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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71 (170/215)

  기계신과 함께 171

  "음……."

  무결은 화려한 전각 속을 둘러보고 있었다.

  카이가 숨어 지내던 호수위 전각.

  그 위로는 핵폭탄이 떨어져도 버틸 만한 산이 방공호가 되어 버티고 있었다.

  무결은 전각을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보며 관찰하고 있었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군."

  그동안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바빠서 이곳에 와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상했다.

  카이처럼 욕심 많은 놈 거처를 뒤졌는데 있는 게 없단다.

  그래서 무결이 직접 출동했다.

  그는 전각을 샅샅이 훑어가며 내려 갔다.

  전각에서 카이의 개인 공간은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그중에 그의 집무실로 보이는데까지 보았는데도 무언가를 숨겼을 만한 곳은 없었다.

  "흐음……."

  이번에는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넓게 퍼뜨려 봤다.

  역시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흠……. 정말 없나?"

  그렇게 무결이 포기하고 기를 거두려는 그때.

  "음?"

  마지막 순간, 그의 기감에 뭔가가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호라."

  무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발에 마력을 집중했다.

  "여기렷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마력을 방사했다.

  마력이 뿌리처럼 땅을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마력을 실체화시켰다.

  콰직.

  땅이 바스라져 버렸다.

  그렇게 조각난 땅 위에서 무결이 쿵! 하고 발을 한번 구르자- 쿠르르르...

  땅이 밑으로 꺼져 내렸다.

  그가 떨어져 내린 곳은 사방이 막힌 공간이었다.

  문이나 창문 하나 없는 완전한 암굴.

  그 곳에 여러가지 물건들이 차곡 차곡 진열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하나같이 값이 나갈 것 같은 것들.

  "이야, 많이도 주워다 놨네."

  무결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근데 어이쿠, 이젠 주인이 없구나~"

  그가 [공간주머니]를 열었다.

  "이렇게 좋은 아이템들이 주인이 없어서야 쓰나~ 내가 다 좋은 주인들 찾아 줄 테니 다들 그렇게 걱정 하지 말고~"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공간주머니]에 아이템들을 쓸어담았다.

  그중에는 유니크 아이템도 세 개나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유니크 아이템이 아니었다.

  "……이건."

  한쪽에는 아이템 말고 책자들이 모여 있었다.

  책자들의 용도는 명백했다.

  "스킬북!"

  무공 스킬북이 가장 많았고, 현대 스킬북과 마법 스킬북도 보였다.

  아이템은 다른 이한테 양도할 수 있지만 스킬북은 한번 익히면 끝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희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역시 스킬북 종류 중에서도 무공이 가장 많았다.

  무결은 스킬북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그중 하나에서 문득 손이 멈추었다.

  [둔재보 (鈍才步)].

  특이한 이름의 보법이었다.

  둔재 (純才).

  즉 재주가 둔한 사람이 보법 이름으로 붙어 있다니.

  "재미있네."

  무결은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하늘의 눈]으로 그것을 살펴보았다.

  -이름 : 둔재보 -희귀도 : 유니크 -설명 : 한 둔재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개발한 경공술. 매우 간단한 무리(武理)로 구성되어 있다.

  "헐……?"

  안 그래도 무결이 전부터 가장 얻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유니크 경공서였는데, 그게 지금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둔재보]는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과는 다르게 무려 유니크 스킬북이었다.

  [둔재보]

  스킬북을 열어보니 아주 간단한 서장이 쓰여 있었다.

  -나는 둔재다.

  그래서 복잡한 무리(武理.)를 이해 하는데 서툴렀다.

  사부님과 사형제들이 나를 우둔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우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간단한 방법으로 경공술을 사용하는 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무공 이공에는 둔했지만 다행히 내게는 뛰어난 신체와 많은 내공이 있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이용해 빨리 걷고, 빨리 뛰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나머지는 어렵지 않으니 직접 보 길.

  그렇게 쓰여 있어서 무결은 페이지를 넘겨봤다.

  -둔재보의 첫 번째, 지보(地步)다.

  여러가지 그림과 함께 이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무결은 어렵지 않게 지보가 어떤 데 쓰이는 경신술인지 알 수 있었다.

  긴 거리를 오래 이동하는데 쓰이는 수법.

  말하자면 신법(身法)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신법의 이론은 어렵지 않았다.

  몇 개의 경혈(經穴)을 지나게 함으로써 내공을 증폭해 대지와 충돌시키고, 그 반탄력으로 쭉쭉 나아가는 것이다.

  다만 무결은 왜 그 경혈을 거쳐야 내공이 그렇게 증폭되고, 왜 발의 그 위치에서 기운을 내뿜어야 대지 와의 반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런 자잘한 이론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가 독자적으로 배운 무공 이론에서 출발한 방법인 듯했다.

  '둔재라 했으니 그냥 몸으로 부딪쳐서 알아냈을 수도 있겠군.'

  -두 번째는 인보(人步)다.

  인보는 보법(步法)이었다.

  주로 전투에서의 접근과 회피에 특화된 방법.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거리 단축을 일으킬 수 있는 무공이었다.

  역시 지보와 마찬가지로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보법 이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천보(天 步)였다.

  -천보는 그냥 느낌상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넣어놨다.

  나 또한 아직 해내지 못했지만, 이 이론대로라면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내 느낌을 적어놓겠다.

  이 책을 보는 자라면 해낼 거라 믿는다.

  '아니, 이 뭔 개떡 같은…….'

  무결은 저자의 무책임한 말에 어이가 상실된 것을 느꼈다.

  하지만 촉이 왔다.

  '이게 이 무공서가 유니크인 이유다.'

  이 무공서가 유니크인 이유는 바로 이 '천보' 때문일 것이다.

  인보와 지보는 유니크라기에는 임팩트가 너무 약했다.

  '대체 무슨 경공술이야, 이건?'

  무결은 열심히 천보에 대해 고심해 봤다.

  하지만 천보에 대해서는 추측이 되질 않았다.

  '가져가서 더 살펴보자.'

  무결은 일단 경공서를 품에 넣었다.

  '어쩌면 이게 내게 답이 될 수도…….'

  무결이 지금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일단 무공은 한 종류를 익히면 다른 무공을 익히기가 힘들었다.

  무공 스킬끼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그래서 지금껏 자신에게 맞는 무공서가 나타날 때까지 내공을 제외한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결이 너무 복잡한 무공서를 이해하고 수련할 여유가 없었다.

  카이같이 무공에 대한 재능이 천재인 자들은 짧은 시간의 수련만으로도 효과를 극대화하고 스킬의 능력치를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결은 무공에 대한 재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스킬 발동만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럼 성장에 한계가 있어서 나중 갈수록 힘들어 질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꽤 괜찮은 경공서를 얻은 것 같았다.

  무결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나머지 무공서도 모두 품속에 집어넣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었다.

  * * * 무결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충 중국에서 얻은 성과들을 정리 하고 이용해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은하그룹의 두 천재 은하수와 엘리스가 자리 해 있었다.

  그리고 자랑스레 이번에 얻은 재앙형 던전을 내어놓았다.

  "자, 이번에도 형한테 오픈 권한을 줄게."

  그는 은하수에게 '300인의 대난투 월드'의 입장권을 생성해 주었다.

  "저는요?"

  엘리스가 아쉬운 눈빛으로 물었다.

  "저 외에는 한 사람한테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무결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야, 다행이다. 마침 월드의 '제한 시간' 때문에 초조했었는데. 그 제한시간 끝나서 월드에서 다 쫓겨나면 거기 있는 것들 숨길 곳도 없잖냐."

  "그래서 내가 부랴부랴 월드 닫히기 전에 하나 더 구해 왔잖아."

  안타깝게도 '월드'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무결과 은하그룹의 밑천은 그곳에 묻혀 있었다.

  "근데 형, '대마수의 알'은 여전 해?"

  문득 무결이 '베히모스 월드'에 있을 '대마수의 알'이 생각났다.

  '대마수의 알'은 예전에 '어스 펭귄' 꼬맹이가 깃든에픽 등급의 알이었다.

  그 알은 지금 '베히모스 월드'의 중앙화산 용암 속에서 무려 1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었다.

  부화를 위해서.

  "아직 기미가 안 보이네."

  "그렇군."

  무결은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선물이 하나 더 있어."

  무결은 스마트워치로 은하수에게 자료를 전송했다.

  "이게 뭐야?"

  은하수가 자신의 스마트워치로 그 자료를 열어보았다.

  "응? 웬 설계도? 이건……."

  그 파일을 열어 살펴보던 은하수의 눈이 점차 동그래졌다.

  "로봇이잖아!!"

  그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쿵 하고 넘어갔다.

  실제 견본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실패했지만, 무결은 설계도를 얻는 것에는 성공했다.

  슈리가 제3정비격납고를 장악하고 그곳의 자료를 모조리 카피하며 얻은 견본인 것이다.

  물론 제1, 제2정비격납고의 자료 또한 잘 저장해 왔다.

  "이것들 다 형 가져."

  무결이 재차 보낸 자료들을 정신없이 살펴보며 은하수가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어디서 또 이런 양질의 자료를 가져온 거야!"

  "어디긴 어디야, 재앙형 던전이지."

  과연 위험하디위험한 재앙형 던전 답게 거기서 캐낼 수 있는 보상 또한 컸다.

  "거기서 한창 목숨 걸고 싸우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이런 것까지 들고 나왔어? 넌 진짜 대단하다."

  은하수가 무결에게 감탄하며 엄지를 세워주었다.

  누가 있어 그처럼 그렇게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악착같이 자료를 캐내려 했겠는가.

  그것도 이렇게나 많은 자료를.

  하지만 정작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무결은 살짝 아쉬운 듯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좀 아쉽네. 격납고 말고 무기고에도 털 만한 자료들이 많았을 텐데."

  무기고에는 또 무기에 관한 자료들이 잔뜩 쌓여 있을 터였다.

  '300인 월드'는 제1스테이지인 초원과 숲을 배경으로 월드가 생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4스테이지인 우주선을 다시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래도 이만큼 자료를 얻었으니 됐어. 탑승형 기체들의 자료 속에도 간간이 무기에 대한 설계가 들어가 있으니까 무기 자료도 충분해. 넌 욕심 좀 그만 부려도 돼."

  은하수가 그런 무결을 보며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찼다.

  "저는 정말 뭐 없나요?"

  엘리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무결을 바라보았다.

  "매번 은하수 대표님만 챙겨주시고……."

  "전에 [아크 엔젤] 줬잖아요. 아직 [아크 엔젤]도 제대로 다 구현해 내지 못하셨으면서."

  "연구할 자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구요. 한쪽 연구에서 막힌 부분을 다른 연구 자료가 뚫어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무결이 웃으며 하는 말에 엘리스가 살짝 발끈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 무결이 또 미소 지었다.

  "자, 자,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요. 이건 다 엘리스 줄게요."

  무결이 카이의 집무실 지하에서 집어온 마법 스킬북들을 엘리스에게 모조리 건네줬다.

  엘리스가 뭔가 하고 그것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다 스킬북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스킬북들을 재빠르게 집어 들며 살폈다.

  스킬북들은 하나하나가 진짜 마법서였다.

  그리고 그 속에 든 이론이 바로 그녀가 그토록 연구하던 '연구 자료'였다.

  "[플라네타리안 터널]? 헉, 이건 공간 계열 마법서?"

  엘리스가 침착한 성격답지 않게 약간 허둥거리며 마법서를 펼쳐 정신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버렸다.

  "저기, 여보세요?"

  무결이 그녀를 불러보았으나 그녀는 미동도 않고 책을 탐독해 나갔다.

  "또 저런다."

  한 가지에 빠지면 주위는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그녀의 버릇에 무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놔둬. 저게 다 무협에서 말하는 그 '무아지경'이니까. 저러다 깨달음 온다."

  은하수가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

  자신이 그래본 경험자라는 듯이.

  "네에네에. 그보다 연구성과는?"

  "아, 이번에 새로운 소자를 개발했는데……."

  그렇게 무결과 은하수가 한동안 연구성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빠!! 큰일났어요!!"

  헐레벌떡 회의실로 뛰어 들어온 것은, 어느덧 8살이 된 송애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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