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51
"……더 이상 나서는 도전자가 없는 관계로, 비무대회를 종료합니다! '귀검 곡도'의 주인이 마침내 탄생했습니다!!"
"우와아아아!!!"
무결이 장수연을 압도적으로 쓰러뜨린 뒤에도 두 명의 도전자가 더 도전했지만, 모두 무결의 주먹 아래 한 방에 피떡이 되었다.
그리고 무결이 마침내 비무대회의 우승자가 되었다.
"우승자, 이동한 대협!"
"와아아아아!!"
무결은 우승자가 되어 [귀검 곡도]를 하사받게 되었다.
"귀검 곡도의 주인이신 이연 대협 께서 새로이 자격을 갖추신 무림의 동도께 '귀검 곡도'를 하사하러 오고 계십니다!"
백발이 성성한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군중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지나치는 곳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자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걸어오는 노인의 기파에 몸이 저절로 밀려 양쪽으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의기상인 (意氣傷人)의 수법.
그 모습을 본 무결이 감탄했다.
'나는 아직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다.'
저렇듯 의념(意念)만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몰아내는 것은 이제 겨우 기를 성형(成形)하기 시작한 무결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고차원적인 수법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생에서 저 경지를 보았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내공을 꽤 깊은 수준까지 익힌 지금은 저것이 얼마나 고절한 경지인지 알 수 있었다.
마력조차 사용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사이로 걸어온 노인이, 마침 내 무결의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자네가 우승자로군."
노인이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며 그가 손에 든 검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럼 이 검을 하사하겠네. 물러서지 말게."
노인은 '물러서지 말라'는 말을 할 때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웃으며 무결에게 한 걸음을 떼었다.
한데.
'윽.'
무결은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뒤로 한 발짝을 물러서고 말았다. 무언가 몸을 떠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느 새 몸이 뒤로 물러나 있었다.
무결은 눈앞의 노인 이연을 바라보았다.
'이게 의기상인인가?'
직접 의기상인을 몸으로 겪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느낌이었군.'
아마 이런 작용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노인에게 떠밀려 반으로 갈라진 것 같았다.
'이걸 만약 공격에 사용한다면 …….'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단지 생각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끼치는 게 가능한 수법.
아직 무결 자신에게 있어 까마득 하긴 했지만, 언젠가는 습득해야 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좋은 공부가 되는군.'
아직까지 등장한 던전들에서는 저 노인만큼의 고수를 본 적이 없었다.
노인 이연이 다시 한 걸음을 무결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 줄 생각은 없었다.
무결은 [의기활신 유가선공]을 끌어올렸다.
의기활신(意氣活身)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유가선공] 또한 의념의 힘을 사용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무공.
하얀 서리가 내리듯, 무결의 몸 주변을 흰빛이 은은하게 둘러쌌다.
'느껴진다.'
무결은 의념으로 이루어진 막이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속으로 발걸음을 들이밀었다.
시끄럽던 군중들의 소리가 단숨에 사라지고, 세상에 오로지 그와 이연 둘밖에 없는 듯한 적막감이 밀려들었다.
"호오."
이연이 살짝 감탄을 토하며 자신의 간격 안으로 들어온 무결을 바라보았다.
"훌륭하군. 솔직히 이렇게 바로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제가 노인장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으면 그검을 주지 않으셨을 겁니까?"
"노인장? 하하하."
이연이 '대협' 대신 '노인장'이란 호칭을 쓴 무결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아니, 그래도 줬을 거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다만 그래도 비무 우승자가 이검을 다룰 수 있는 자이기를 바랐을 뿐이지."
이연이 무결에게 검은색 검집에 들어가 있는 [귀검 곡도]를 건넸다.
"자, 받게. 자네라면 충분히 이놈을 길들일 수 있을 걸세."
무결이 그가 건넨 검을 검집째로 건네 받았다.
그리고 [귀검 곡도]의 손잡이를 움켜쥐어 보았다. 그 순간.
끼이이이잉-- 분노, 원망, 슬픔.
검의 손잡이를 통해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무결의 머릿속을 헤집으려 했다.
정신이 강철처럼 단련되지 않은 자라면 막대한 심적인 타격을 받았을 만한 강력한 정신공격.
무결 또한 준비 없이 거기에 휩쓸렸다면 정신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이연의 시험에 대항하느라 [유가선공]의 기운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던 덕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무결은 검을 뽑을수록 더욱 날뛰는 [귀검 곡도]의 마이너스적인 감정들을, [유가선공]을 이용해 깊숙이 억눌렀다.
지이이이잉-- 마침내 검집에서 모두 뽑혀 나온 귀검 곡도가 분노에 찬 울음을 토 해내며 검신을 지이잉 떨어대었다.
무결이 내공을 검에 주입할수록 그 검의 울음은 더욱 심해졌다.
무결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 달이 난 것 같은 떨림.
"이제 자네의 내공으로 검을 굴복 시키면 되네."
뒷짐을 지고 있는 이연이어서 검을 굴복시키라는 듯 무결의 손에 들린 [곡도]를 턱짓했다.
하지만.
"아뇨, 저는 검을 굴복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무결이 탁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연이 의아함에 찬 소리를 내었다.
애써 얻은 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겠다니?
무결이 빙긋 웃었다.
"검의 다른 사용법이 있을 것 같거든요. 일단 굴복시키기 전에 연구해 보렵니다."
[하늘의 눈]으로 계속해서 관찰 해 본 결과, 무결은 검의 다른 쓰임새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은 검을 굴종시키지 않아야 사용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래, 뭐 그거야 이제 주인이 된 자네 마음이지. 마음대로하게."
"예,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의 건투를 비네."
그렇게 무결은 이연에게 인사하고 뒤돌아무대를 내려왔다.
* * *
"이제 가라."
"예, 엡! 감사합니다!"
무결은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골목에까지 와서 소매치기를 보내주었다.
그는 귀검 곡도를 만지작거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음, 비무대회는 소득이 참 괜찮았어."
사기템 중에서도 성능이 괜찮아 보이는 [귀검 곡도]를 얻은데다가, '의기상인'을 몸으로 직접 체험 해 보기까지 했다.
'의기상인'에 대한 느낌을 직접 체험해 봤다는 건 이후의 무공 수련에 큰 플러스 요소였다.
'어쩌면 의기상인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흠……. 나가서 한 번 시험해 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을 좀 잡아먹긴 했는데…… 다행히 이게 있으니.'
무결이 품에서 [숙련된 탐험가의 이동나침반]을 꺼냈다.
이 아이템이 있어서 이제까지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
'슬슬 장보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겠군.'
무결은 [장보도]를 펼쳐 들어 그 속에 적힌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방향은 이쪽이고, 거리는 이 정도로…….'
그는 [이동나침반]의 지침과 숫자판을 조작한 다음, 거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발동.'
그러자 그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팟.
무결이 원래 있던 곳에서 대략 70km 정도 떨어진 곳의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발아래 역장을 생성하여 그 위에 올라섰다.
"제대로 왔군."
그의 시야 아래로 소매치기가 가르쳐 주었던 '현덕사'가 보였다.
수인을 맺고 있는 거대한 부처님 석상을 둘러싼 절.
그 수인의 모양이 지도에 적혀 있던 수인의 모양과 일치했다.
한데 그 안에서는 이미 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아아악!!"
"저 자식, 괴물이야!"
"갑옷 말고 머리를 노려!! 둘러싸서 상대해!!"
한 팀으로 보이는 자들, 그리고 솔로로 활동하는 자들이 한데 모여서 단 하나의 각성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하하하! 그런다고 네놈들이 내게 상처 하나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대고 있는 그자는, 낯이 익은 자였다.
'저자는…… 엑스칼리버?'
처음 던전을 들어왔을 때 돌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든 각성자였다.
그리고 처음 검을 얻었을 때도 그랬듯, 지금도 그 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다른 각성자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환한 빛이 절간 내부를 종횡무진 갈랐다.
"아싹!"
다른 각성자들이 연합해 그에게 집중 포화로 대항하고 있었지만, 이미 엑스칼리버를 토대로 다른 사기템들을 더 얻었는지 그는 포화 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다른 자들을 참살할 따름이었다.
사기템으로 추정되는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기템들의 공격을 어느 정도 받아내는 모양이었다.
초반 사기템 하나로 다른 사기템들을 획득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자들을 죽여서 그들이 얻은 사기템들을 빼앗는 중이었고.
이미 여기저기에는 각성자들뿐 아니라 이 절의 스님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상처를 보니 반수 이상이 저자 하나에게 당한 것 같군.'
그는 무결이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각성자 하나를 죽여서 그가 가지고 있던 사기템을 주워 들고 있었다.
"이거이거, 날 위해 참 쓸만한 투구를 가져와 줬군? 고맙게 쓰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가 자신의 머리에 방금 다른 자가 끼고 있던 투구를 뒤집어썼다.
"이런 젠장……."
다른 각성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가 그나마 아이템을 두르지 않고 있던 부분이 머리였는데, 그런 약점마저도 사라진 것이다.
"그럼 어디…… 이제 던전 아이템을 가진 자가 둘밖에 안 남았나?"
그는 입맛을 다시며 다른 각성자들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무결이 그들을 [하늘의 눈]으로 보니 엑스칼리버 녀석의 말대로 두 명이 녀석이 '던전 아이템'이라 부른 이벤트 아이템들을 들고 있었다.
한 명은 단검, 한 명은 방패.
'저것들까지 얻으면 더욱 골치가 아파지겠군.'
이미 지금 상태만으로도 골치깨나 썩이게 생겼는데, 다른 것들까지 얻는다면 얼마나 더 상대하기가 힘들어질지 몰랐다.
'널 처음 써봐야 할 것 같군. 가라, [귀검 곡도].'
무결이 지금까지 손에 들고 있던 [귀검 곡도]의 칼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잡이 쪽이 정면으로 향하도록.
그러자 칼집에서 [곡도]가 홀로 스르르 빠져나왔다.
"어디 마음대로 날뛰어 봐라."
지이이잉- [귀검 곡도]가 검명(劍鳴)을 토해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무결의 마력을 머금어 흰색 서기를 흘리는 [귀검 곡도]는 귀검(鬼 劍)이란 이름답지 않게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힘을 마주하게 된다면 저것이 단지 아름답기만한 검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터였다.
그것을 상대하게 된 엑스칼리버의 주인처럼.
"깡!!"
다른 각성자를 향해 짓쳐들어가 던 엑스칼리버가 하늘을 날아온 [곡도]에 막혀 그 궤도를 놓쳐 버렸다.
쾅!!
애꿎은 절의 건물 하나가 날벼락을 맞고 부서졌다.
"뭐야, 어떤 새끼야?"
엑스칼리버의 주인이 검이 날아 온 무결 쪽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으엇!"
깡! 까강!
엑스칼리버에 맞고 튕겨 나갔던 [귀검 곡도]가 되돌아와 엑스칼리버의 주인의 허점을 파고들려 했다.
녀석은 당황해서 그 검들을 허둥지둥 쳐내었다.
[곡도]의 공격 하나하나가 갑옷의 이음매를 노리고 짓쳐든 데다 검이 품고 있는 마력마저 엄청나게 강력해,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제법이군.'
무결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이미 검에 숙련되어 있던 무협 계열 헌터로, 적어도 A급은 되어 보이는 퍼포먼스를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튕겨 나간 [곡도]가 그 녀석이 곤란해할 궤적을 그리며 계속 교묘하게 틈을 노렸다.
검 자체에 깃든 검사의 검로(劍 路)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좋군.'
무결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곡도]의 검집을 바라보았다.
이 검집을 통해 타깃을 지정하면, 곡도가 스스로 날아 타깃을 공격 하는 것.
그것이 '곡도'의 또 다른 사용법이었다.
'애초에 검을 잘 못 다루는 나는 이게 맞아.'
물론 제대로 된 검사가 [곡도]를 다룬다면 더욱 엄청난 위력이 나오겠지만, 검과 관련된 무공을 배운 적이 없는 그가 검을 사용하기 보다는, [곡도] 스스로가 날뛰어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나는 그 틈에 이러면 되지.'
무결이 손에서 꺼내 든 무기로 [곡도]를 상대하고 있는 엑스칼리버의 주인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