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66 원래 등장해야 할 녀석은 다리 8 개의 거대해양 생물, '크라켄'.
여덟 개의 다리로 빙산 위에서 있는 모험가를 압박하는 크라켄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이번 시험의 내용.
……이었을 터다.
하지만 지금 등장한 녀석은 미디어 속에 회자되곤 했던 크라켄의 모습 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뿌우우우응--!!"
크라켄이라면 적어도 문어의 형상을 하고 있었어야 할 테니.
무결의 눈앞에는 거대한 고래가 바다 위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고래는 꼬리를 발처럼 이용해 바다 위에 수직으로서 있었으며, 웬 산호로 만든 왕관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신성개입으로 인해 보스 몬스터가 이벤트 몬스터 '감시자 트리톤'으로 대체됩니다.]
['감시자 트리톤'의 힘에 페널티가 작용합니다.]
'……뭐야?'
어디선가 한번 본 시스템 메시지였다.
무결이 이걸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 내려 애쓰며 눈앞의 괴수에게 [하늘의 눈]을 사용해 보았다.
-이름 : 트리톤 -상태 : 거대 흰고래 -설명 : [물의 권능]과 [소환의 권능]을 가진 거대해양종 몬스터. 그러나 일부의 권능이 억제되어 있다. 몬스터 위험 등급 11급.
"……아 놔."
무결은 설명을 보고 탄식했다.
페널티가 적용되었단 말에도 불구하고 몬스터 위험 등급이 11급이다.
그리고 '권능'을 가진 데다가, 해양 종 몬스터다.
무결의 머리털 빠지게 하는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졌다.
전에 원주에서 상대했던 10급 '거구귀'와 '레비아탄'보다 강한 녀석이었다.
회귀 후 지금껏 무결이 본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아니, 저런 걸 어떻게 혼자 잡으라고!"
거구귀 때는 [신의 지팡이]라는 위성포격무기가 있었고, 레비아탄 때는 던전 내에 그를 도울 좋은 아이템들을 준비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준비도 없이 그보다 더한 저런 괴물을 맞닥뜨렸다.
세상 참 만만치 않다니까.
무결이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게 중요한 고비마다 변수가 튀어나온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힘 작용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뭐."
무결이 한숨을 내쉬며 전투를 준비 했다.
선공을 날린 것은 녀석이었다.
"뿌우우우응--!!"
녀석이 긴 울음을 터뜨리자마자 여기저기서 그에 화답하듯 비슷한 울음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뿌우웅-!"
"뿌우우웅-!"
그러면서 시작된 공격.
촤아악!
물을 가르고 거대한 고래들이 튀어나왔다.
'트리톤'이라는 저 녀석보다는 작아 보이지만, 개체당 3~5미터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크기의 고래들이 여섯 마리 정도 튀어나와 무결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일반적인 고래가 아니었다.
물에서 튀어나오는 속도가 총알은 연상케 할 정도였고, 다들 이마에 작은 뿔 같은 걸 달고 있었다.
저기 치였다간 피 좀 흘리는 걸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뺑소니는 사양이야!"
무결은 제자리에서 높이 점프해 그 공격들을 흘려보냈다.
콰콰쾅!!
무결을 지나친 녀석들이, 대신 비어버린 빙산의 외곽을 들이받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덕에 빙산의 일각이 깎여나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
무결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드는 전략인 듯했다.
무결은 허공에 역장을 펼쳐 그것을 딛고 섰다.
"뿌우우웅--!"
고래 형상의 '트리톤'이 다시 울음 소리를 내자, 또 다시 고래들이 무결이 떠 있는 높이까지 점프해 왔다.
거의 상공 5미터에 이르는 지점을 향해, 고래들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무결이 [이온 캐논]으로 아래에서 튀어오르는 고래들을 요격했다.
피융--!!
새하얀 섬광이 고래 한 마리를 휩 쌌다.
츄르륵- 그러자 그 고래는 물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
"젠장, 물로 이루어진 고래였군."
[이온 캐논]의 반동으로 튀로 튀어나가며 다른 고래들의 공격을 피한 무결이, 이번엔 대상을 바꿔 '트리톤'을 직접 노리고 [이온 캐논]을 쏘았다.
그러자 [트리톤]의 눈앞에 물로 이루어진 방패가 생겨나며 [이온 캐논]의 위력을 감소시켰다.
콰아아─ [이온 캐논]의 입자가 그 방패를 깨고 '트리톤'의 겉거죽에 부딪쳤다.
화르륵- 그 부분이 벌겋게 가열되며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줄기가 솟아오르더니 그 열기를 가라앉히고는 상처를 덮어버렸다.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갔다.
"아니, 아무리 11급이어도 저건 좀 너무하잖아."
공중에서 계속해서 달려드는 고래 들을 피하며 무결이 투덜댔다.
[이온 캐논]이라면 전에 상대했던 '거구귀' 나 '레비아탄'에도 충분히 타격을 줄 만한 무기였다.
그런데 저 '트리톤'이란 녀석에게는 인간으로 치면 담뱃불에 지져진 정도밖에 충격을 줄 수 없었다. 그나마도 금세 아물어 버렸고.
"하는 수 없군."
무결이 마침내 카이를 상대하면서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던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마스터 피스].
[디바이스 컨트롤] 응용기 [기계변환].
지잉- 무결의 눈앞에 다양한 형태의 무기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그는 그중에 삼지창 형태의 무기를 선택했다.
이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이 마지막 시험에서 쓰고자 낙점해 놓았던 무기였다.
[공간주머니]에서 여러 부품이 튀어나와 [이온 캐논]에 부착되었다.
반대로 [이온 캐논]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부품들도 있었다.
근데 무기가 완성되기 직전의 순간.
위이잉- 무결의 [공간주머니] 속에서 한 아이템이 튀어나오며 기이한 공명음을 내었다.
'이건…… [아이기스의 방패]?'
카이의 공격에 의해 손잡이 부분만을 남기고 박살이 났던 [아이기스의 방패]였다.
무결은 남은 잔해를 [공간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는데, 그것이 저절로 그 속에서 튀어나오며 공명음을 내는 것이다.
'뭐지……?'
무결이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아이기스의 방패]가 짙은 올리브색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 마력은 순식간에 넓게 퍼져 주변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
무결의 주변이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다.
'이건…… 결계?'
그 상태로 무결의 왼팔에 자연스럽게 [아이기스의 방패]가 장착되었다.
비록 손잡이뿐이 남지 않긴 했지만.
무결은 어쩐지 이 [아이기스의 방패]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결계가 완성된 순간.
"아테나 님----!!"
고래 괴수, 트리톤으로부터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명확한 인간의 언어.
"어찌하여 제 시험을 방해하시는 겁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무결이 팔에 든 [아이기스의 방패]에서 흘러나왔다.
무결이 흠칫 놀라 방패에서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방패는 거머리라도 되는 것 처럼 무결을 따라왔다.
-어머, 방해라니?
아름답고 기품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약간의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어나갔다.
-풋, 네 주인이 너를 이곳에 파견 한 것처럼, 나 또한 내 권능이 깃든 아이템을 이 던전에 배치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그'가 정한 규칙 속에 당신과 같은 존재들의 '던전 룰에 대한 직접 개입'은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걱정말거라. [이벤트 아이템]은 이번 시험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단다. 네가 보다시피 지금 나의 [아이기스의 방패]는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란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결계는 무엇입니까!"
-아, 이거 말이냐. 후훗.
아테나가 쿡쿡 웃었다.
-내가 이 인간이 마음에 좀 들어서 말이다. 네 주인이 이 사람에 대해서는 몰랐으면 싶구나.
"그런……!"
-하지만 네가 이자를 쓰러뜨린다면 네가 네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내가 막을 방도는 없겠지. 행운을 빌겠다.
이어 그녀는 무결에게도 말했다.
-너는 내 권능이 너에 대한 비밀을 지켜줬음에 나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 네, 감사합니다."
무결이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아테나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해 보였다.
'뭔가 내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것 같…… 아!'
무결은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런 상황, 겪어보았다.
제1차 재앙형 던전 '베히모스의 꿈'에서.
그때도 이런 이벤트 몬스터가 출현 했었다.
'아라크네.'
무결이 그때 당시 갑자기 등장해 자신을 당황시킨 이벤트 몬스터를 떠올렸다.
'그 녀석, 분명 내게서 무슨 정보를 캐내려 했었어. 나는 그 정보를 '회귀자'에 대한 것이라 상정하고 [마스터피스]의 사용을 자제했었고.'
그때의 상황이 새록새록 기억났다.
'……젠장.'
그때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마스터피스]를 사용해 버렸다.
'역시 [마스터피스]란 기술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는 건가?'
그렇기 때문에 아테나가 지금 이 순간 출현해 자신의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정보를 의미하는지 모르니 답답하군. 정말 저들이 '회귀자'란 존재를 찾아 저런 몬스터를 출현시키는 걸까?'
'신성개입'과 '아테나'란 이름을 대입해 보니 아무래도 신적인 존재들이 회귀자인 자신의 정체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여러가지 의문이 일었지만, 일단은 눈앞에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트리톤이 다시금 그에게 공격을 가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뿌우우웅-!"
트리톤이 웅장한 울음소리를 내자- 콰르릉!
갑자기 하늘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뿌우웅---!!"
녀석이 다시 울음소리를 내자, 바다와 빗속으로부터 고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가 방금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의 백여 마리가 넘는 고래가 동시에 무결에게 또 다시 총알처럼 육탄공격을 감행해 왔다.
[배틀 센스].
무결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며, 고래라는 거대한 총알들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쏴아아아-- 바다에 소용돌이가 일며, 하나의 거대한 삼지창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저건…….'
무결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그 삼지창에 시선을 보냈다.
-이름 : 포세이돈의 트라이던트(복제판) -희귀도 : 이벤트 -설명 : 포세이돈의 권능이 일부 담긴 아이템.
'저 녀석을 파견했다는 신이 누군 지 알 것 같군.'
무결이 중얼거리며 자신이 쥔 '삼지창'을 움켜쥐었다.
거대 고래 트리톤이 그 삼지창을 자신의 지느러미로 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결에게 달려들던 모든 고래들이 물이 되어 흩어졌다.
촤르르륵- 무결과 트리톤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무결이 허공을 박차 녀석에게 튀어나갔다.
트리톤 또한 자신의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작은 인간과 거대한 고래는 서로를 향해 각자가 가진 삼지창을 내질렀다.
과르르릉- 비바람 속에 번개가 쳤다.
그와 동시에 크고 작은 두 삼지창이 서로 엇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