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57 '간다.'
팟.
무결이 제자리에서 발을 떼었다.
길안내 인형은 아까처럼 가슴에 거미줄로 묶어둔 채였다.
갑자기 바닥에 옅게 깔린 얼음들이 솟아오르며 무결의 발목을 낚아채려 했다.
죽은 각성자의 인형이 스킬을 쓴 것이다.
꽤나 강력한 각성자였던지, 아니면 인형술사에 의해 능력이 강화된 건지 능력이 꽤나 강력했다.
하지만 무결은 [역장]을 발밑에 생성해 내 그것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피해내며 달렸다.
무결의 몸에 하얀 실이 닿아왔지만, 길안내 인형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무결이 그 부분을 각별히 신경 쓰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실과 각성자들의 인형, 그밖에 다양한 인형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무결을 공격해 왔다.
아직은 거의가 원거리 공격이었다.
포털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 은 인형의 수가 상당히 적어서 직접적으로 무결을 공격한 인형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결은 1층의 연회장에서 그의 길 안내 인형이 그러했듯, 묘기처럼 인형들의 공격을 뛰어넘어가며 간단하게 인형들을 통과했다.
천장에 달려 있던 거대한 [인형술사]가 마리오네트 십자(+) 형태로 생긴 키트를 한 차례 돌렸다.
이번엔 다른 유형의 인형들이 무결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아아아~"
합창단처럼 단체로 노래를 불러대는 인형들.
"크윽."
무결이 귀를 틀어막았다.
음파 공격이었다.
음파 공격으로 얼얼한 귀를 [유가선공]으로 닫고, 기막(氣膜)으로 둘러싸며 무결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며 전방으로 내밀었다.
무결이 [소리막대]라 이름붙인 아이템이었다.
'슈리, 처리해.'
[예, 마스터.]
이번엔 슈리가 나서서 무결이 한 손으로 꺼내 든 장치를 조작했다.
[공격 파장 분석. 소멸간섭으로 파장을 상쇄합니다.]
슈리가 그 장치로부터 무결을 공격 해 오는 파장에 대한 간섭 파장을 내뿜었다.
무결은 [소리막대]라 부르는 그것을 앞으로 쭈욱 내뻗은 상태로 달렸다.
그 끝에서부터 발생되는 상쇄 파장에 음파가 소멸되고 있었다.
무결에게는 앞의 인형들이 내뿜는 어떤 음파 공격도 닿지 않게 되었다.
인형들의 음파 공격이 통하지 않게 되자 [인형술사]가 다시 마리오네트 키트를 한차례 돌렸다.
이번에는 근접 공격에 특화된 인형들이 무결을 맞이했다.
무결이 포털 가까이로 갈수록 포털 가까이에 위치한 인형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근접 공격으로의 전환은 [인형술사]의 입장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배틀 센스].
인형들이 움직이는 동작이 하나하나 파악되며 무결이 묘기를 부리듯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자 마지막 십자가 돌아갔다. 마지막은…….
'없어?'
아무 인형도 걸려 있지 않았다.
오직 하얀 실들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결은 이것이 가장 위험한 고비임을 알 수 있었다.
실들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무결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왔다.
핑- 핑핑- 너무나 많은 수의 줄이었기 때문에 모두 피하지는 못했다.
무결의 몸에 닿은 실들 중 일부는 무결의 몸을 파고들려 했고, 일부는 무결의 몸을 묶어 구속하려 했다.
하지만 무결은 빠르게 이동하며 교묘하게 몸을 털어 자신을 묶으려는 실들을 떨쳐냈다.
어쩔 수 없이 묶이려는 실은 [곡도]로 끊어내며 달려나갔다.
그의 몸을 찌르려던 실들은 블랙미슈릴 슈트와 [유가선공]의 호신장막에 가로막혀 그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길안내 인형을 노리고 날아드는 실이었다.
실들은 어떻게든 길안내 인형에 자신의 몸을 연결하려 했다.
하지만 무결은 [아이기스의 방패]를 오로지 길안내 인형을 보호하는데만 쓰는 방식을 택했다.
위잉- 무결의 가슴 앞으로 나타난 방어막에 실들이 속수무책으로 튕겨 나갔다.
"그오오오!"
인형술사가 분노에 찬 울음을 토해 냈다.
단 한 명의 인간을 잡지 못하는데서 오는 짜증의 표현.
놈은 단 한 명의 모험가가 자신의 인형의 그물을 이토록 잘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여럿도 아닌 한 명의 모험가를 잡기 위해 모든 인형을 사용했건만, 놈은 귀신처럼 자신의 그물을 빠져 나갔다.
그런 [인형술사]에게 씨익 웃음을 날리며-
"잘 있으라고."
쏘옥.
무결이 포털을 통과했다.
* * * [제4스테이지로 돌입합니다.]
[스테이지 배경이 바뀝니다.]
[우주선 내의 구역 중 시작할 구역을 선택하십시오.]
여타 스테이지들과는 달리 간결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3D 구조도.
"이게 우주선?"
무결이 구조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눈앞의 구조도는 우주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행성같이 생겼잖아?"
완전한 구체의 형상.
우주선이라기보단 인공행성이나 인공위성이란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생김새였다.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군."
군사시설이었던 듯 거주구역의 비율이 적었다.
거주구역의 크기로 보아 아마 많아야 만 명이 안 되는 사람이 머무를 만한 우주선으로 보였다.
"음…… 어디서 시작한다?"
무결이 곰곰이 구조도를 둘러보며 고민했다.
-무기고 -정비고 -엔진실 -함장실 일단 무결이 스타트 지점으로 낙점한 곳은 이 네 곳이었다.
"일단…… 무기고와 정비고부터 털자."
무결은 무난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무장(武裝)이었으니까.
"C-51 구역으로 하겠어."
무결이 무기고의 좌표를 지정해 던전지기에게 말했다.
[C-51 구역은 입장이 불가합니다. 초록색으로 선택된 지역 중에 골라 주십시오.]
"진작 말하지."
안 그래도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 있다 했다.
그 대부분이 거주 구역이었다.
"선택지가 딱 50개군. 인원수에 맞춰 준비된 건가? 음, 어쨌든 그럼 정비고나 무기고와 가까운 쪽이 ……."
무결이 다시 지도를 살펴보며 스타트 지점을 골랐다.
"둘 다 거주구역과는 너무 멀잖아?"
그가 투덜거렸다.
"하는 수 없지. 함장실부터 들러야겠군. D-3 구역으로 하겠어."
[D-3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무결의 주변 배경이 갑자기 바뀌었다.
[스테이지 첫 입장자가 발생했습니다.]
[강력한 자기폭풍이 우주선을 한쪽 외곽에서부터 침범하기 시작합니다.]
[자기폭풍에 휘말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자기폭풍이라…….'
사람을 한곳으로 모아서로 싸우게 하기 위한 장치인 듯했다.
'서둘러 파밍해야겠군.'
무결은 심플한 구조의 방에서 있었다.
눈앞으로 깔끔한 침대와 관물대가 보였다.
"왠지 군인의 냄새가 나는군."
군사시설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각 잡혀 개어져 있는 침대가 어쩐지 군인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바금방금 전에 봐둔 함장실로 향하기 위해방을 나섰다.
그런데 그 순간.
위잉- 척.
뭔가 기계음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결에게로 한 손엔 집게발을, 한 손엔 회전 톱날을 든 로봇이 다가오고 있었다.
척척척척.
-이름 : 킬러봇 -상태 : 목표 발견 -설명 : 인간을 지키기 위해 생산 되었으나 인간 말살 명령을 받게 된 전투로봇. 우주선 내 모든 인간이 죽은 후에도 끊임없이 인간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끔찍하군."
저 로봇이 끔찍한 게 아니었다.
아니, 저 로봇도 물론 끔찍했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게 있었다.
복도에는 인간들로 보이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간들로 보인다'고 표현한 것은 시체들이 톱날 같은 것에 잘려 부분 부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 로봇과 같은 녀석들의 만행으로 보였다.
무결이 [귀검 곡도]를 날려 보내 녀석을 내려쳐 봤다.
캉!!
불꽃이 튀며 녀석의 동체가 반쯤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뿐.
녀석은 달려오던 그대로 팔을 휘둘러 무결을 베어내려 했다.
이번엔 '레일 건'을 쏘아보았다.
쾅!!!
녀석이 레일 건을 맞고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하지만 역시 그뿐.
별다른 타격을 받지도 않았는지, 놈이 그대로 척척 뛰어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단단한 놈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무결이 [귀검 곡도]와 '레일 건'을 모두 갈무리했다.
그리고.
"잘 있어라."
냅다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는 무결을 킬러봇이 뒤쫓아갔다.
하지만 킬러봇은 무결을 따라잡기에는 달리기가 너무 느렸다.
척……척.
달리기를 멈춘 킬러봇이.
-삐리삐리비릭.
어디론가 통신을 보냈다.
* * * '벌써 30분이나 지났군.'
함내 곳곳에는 킬러봇들이 퍼져 있었다.
그놈들을 이리저리 유인하고 피하며 함장실로 오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여기 너머가 함장실일 텐데.'
그는 함장실이 뒤에 있는 게 분명한 커다란 문앞에 도달해 있었다.
무결이 손을 들어 함장실 문 옆에 위치한 디바이스에 손을 대었다.
'슈리, 문 열 수 있겠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해킹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초 후.
푸식- 함장실 문이 열렸다.
'나이스, 슈리.'
무결이 슈리를 칭찬하며 함장실 문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자동방어장치 가동.
그런 목소리와 함께 엄청난 수의 레이저가 무결에게 발사되어 날아왔다.
무결이 그에 반응한 것은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동물적인 직감과 [배틀 센스] 덕분이었다.
그의 몸이 마치 잔상을 남기듯 흔들렸다.
순식간에 거의 모든 레이저 공격을 흘린 무결로부터 한순간에 30여 발이 넘는 탄환이 뿜어져 나왔다.
타타타타탕- 순간적으로 울린 총성이 몇은 후, 다시 공격을 뿜어내려던 모든 기계 장치가 침묵했다.
"휴우, 이거 아슬아슬했네."
무결의 블랙미슈릴 슈트 곳곳에 빨간 열상이 남아 있었다.
그의 몸을 스친 레이저들의 흔적이었다.
레이저 공격은 대기가 있는 곳에서는 위력이 확 줄어드는데도 이 정도 위력이면 정말 강력한 레이저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레이저에 당했군."
함장실에도 수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몸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죽어 있는 시체들.
방금 무결을 공격한 레이저에 당한 게 분명했다.
"기계들이 한순간에 적으로 돌아선 모양이네."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은 걸로 보아, 기계들이 인간들의 적으로 돌아설 때 함장실부터 장악한 것으로 보였다.
"일단……."
무결이 함장으로 보이는 자의 자리로 가, 그 시체를 밀어내고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함장용 컨트롤러로 보이는 곳에 손을 얹었다.
'슈리.'
[알겠습니다, 마스터.]
내 생각을 읽은 슈리가 함선의 데이터들을 해킹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킹할 것은…… 무결이 씨익 미소 지었다.
'이 함선의 설계도.'
이 함선에는, 아무래도 얻을 것이 굉장히 많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