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46 [던전 '300인의 대난투'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이 클리어될 때까지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던전 내의 모든 것을 활용하여 마지막 생존자가 되십시오.]
무결이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들은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마지막 생존자가 되라'는 던전의 시스템 메시지가 바로 이 던전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었다.
[300인의 입장이 완료되었습니다.]
[30초 후 '300인의 대난투'가 시작 됩니다.]
[모험가 여러분의 건투를 법니다.]
그가 들어온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300인의 입장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무결뿐 아니라 첫 번째로 던전에 들어온 사람이나 300번째로 들어온 사람 모두 던전에 들어온 직후에 같은 메시지를 들었다.
먼저 들어온 사람이 기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던전의 배려.
여러 명이 함께하는 던전에서 이런 시공의 뒤틀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1초, 2초…….
시간이 간다.
30초가 다가올수록 무결의 몸에 긴장이 차올랐다.
이번 던전은 정보가 얼마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는 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을 조금 풀어주었다.
시간은 금세 30초가 되었다.
* * * 참가자들의 눈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윽."
"으음……."
갑자기 눈을 뚫고 들어오는 빛에, 사람들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각성자답게 그들은 금세 빛에 적응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뭐야!"
"젠장!!"
사람들이 당혹했다.
약 100명의 각성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죽여야 할 100명의 사람이.
물론 몸이 닿을 만큼 찰싹 붙어 있는 건 아니고 대체로 서로 5미터 정도는 떨어져 있었지만, 3~4미터의 거리는 없는 것처럼 공격할 수 있는 각성자 간의 간격에서 5미터의 거리는 너무 애매모호한 거리였다.
"움직이지 마!"
"다가오면 죽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자들에게 위협을 내뿜으며 긴장했다.
가장 외곽에 위치한 각성자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발을 뒤로 뻤다.
그러나 가운데 위치한 각성자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사방을 경계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던 그때.
가운데 부근에 있던 각성자 하나가, 자신의 발치에 꽂혀 있는 뭔가를 발견했다.
"음? 이게 뭐지?"
그의 발치에는 단단한 돌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검의 손잡이가 하나 박혀 있었다.
'이거 꼭 모 신화에서 등장하는 검 같이 생겼는데?'
돌에 박힌 검.
유럽의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엑스칼리버'가 떠오르는 상황.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그것을 발견한 헌터의 손이 돌에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설마 뭐 저주가 걸렸다거나 그런 검은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검은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 좋은 예감이 드는 검.
주인을 깐깐하게 고른다는 아서 왕 전설의 검과는 달리, 그가 돌에서 뽑아낸 검은 너무도 부드럽게 돌에서 빠져나와 그 태를 드러냈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예기(銳氣)를 드러내는 명품이었다.
그가 시험 삼아 그 검을 앞에 대고 휘둘러보았다.
휘익!
단지 가볍게 휘두른 일검(─劍)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스스스슥!
검을 타고 엄청난 크기의 검기(劍 氣)가 일며-
"으아아악!"
"아아악!"
그 검기의 경로에 있던 각성자세 명이 순식간에 검기에 베여 죽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주변의 각성자들이 바짝 굳어버렸다.
검을 휘두른 헌터는 잠깐 놀라움에 온몸을 경직시켰다가, 곧 씨익 미소 지었다.
그리고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검기의 세례가 사방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으악!"
"저런 미친!"
"저 칼 뭐야! 크악!!"
처음의 공격을 본 주변의 많은 각성자들이 긴장 속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곧 그 주변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일파만파 퍼졌다.
"젠장, 오지 마!"
"비켜, 이 개새까!!"
서로 간의 간격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각성자들의 뒤엉키며, 일대는 혼돈으로 가득 찼다.
'저게 바로 그 '사기템'들인가.'
무결이 그 광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던전에는 저런 사기적인 성능을 가진 소위 '사기템'들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만약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하나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희귀도 유니크, 활용도 S급에 이르는 괴물 같은 아이템들을, 이 던전에서는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시작부터 한곳에 모든 입장자를 몰아넣었군.'
던전 내에 저런 사기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제 여기에 있는 모든 각성자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제부터 저런 사기 아이템들을 선점하기 위한 각성자들의 처절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각성자들이 땅 위로, 하늘 위로, 혹은 땅속으로 이동하며 각자의 살길을 도모해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좁은 지역에서 넓게 퍼져 나가려다 보니 서로 부딪치고 치고받고 싸우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간간이 무결을 향해 다른 각성자들이 공격이 날아왔지만, 무결은 가벼운 손짓만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었다.
'카이는 여기 없네.'
무결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강력한 세뇌 능력을 가진 그는 시간이 갈수록 까다로운 적으로 변할 터였다.
그래서 시작부터 만나서 죽이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는데, 안타깝게도 무결이 시작한 지구에서는 카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음, 나도 어서 움직여야겠군. 일단…….'
무결이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힘껏 뛰어올랐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구름을 솟을 듯이 치솟아 올랐다.
시야가 순식간에 확장되며 주변 지리 정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 무결이 떠 있는 푸른 초원 한쪽 저 멀리 숲의 경계선이 보였다.
그리고 몸을 틀어 반대 방향을 보니 끝없이 이어진 초원이 보였다. 그런데…….
'저건…… 토네이도?'
초원 저 멀리서부터 하늘 끝까지 이어진 용권풍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흐음……?'
토네이도를 유심히 바라보던 무결의 눈이 빛났다.
'저기 뭔가 있군.'
잘하면 토네이도에서 뭔가를 하나 건질 것 같았다.
무결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토네이도 쪽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크억!"
카이의 손에 목을 틀어잡힌 각성자가 옴짝달싹 못하고 파르르 떨기만 하고 있었다.
엄청난 마력이 그의 전신을 단단히 옭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이 칼이 그렇게 좋아?"
카이가 방금 빼앗은 도(刀)를 허공에 대고 붕붕 휘둘러 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 도에서부터 날카롭고 커다란 검기가 한 줄기 생성되어 걸리는 모든 것을 작살냈다.
"사용자에 따라 능력이 증폭되거나 하지는 않는군."
그의 손에 붙들린 각성자와 카이는 엄청난 마력의 격차가 있음에도, 도가 뿜어내는 도기의 위력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이템이 사용자의 능력을 딱히가 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나올 아이템도 그러려나? 그렇다면……."
카이가 손에 쥐고 있는 각성자의 목이 아닌 머리 쪽으로 손을 옮겼다.
"뭐, 뭐, 뭐야! 아…… 아악!!"
카이의 고유 스킬 [광뇌조작]의 힘이 그 각성자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그의 머리에서 번쩍번쩍 빛이 나고 나서 스킬의 이펙트가 멎었다.
"야."
카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각성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예, 주인님."
공손히 대답한 각성자를 향해 카이가 가볍게 몇 가지 테스트를 했다. 각성자는 완벽히 세뇌되었다.
"주인님 말고 마스터라 부르도록."
"예, 마스터."
"일단 이거 다시 갖고 가고."
카이가 빼앗았던 도를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도는 그에게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에게 칼을 쥐여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명령을 내리겠다."
"하명하십시오."
'노예'가 극진하게 허리를 숙였다.
"네가 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단 던전 속에 있을 이런 강력한 아이템 탐색이다. 이런 칼 같은 강력한 아이템 하나를 찾아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카이가 주변의 도망가고 있는 각성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게 위협이 되는 능력자가 있다면, 도망쳐서 나에게 보고해라. 내가 친히 네 친구로 만들어 주겠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아, 한 가지 더. 혹시 던전 속 아이템 얻은 놈이 보이면 그놈도 보고 하고.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세 시간에 한 번씩 돌아와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래, 그럼 가봐."
카이는 그렇게 부하를 보내고는 목을 두둑 꺾었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그가 방금 눈여겨보았던 몇몇 각성자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썩을."
무결이 혀를 찼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토네이도의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나 컸다.
아직 50여 미터는 떨어져 있건만, 벌써부터 거센 바람이 무결을 토네이도 속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쿠구구구구- 토네이도는 굉음을 내며 이동하는 곳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만 하면 평범한(?) 토네이도.
하지만 무결의 눈에는 희미하게 보였다.
저 토네이도의 이름이.
-이름 : [스톰브링어] 의 무덤 토네이도 주제에 이름이 '무덤'이다.
그 중심부까지는 눈길이 미치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의 정보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 속으로 들어가 봐야 그 속내를 제대로 보여줄 듯싶다.
'……호랑이 가죽을 얻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겠지?'
무결은 한숨을 내쉬고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저 속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는 토네이도가 오는 경로에 서서 -콱!
바닥에 단단하게 양다리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마력을 자신의 신체와 블랙 미슈릴 슈트에 불어넣었다.
핏- 그의 뺨으로 나뭇가지 한 조각이 스쳐 지나갔다.
강력한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그의 뺨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지만, 보통 사람이 맞았다면 얼굴이 꿰뚫렸을 만한 위력이었다.
쿠쿠쿠쿠쿠- 토네이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결에게 날아드는 물건들의 덩치가 커진다.
처음엔 작은 나뭇가지더니 그다음엔 웬 바위가 날아오고, 나중에는 아예 나무가 통째로 날아들기 시작 했다.
"흐읍!"
쾅!!
무결의 주먹이 날아오는 나무를 반으로 부러뜨려 버렸다.
땅에 박아 넣은 그의 발이 살짝 땅 밖으로 빠져나올 뻔했다.
콱!
무결이 다시 땅바닥에 발을 박아 넣으며 몸의 균형을 잡았다.
쾅! 쾅! 쾅!
토네이도 속에 웬 나무가 이렇게 많은지, 갈수록 많은 나무들이 무결에게 부딪쳐 왔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닥쳐올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맙소사.'
무결의 눈앞으로, 이번에는 아예 규모가 다른 게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