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계신과 함께 153 무결이 원래 서 있던 자리는 절이 있는 산이었다. (153/215)

  기계신과 함께 153 무결이 원래 서 있던 자리는 절이 있는 산이었다.

  한데 이제는 묘비석이 잔뜩 꽂혀 있는 무덤이 되어 있었다.

  무덤이 지평선 저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하늘은 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검은 구름 때문인 건지 햇빛 한 점 없이 어둡기만 했다.

  번쩍- 간간이 세상을 밝히는 것은 하늘을 지나가는 번개뿐.

  콰르릉- 뒤이어 따라오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무결은 [저택지도] 아이템을 꺼내 저택의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서는 좀 머네.'

  절에 올 때와는 달리 좀 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동나침반]을 아껴둘 걸 그랬나?'

  그래봤자 최대 이동거리가 99km뿐 이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거였지만.

  무결은 [공간주머니]에서 네모나게 생긴 하얀 금속 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닥에 휙 집어 던졌다.

  그러자- 지잉, 철컹 철컹.

  네모나게 생긴 하얀 금속 덩어리가 늘어나고 펴지며 하나의 형태를 완성했다.

  하얗고 멋들어진 바이크가 무결의 눈앞에 완성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바퀴가 없다는 점.

  하늘을 떠서 이동하는 호버바이크였다.

  무결이 바이크에 올라타자 바이크가 지상으로 70cm 정도 떠올랐다.

  '그럼 가볼까.'

  위잉- 뒤로 흙먼지가 후웅 일며 호버바이크가 엄청난 속도로 발진했다.

  무결이 몸이 튕겨 나가지 않게 신경 쓰며, 점점 더 속도를 높여갔다. 하얀 선이 캄캄한 어둠 속을 가로 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으스스하군.'

  사방은 가도 가도 끝없는 묘비뿐이었다.

  그리고 묘비 앞에는 하나같이 작은 인형이 놓여 있었다.

  '생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무결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바이크를 몰고 묘비들을 지나쳐 갔다.

  그는 몰랐지만, 그가 지나간 후, 인형들의 눈이 그가 사라진 곳을 향해 스륵 돌아갔다.

  그리고 인형들은 하염없이 무결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 * * 대략 20분을 호버바이크를 타고 달려오니, 저택이 하나 보였다.

  아니, 이걸 저택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다.

  저택이 얼마나 큰지, 아직 저택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음에도 양쪽 끝 모서리가 고개를 돌려야 보일 정도였다.

  무결이 저택 가까이로 다가가니 이미 온 헌터들이 있었다.

  그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 아주 작은 정찰 드론들을 내보냈다.

  "뭐지, 이 저택? 문이 없어!"

  "창문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라는 건지, 원."

  정찰 드론을 통해 다른 각성자들의 위치와 말소리가 파악되었다.

  '벌써 많이도 왔군.'

  무결도 나름 빨리 온다고 왔는데, 저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만큼 그보다 일찍 온 자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만큼 다 들이벤트 아이템 두어 개씩은 가지고 있는 실력자들이었고, 또 다른 각성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기만 할 뿐 특별히 싸움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싸우기보다는 어서 저택을 뚫고 가는 걸로 목표를 정한 모양이군. 현명한 선택이야.'

  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현재 살아남은 120명중 총 50명.

  120명은 서로 '누가누가 더 빨리 포털을 통과하냐'로 생존경쟁을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싸워서 시간이 지체되었다간 다른 자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주는 셈이었다.

  "어이, 그러고 보니 여기 있던 사람 수, 조금 준 것 같지 않아?"

  "……어, 그러게? 분명 9명이었는데 한 명이 사라졌어."

  이미 모여 있던 각성자들 중, 듀오로 보이는 자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결은 유심히 저택을 살펴보았다.

  '그렇군.'

  저택 곳곳의 벽에 '비밀의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곳을 밀거나 하면 들어갈 수 있는 모양.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 일단.'

  무결은 뿌려놓았던 정찰용 드론들을 더 넓게, 그리고 높게 퍼뜨렸다.

  백여기가 넘는 정찰용 드론들이 실시간으로 저택의 외부 모습을 무결에게 전송해 주었다.

  [마스터, 이 저택은 가로 1.3km, 세로 720m로 직사각형 형태이며 지붕을 제외한 높이는 35m 정도입니다. 창문이 전혀 없어서 몇 층으로 이루어졌는지는 파악이 안 됩니다.]

  슈리가 저택의 개략적인 생김새를 알려주었다.

  '오케이, 땡큐. 그런데 이런 걸 '저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꼭 감옥이나 수용소처럼 생겨갖고 '저택'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니, 뭔가 좀 웃겼다.

  '아무튼…… 꼭대기 층이란 말이지?'

  무결이 크게 점프해 저택의 지붕으로 올라가 봤다.

  그리고 [유가선공]을 끌어 올려- 꽝!!

  저택의 지붕을 후려쳐 봤다.

  그러자- [파괴 불가 오브젝트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제대로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이군. 어쩔 수 없지.'

  무결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일단 뿌려두었던 드론들을 모두 회수했다.

  그리고 아까 봐두었던 '비밀 문' 중 하나에 손을 대어, 슬쩍 밀어봤다.

  '음, 안 밀리네. 어떻게 해야 한담.'

  통통.

  손으로 두드려 보니 그곳은 확실히 다른 벽들과는 소리가 달랐다.

  '음, 그렇다면.'

  무결은 손에 마력을 불어넣어 벽을 밀어보았다.

  그러자- 달칵.

  소리를 내며 벽이 열렸다.

  '빙고.'

  무결이 벽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자 회전문처럼 벽이 회전하며 닫혀버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새까만 어둠이 무결의 시야를 뒤덮었다.

  툭툭.

  다시 마력을 불어넣어 뒤의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잠겼군.'

  한 번 들어온 통로로는 다시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전진뿐이 방법이 없었다.

  틱.

  무결이 전등을 켰다.

  그리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복도에 끝없이 늘어져 있는 인형들의 산을 보았기 때문이다.

  벽과 천장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인형들로 가득했다.

  아까 묘비를 지나오며 보았던 종류의 인형들.

  '……이곳엔 사람의 넋을 인형으로 기리는 풍습이라도 있나?'

  무결은 [하늘의 눈]으로 많고 많은 인형 중 하나를 보았다.

  -이름 : 에비나의 길안내 인형 -희귀도 : 노멀 -설명 : 꽃다운 나이에 죽은 에비나의 살아생전 모습을 본뜬 인형. 그녀의 저승길 안내자로 제작되었다.

  '저승길 안내자라. 살아생전 모습을 본뜬 인형을 저승길 안내자 라며 제작해서 죽은 자들의 묘비 위에 놓은 것인가 보군.'

  별로 아름다워 보이는 풍습은 아니었지만, 무결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던전속 세상의 풍습이 이상한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 저택은 묘비 위에 놓이는 인형들을 만드는 곳인가?'

  무결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형들을 지나쳐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꺄아아악--!"

  복도 저 끝에서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

  "……슈리, 혹시 이번에도 네가 효과음 넣은 거니?"

  무결이 아까 불상의 눈이 레이저를 뽑아낼 때 슈리가 연출했던 효과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슈리가 오들오들 떨며 대답했다.

  "……분위기 한번 기똥차군."

  무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저어, 마, 마스터.]

  "응, 왜?"

  [마스터가 지나가니까, 인형들의 눈알이 모두 마스터를 따라오는데요?]

  "뭐?"

  슈리의 그 말에 무결이 순간적으로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띠리리리릭- 무결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재빨리 정면으로 돌아가는 수백 수천 개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무결의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으, 으어…….]

  슈리 또한 그 비주얼적인 그로테스 크함에 쇼크를 받은 듯했다.

  그리고 무결이 다시 뒤로 돌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응?"

  문득 그의 눈에 한 인형이 걸렸다.

  분명 눈동자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았던 인형이었다.

  그래서 잠깐 눈길을 주고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생김새가 너무나 이상했다.

  무결이 그 인형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이거, 분명……."

  무결이 그 인형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와아.]

  슈리가 인형의 모습을 보며 감탄 했다.

  [이거 완전…… 마스터 아닙니까?]

  블랙미슈릴 슈트에 '레일 건'을 들고 있는 모습.

  변장한 모습인 '이동한'이 아닌 원판 '신무결'의 특징을 제법 잘 살린 얼굴 생김새.

  그 인형은 신무결의 인형이 맞았다.

  -이름 : 신무결을 본뜬 길안내 인형 -희귀도 : 이벤트 -설명 : 모험가 신무결의 살아생 전 모습을 본뜬 인형. 신무결의 피가 묻으면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이 인형에 내 피를 묻히면 나를 저승으로 인도하나?"

  무결이 아까 본 [에비나의 길안내 인형]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까 그 인형을 봤기 때문인지 선 뜻 피를 묻히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피를 묻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무결은 일단 자신의 모습을 한 인형을 품에 넣어두고 다시 길을 떠나려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덥석.

  무결의 다리를 무언가가 잡고, 강한 힘으로 잡아끌기 시작했다.

  '……기척도 못 느꼈는데!'

  무결이 [유가선공]으로 제자리에 딱 버티고 서며, 총으로 자신을 잡아끄는 '끈'을 쏴 끊어버렸다.

  탕!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인형들 무더기에서 다른 인형들이 튀어나왔다.

  "키에에엑!"

  "죽어어--!"

  무결이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기가 막히는군."

  그가 품에서 총을 꺼내 달려드는 인형들에게 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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