오."

  "……."

  쿠조가 그런 그녀를 답답하게 재촉 했다.

  "……."

  그녀는 잠시 더 큐브를 관찰하더니 3초 정도 생각에 빠졌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

  "……."

  너무나도 빠른 그녀의 태세 전환에 무결과 쿠조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런 둘을 대신해 족장 '쿠이나'가 외쳤다.

  "전사들, 부족민들 모두 이곳으로 모이라!!"

  그녀의 명을 들은 부족민들이 그들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왜 그토록 우리 부족민들을 못 옮겼는지 이해했겠지? 자, 부탁한다."

  쿠조가 무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모계 사회인 그의 부족에서 족장이자 아내인 쿠이나의 명령에 따라 부족민들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무결은 이 순간만큼은 왠지 쿠조가 불쌍해 보였다.

  '꽉 잡혀 살고 있군.'

  무결은 남자들끼리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애달픈 감정을 안고 '베히모스 월드'의 게이트를 열어젖혔다.

  허공에 푸른빛 차원 게이트가 드러났다.

  "모두 이곳으로 들어가도록 하면 된다!"

  무결이 쿠조와 쿠이나를 보며 말했다.

  "모두 저 파란 것을 통과해라! 어서!!"

  쿠조가 부족민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부족민들이 그의 명령에 따라 하나 둘 게이트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사이.

  "당신은 절 따라오세요."

  쿠이나가 무결에게 말했다.

  '오.'

  무결이 눈을 빛내며 그녀를 따라갔다.

  첨벙첨벙.

  그녀는 오아시스 속으로 거침없이 발을 디뎌 물살을 가르고 나아갔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가슴께까지 물이 차자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을 멈추고 무결을 돌아보았다.

  "오아시스 한가운데에 아마 당신이 찾는 것이 있을 거예요."

  무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녀를 따라 오아시스로 올수록 손에 들고 있는 큐브의 빛이 강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첨벙.

  무결은 오아시스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 바닥을 살펴보았다.

  바닥은 온통 모래로 가득했다.

  무결은 한 손으로 '큐브'를 들고 앞세워 계속해서 모래바닥을 탐색했다.

  특정 방향으로 향하면 큐브가 빛을 내는 반면, 다른 방향으로 헤엄쳐 나가면 큐브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무결은 마침내 큐브가 가장 빛을 발하는 장소를 특정해 낼 수 있었다.

  '이곳인가.'

  무결은 그곳의 모래를 파내려갔다.

  갈수록 큐브의 빛이 강렬해졌다.

  그렇게 한 3미터를 모래를 파내려 갔을까.

  '찾았다.'

  그의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크읍."

  무결이 발바닥에 '역장'을 생성해 발받침대로 삼고, 손에 쥔 것을 잡아 있는 힘껏 위로 뽑아 올렸다.

  쿠르르르르- 엄청난 힘이 가해지며 모래 속에서 부터 뭔가가 뽑혀 나왔다.

  "흐으읍!"

  쿠르르르... 촤아아악- 마침내 바닥에 파묻혀 있던 그것이, 오아시스를 가르며 완전히 지상에 드러났다.

  그것은 무결의 키보다 커다란 토템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큐브의 크기와 딱 맞는 형태였다.

  "이걸 저기다 꽂으면 되겠군."

  무결은 큐브롤 토템에 꽂으려 했다.

  그때.

  "잠깐만요!"

  족장 쿠이나가 무결을 잠시 말렸다.

  "사람들이…… 다 대피한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쿠이나가 아직 무결의 게이트에 대피 중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아직 모든 부족민이 게이트를 통과 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그러죠."

  무결도 큐브롤 토템에 꽂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만큼,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쿠르르르르- 지축이 흔들리며 저 멀리서부터 모래의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젠장."

  무결이 혀를 찼다.

  이 근방 몬스터들의 지배자, 상급 모래정령 '지니'였다.

  쿠조와 쿠이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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