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65 -Warning! Warning!
조종석 내부에 정신없는 비프음이 울리며 왼팔의 파손을 경고했다.
"와, 저거 장난 없네."
무결이 중얼거리며 조종간을 조작하며 카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름 : 카이 -상태 : 각성자, 매드 사이언티스트, 광폭화 -고유 스킬 : [광뇌조작(狂腦造作)], [무재(武才)]
-습득 스킬 : [천마신공], [육마황술]… (후략)…… '광폭화'라는 상태가 추가 된 것이 보였다.
사실 상태창을 살피볼 것도 없었다.
카이는 지금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눈에서 핏빛을 줄기줄기 발하고 있었으니까.
콰아아!
한 팔 잃은 무결의 로봇이 부스터를 뿜으며 카이에게서 순간적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카이가 그 뒤를 무섭게 쫓아왔다.
거대로봇은 덩치가 있어서 제 속도를 내는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반면, 카이는 체구가 작아 따라붙는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무결의 거대로봇을 따라잡은 카이가 거대한 검을 다시 한번 내려쳤다.
퀴잉- 거대한 검기가 이번엔 조종석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무결이 정신을 집중했다.
[배틀 센스].
카이의 움직임이 읽힌다.
무결이 재빨리 조종간을 조작했다.
공격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무결이 탄 가슴께의 조종석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조종석에 깊은 스크래치가 생겼다.
무결은 계속해서 정신없이 조종간을 조작했다.
그럴 때마다 카이가 휘두른 검이 정신없이 무결이 탄 로봇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잠시간 카이의 공격을 피하자 비로소 로봇에 속도가 붙으며 좀 여유가 생겼다.
카이가 조금씩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구체 모양의 우주선이 보였다.
그리고 구체를 서서히 잠식하며 다가오고 있는 자기폭풍 또한.
'장관이군.'
자기폭풍은 마치 오로라처럼 아름 답고 변화무쌍한 빛을 띠고 있었다.
뒤쪽에 보이는 거대한 행성으로부터 파생된 자기폭풍은 서서히 구체의 우주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압도적인 것은 그 자기폭풍 뒤에 그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행성이었다.
이제보니 자기 폭풍이 우주선에게 다가오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우주선 따위는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행성이 우주선을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자기폭풍이 다가오는 속도가 가속화되더라니.'
중력의 이끌림에 의해 더욱 빠른 속도로 행성 쪽으로 빨려들고 있는 거였다.
무결이 다시 우주선과 직선상에 놓여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만히 시간만 끌면…….'
그렇게 되면 이 우주 공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자신이 될 터였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으리란 것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카이에게는 아직 마지막 수가 남아 있었으니까.
카이의 붉은빛 눈빛이 어느새 다시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광폭화가 풀린 것이다.
하지만 무결은 거기에서 더욱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카이가 피식 미소 짓는 게 보였다.
그가 입으로 무결에게 뭔가를 벙긋 했다.
'내가……졌다?'
무결은 그 입모양을 읽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패배를 시인할 카이가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카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너도 졌다.'
오싹.
무결은 카이가 하려는 짓을 알아챘다.
[육마황술] 제6술(第六術)마황강림(魔皇降臨).
카이로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고요하고 검은빛이 튀어나왔다.
소름 끼치도록 불길한 검은색 마력이었다.
그 검은 마력은 카이의 온몸으로 다시 휘감겨 들어갔다.
카이의 몸을 비롯한 아이템들과 눈동자가 모두 검게 물들었다.
딱 한 가지 검은색이 아닌 것은, 카이의 흰자위뿐.
'결국 저걸 쓰는구나.'
무결이 탄식을 흘렸다.
[육마황술]의 제6단계는 한번 사용 하면 되돌릴 수 없는 금술(禁術).
스스로의 모든 것을 희생시킴으로 써 자신을 폭주시키는 마지막 보루 였던 것이다.
카이는 결국 무결을 죽이고 죽는 것을 택했다.
탁.
카이가 우주공간을 박찼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무결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무결조차 잠시 그의 신형을 놓쳤을 정도였다.
[열 걸음의 장화]에 의해 위력이 열 배로 늘어난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수법이었다.
"핫!'
무결이 헛바람을 삼키며 재빨리 회피 기동을 했다.
하지만…….
[명왕금나수].
카이의 손이 거대한 갈퀴 모양으로 늘어나며.
콰득.
로봇의 한다리를 잡아 뜯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리가 그의 손에 잡히는 순간, 무결이 로봇의 다리를 몸통에서부터 분리해낸 것이었다.
카이가 다리를 타고 올라와 조종석을 타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퀴융- 무결은 다리를 분리해 내는 추진력으로 카이로부터 다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임시방편일 뿐.
카이가 또 다시 궁신탄영을 사용해 무결의 조종석으로 돌진했다.
로봇의 남은 한 팔이 움직였지만, 카이가 움직이는 속도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카이는 로봇의 팔을 지나쳐- [마스터!]
콰아악!
로봇의 조종석 쪽으로 파고들었다.
로봇의 남은 한 팔이 뒤늦게 가슴 앞을 가렸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
우주 한편을 가로지르는 새하얀 섬광이 로봇과 카이를 관통했다.
* * * 우주선에서부터 튀어나온 거대한 빛이 5초 정도 이어지다가 가라앉았다.
[열섬].
제4정비격납고에 잠들어 있던 행성 파괴무기.
행성이나 거대 전함을 파괴하는데 쓰는, 구체형 전투함 [열월]의 주포였다.
슈리가 이제까지 발동하려 노력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위력이 강력한 만큼 [열섬]의 사용을 위해서는 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함장실과 제4정비격납고 양쪽에서 승인을 얻어내야하며, 최종적으로 중앙통제시스템의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힘들었다.]
슈리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고맙다, 슈리. 수고했어."
무결이 그런 슈리를 격려했다.
우주공간에 둥둥 뜬 채로.
마지막 '마스터!'를 부른 슈리의 외침은, 그녀의 신호였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그리고 슈리의 [열섬] 사용 가능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무결은 일부러 카이에게 조종석을 타격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로봇의 팔이 다소 늦게 움직인 것도 그 때문이었으며, 로봇의 동작이 다소 굼떴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이가 조종석으로 파고든 순간 로봇의 팔이 조종석 앞을 가린 것은, 카이가 조종석을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뒤이어 날아들 주포의 포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상태의 카이라면 1, 2초 정도의 시간만 주어져도 순식간에 로봇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었겠지만, 무결이 번 것이 바로 그 1, 2초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주포의 광선에 계속 얻어맞은 카이는…….
[축하드립니다.]
[최후의 1인이 되셨습니다.]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
물론 무결은 카이가 조종석에 침투 하기 직전에 탈출한 상태였다.
[숙련된 모험가의 이동나침반]으로.
아직 많이 남아 있던 쿨타임은 [디바이스 컨트롤] [오버쿨럭]으로 순식간에 줄여버렸다.
그 부작용으로 나침반이 망가져 버리고 말았지만 이미 상관없는 일.
"후아…… 힘들었다."
무결이 우주 공간에서 기지개를 켰다.
저 멀리서 우주선이 결국 자기폭풍에 의해 완전히 삼켜지는 것이 보였다.
[최후의 1인이 됨으로써 마지막 시험에 도전할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누군가 우주선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생각보다 '최후의 1인' 메시지가 늦게 떳다.
"후우……. 빌어먹을 시험. 난 시험이 제일 싫어."
무결은 기지개를 가라앉힌 다음, 마지막 관문에 대비해 몸 상태를 점검 했다.
지금 무결이 들어온 것은 제2차 재앙형 던전.
300명의 각성자가 들어가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재앙형 던전이었다.
하지만 정말 던전의 내용이 이것뿐 이라면, 던전 공략에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단 1명이 남으면 그 순간 던전이 클리어될 터였으니.
그럼에도 전생에서는 2차 재앙형 던전에 대한 무수한 공략 실패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훗날 2차 재앙형 던전을 클리어한 자에 의해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이 빌어먹을 마지막 시험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획득한 모든 아이템의 기능이 봉인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획득한 아이템 없이 자신의 온전한 능력으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기 아이템'을 모토로 삼은 이번 던전의 마지막 시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기템이 배제된 상태로 치러지는 시험이었다.
'오로지 아이템을 많이 얻는 자가 스테이지의 승자가 되게끔 해놓고, 그 아이템을 없앤 본신의 능력만으로 최후의 관문을 통과하게 하는 방식이라니, 상당히 악질적이란 말이지.'
일반적인 경우의 마지막 시험의 통과율이 낮을 법도 했다.
물론 무결 자신과 카이 같은 규격 외의 각성자들에게는 그렇게까지 힘든 던전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무결은 이 최후의 관문보다 카이와의 대결에 훨씬 긴장했었다. 카이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지금은, 마지막 관문 따위 그냥 의례적인 절차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배경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스테이지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1.하늘섬 2.빙산 3.바닷속
"2번 빙산."
무결은 주저 없이 2번을 선택했다.
전생에 이 던전을 클리어한 자가 2번 빙산을 통과했다 보니 알려진 정보는 이 2번에 관한 것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결은 계속 발이 허전한 우주공간에 떠 있다 보니 땅이 밟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 스테이지로 돌입합니다.]
[스테이지 배경이 바뀝니다.]
[등장할 몬스터를 물리쳐 당신의 능력을 증명하십시오.]
무결의 주변을 예의 금빛 선이 등장하며, 배경이 바뀌었다.
콰아아~ 무결의 귓가에 파도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을 바다 위로 빙산들이 조각조각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모두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은 빙산.
'예상대로군.'
무결이 싱긋 웃으며 [공간주머니]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이온캐논]을 꺼냈다.
사기템 사용이 배제되었다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던전에서 얻은 사기 아이템.
즉 던전 외부에서 가져온 아이템은 '사용 가능'이었다.
"자, 와라."
무결이 파도치는 바다를 가만히 주시했다.
"뿌우우웅-"
거대한 고동소리와 함께.
콰아아아아~ 파도를 뚫고 거대한 몬스터가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뭐, 뭐야, 저 녀석은?"
정작 가장 중요한 몬스터는, 예상 과는 다른 녀석이 등장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