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67 콰직- 무결의 배가 트리톤의 삼지장에 꿰뚫렸다.
"커헉."
무견이 피를 토했다.
척추가 바스라진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긴 건가?"
무결을 꿴 삼지창을 들어 올리며 트리톤이 말했다.
무결은 힘없이 축 늘어져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네가 바로 포세이돈 님 께서 찾던 그 인간인 것 같군. 그렇다면 너에게…… '그 펜던트'가 있을 테지."
트리톤이 무결의 옷깃을 뒤집으려 다른 지느러미를 들어 올릴 때였다.
"거기까지."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무결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커, 커헉!"
트리톤이 비명을 질렀다.
"이, 인간이 만든 무기가 이, 이렇게 강력……!"
트리톤이 바들바들 떨며 배로 지느러미를 움직이려 했다.
배에 이쑤시개처럼 박혀 있던 창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며 트리톤의 온몸을 마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결이 트리톤의 삼지창에 맞음과 동시에 던져 버린 자신의 삼지창이었다.
"컥, 크윽……!"
무결이 양손으로 자신의 배를 꿰뚫은 삼지창에서 자신의 몸을 뽑아 올리며 피를 울컥울컥 쏟아냈다.
그리고 정신을 애써 다잡으며 [역장]을 생성해 냈다.
역장이 위태위태하게 웅웅거렸다.
원래 역장을 형성하기 위해선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다.
그걸 [디바이스 컨트롤]로 컨트롤 하는 것이었는데, 정신이 가물가물 해지자 [디바이스 컨트롤]의 발동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가 역장 위에 앉아 입가의 피를 스윽 닦으며 손을 피가 흘러나오는 배에 갖다 댔다.
우웅- [유가선공]이 빛을 발하며 배의 상처를 치료해 나갔다.
어느 정도 피가 가라앉자 무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태하던 역장이 다시 안정되었다.
"이봐, 만화도 안 봤냐?"
무결이 점점 더 느려지고 있는 트리톤을 보며 말했다.
"'이긴 건가?'이런 건 금지어야. 죽은 적도 다시 살려내는 마법의 단어라고."
그러면서 그는 한 손으로 힘차게 역장을 밀어냈다.
아직 하반신의 감각이 제대로 돌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를 쓰는 것은 무리였다.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 '트리톤'에게 박혀 있던 삼지창에 매달렸다.
무결이 그 삼지창에 대고 중얼거렸다.
"기가볼트……."
일전에 원주에서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일시에 학살한 기술이 재현되고 있었다.
단 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로.
새하얀 빛이 무결의 손에서 터져 나왔다.
"체인 라이트닝 리액션."
그의 [공간주머니]에 담겨 있던 '큐브'가 막대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힘은 모조리 전기 에너지로 치환 되어 무결의 삼지창을 타고 트리톤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치지지지직- 트리톤의 체내가 엄청난 고압 전류에 의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부글부글.
놈이 잠겨 있던 바다 일대가 들끓어올랐다.
수증기가 발생하며 무결과 트리톤의 모습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 스테이지의 지배자 '트리톤'을 처치하셨습니다.]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후아……. 이제 진짜로 끝났구나."
무결이 역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역장은 천천히 가라앉아 빙산 위에 무결의 몸을 내려놓았다.
무결은 몸을 치료하며 계속해서 울리는 메시지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던전 '300인의 대난투'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던전이 정화되며 주변 지역에 축복을 내립니다.]
[앞으로 1년간 던전 발생지로부터 반경 1, 500km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던전에서 획득되는 카르마 포인트가 3배로 늘어납니다.]
[던전을 클리어한 모험가님께 보상이 지급됩니다.]
[첫 번째 보상이 주어집니다.]
[원하는 이벤트 아이템 하나를 선택해,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가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이벤트 아이템의 성능이 하락하지 않습니다.]
[아이템을 선택하십시오.]
1.[스톰브링어]
2.[숙련된 모험가의 이동나침반]
…….
6. [아이기스의 방패]
…….
무결이 습득한 아이템의 목록이 주륵 나열되었다.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기스의 방패]로부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내가 준 도움을 잊지 않았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고 있겠지?
아테나의 목소리였다.
"그럼요."
무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11번 [고르가스]."
무결은 마지막에 탔던 거대로봇을 선택했다.
[11 번 [고르가스]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
-잠깐!!
무결이 대답하려는 순간 아테나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아, 왜요."
무결이 피곤에 지친 목소리로 손목에 대고 물었다.
스마트워치 바로 위 손목에 장착돼 있는 [아이기스의 방패]에.
-당연히 [아이기스의 방패]를 골라야 하지 않느냐.
"제가 왜요?"
-내게 감사하다면 내 권능이 깃든 방패를 골라야 하지 않겠느냐?
"감사하긴 하지만, 도움이 많이 될 게 분명한 로봇을 놓고 잠깐 쓰다 말 아이템을 고를 정도로 감사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네 존재의 비밀을 지켜주었는데도?
"그건 당신도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그건 부정하지 않으마. 알겠다. 그럼 [아이기스의 방패]를 골랐을 때의 메리트를 말해주면 되겠느냐?
"오호,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럼 이야기가 좀 달라지지요."
무결이 속으로 씨익 웃었다.
원래 처음부터 바로 [고르가스]를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아테네의 태도가 너무 고압적이라 기를 좀 죽여볼 겸 간을 본 것이다. 다행히 아테나는 영리한 상대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각 알아채고 반응한 것이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일단 아이템 자체의 성능이 뛰어난 것은 경험해 봐서 알 테지.
"잘 압니다. 지금 당장은 활용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얼마 안가 더 좋은 아이템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런 면에서 빼먹을 기술이 많은 로봇이 제게는 더 좋습니다."
무결이 [하늘의 눈]으로 [고르가스] 와 [아이기스의 방패]를 비교해 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름 : 고르가스 -희귀도 : 이벤트 -활용도 : S -설명 : 글레이셔공화국산의 최고의 탑승형 전투 로봇. 미래기술의 집약체.
-이름 : 아이기스의 방패 -희귀도 : 이벤트 -활용도 : A -설명 : 어떤 신의 방패. 대부분의 힘이 봉인되어 있다. 마력을 주입하여 그 모양과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고르가스] 쪽이 더쓰임새가 있을 것 같았다.
근데 아테나는 아직 내놓을 카드가 더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아이템이 성장한다면?
"음?"
무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장형 아이템이란 것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던전을 들어가 활약할수록 이 아이템의 봉인이 조금씩 풀릴 것이다. 최고의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련하고 내 권능이 깃든 방패이니, 성능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아테나의 자부심 깃든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긴 하죠."
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을 풀 방법이 있다면 [아이기스의 방패] 또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일단 지금 나가도 유니크급의 성능은 충분히 낼 것이었고, 거기서 더욱 성장한다고 하면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질 염려가 없었다.
더군다나 던전을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일상이지 않은가?
그토록 방법이 쉽다면 굳이 큰 수고를 들인다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하지만 무결은 곧이곧대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르가스] 와 가치가 비슷해질 뿐입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아이기스의 방패]를 고를 이유가 아직 없어요."
무결이 좀 더 불러보라는 듯 뻗댔다.
사실 무결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긴 했다.
-쳇, 까다로운 녀석.
아테나가 혀를 찼다.
"당신도 제가 이것을 가지고 다님으로써 제 정보를 얻는 것 아닙니까? 제 위치라든지 상태라든지 하는.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보세요."
-…….
명예의 신인 아테나는 함부로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입을 열지 못했다.
무결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그것 보십시오. 제가 굳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당신에게 제 정보를 넘기면서까지 찜찜하게 이것을 들고 다녀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 짧은 순간 머리가 참 팽팽히도 돌아가는구나. 좋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제시하겠다. 하 아, 정말 내가 이런 제안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보통 신의 아이템을 얻게 되었다 하면 좋다구나, 하면서 받아들였는데 네 녀석은 정말 어지간히 욕심 많은 놈이구나.
"제가 좀 욕심이 많긴 하죠."
무결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자신의 욕심을 탓하기 시작했다면 훌륭히 협상을 진행했다는 증거다.
-네 녀석이 방패의 봉인을 풀 때 마다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카르마 포인트가 쌓일 것이다. 그때마다 그 카르마 포인트를 소모해 네 궁금한 점을 하나씩 풀어주도록 하지.
"오. 제게 정보를 푸는데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한가 보군요?"
"그렇다."
듣던 중 아주 반가운 소리였다.
안 그래도 이 세계에 관해서는 아직 궁금한 게 많았는데, 이렇게 그정보를 얻을 기회가 생기다니.
"콜. 좋습니다. 대신 질문 하나는 지금 대답해 주세요. 꼭 대답해 주셔야 하는 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저도 당신의 아이템 [아이기스의 방패]를 고르도록 하죠."
-좋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
아테나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대답이 긴 질문이므로 네가 들어야 할 말만 해주겠다. 이 세상에 벌어진 일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 세상에 벌어진 일'이라면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난 일을 말씀하시는 거겠군요."
-그렇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나는 너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좋습니다."
무결도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꽤나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
"던전지기, 선택을 바꾸겠어. 4번 [아이기스의 방패]로."
[4번 [아이기스의 방패]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이기스의 방패]가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두 번째 보상이 주어집니다.]
[던전 '300인의 대난투'가 월드화 됩니다.]
[[300인의 대난투 월드의 마스터 키]가 모험가 신무결 님에게 귀속됩니다.]
"좋아."
원하던 [월드]도 손에 넣었다.
이제야 비로소 던전을 클리어한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아테나. 하나만 더 물어도 됩니까?"
-물어도 이제 내게 남은 포인트가 없다. 정말 사소한 것이 아니면 대답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이건 사소한 질문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뭔데 그러느냐?
무결은 평소에 궁금하게 여기던 그리스 신화의 두 가지 가설에 대해 물었다.
"포세이돈이 당신에게 고백했다 차 인 겁니까, 당신이 고백했다 차인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