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69 하지만 정작 중국을 구한 영웅을 배출했다는 한국은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뭐야, 이한철이란 헌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어?
-이 사람 랭커 목록에도 없잖아!! 어떻게 된 거야?
-이거 헌터 협회의 랭킹이란 거, 사실은 믿을 수 없는 거 아니야?
-근데 이 사람 한국에서 본 사람 있어? 어떻게 봤다는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냐?
인터넷에서 여러 추측이 난무하며 한국 헌터계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일부 비난의 화살이 한국 헌터 협회로 향했음에도, 한국 헌터 협회는 묵묵부답이었다.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할 말도 없다는 듯.
그렇게 누군가의 침묵으로 무결은 자신의 정체를 지킬 수 있었다.
* * * 한국으로 치면 국회에 해당하는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그곳에 새롭게 집권한 중국의 유력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새로운 최고지도자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최고지도자로, 이번 사태에 가장 큰 활약을 한 자가 선출 되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 발전과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설을 마친 위청천이 목을 가다듬었다.
차세대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바로 위청천이었다.
그는 지금 이곳에 있는 많은 유력 인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될 수 있었다.
이들의 복권을 도운 것이 바로 위청천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이어 차기 중국을 이끌어갈 '위청천 체제'의 인선을 발표했다.
"국무원 총리에는 리커치엔……."
그의 입에서 연이어 중국 행정조직의 책임자들이 호명되었다.
그중에 마지막에 파격적인 인선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중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에는 이한철 헌터를 임명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위청천이 입을 다물었다.
술렁술렁.
장내에 술렁임이 일었다.
현재 중국의 강력한 무력조직은 두개였다.
하나는 군사 총지휘부인 중앙군사 위원회.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각성자들의 지휘 단체인 중국 헌터 협회.
그중 하나를 중국인도 아닌 이한철에게 맡긴 것이다.
지원에 보다 특화된 한국 헌터 협회와는 달리, 중국 헌터 협회는 상하 명령체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중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 된다는 것은 곧 중국 헌터들에 대한 막강한 통솔권을 획득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는 말도 안 됩니다!!"
"그는 한국인입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만에 대해 위청천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구한 영웅이며, 수많은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위청천이 암지에서 끌어올려 준 유력 인사가 벌떡 일어서며 불만을 표했다.
중국 전통의 명문 서문그룹의 총수 서문혁이었다.
"한국인인 것은 그렇다 쳐도, 그는 아직 너무나 젊습니다! 어떤 조직을 맡기에는 경륜이 부족합니다!"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동조했다.
이어 다른 사람이 벌떡 일어서머 의견을 표시했다.
역시 중국의 명문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길이었다.
"헌터 협회장은 강한 헌터가 맡아 야하며, 이한철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카이를 쓰러뜨렸다고는 주장하나 그것이 사실인지 명확하게 증명된 것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동조하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렇게 회장 안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차.
뚜벅뚜벅.
단상 위로 누군가가 걸어 올라왔다.
"그것 참 불만이 되게 많네요."
위청천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을 중국 헌터 협회장으로 앉힌 무결이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녀석이!"
회장 안에 있던 자들이 무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안 그래도 무결에게 성이 나 있던 차에 그가 꽤나 건방진 태도로 등장한 것이다.
서문혁이나 모용길을 포함해, 이곳에 모인 대다수가 고래로부터 전승 되어온 무공을 갈고 닦은 굉장히 강력한 각성자였다.
현재는 무(武)의 시대.
그에 따라 지도자들도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그 작용을 이해하는 자들로 대체되고 있었다.
때문에 헌터 협회장이 저런 애송이 로 온다는 것이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무결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다들……."
그는 여유로운 눈으로 그들을 훑어 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좀 닥치세요."
시끄럽게 떠들던 각성자들이 일시에 입을 닫았다.
그들은 온몸을 타고 오르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소름이 돋았다.
고양이 앞의 쥐가 이러할까.
사자 앞의 토끼가 이러할까.
"어, 어떻게 이런……."
무결에게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기세만으로, 이 자리에 모인 다른 각성자들은 압도되고 말았다.
그들은 제대로 자신의 몸조차 움직 일 수 없었다.
'공포로 몸이 굳어버린 건가?'
다들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당황하며 무결을 바라보았다.
"협회장 된다고 월권하거나 할 생각 없습니다. 대부분은 중국 인민이 신부협회장께 일을 일임해 놓을 테니 걱정 마시길. 저는 '일단' 자리만 차지하고 있겠습니다."
그가 장내를 훑어보며 말했다.
"다 동북아 국가끼리 잘되자고 하는 일이니 너무 열내지 마시길."
무결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세를 풀었다.
털썩털썩.
몸이 굳어 있던 헌터들이 동시에 자리에 주저앉으며 헉헉거렸다.
'이렇게라도 장악해야 해. 시간이 없어.'
앞으로 몬스터 침공은 가속화되고, 가능하면 많은 헌터 세력을 규합해야 했다.
그래서 이런 강수를 둔 것이다.
약간의 꼼수를 쓰기도 했다.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 정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군.'
무결이 속으로 웃었다.
사실 그는 기세 혹은 마력만으로 타인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무결이 이 회장에 미리 설치해 놓은 [하이퍼키네틱 레지스터] 덕분이었다.
적절한 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이 기세만으로 그들을 묶어놓은 것처럼 연출할 수 있었다.
'이제 덤비는 놈은 없겠지.'
그의 말대로 더 이상 불만을 표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적자생존(適者生存).
그것이 바로 무림의 법칙이자, 이 무(武)의 시대의 법칙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중국 헌터 협회의 수장이 되었다.
* * * 중국 헌터들의 휴식 공간, 용유곡.
무결은 용유곡 꼭대기의 스카이 라운지에 앉아 슈리가 재앙형 던전 제 4스테이지의 우주선에서 카피해 온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무결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3차원의 홀로그램.
큐브였다.
다만 무결이 가진 것과는 그 문양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무결이 가진 '큐브'에 대한 게 아니라 아쉽긴 했지만, 확실히 정보 속에는 '큐브'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이문명의 큐브라……. 그래서, 이게 어떤 용도래?"
[이들도 정확한 쓰임새는 모르는 듯했습니다. 다만 이 안에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있는 것 같다고 하는 추측뿐이었습니다.]
"뭐야, 그럼 우리가 알아낸 거하고 크게 다를 게 없잖아."
무결이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또 뭔가 있나 보지?"
[이 큐브가 발견된 위치가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문명의 큐브가 발견된 위치가 왜 중요한데? 어차피 다른 세계잖아."
[이것 한번 보십시오.]
슈리가 홀로그램에서 큐브롤 지우고 푸른 행성 하나를 띄웠다.
무결이 그 행성의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지구잖아, 슈리?"
푸른 바다와 황녹빛 대륙.
오대양 칠대주의 지구였다.
[아닙니다.]
"이게 지구가 아니라고?"
[예, 그 스테이지의 우주선 '열월'을 건설한 문명의 행성입니다.]
"그런……. "
이제껏 겪어온 던전 중에 그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던 곳은, 대체로 지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무결은 순간 당황했다.
"이게…… 왜 지구야?"
당황한 무결이 개떡같이 말했지만, 슈리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이곳 또한 지구와 같은 행성입니다. 다만 명칭은 '지구'가 아니라 '포티아'입니다. 그곳 사람들의 말로 '푸른 행성'이란 뜻이죠.]
"계속해 봐."
[자료로 봤을 때, 이곳은 기원전 200년 정도부터 마스터의 행성인 '지구'와 다른 역사적 노선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평행 차원의 지구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평행 차원.
일정한 사건을 계기로 갈라진 또 하나의 세계다.
예를 들어 헌터 A씨는 그날 몬스터 B 무리를 토벌할까 몬스터 C를 토벌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몬스터 B 무리를 토벌했지만, 사냥에 실패하고 쪽박을 찼다.
반면 우주의 무수한 평행차원 속에는 몬스터 C를 토벌하기로 결정한 헌터 A씨도 있을 것이다.
그는 몬스터 C를 토벌한 끝에 대박이 나서 레어 스킬북을 두 개나 획득하게 됐다.
그럼 여기서 또 평행차원이 갈릴 수 있다.
어떤 평행차원에서는 헌터 A씨가 레어 스킬을 모두 익혀 능력 상승을 꾀한다.
어떤 평행차원에서 그는 그것을 모두 팔고 부자가 될 된다.
그리고 어떤 평행차원에는 스킬북 들을 모두 도둑맞아 버렸다.
이런 식으로 평행차원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무한히 분화해 나가는 서로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이 큐브의 발견 연도는?"
[자료에 쓰여 있기로, 발견 연도는 지구역법으로 대략 7세기경입니다. 그리고 큐브의 제작 예상 연도는 대략 기원전 240만 년 정도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오, 그렇다면 정말 대박이군."
이곳은 지구의 평행세계.
이곳에서 발견된 거라면 지구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다.
비슷한 위치에서.
"그래서 큐브가 있다는 곳이 어디야?"
[예, 여기입니다.]
칠대주 중 한 대륙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여긴…… 아프리카?"
지구상 두 번째로 큰 대륙이자 12 억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곳.
던전시대 이전에는 낙후된 제3세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강대한 헌터들을 많이 배출한 우수 헌터 국가였다.
화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나라는…….
"이집트?"
[맞습니다.]
어딘지 몰라서 찍어봤는데 맞았다.
"좋아,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군."
무결은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있는 어떤 유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손님이 왔다.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전형적인 서양인이었다.
"이한철 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건넸다.
-미국 헌터 협회 스카우터, 루카스 딘
"미국 헌터 협회에서 저를 왜 ..?"
무결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순진한 헌터인 척.
하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빠르군, 미국.'
과거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은 뛰어난 헌터국가로 급부상한 중국과 아프리카의 강력한 추격을 받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쌓아온 저변이 그만큼 만만찮았던 것이다.
당연히 정보력 또한 아직까지 세계 제일이었다.
'재앙형 던전의 [월드]. 그게 목적이겠지.'
[월드]는 여러가지 쓰임새가 있었다.
지구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유용한 자원의 출토에서부터 여차하면 몬스터로부터 피난할 피난처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반면에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재앙형 던전의 클리어.
이제까지 클리어된 재앙형 던전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 곳도 얼마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미국.'
예전에 미국에서도 1차 재앙형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한철 씨. 미국 헌터협회의 스카우터 루카스 딘입니다."
"이한철입니다."
이한철이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 짧게 악수했다.
"요즘 한창 활약하고 계신 모습, 잘 봤습니다."
루카스가 호의 어린 모습으로 무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봐도 호감형인 얼굴이 그가 왜 스카우터로서 활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뭐, 얼굴만 믿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무결이 그를 [하늘의 눈]으로 바라 보았다.
-이름 : 루카스 딘 -상태 : 각성자 -고유 스킬 : [호감 페로몬]
'페로몬은 이성한테나 뿌리란 말이다.'
무결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의 주변으로 옅은 마력을 페로몬이 겉돌고 있었다.
[스킬 '하늘의 눈'이 발동합니다.]
[스킬 '하늘의 눈'에 스킬 '호감 페로몬'의 효과가 억제됩니다.]
"저희 미국에서는 이한철 헌터님의 활약을 감명 깊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받는 열악한 대우에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루카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에 따라 [호감 페로몬]의 가루가 무결 쪽으로 날아왔다.
무결이 후우 입으로 그 찜찜한 가루들을 불어 날려 보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열악한 대우 때문이 아니라 [던전 월드]가 탐났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일단 조용히 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