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과 함께 144
"나중에 준비가 더 되고 쳐야 돼, 그쪽은. 그걸 위해서 지금껏 이렇게 숨죽이고 있었던 거니까……."
카이가 눈을 빛내며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잠시 화가 난 그의 몸에서 흉악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일부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었다.
"그래, 타초경사(打艸驚己)의 우(愚)를 범하지는 말아야지. 치료해."
"예, 마스터."
장유이가 기절한 여자들을 치유해 주었다.
"우리나라 던전 탐색은? 특히 그 두 마리의 8급 몬스터가 나왔다는 곳은 조사가 얼마나 진척됐지?"
그 말에 중국 베이징 부근의 던전 담당자로 보이는 자가 나섰다.
"그게…… 믿기 힘든 말입니다만……."
그가 조금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재앙형 던전이 등장할 전조 같다고 합니다."
"재앙형 던전?"
카이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그들의 보고를 함께 듣고 있던 무결의 눈빛도 빛났다.
'드디어 나오나.'
엄청난 위기인 동시에 크나큰 기회의 장인 재앙형 던전.
카이가 이것을 그대로 지나칠 리가 없었다.
"예, 그 주위 던전들이 갑작스럽게 던전 브레이크로 열리고 있는 것이, 이제까지 재앙형 던전들이 등장했던 패턴들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언제 열리지?"
"정확한 시기는 계측되지 않았습니 다만, 빠르면 1주일 안예 열릴 거라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카이가 목을 뚜둑뚜둑 꺾었다.
"전에 재앙형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 게 꽤 아쉬웠는데 잘됐군. 이번에야말로 바로 들어가서 클리어해야겠어."
이제까지 전 세계에는 재앙형 던전이 9개가 등장했었다.
그중에 클리된 것은 단 두 곳.
한국과 미국에 등장한 재앙형 던전이었다.
나머지 재앙형 던전은 6개월간 클리어되지 않고 방치된 끝에 폭주해 버렸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이 멍청하게 기다리지 말고 바로 클리어해야겠어."
지난번에는 재앙형 던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 워낙 짭짤했기 때문에 일부러 클리어를 안 하고 미뤄 뒀었다.
던전 내 저12스테이지가 워낙 힘들기도 해서 굳이 클리어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었고.
그러나 그들은 왜 던전 정보에 '재앙형'이란 말이 들어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어야 했다.
폭주한 7개의 재앙형 던전은 그 인근 지역을 전부 초토화시켜 버렸다.
각국 헌터들은 뒤늦게라도 폭주하고 있는 재앙형 던전을 클리어하고자 부랴부랴 인력을 투입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클리어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제2스테이지를 그렇게 단기간에 쉽게 클리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말로 재앙이 되어버린 재앙형 던전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과 재 산상의 피해만이 상처처럼 남아버렸다.
"이번에는 바로 클리어할 테니까 최고의 탐색자들을 재앙형 던전 인근에 대기시켜 놔."
"알겠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사안이 카이의 주도하에 논의되었다.
무결은 그 유익한 시간을 그 자리에서 함께했다.
* * * 검을 든 인간형 몬스터들이 무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놈들은 무협 장르던전에서 나온 놈들로,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무결이 손에 든 [라이트세이버]가 윙- 소리를 내며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검째로 갈라져 버렸다.
카이는 무결을 재앙형 던전 인근의 몬스터 토벌에 투입했다.
계속 상승세에 있는 '이한철'의 이름값을 높이고자 하는 속셈.
그의 장단에 맞춰주고자 무결은 적당히 전에 드러냈던 정도의 무력만을 드러내며 몬스터들을 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무결을 위에서부터 덮쳐 오는 놈이 있었다.
무결이 건물 아래를 지나기를 기다리다 건물 위에서 기습을 가해온 신중한 녀석.
하지만 그를 처리한 건 무결이 아니었다.
무결의 그림자가 솟구쳐 올라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던 녀석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피가 후두둑 쏟아지는 것을, 검은 그림자가 장막이 되어 막아내었다.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가 무결의 옆에 섰다.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군."
검은 옷으로 온몸을 둘러싼 존재가 무결을 보며 말했다.
"그래, 오랜만이군, 구자운."
무결 또한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무결의 옆에 본모습을 드러낸 정보부담당자 구자운이었다.
그는 한동안 무결을 위해 일하다가 정식으로 은하그룹 소속의 정보부로 일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무결의 실력을 지켜보고 그의 그늘 아래로 들어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들키지 않고 잘 왔겠지?"
통신 전파는 중간에 도청당하거나 감지당할 위험성이 있어서, 구자운은 조사한 사항을 직접 무결에게 보고하러 찾아왔다.
"내 실력을 본 게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런 의심인가?"
무결의 물음에 구자운이 못마땅한 듯 무결에게 말했다.
"그만큼 이곳이 복마전이라 그래. 너도 조사해 봤으면 알 텐데?"
둘은 알고 보니 서로 동갑이라서로 반말을 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지. 중국의 카이라고 했나?"
"그래."
"……엄청난 놈이더군. 중국 쪽에서 활동 중인 암흑가 쪽 사람들은 아예 그냥 죽어 살고 있어. 덕분에 조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지."
"그래서, 실패했나?"
"성공했지."
구자운이 씨익 웃었다.
"조사 결과는?"
"거참,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군."
구자운이 별 감흥 없는 무결의 말투에 투덜대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카이의 존재를 눈치 채고 반감을 품고 있는 존재들'……."
구자운이 약간 뜸을 들였다.
"있긴 있지."
"그런데?"
무결은 구자운의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고 물었다.
'있긴 있다'는 말은 '있다'라는 말 과는 아주 달랐으니까.
"하나같이 겁을 먹었는지, 어떤 액션을 취할 생각은 않고 있더군."
구자운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하지만 반대로 무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현명한 거야."
"뭐가 현명해? 하나같이 겁만 먹고 쫄아 있는데."
구자운이 무결의 반응에 의아해했다.
"자운, '오라클'이라고 들어봤나?"
"오라클?"
구자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각성자들 중에 '시공간 너머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카이에게 그런 오라클 능력자들이 있다. 아마 '어떠어떠한 특성을 가진 자들'을 색출할 수 있는 종류의 능력이 있을 거야."
구자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런 사기 같은?"
"그래, 그런 능력자들이 나서면 카이에게 반하려는 불순분자들을 간단히 찍어낼 수 있어. 그런 면에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그들은 현명한 거야."
무결이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그들은 오라클 능력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을 거야. 일단 그들의 위치는 알고 있지?"
"그래."
"그래, 그럼 됐어."
무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하그룹과 강하나 일행에게 전해줘."
무결이 구자운을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절대로, 중국 베이징 부근에 열리는 이 재앙형 던전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절대로."
무결이 '절대로'를 두 번이나 강조하며 구자운에게 말했다.
"이번 재앙형 던전은,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다."
"……알겠다. 꼭 전하도록 하지."
구자운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앙형 던전은 언제 열리지?"
"아마, 한 한 시간 정도 남았을 거다."
무결이 시간을 흘깃 보고 말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냐?"
구자운이 새삼스럽게 무결의 뛰어난 정보력에 궁금해했다.
씨익.
무결은 그런 그의 질문에 그저 미소로 답해줄 뿐이었다.
'미래의 던전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라고는 답해줄 수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가기 전에 마지막을 해줄 일이 있다."
무결이 구자운을 보고 말했다.
"뭐지?"
무결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서 일고 있는 폭음을 가리켰다.
"저기에서 날뛰고 있는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생포해야 해서."
"그게 누군데?"
구자운의 물음에, 무결이 씨익 웃었다.
"위청천."
구자운이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 * * 붕! 부응!
거침없이 손에 든 나무몽둥이를 휘둘러 대는 트롤킹.
일반 트롤의 5배는 됨직한 키를 가진 그 거대한 몬스터에게 접근하려는 헌터는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콰아앙!
위청천의 주먹질이 거대한 트롤킹의 등뼈를 아작 내버렸다.
하지만 트롤킹이란 이름답게 트롤 킹은 무시무시한 재생력으로 아작난 등뼈를 치료하며, 오히려 위청천에게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둘러 댔다. 부응! 부응!
"크와아아앙!"
그러나 위청천은 그 모든 몽둥이 공격을 피하며, 오히려 다시 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콰앙! 콰앙! 콰앙!
거침없고 시원한 주먹질이 계속해서 트롤킹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하지만 트롤 킹의 재생력이 그 엄청난 재생력으로 내부를 다시 치유 해 나갔다.
그럼에도.
콰앙! 콰앙!
위청천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부응!
트롤 킹이 계속해서 위청천을 잡으려 몽둥이를 휘둘러 댔지만, 그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크와아앙……."
어느 순간부터 트롤킹의 포효 소리가 작아져 갔다.
그리고 계속되는 거침없는 위청천의 주먹질에…….
콰아아앙!!
마침내 트롤킹의 등짝이 터져 나갔다.
쿵.
트롤킹이 쓰러졌다.
"와아아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헌터들이 소리를 질렀다.
위청천이 한 손을 하늘 높이 번쩍치켜들었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헌터들의 환호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쑤욱.
위청천의 발밑 그림자가 쑤욱 늘어나더니, 갑자기 위청천을 집어삼켜 땅바닥 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
헌터들과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라진 위청천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 * *
"꽉 잡고 있어!"
무결이 구자운에게 소리쳤다.
"놔라,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위청천이 분노하며 무결에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는 구자운의 그림자에 꽁꽁 묶인데 더해, 구자운의 직접적인 관절기에 걸려서 전혀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었다.
위청천의 등 뒤에 매미처럼 매달려 그를 옭죄고 있는 구자운이 식은 땀을 흘렸다.
"야, 이 새끼 왜 이렇게 세! [근력 증가 비약]까지 섭취했는데, 모, 못 버틸 것 같아!"
"끄, 아아아악!!"
위청천의 온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자신의 [반야대능력(般苦大能 刀)]을 극한까지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참아!"
무결이 구자운에게 단호하게 소리 치며 품속에서 [라이트세이버]를 꺼내 들었다.
윙- [라이트세이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무결이 [라이트세이버]의 설정을 조절했다.
물질 비타격 모드.
그리고 눈을 감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하늘의 눈].
번쩍.
눈을 뜬 무결의 눈이 하늘을 닮은 깊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위청천 씨."
"……뭐냐, 배신자."
위청천이 이를 으득 물고 무결을 노려보았다.
그의 분노로 불타는 눈빛이 무결을 향했다.
"돌아오세요."
스윽- 무결의 [라이트세이버]가 위청천의 머리를 갈랐다.