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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73 (172/215)

  기계신과 함께 173

  "가지 말고 저랑 대련하셔야죠."

  남자가 청강검을 들고 한서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서후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도사님, 이러지 마시죠. 오늘은 지쳤으니 내일……."

  스릉- 남자의 검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캉- 한서후가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도사님! 도사님, 이러지 마세요!"

  그는 계속 뒷걸음질 치며 남자의 검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않고 계속해서 한서후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한서후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만하며 어떻게든 남자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는 마치 한서후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한서후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저와 대련하기 싫으십니까?"

  "아니, 그것이 아니……."

  "그럼 죽으십시오."

  남자의 검이 변화했다.

  방어만을 위해 유유자적 흐르던 검에 살기(殺氣)가 담겼다.

  한서후가 정신없이 공격을 흘려내었다.

  다행히 살기를 띤 그의 검술은 대련 때보다 못했다.

  "도사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정신 차리십시오!!"

  한서후가 거의 애원하다시피하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서후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아아악!!"

  남자는 한서후가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내자 급기야는 괴성을 내며 선천진기를 뽑아다 쓰기에 이르렸다.

  쾅! 쾅!!

  아까까지와는 달리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서후는 계속 공격을 막아내고 피해냈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이대로면 죽겠다.'

  그렇게 생각한 한서후도 최대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쾅, 쾅!!

  목숨을 불살라 한서후를 죽이려는 남자.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가면서 그의 공격을 막아내던 한서후.

  시간이 흐르고.

  결국 결과가 정해졌다.

  쨍그랑.

  청강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억, 컥……."

  선천진기를 모조리 불태운 도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헉, 헉……."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한 한서후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 도사와 대련을 충분히 해보지 않았더라면, 저기에 쓰러진 것은 십중팔구 자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패턴을 숙지하고 기술 일부를 흡수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승리였다.

  털썩.

  한서후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는 헉헉거리며 몸을 지혈해 나갔다.

  은하그룹에서 그를 위해 준비해 준 최상급 포션은 이럴 때 유용했다.

  뽕!

  포션병 뚜껑을 열고 일부는 마시고, 일부는 상처에 들이부었다.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그런데 그때.

  "여기서 무인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청삼을 걸친 청년이 한서후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숲속에서 빠져나온.

  그는 도(刀)를 들고 있었다.

  "저와 대련을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한서후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 * *

  "없네."

  무결은 폭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한서후는 여기에서 수련에 열중하고 있어야 했다.

  "추적기는?"

  [꺼져 있습니다.]

  "젠장."

  한서후는 추적기에서 내뿜어지는 파장이 거슬린다고, 때때로 수련 중에 추적기를 꺼놓고는 했다.

  "위성 사진은?"

  [20분 전에 찍힌 게 있습니다. 20분 전만 해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전투 중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온전히 무결의 영역이었다.

  무결은 발달한 감각으로 사건 현장을 자세히 관찰했다.

  일단 시체를 뒤져보았다.

  검상으로 보아 이들은 한서후에 의해 죽은 게 분명했다.

  그의 검법에 의해 생겨난 상처였다.

  "많이도 죽였군."

  대략 다섯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거적때기 같은 옷부터 시작해서 도복과 청삼, 가사까지 주로 무협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옷이었다.

  그들을 뒤져보다 무결이 흠칫 놀랐다.

  "이 녀석들 전부 몬스터군."

  몬스터.

  본래는 인간이 아닌 괴물을 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던전속에서 나와 인간을 해치려는 놈들을 총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 범주에는 인간처럼 생긴 것도 들어간다.

  이놈들이 그런 놈이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놈들.

  몬스터.

  "……한서후도 피를 많이 흘렸어. 지금쯤 상태가 간당간당하겠군."

  무결이 얼굴을 굳혔다.

  몬스터들의 것이라기엔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쪽이군."

  한서후의 흔적이 숲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결은 그곳으로 들어가 한서후를 추적해 나갔다.

  가는 길에 쓰러진 시체들이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었다.

  계속 전투를 치르며 나아간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쾅, 과쾅.

  "찾았다."

  무결이 눈을 빛내며 그쪽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크르륵……."

  눈빛이 붉게 물들어 미친놈처럼 날 뛰고 있는 한서후를.

  챙, 챙! 과쾅!!

  그는 세 명의 무인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명은 검, 한 명은 도를 든 무인이었다.

  아니, 몬스터들이었다.

  '이 근처에 무협 던전의 던전 브레이크가 있었어.'

  무결은 한눈에 사태를 알아챘다.

  거기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었다.

  '던전은 저거군.'

  아마저기 저쪽에서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꾸역꾸역 토해내는 저 던전 인 듯했다.

  웬 동굴같이 생긴 입구에서 또 한 명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100인 격파 비무회].

  그것이 던전 이름이었다.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겠군.'

  일단 한서후는 저대로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네 명이라면 한서후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

  무결이 피터지게 싸우는 한서후와 세…… 아니, 이젠 네 명이 된 몬스터를 우회해 던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브레이크 던전! '100인 격파 비무회'에 입장하셨습니다.]

  [브레이크된 던전을 닫기 위해서는 해방 대기 중인 모든 몬스터를 처치 해야 합니다.]

  [모험가님의 건투를 법니다.]

  그 말과 함께 무결의 주위가 밝아졌다.

  이곳은 비무대였다.

  거대하고 넓은 비무대.

  "아미타불, 우리를 원망 마시게."

  "도우가 우리의 상대요?"

  "대협, 한 수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비무대 위에는 90명에 가까운 자들이 서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던전속으로 들어온 무결을 노려보고 있었다.

  본래의 던전에서라면 하나씩 상대해야 했을 자들.

  하지만 던전이 브레이크된 지금은 그런 규칙 따위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무결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살기(殺氣)가 파도처럼 무결에게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이거나 먹어라."

  무결이 [이온 캐논]을 꺼내 놈들에게 발사했다.

  피융, 피융- 이온 캐논이 한 번 이온화 에너지를 뿜을 때마다 놈들이 서너 명씩 죽어나갔다.

  던전과 던전 브레이크는 결정적으로 이런 점이 달랐다.

  무기와 스킬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는 것.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결의 상대는, 적어도 현실에는 아직 없었다.

  그 수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곧 무대 위의 모든 인물이 죽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브레이크 던전이므로 보상은 없습니다.]

  [던전에서 퇴장됩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무결이 던전 밖으로 튕겨 나왔다.

  다행히 한서후가 막 마지막 몬스터를 잡아내는 순간이었다.

  "휴…… 늦지 않았군."

  무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서후에게 다가갔다.

  "한서후 씨."

  "크오아아아!!"

  한서후가 번개처럼 무결에게 검을 휘둘렀다.

  "크읏?"

  무결이 깜짝 놀라며 그 검을 피했다.

  생각보다 검에 담긴 위력이 엄청났다.

  "그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세졌어?"

  한서후에게는 지난 시간 동안 거의 [천살성]을 다스리는 수련만 시켰다.

  간간이 던전을 클리어하게 하긴 했지만, 그것은 한서후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였을 뿐, 그의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가 들고 나온 무공은 모두 무결이 압수했었다.

  [천살성]을 다스리지 않고 설익힌 무공들은 되려 한서후에게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런데…….

  '[태극검], [이십사수매화검법], [토룡도], [오호단문도]……. 많이도 익혔군.'

  어디서 익힌 건지 그동안 무공을 엄청나게 주워 익혔다.

  그것도 하나같이 어디서 들어본 상승무공들로만.

  '이거…… 이러다 제2의 카이 나오는 거 아닐까 몰라.'

  무결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한서후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성장세라면 한서후도 곧 카이의 무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천살성]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죽여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최후의 최후야. 그리고 내가 있다면, 괜찮을 거야.'

  무결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스킬의 힘을 끌어올렸다.

  [하늘의 눈].

  그리고 그의 손에서 [라이트세이버]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신베기].

  새하얀 빛의 검이 한서후의 머리를 갈랐다.

  * * *

  "으음……."

  "정신이 드십니까, 한서후 씨?"

  무결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한서후를 보며 물었다.

  "무결 씨……."

  한서후가 무결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아……."

  드디어 기억이 돌아온 듯, 한서후가 상황을 파악했다.

  "도사님과, 다른 무인들…… 그래, 그래서 정신을 잃은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인님이 또 구하러 오셨고요."

  '은인님'은 한서후가 무결을 부를 때 가끔 쓰는 말이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무결은 계속 들어도 그 말이 영 낯설었다.

  한서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언제나 신세만 지는군요. 저는 언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한서후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이번 일은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생긴 일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무결은 한서후를 달됐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서도 많이 나아지지를 않네요. 그리고……."

  "그리고 뭡니까?"

  "아, 아닙니다."

  한서후가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무결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짐작했다.

  "무공을 이번에 많이 익혔죠? 그래서 [천살성]이 더 강해졌고."

  "어, 어떻게…… 역시 은인님 눈은 못 속이겠군요. 맞습니다."

  "음…… 안 되겠습니다."

  "역시 전 안 되겠죠……?"

  한서후가 나라 잃은 사람처럼 무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방법이 안 되겠단 겁니다. 그냥 한서후 씨, 앞으로는 [천살성]과 친해지도록 하세요."

  "……예?"

  한서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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