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52 쾅---!
일단 레일 건을 발사해 봤다.
깡!!
녀석의 투구에 적중했지만 역시 레일 건 정도로는 저놈이 걸치고 있는 투구를 뚫을 수가 없었다.
"컥!"
하지만 완전 충격이 없던 건 아니었는지 녀석이 비틀댔다.
"저 개자식이!"
녀석이 흥분하며 다리에 힘을 주어 점프했다.
쾅!!
바닥에 금이 가며 녀석이 무결 쪽으로 쏘아져 왔다.
신발조차 이벤트 아이템인 모양 인지 녀석은 하늘을 '뛰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옳지, 이리 와라.'
절은 전장으로 좋지 않았다.
아이템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이템을 찾기 위한 힌트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결은 절을 최대한 보존 해 두기 위해 녀석을 자신 쪽으로 유인했다.
'다행히 단순한 놈이라 쉽게 따라 와 주는군.'
"자, 선물이다!"
무결은 품을 활짝 열어 품속에 있던 폭탄들을 일제히 녀석에게 드롭했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구슬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뭐야, 이거?"
엑스칼리버를 든 녀석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온몸을 웅크려 공격에 대비했다.
의문을 품는 와중에도 구슬들이 위험한 물건이란 것을 직감한 것이다..
쾅! 콰콰콰쾅!.
날아오던 녀석의 주변에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며 주변이 새까만 연기로 물들었다.
"겨우 이 정도냐!"
생각보다 약한 폭발에 녀석이 비웃으며 무결을 쫓았다.
아직 연기가 사방을 물들이고 있어서 시야가 좋진 않았지만, 무결의 마력을 캐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추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녀석이 무결의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힘껏 검을 내리그었다.
검이 거대하게 늘어나며 그를 베어 버렸다.
"성공이……!?"
'성공이다!'를 외치려던 녀석이 깜짝 놀랐다.
무결이, 아니, 무결의 형상을 하고 있던 마력이 산산히 흩어진 것이다.
"페이크였나!"
공격이 실패했지만 그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최고의 방어 아이템들이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으니, 어떤 공격이 날아오든 막아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무공이나 마법사용자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의외로군. 자, 어디 있냐. 연기가 걷히면 넌 죽음이다."
그가 다시 무결의 기를 찾아 정신을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으……?"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며,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몸 중심부에서부터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서서히 사라진다.
어깨 피부에 옷 닿던 감각이 사라지고.
어깨를 만져보려던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늘을 달리던 다리가 몇 걸음을 떼다가 완전히 멈추어서고.
녀석은,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
굳어가는 혀를 마지막으로 놀리던 녀석은, 이내 시야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몸을 누군가가 받아 들었다.
"뭐긴 뭐야, 마비향이지."
무결이 몸이 뻣뻣해진 녀석의 손에서 엑스칼리버를 빼앗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투구를 주섬주섬 벗기고, 갑옷과 신발마저 모두 벗겨 챙겼다.
"아이템 다치지 않게 생포하려니 힘들었다."
[그래도 [호신용 주술향낭]의 위력이 예상보다 좋아서 고생은 덜 었지 않습니까?]
"그러게. 진짜 조심해야 할 건 이따위 칼들보다 이런 향낭 같은 아이템일지도 모르겠어."
무결이 손에 들린 [호신용 주술 향낭]을 바라보며 말했다.
슈리의 말대로 그 또한 A급 각성자를 순식간에 마비시켜 버리는 향낭의 위력에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그는 일부러 폭탄과 연막탄을 섞어 터뜨리는 동시에 가지고 있던 [스텔스 드론]에 향낭을 묶어 연막 속으로 던져 넣었다.
녀석이 가진 아이템을 부수지 않고 뺏기 위해서 가장 처음 시도해 본 방법이 '마비향'으로 몸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향낭의 위력이 너무 좋아서 단 5초 정도 '마비향'을 맡게 하는 것만으로 성공해 버렸다.
'이거 나한테도 위력이 있는 것 아니야?'
제대로 쓰기 전에 한번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무결은 아이템을 수습하고 녀석을 하늘나라로 보내준 뒤 절로 향했다. 그곳 또한 정리가 되어 있었다.
"너도 수고했다."
무결이 검집을 내밀자 [귀검 곡도]가 날아와 검집에 박혔다.
[곡도]는 녀석이 절을 떠나간 동안 이벤트 아이템을 가진 다른 두 각성자를 죽인 상태였다.
그들 말고 다른 각성자들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틈에 모두 도망가 버린 듯했다.
'다른 놈들 와서 귀찮아지기 전에 어서 찾아보자.'
무결은 일단 [장보도]에 그려져 있던 수인을 찾기 위해 절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절에는 여러 종류의 불상이 안치 되어 있었다.
'이 수인…….'
[장보도]에 그려져 있던 손 모양은 특정 불상의 종류를 나타내는 '수인 (手印)'이었다.
불상들은 표현하고자 하는 부처에 따라 다른 모양의 수인을 맺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예를 들자면 석가모니불은 모든 번뇌를 물리치고 도를 깨닫는다는 의미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비로자나불은 이치와 지혜,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은 모두 하나라는 의미의 '지권인(智掌印)'을 맺고 있다.
'항마촉지인'은 한 손으로 아래를 가리키는 모양이고, '지권인'은 한 손의 검지를 다른 손이 감싸 쥔 모양이었다.
무결의 [장보도]에 그려져 있는 것은 한 손을 수평으로 놓고 그 위에 수직으로 다른 손을 올려놓은 모양의 수인이었는데, 처음 보는 모양의 수인이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종류의 불상인 듯했다.
절을 모든 불상들을 살펴본 결과, 그 모양의 수인을 한 불상은 단 하나였다.
절 한가운데에서 있는 거대한 부처.
'여기에 뭔가 있다.'
무결은 그 불상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슈리, 너도 한번 찾아봐'
[이미 스캔을 마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스터.]
'음…… 뭘까…….'
무결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건물 한쪽에 숨어 있던 스님이 눈에 띄었다.
몇몇 이런 참상이 일어났음에도 절을 떠나지 않고 건물 안쪽에 숨어 있는 스님들이었다.
무결은 그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스님, 말씀 좀 여쯤겠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스님이 눈을 질끈 감고 염불을 외었다.
절에서 일어난 혈풍(血風)에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
"괜찮습니다, 스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 대해 여쭈려는 것이니 긴장 푸시지요."
무결이 [유가선공]을 일으켜 그의 심신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러자 스님이 마침내 눈을 뜨고 무결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시주."
아직 완전히 공포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굳고 곧은 눈이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기 저 부처 님께서는 어떤 부처님이십니까?"
무결이 마당 한가운데 거대하게 서 있는 불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광명여래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광명여래불요?"
역시나 처음 들어보는 부처님의 이름이었다.
"예, 광명여래불께서는 세상 만물을 들여다보고 계신 부처님이십니다. 고통받는 중생과 그를 도와주는 중생, 죄를 짓는 중생과 선업을 쌓는 중생을 모두 지켜보고 계시지요."
"그 때문에 저렇게 높이 계시는 거군요?"
"예, 조금이라도 세상을 편히 둘러보시라고 저렇게 범찰(究刺) 한 가운데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결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스님에게서 등을 돌렸다.
'슈리.'
[예, 마스터. 힌트는 찾으셨습니까?]
슈리가 상당히 궁금해하며 물었다.
'찾았어.'
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보도]의 수인이 나타내는 저 불상은 모든 것을 '지켜보는' 부처 님이야. 저 불상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면 될 거야.'
[오.]
슈리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어때, 표시해 줄 수 있겠어?'
무결이 불상의 아래에서 불상을 올려다보며 슈리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마스터.]
슈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결의 눈에만 보이도록 홀로그램을 표시 해 주었다.
불상의 양쪽 눈에서부터 빨간 광선이 발사되어 천천히 앞으로 뻗어나갔다.
지이잉- 거기에 웬 이상한 효과음마저 들렸다.
[레이저 빔---!!]
물론 슈리가 연출한 효과음이었다.
"……."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눈에서부터 나가는 광선은 역시 모두의 로망입니다.]
슈리가 소원하나를 성취했다는 듯 훗훗 웃었다.
'난 아니다만.'
[아닙니다. 마스터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시절의 마스터가 이 광경을 보며 기뻐하고 있다는 걸, 전 알 수 있습니다.]
무결은 슈리가 언제 이렇게 인간적인 표현을 하게 되었나 감탄하며 광선의 끝이 가리키는 위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불상을 모신 암자가 있었다.
어찌나 작았는지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불상 하나만 달랑 들어가 있는 암자였다.
그 양쪽으로는 개울물을 졸졸 흐르고 있었고, 암자의 앞으로 절을 올릴 수 있게 평평하게 다듬어진 바위가 놓여 있었다.
'……저기 있다.'
무결은 부처님이 깔고 앉은 천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찾던 아이템이란 것을 알아 챘다.
-이름 : 미타찰의 법보(法寶) -희귀도 : 이벤트 -설명 : 광명여래와 미륵여래의 힘이 깃든 법보. 몸에 두르고 있을 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다.
"……오!"
무결은 설명을 읽으며 탄성을 내질렀다.
무려 스텟 상승 아이템이었다!
무결은 즉시 옷을 벗고 그 속에 [미타찰의 법보]를 덧대어 입었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능력치 정말 좋은데?'
무결이 상태창을 열어 살펴보니, 모든 능력치가 거의 3씩 상승해 있었다.
이 정도면 엄청난 전력 강화였다.
모든 능력치가 70을 넘고부터는 정말 능력치 상승이 더럽게 더뎌서 지금은 스텟 능력치 1개를 올리는데만도 몇 개월씩 걸리는 상황이었다.
반면 그 스텟 1의 상승이 단숨에 엄청난 전력의 강화를 불러왔다.
그런데 지금은 네 가지 스텟의 능력치가 모두 3씩 상승해서 총 12의 스텟 상승이 있었다.
'이 정도면 카이와 육탄대결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아직 너무 위험해.'
카이는 무결이 아는 련재의 가장 강력한 무공 사용자였다.
육체적인 스텟도 스텟이지만 가진 무공 기술이 그의 육체 스팩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터였다.
안타깝게도 무결 자신은 무공에는 그리 큰 적성이 없어서 카이와 직접 맞붙는 것은 조금 무리였다.
그의 뇌는 육체를 움직이는 것보다는 머리를 쓰는 것에 발달되어 있었다.
오히려 마법 쪽의 적성이 맞다면 더 맞으리라.
'물론 그보다는 장비빨로 이겨야지.'
애초에 무결의 전투 컨셉이 장비로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것이었으니.
'아이템이 미래다.'
무결이 자주 외치는 구호였다.
"자, 이제 돌아가서 찾아오는 부나방들이나 잡아먹어야겠군."
[탐색자의 지도]를 얻어 다른 아이템을 찾으려면 킬 카운트를 올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에서 기다리며 [장보도]를 보고 찾아오는 다른 플레이어을 노리는 게 최선이리라.
무결은 다시 절로 돌아갔다.
* * *
"아아악!"
그렇게 무결이 절에서 네 명째의 각성자를 잡아 킬 카운트를 19까지 채웠을 때였다.
[던전에 남은 인원이 120명이 되었습니다.]
[제3스테이지로 돌입합니다.]
[스테이지배경이 바뀝니다.]
[모험가 여러분께 각각 세 종류의 '저택지도' 아이템 중 하나가 주어집니다.]
[저택의 꼭대기에 제4스테이지로 가는 포털이 있습니다.]
[이 포털은 최대 50명의 모험가 만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포털을 통과하십시오.]
배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뭐 이리 으스스해?"
무결이 어두컴컴하고 황량하게 변해 버린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 배경은, 공동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