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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신과 함께 155 (155/215)

  기계신과 함께 155

  "이런 이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무결이 혀를 찼다.

  조금만 빨리 열쇠를 얻었어도 손 쉽게 돌아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늦었다.

  다른 각성자들의 인형이 무결 인형이 향하는 통로 쪽으로 모여들어 퇴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빨리 돌아와.'

  무결이 길안내 인형에게 의사를 전했다.

  길안내 인형이 한 손에 열쇠를 든 채로 다른 각성자들의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로 다른 각성자 인형들을 상대해 나갔다.

  하지만 각성자 인형끼리의 성능은 동일.

  다른 인형들도 저마다 한두 개씩은 아이템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무결 인형으로서도 방금 연회장의 인형들처럼 쉽게 상대할 수가 없었다.

  무결 인형이 간신히 한 개의 인형을 쓰러뜨렸을 때, 각성자 인형은 두 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계속해서 다른 각성자 인형들이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다. 거기 있는 녀석들 다 상대할 생각 말고 일단 빠져!'

  무결이 자신의 인형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결의 인형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뭐? 더 싸우고 싶다고? 환장하겠네."

  싸움 스타일이 버서커 같더니 성격도 버서커 같은 무식한 놈이었나 보다.

  [마스터,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습니다.]

  "난 저렇게 무식하게 싸우지는 않는다고!"

  [그래도 싸우는 건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특히 어려운 상대랑.]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저놈이 진짜 내 성격을 카피한 거란 말이야?'

  무결이 잠시 자아비판에 빠져 있을 때, 무결 인형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면 포위되잖아. 왼쪽으로 가!'

  '그 공격은 왼팔을 들어서 막아! 아니, 검으로 막으면 오른쪽 검 공격을 못 막잖아!'

  무결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드러나는 무결 인형의 실력상 한계에 답답해했다.

  아직 전투 경험이 짧아서인지 시야도 좁고 수읽기도 옅었다.

  그러면서 또 무결의 말은 더럽게 안 들었다.

  '아, 정말 암 걸리겠네.'

  무결 인형은 무결의 방으로 향하는 통로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인형들에 둘러싸인 채로 고전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무결이 벽으로 바짝 붙은 뒤, 자신에게 달려드는 인형들을 한 번에 떨쳐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아이기스의 방패].

  일전에 절에서 다른 각성자에게 빼앗았던 사기템 중 하나였다.

  '슈리. 잠시 다녀온다.'

  [마, 마스터!]

  당황하는 슈리의 목소리를 무시 하고, 무결은 정신을 [무결의 길안내 인형]에게로 집중했다.

  길안내 인형의 시야가 확 확대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집중이 강력해질수록 길 안내 인형의 상황이 면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위의 소란이 들려오고, 날뛰는 손발의 감각이 느껴졌다.

  '될까? 되어야 하는데.'

  무결은 정신을 집중해 녀석의 손 끝을 움직여 보았다.

  꿈틀.

  '된다.'

  감각이 예민해질수록 전투 중인 녀석의 신체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원래 몸과는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성공이군.'

  녀석이 상처를 입으면 자신이 상처를 입는 것은 그만큼 녀석과 무결 자신이 동기화되어 있다는 뜻.

  그걸 체크한 순간 무결은 녀석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곧 녀석과 무결의 동기화가 완료 되었다.

  '상황이 위험해. 빨리 끝내야겠어.'

  은밀히 인형의 통제권을 장악한 무결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윽- 무결 인형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의 움직임을 보였다.

  녀석의 앞을 막아서던 인형이 당황했다.

  무결 인형이 친 페이크에 걸려 잠시 딴 곳을 바라본 사이,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무결 인형 때문이었다.

  무결 인형은 순식간에 몸을 낮춰 놈의 사각으로 사라진 뒤 녀석을 스쳐 지나갔다.

  스윽- 맞- 무결 인형이 지나간 후, 놈의 옆구리가 터져 나갔다.

  어느새 베였는지 모를 정도로 신속하고 은밀한 베기였다.

  팟-파파파팟- 다른 인형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바람이 지나가듯 지나가는 무결 인형에 의해 다른 인형들의 신체가 어디 한 군데씩 터져 나갔다.

  "어떻게……!"

  "크윽!"

  인형의 주인인 각성자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피 흘리는 신체 부위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말도 안돼! 저건 마치 스킬을 쓰는 듯한 움직임이잖아!"

  무결 인형은 다른 인형들의 공격을 모조리 읽기라도 하는 듯 유유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쳐, 원래 있던 문 앞에 도착했다.

  무결이 동기화를 풀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본신의 몸이 위험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화를 풀자 무결 인형이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녀석은 지금 방금 무결이 보여준 엄청난 능력에 경악한 상태였다.

  '내가 말 들으랬지?'

  무결이 [아이기스의 방패]를 우회해서 자신의 몸을 찌르려 드는 인형을 [코크야의 관통 대거]로 잘라내며 피식 웃었다.

  [코크야의 관통 대거] 또한 절에서 다른 각성자에게 얻은 아이템이었다.

  '이제 그만 돌아와!'

  무결이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비로소 무결 인형이 순순히 무결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결의 무력시위가 녀석의 충성도를 높인 듯했다.

  다른 인형들은 따라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만 있었다.

  무결 인형은 그렇게 통로를 통과해 다시 무결의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형의 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어 문을 열었다.

  찰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무결에게 달려들던 인형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인형의 문 열쇠'가 사용되었습니다. 열쇠가 제자리로 되돌아갑니다.]

  그 소리와 함께 인형이 꽂아놓았던 열쇠가 사라졌다.

  열쇠는 연회장의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갔다.

  길안내 인형이 문을 연 채로 무결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간다, 가."

  무결이 피식 웃으며 인형을 따라갔다.

  인형은 무결을 연회장 쪽이 아닌 계단으로 안내했다.

  어두침침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곧 2층이 나왔다.

  그곳에는 먼지가 가득한 진열장 들이 늘어서 있었다.

  진열장들은 어둠 속 복도 깊은 곳까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길안내 인형이 손짓 발짓을 써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물건 중 하나를 고르라?"

  끄덕끄덕.

  "그러면 이 물건들의 가치에 걸맞은 몬스터가 나오고?"

  끄덕끄덕.

  "그 몬스터를 해치우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

  끄덕끄덕.

  손짓 발짓뿐 아니라 텔레파시에 가까운 의사 전달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음…… 뭘 골라야 한다."

  무결은 [하늘의 눈]으로 엄청난 수의 아이템들을 살펴보며 복도를 걸었다.

  "그냥 물건들이 아니었군. 하나같이 다 사기템들이야."

  그러다 문득한 가지 아이템을 발견했다.

  "이런 것도 있네?"

  -이름 : 귀신들린 복제 인형 -희귀도 : 이벤트 -설명 : 사용자의 모습으로 변신 할 수 있는 인형. 현재 알 수 없는 힘으로 봉인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볼까?"

  무결이 조금 더 집중해서 인형을 들여다봤다.

  -이름 : 귀신들린 따라 하기 복제 인형 -희귀도 : 이벤트 -활용도 : A+ -설명 : 사용자의 모습으로 변신 할 수 있는 인형. 피를 흘려 넣으면 사용자의 능력 또한 그대로 복제한다. 마력을 넣으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 가동시간은 30분이며 일회용이다. 현재 알 수 없는 힘으로 봉인되어 있다. 태엽을 감으면 봉인에서 풀려난다.

  무결이 인형을 든다음 등 쪽을 살펴보았다.

  설명대로 태엽이 달려 있었다.

  "괜찮은데?"

  무결은 인형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A+라는 활용도는 자신에게 큰 쓸모가 있다는 뜻이었다.

  활용도 평가는 [하늘의 눈]이 상승하며 얻은 능력 중 하나였다.

  "일단 후보."

  무결은 그것을 지나쳐다른 아이템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봉인되어 있군."

  그리고 그것을 아이템의 활용도에 걸맞은 방식으로 사용해야 아이템이 봉인에서 풀렸다.

  예를 들면 오르골은 열어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봉인이 풀리고, 나팔 종류는 불어서 봉인을 푸는 방식이었다.

  그 밖에도 검과 신발 등의 아이템들은 휘두르거나 착용하면 봉인이 해제된다.

  근데 그때.

  "응?"

  무결이 놀라서 사방이 살피다가, 문득 길안내 인형이 곁에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길안내 인형은 저 앞에서 한 아이템을 꺼내 살펴보고 있었다.

  옛날에 썼을 것으로 보이는 둥근 테 안경이었다.

  '저 녀석도 꺼낼 수 있었어?'

  그렇게 생각하다가 흠칫 놀랐다.

  "어이, 어서 그거 내려놔!"

  그러자 길안내 인형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그것을 뒤로 감추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결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친구, 우리 진정하고 일단 그것부터 내려놓고 얘기하자고. 어때?"

  무결이 조심조심 길안내 인형을 진정시키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녀석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샤삭- 그 안경을 재빨리 뒤집어썼다.

  "젠장."

  무결이 재빨리 다가가 녀석에게서 안경을 빼앗아 들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끼이에엑!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안경에서 빠져나온 희끄무레한 형체가 날아올라 복도 저 끝으로 사라졌다.

  "……."

  […….]

  "이거 저 아이템이 선택된 거 맞지?"

  [다른 아이템들을 만져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슈리의 말대로 무결이 다른 아이템들을 만져보려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만져지던 아이템들이- [접근 불가 오브젝트입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만져지지 않았다.

  "……젠장."

  무결은 하는 수 없이 인형으로부터 빼앗아든 안경을 살펴보았다.

  -이름 : 투시 글라스 -희귀도 : 이벤트 -활용도 : S -설명 : 물체를 투과해 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안경.

  "……좋은데?"

  무결은 생각보다 좋은 아이템의 능력에 깜짝 놀랐다.

  집중해서 아이템의 자세한 설명을 확인할수록 더욱 감탄했다.

  단순한 아이템 이름답지 않게 기능이 꽤나 쓸만했다.

  이 정도면 길안내 인형이 고르지 않았어도 자신이 골랐을 물건이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길안내 인형이 대어를 고른 셈이었다.

  무결이 복잡한 표정으로 길안내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이걸 칭찬을 해줘야 해, 혼을 내야 해?"

  그러자 길안내 인형이 팔짱을 끼며 거들먹거렸다.

  어서 빨리 자신을 칭찬하라는 뜻이었다.

  "그래, 너 잘났다, 이 자식아."

  무결이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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